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

마하박가(mahabhagga) - 제11장 나아감의 지혜

실론섬 2014. 9. 9. 18:45

나아감의 지혜

 

1. 「안팎의 양쪽으로부터의 벗어남(出離)과 물러남(退轉)에서의 혜(慧)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인가?

흐름에 나아가는(預流道.예류도) 순간 봄(見)의 의미를 지닌 바른 견해(正見.정견)는 삿된 견해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蘊.온)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마음쏟음(現前解)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사유(正思惟.정사유)는 삿된 사유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말(正語.정어)은 삿된 말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일어남(等起)의 의미를 지닌 바른 행위(正業.정업)는 삿된 행위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1-2. 청정(淸淨)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삶(正命.정명)은 삿된 삶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정근(精勤)의 의미를 지닌 바른 정진(正精進.정정진)은 삿된 정진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확립(近住)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마음챙김(正念.정념)은 삿된 마음챙김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삼매(正定.정정)는 삿된 삼매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2.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一來道.일래도) 순간 봄(見)의 의미를 지닌 바른 견해는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마음쏟음(現前解)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사유(正思惟.정사유)는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말(正語.정어)은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일어남(等起)의 의미를 지닌 바른 행위(正業.정업)는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청정(淸淨)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삶(正命.정명)은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정근(精勤)의 의미를 지닌 바른 정진(正精進.정정진)은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확립(近住)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마음챙김(正念.정념)은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삼매(正定.정정)는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3. 돌아오지 않음에 나아가는(不還道.불환도) 순간 봄(見)의 의미를 지닌 바른 견해(正見.정견)는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마음쏟음(現前解)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사유(正思惟.정사유)는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말(正語.정어)은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일어남(等起)의 의미를 지닌 바른 행위(正業.정업)는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청정(淸淨)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삶(正命.정명)은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정근(精勤)의 의미를 지닌 바른 정진(正精進.정정진)은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확립(近住)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마음챙김(正念.정념)은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삼매(正定.정정)는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4. 아라한에 나아가는(阿羅漢道.아라한도) 순간 봄(見)의 의미를 지닌 바른 견해(正見.정견)는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마음쏟음(現前解)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사유(正思惟.정사유)는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말(正語.정어)은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일어남(等起)의 의미를 지닌 바른 행위(正業.정업)는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청정(淸淨)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삶(正命.정명)은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정근(精勤)의 의미를 지닌 바른 정진(正精進.정정진)은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확립(近住)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마음챙김(正念.정념)은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삼매(正定.정정)는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

 

5. 생겨난 것(生)에 의해 생겨나지 않은 것(不生)을

알게 하므로 지혜라 한다네

지혜에 의한 해탈에 능숙함으로써 잡다한 견해에 동요되지 않는다네

정(定)에 들어가서 관찰(觀)하듯이 

그와 같이 관찰하면서 정에 들어갈 수 있고

사마타와 위빠싸나가 있을 때 동등함과 짝을 이룸이 있다네

'형성력에 의한 것(諸行)은 괴로움이라고

소멸은 즐거움'이라 보는 것은

양쪽으로부터 벗어난 혜로서 죽지 않는 장소에 도달케 한다네

해탈의 행위를 알아 분산됨과 하나됨에 현명한 자는

두 가지 지혜에 능숙한 까닭에 잡다한 견해에 동요하지 않는다네

 

그와 같이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지혜(智)이며, 알아차린다는 의미에서 혜(慧)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양쪽으로부터 벗어남과 물러남에서의 혜로서 나아감의 지혜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