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화엄경

화엄경 - 8. 현수보살품(賢首菩薩品)

실론섬 2015. 5. 4. 17:41

비로자나불과 보살



8. 현수보살품

 

[정행품]에서 청정한 수행을 설한 문수보살은 이어서 현수보살에게 맑고 깨끗한 믿음의 공덕을 설해 주기를 청했다. 이것이 보광법당회(普光法堂會)의 마지막인 [현수보살품(賢首菩薩品)]이다. 현수보살이 이 품을 설하므로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화엄의 대성자인 법장은 [탄현기]에서 賢首(현수)란 "당체(當體)가 지극히 온순하여 조화롭고 부두러움을 현(賢)이라 하고, 길상(吉祥)의 수승한 덕이 남보다 월등히 뛰어남을 수(首)라 한다"라고 하는 바와 같이, 한 마디로 지혜롭고 현명하며, 그 덕이 뛰어난 보살을 말한다.

 

문수보살의 물음에 대해서 현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불자여 잘 들어라

  보살의 갖가지 공덕은 한량 없지만

  나는 이제 내 힘 자라는대로 보살의 공덕에 대해 설명하려니

  그것은 큰 바다의 물 한방울과 같습니다.

 

보살의 공덕은 무량무변하므로 자신의 능력에 마추어 그저 한 가지 점만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佛)과 그 법과 스님(僧)에 대해 

  깊고 청정한 믿음을 일으켜 

  삼보를 믿고 공경함으로써

  능히 보리의 마음을 낼 수 있습니다.

 

불.법.승 삼보를 믿고 공경하며, 삼보에 대해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최초의 발심인 것이다. 

 

  오욕(五欲)의 즐거움도

  보물,재산 등 온갖 이익도 

  또한 나혼자만의 안녕도

  이 세간의 명성도 구하지 않습니다.

 

오욕의 퀘락이나 재산등 일체의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행복을 구해서도 안된다고 설하고 있다. 하지만 세속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실행 불가능한 일이다. 세간을 살아가는 인간은 이러한 욕망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나 보살은 이들 중생의 고통을 없애고 구제하고 싶은 비원(悲願)으로 발심한다고 한다. 다시말하자면 보살이 아니면 이러한 발심이 불가능한 것이다.

 

  부처님과 바른 법을 깊이 믿고

  또한 보살들이 행하는 도리도 믿으며

  바른 그 마음으로 부처님의 보리로 향할 것을 믿습니다.

  이로인해 보살은 비로소 처음으로 발심 합니다.

 

우선 부처님과 바른 법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님과 바른법에 불신을 품는 자는 발심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보살들이 행하는 도리를 믿고, 부처님의 보리로 향하는 것을 믿음으로서 발심이 가능한 것이다. 이어서 유명한 게송이 설해진다.

 

  믿음은 도(道)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 입니다

  일체의 모든 선한 법을 증장시키고

  갖가지 의혹을 모우 없애어 

  위없는 도(道)를 열어 보입니다.

 

위의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 입니다"라 는 문장은 용수의 [대지도론]의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써 능히 들어 갈 수 있다"라는 문구와 함께 너무나 유명한 말로써, 일반적으로 불교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화엄경]에서 유독 강조하고 있는 믿음(信) 이란 어떤 것인가를 한번쯤 되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 믿음이라고 할 때에는 거기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본래의 뜻은 마음을 맑게 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맑게 한다, 깨끗하게 한다. 그것이 믿음인 것이다.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해 나간다는 것은 불교 수행의 근본이다. 그곳에서 무한한 공덕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불도(佛道)를 믿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불도를 신봉한다는 것은 자기가 본래 애당초 불도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의 세계이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믿음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옛선사의 말을 인용해 보자.

 

 "불도를 수행하는 자는 먼저 불도를 믿어야 한다. 불도를 신봉한다는 것은 자기가 불도 안에 

  있으므로 미혹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음을 믿는 것이다. 그겋게 믿고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불도를 닦는 사람의 기본이다."

 

현수보살품은 또한 이어서,

 

  믿음은 온갖 더러운 집착을 버리고

  믿음은 미료하고도 깊고 깊은 법을 알며  

  믿음은 갈수록 뛰어난 온갖 선(善)을 이루어

  끝내는 반드시 부처님이 계신곳에 이르게 합니다.

 

라고 설한다. 믿음이란 먼저 더러운 집착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더러운 집착을 버리는 것이 믿음이요, 진여(眞如)인 것이다. 진여라고 하는 초월적인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문수보살이 "일념의 청정한 마음은 정각을 이루네"라고 설한 일념의 청정한 마음이 곧 믿음인 것이다.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면 불법의 깊은 가르침도 이해할 수 있고, 온갖 선을 행할 수도 있으며, 부처님이 계신 곳에 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일체의 모든 악을 소멸하며

  믿음은 능히 스승없는 보배를 얻게 합니다.

