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이야기

[각묵스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 - 12연기를 중심으로

실론섬 2015. 1. 21. 15:06

연기는 상윳따 니까야 인연 상윳따(S12)의 주제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12연기로 정착이 되었다. 물론 12개의 구성요소가 다 나타나지 않는 10지연기나 9지연기나 8지연기나 6지연기나 더 줄여서 4지/5지 등으로 구성된 연기가 인연 상윳따에는 나타난다.

 

연기의 정형구가 설해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① 12연기의 순관/역관과 ②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의 두 가지 방법이다.

 

12연기의 순관/역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연기인가? 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行]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연기[緣起]라 한다.”(상윳따 니까야 연기 경(S12:1) §3)

 

이를 연기의 순관(順觀, 流轉門, anuloma)이라한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청정도론(제17장)에서 설해져 있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行]들이 소멸하고, [2]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상윳따 니까야 연기 경(S12:1) §4)

 

“역관(逆觀, 還滅門, paṭiloma)을 설하시면서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라고 하신 것은 빛바램[離慾, virāga]이라 불리는 도(magga)에 의해서 남김없이 소멸하기 때문에라는 뜻이다.”(SA.ī.10)

 

“형성된 것들[行, saṅkhārā = 5온, 12처 등]에 대해서 전적으로 탐욕이 빛바랜다(이욕)고 해서 ‘빛바램(virāga)’이며 이것은 도(magga)를 말한다. ‘남김없이 소멸함’이란 남겨두지 않고 소멸함 즉 근절함을 말한다. 이와 같이 12연기의 각 항목들이 소멸함은 모든 형성된 것들의 소멸을 말한다. 이와 같이 무명 등의 소멸이라는 말을 통해서 아라한과를 설한 것이다.”(SAṬ.ī.11)

 

정리하면 빛바램(이욕, virāga)은 도(즉 예류도, 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를 뜻하고 소멸(nirodha)은 아라한과를 뜻한다. 주석서와 복주서의 이 설명은 중요하다. 12연기에서 12연기 각지의 이욕-소멸은 이전 강의에서 살펴본 온/처/계 등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여 염오-이욕-소멸이 일어나는 과정에서의 이욕-소멸과 같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과거/현재/미래 경1(S22:9) 등 무더기 상윳따(S22)의 도처에서 오온에 대한 염오-이욕-소멸이 설해지고 있다. 물론 무상 경(S22:12) 등은 염오-이욕-해탈-해탈지견을 설하고 있지만 여기서 해탈은 과의 실현을 뜻한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SA.ī.268) 그러므로 해탈과 소멸은 과의 증득이라는 같은 현상을 나타내는 술어이다.

 

아무튼 온/처/계의 염오-이욕-소멸을 통해서도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12연기 각지의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을 통해서도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멸(nirodha)은 바로 사성제의 세 번째 진리인 소멸의 진리(멸성제, nirodha-sacca) 즉 열반을 뜻한다.(분석 경(S12:2) §16의 주해 참조) 그러므로 온처계의 가르침과 사성제와 12연기와 8정도(팔정도의 바른 견해는 사성제에 대한 지혜이므로)는 모두 궁극적으로는 소멸(nirodha = 열반)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러한 문장구조와 이러한 주석서와 복주서의 설명은 12연기의 가르침은 5온-12처-18계-4성제-8정도 등의 가르침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청정도론 서문에서 붓다고사 스님이 강조하고 있듯이 온/처/계/근/제 37보리분법으로 대표되는 초기불교의 인간관, 존재관, 세계관, 진리관, 수행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12연기의 가르침은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강조하고 싶다. 디가 니까야 대인연경(D15) §1에서 세존께서 강조하셨듯이 연기의 가르침은 심오한(혹은 아주 어려운) 가르침임을 우리는 명심하고 연기의 가르침을 정독해야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순관(anuloma)으로 12개의 구절을 윤회를 설하시는 것(vaṭṭa-kathā)으로 말씀하신 뒤에 그 윤회에 대한 말씀을 제쳐두고(vinivaṭṭetvā), 역관(paṭiloma)으로 12개의 구절을 통해서 윤회를 벗어남(vivaṭṭa)을 말씀하시면서 아라한과(arahatta)로써 가르침의 절정(kūṭa)을 취하셨다. 이 가르침이 끝나자 500명의 비구들은 위빳사나를 시작하는 자(āraddha-vipassakā)가 되어 간략한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사람들(ugghaṭitaññū-puggalā)이 되었다. 그들은 마치 태양의 광선을 받아서 완전히 원숙해진 연꽃들(paripāka-gatāni padumāni)처럼 진리(sacca)들을 깨달은 뒤 아라한과(arahattaphala)에 확립되었다.”(SA.ī.10)

 

 

12연기의 추상화의 정형구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도 없다. 이것이 멸할 때 저것도 멸한다.

