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

마하박가(mahabhagga) - 제12장 성취의 지혜

실론섬 2014. 9. 9. 18:50

성취의 지혜

 

1. 「실천행을 통한 그침(止滅)의 혜로서 성취(果)에 대한 지혜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인가?

흐름에 나아가는(預流道.예류도) 순간 봄(見)의 의미를 지닌 바른 견해(正見.정견)는 삿된 견해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蘊.온)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마음쏟음(現前解)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사유(正思惟.정사유)는 삿된 사유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蘊.온)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사유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말(正語.정어)은 삿된 말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말이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일어남(等起)의 의미를 지닌 바른 행위(正業.정업)는 삿된 행위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행위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1-2. 청정(淸淨)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삶(正命.정명)은 삿된 삶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삶이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정근(精勤)의 의미를 지닌 바른 정진(正精進.정정진)은 삿된 정진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정진이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확립(近住)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마음챙김(正念.정념)은 삿된 마음챙김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마음챙김이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삼매(正定.정정)는 삿된 삼매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삼매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2. 한번 돌아옴에 나아가는(一來道.일래도) 순간 봄(見)의 의미를 지닌 바른 견해는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마음쏟음(現前解)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사유(正思惟.정사유)는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사유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말(正語.정어)은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말이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일어남(等起)의 의미를 지닌 바른 행위(正業.정업)는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행위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청정(淸淨)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삶(正命.정명)은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삶이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정근(精勤)의 의미를 지닌 바른 정진(正精進.정정진)은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정진이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확립(近住)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마음챙김(正念.정념)은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마음챙김이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삼매(正定.정정)는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거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성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삼매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3. 돌아오지 않음에 나아가는(不還道.불환도) 순간 봄(見)의 의미를 지닌 바른 견해(正見.정견)는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마음쏟음(現前解)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사유(正思惟.정사유)는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말(正語.정어)은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일어남(等起)의 의미를 지닌 바른 행위(正業.정업)는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청정(淸淨)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삶(正命.정명)은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정근(精勤)의 의미를 지닌 바른 정진(正精進.정정진)은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확립(近住)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마음챙김(正念.정념)은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삼매(正定.정정)는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에 의한 얽매임, 성냄에 의한 얽매임, 미세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4. 아라한에 나아가는(阿羅漢道.아라한도) 순간 봄(見)의 의미를 지닌 바른 견해(正見.정견)는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마음쏟음(現前解)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사유(正思惟.정사유)는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받아들임(攝受)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말(正語.정어)은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일어남(等起)의 의미를 지닌 바른 행위(正業.정업)는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청정(淸淨)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삶(正命.정명)은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정근(精勤)의 의미를 지닌 바른 정진(正精進.정정진)은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확립(近住)의 의미를 지닌 바른 마음챙김(正念.정념)은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산란하지 않음의 의미를 지닌 바른 삼매(正定.정정)는 물질적 현상에 대한 탐냄, 물질적 현상을 지니지 않음에 대한 탐냄, 교만, 들뜸, 무명, 교만의 잠재적 성향, 있음에 대한 탐냄의 잠재적 성향, 무명의 잠재적 성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에 수반되는 여러 번뇌와 구성요소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외부에 드러난 일체의 모습(因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같은 실천행을 통한 그침으로 인하여 바른 견해가 생긴다. 이와 같이 나아감(道)에 의한 성취가 있다. 

 

그와 같이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지혜(智)이며, 알아차린다는 의미에서 혜(慧)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실천행을 통한 그침의 혜로서 성취의 지혜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