 

즉,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行]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行]들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상윳따 니까야 십력 경1(S12:21) §5)

 

이것은 12연기를 추상화한 정형구로 잘 알려져 있다. 빠알리 문장은 다음과 같다.

 

imasmiṁ sati idaṁ hoti

imassuppādā idam uppajjati

imasmiṁ asati idaṁ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ṁ nirujjhati

 

복주서는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라고 ‘있다’는 표현을 하였다고 해서 실재하는 어떤 것을 두고(vattamānaṁ yeva sandhāya) 말한 것이 아니라 “도에 의해서 소멸에 이르지 못한 상태(maggena anirujjhana-sabhāva)”(SAṬ.ī.51)를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같은 방법으로 ‘이것이 없을 때 저것도 없다.’라는 표현을 하였다고 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에 의해서 소멸에 이른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 바로 다음에 이 연기의 정형구를 설하시는 것은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연기의 가르침과 연결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므로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12연기를 통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위에서도 살펴봤듯이 존재를 특히 나라는 존재를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면 염오-이욕-소멸(nibbidā-virāga-nirodha)이 일어난다. 주석서는 여기서 염오는 강한 위빳사나이고 이욕은 도과 소멸은 (아라한)과라고 설명한다. 나라는 존재를 12연기로 해체해서 보면 역시 남김 없는 이욕-소멸(asesa-virāga-nirodhā)이 일어난다. 여기서도 이욕은 과요 소멸은 아라한과라고 주석서는 설명한다. 이처럼 존재를 해체해서 봐서 염오-이욕-소멸이나 남김 없는 이욕-소멸에 도달하여 궁극적인 행복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초기불교의 핵심이다. 본경에서는 이러한 오온과 12연기가 함께 설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기는 심오한 가르침 

연기(緣起)의 도리는 〈대연경〉에서 “심오한 가르침”이라고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을 만큼 깊고 어려운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한정된 지면으로 제대로 설명한다는 것은 정말 무리한 시도이다. 연기의 가르침은 초기경에서 이미 6지(支) 연기, 8지 연기, 9지 연기, 10지 연기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이 완성된 형태로 최종으로 정리된 것이 바로 12지 연기이고 이를 우리는 십이연기라고 부른다. 

 

연기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드러낸 것 

거듭 강조하지만 초기경에서 부처님께서 연기를 설하신 것은 모두 예외 없이 ⑪생-⑫노사우비고뇌로 표현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지 우주의 생성원리 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한다.

  

12연기는 삼세양중인과이다 

십이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12연기는 '원인과 결과의 반복적 지속'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것을 간과해버리면 십이연기는 그때부터 혼란스러워 진다. 12연기 가운데 ①무명-②행과 ⑧애-⑨취-⑩유는 원인의 고리이고 나머지 ③식-④명색-⑤육입-⑥촉-⑦수와 ⑪생-⑫노사우비고뇌는 결과(과보)의 연결고리이다. 이렇게 12연기는 원인의 연결고리와 결과의 연결고리가 반복적으로 연결되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를 중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삼세양중인과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의 공통된 설명방법이다. 유식에서는 대신에 2세1중인과를 설하는데 성유식론에 의하면 2세만 이야기하면 3세는 자연스럽게 인정되기 때문에 2세1중인과로 족하다고 한다. 아무튼 초기-아비담-유식에서 공히 12연기는 윤회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삼세 양중인과인 두 가지 중요한 이유 

이렇게 불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12연기의 10번째 구성요소인 생(生, jāti)은 범어로 보면 한생에 최초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이외의 뜻으로는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로 생멸(生滅)한다는 의미의 생이 될 수가 없다. 생멸의 생은 일어남의 의미인 samudaya나 udaya이다. jāti는 태어남의 의미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유와 생 사이에는 한 생이 개재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12연기 가운데 세 번째 구성요소인 식(식, 알음알이, viññāṇa)은 한생의 최초에 생긴 알음알이를 뜻한다. 상윳따 니까야 우현 경(S12:19)과 알음알이 경(S12:59)과 디가 니까야 대인연경(D15) §21과 앙굿따라 니까야 외도의 주장 경(A3:61) §9와 존재 경(A3:76)과 상윳따 니까야 몰리야팍구나 경(S12:12) §4 등에서 연기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알음알이는 한생의 최초에 어머니 모태에 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2연기를 삼세양중인과로 이해하는 것은 이미 초기경전에 튼튼한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해야 한다. 물론 주석서는 예외 없이 12연기의 식을 한생의 최초에 일어나는 알음알이인 재생연결식(paṭisandhi-viññāṇa)으로 설명하고 있다. 

 

因-果의 고리 

이 가운데 괴로움의 직접적인 원인은 애-취-유이고 근원적 원인은 무명과 행이다. 그래서 사성제에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애(갈애)라고 들고 있다. 그러므로 괴로움이라는 결과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갈애를 척파해야 하며 갈애를 척파하기 위해서는 갈애가 일어나는 조건인 식-명색-육입-촉-수의 연기구조를 이해해야하고[正見] 이를 바탕으로 팔정도를 실천해야 한다. 

 

12연기에 대한 네 가지 설명 

이렇게 원인-결과의 중층적 고리인 12연기는 이미 다양한 부파의 다양한 대가들에 의해서 다양하게 설명되어 왔다. 《구사론》에서는 한 찰나에 연기의 12지가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찰나(刹那)연기”와, 12찰나에 걸쳐서 연속적으로 12지가 연이어서 상속(相續)한다는 “연박(連縛)연기”와, 여러 생에 걸쳐서 시간을 건너뛰어서 12지가 상속한다는 “원속(遠續)연기”와, 12지는 모두 5온을 본질로 하여 매순간 오온이 생멸하면서 상속하지만 특정 순간의 두드러진 상태(分位)에 근거하여 각각의 명칭을 설정한 것이라는 “분위(分位)연기”의 넷을 들고 있다. 설일체유부에서는 분위연기를 정설로 간주한다. 

 

12연기와 조건발생을 구분해야 함 

그리고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이 12연기와 조건발생(paccaya, paṭṭhāna)을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교는 이미 초기불교부터 조건발생으로 존재일반을 설명한다. 이러한 조건은 초기 아비담마에서부터 24가지 조건으로 정리되었고 구사론을 위시한 북방아비달마에서는 6인-4연-4과로 특히 4연으로 정리가 되었으며 이것은 유식에 고스란히 전승되어서 10인-4연-5과 특히 4연으로 정리되어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괴로움 특히 윤회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12연기를 이러한 24연이나 4연과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24연이나 4연이 발전하여 화엄에서 법계연기로 승화한 것이지 결코 12연기가 법계연기로 발전한 것이 아니다.

 

상호의존의 방법은 ⑴ 원인의 조건(hetupaccaya, 因緣) ⑵ 대상의 조건(ārammaṇapaccaya, 所 緣緣) ⑶ 지배의 조건(adhipatipaccaya, 增上緣) ⑷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anantarapaccaya, 無 間緣) ⑸ 더욱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samanantarapaccaya, 等無間緣) ⑹ 함께 생긴 조건 (sahajātapaccaya, 俱生緣) ⑺ 서로 지탱하는 조건(aññamaññapaccaya, 相互緣) ⑻ 의지하는 조건(nissayapaccaya, 依止緣) ⑼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upanissayapaccaya, 親依止緣) ⑽ 먼 저 생긴 조건(purejātapaccaya, 前生緣) ⑾ 뒤에 생긴 조건(pacchājātapaccaya, 後生緣) ⑿ 반 복하는 조건(āsevanapaccaya, 數數修習緣) ⒀ 업의 조건(kammapaccaya, 業緣) ⒁ 과보의 조건 (vipākapaccaya, 異熟緣) ⒂ 음식의 조건(āhārapaccaya, 食緣) (16) 기능[根]의 조건 (indriyapaccaya, 根緣) (17) 禪의 조건(jhānapaccaya, 禪緣) (18) 도의 조건(maggapaccaya, 道緣) (19) 서로 관련된 조건(sampayuttapaccaya, 相應緣) (20) 서로 관련되지 않은 조건(vippayuttapaccaya, 不相應緣) (21) 존재하는 조건(atthipaccaya, 有緣) (22) 존재하지 않은 조건(natthipaccaya, 非有緣) (23) 떠나가버린 조건(vigatapaccaya, 離去緣) (24) 떠나가버리지 않은 조건(avigatapaccaya, 不離去緣)이다.

 

6인: 능작인, 구유인, 상응인, 동류인, 변행인, 이숙인 

4연: 증상연, 등무간연, 소연연, 인연 

5과: 증상과, 사용과, 등류과, 이숙과, 이계과 (아비달마 구사론) 

6인-4연-5과에 대한 설명은『아비달마 불교』(권오민, 민족사, 106~121쪽을 참조할 것.)

 

아무튼 연기든 조건이든, 이러한 연이생(緣已生)의 가르침은 역사적으로 전개되어온 모든 불교를 불교이게 하는 핵심이 되는 것임은 자명하다.

 

 

12연기는 무아를 드러내는 강력한 수단 

십이연기를 접하면서 우리가 명심해야하는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연기의 가르침은 자아니 진아니 대아니 주인공이니 하는 존재론적인 실체를 상정하고 그것과 하나 되는 것쯤으로 깨달음을 착각하지 말라고 단언한다는 것이다. 존재론적인 실체는 어느 시대 어느 불교에도 결코 발붙일 틈이 없습다. 만일 여래장이나 진여나 불성을 존재론적인 실체로 이해해버린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불교라는 깃발을 내걸고 외도짓거리를 하는 현양매구(懸羊賣狗)일 뿐입니다. 이것이 실천적 측면에서 본 십이연기의 중요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