 

이와 같은 청정한 믿음에 의해서만 일체의 모든 악을 소멸 할 수 있으며, 믿음은 스승없는 보배를 스스로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만일 모든 부처님을 믿고 공경한다면

  청정한 계율을 가지고 바른 법을 따르게 되며

  청장한 계율을 가지고 바른 법을 따르면

  모든 부처님과 성현들의 찬탄을 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바른 법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이란 위없는 보리의 근본이니

  마땅히 갖추어서 청정한 계율을 지녀야만 합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부처님 집에 태어나면 곧 모든 법에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만일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청정하고도 깊은 묘한 마음을 얻으며

  만일 청정하고도 깊고 묘한 마음을 얻으면 

  곧 수승하고 위없는 마음을 얻게 됩니다.

 

계율을 지키 마음을 청정하게 하면 부처님의 집에 태어 날 수 있으며, 마침내 위없는 마음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어서 위없는 마음을 얻게 되면 바라밀을 닦을 수 있게 된다고 설한다.

 

  만일 위없는 수승한 마음을 얻으면

  곧 일체의 바라밀을 닦으리

  만일 일체의 모든 바라밀을 닦으면

  곧 마하연(摩河衍. 대승)을 모두 갖추게 됩니다.

 

6바라밀은 대승불교의 보살이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바라밀이란 범어의 파라미타(Paramita)를 음사한 것으로 "피안의 저쪽 언덕에 이른다"라는 의미로써 흔히들 도(度)라고 번역된다. 그러므로 육바라밀은 다른말로는 육도(六度)라고 하는 것이다.

 

육바라밀의 실천도 대단히 중요하다. 재가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더라도 가능한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실천을 하는데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완전히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보살밖에 없는 것이다.

 

보시 하나만 보더라도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나눠주고, 평등하게 공양할 수는 없다. 자각대사(慈覺大師. 일본 천태종의 승려)는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

 

  이 산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연과 평등한 마음을 얻게 되네

  산 중에서 齋(재)를 지낼 때 승속.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평등하게 공양하니

  그 귀하고 천함. 크고 작음을 볼 수 없네.

 

라고 술회하고 있다.

 

어느날 오대산 화엄사에서 큰 재가 열렸다. 승려도 재가신자도, 남자도 여자도 거지도 가난한 자도 모두 모여들었다. 거지들이나 가난한 자는 무엇인가 얻어 먹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주는 자기가 이 곳에 재를 연 것은 산 중의 승려들을 공양하기 위해서이므로 거지들에게 공양하는 것은 자기의 본래 뜻한 바가 아니라고 말했다.

 

거지들 가운데 임신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 거지는 자기의 몫을 받자 다시 뱃속 아기의 몫까지 요구했다. 시주가 화를 내자 그 여자 거지는 뱃속의 아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엄연히 한 사람이라고 아기의 몫까지 달라고 했다. 시주는 "너는 정말 바보스럽구나. 뱃속의 아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단 말이냐"하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러자 그 여자 거지는 자기 뱃속의 아기 몫까지 음식을 주지 않으면 자신도 먹을 수 없다고 말하며 일어나 식당을 떠나 버렸다.

 

여자 거지는 식당을 나가자마자 문수보살로 변하여 광명을 발하며 금빛 사자를 타고 수많은 보살들을 거느리며 하늘로 올라갔다. 재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은 밖으로 달려나와 망연자실하며 땅에 엎드려 소리내어 참회하고, 비탄한 나머지 눈물을 비오듯 흘렸다. 동시에 사람들은 일제히 '대성문수사리보살(大聖文殊師利菩薩)' 이라고 목이 터지도록 불렀지만 문수보살의 모습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도 없어 다음과 같이 발원 했다.

 

  이후로 재를 열어 공양할 때는

  승속.남녀.대소.신분.빈부를 막론하고 모두 다

  평등하게 공양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우리는 보시 하나만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보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현수보살품으로 돌아가서 경전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이어서 [현수보살품]은 10가지의 삼매를 설 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원명해인삼매문(圓明海印三昧門)       2)화엄묘행(華嚴妙行)삼매문  

  3)인다라망(因다羅網)삼매문              4)수출광홍(手出廣洪)삼매문

  5)현제법문(現諸法門)삼매문              6)사섭섭생(四攝攝生)삼매문

  7)궁동세간(窮同世間)삼매문              8)모광각조(毛光覺照)삼매문

  9)주반엄려(主伴嚴麗)삼매문             10)적용무애(寂用無涯)삼매문

 

믿음의 작용은 무한하므로 그것을 10가지 삼매문의 작용으로써 설명해 간다. 믿음의 작용의 근본은 1)원명해인삼매문이며, 나머지 아홉문은 작용이다. 먼저 원명해인삼매문에서는 부처님과 보살의 출현을 설한다.

 

  혹은 어떤 국토에 부처님이 없으면

  거기에 나타나서 정각을 이루시고

  혹은 어떤 국토에 법이 없으면

  거기에 나타나서 법을 설하십니다.

  혹은 남녀의 갖가지 모습이나 천인.용신. 아수라등 이와 같은 

  중생들의 온갖 모습에 따라서 무량한 행동과 음성을 나타 내십니다.

 

라고 하는 것처럼 부처님과 보살들은 시방세계 어디든 어떠한 형태로든 모습과 음성을 나타내시어 중생을 구제하시는 것이다. 이와같이 중생이 필요로 할 대 그 모습을 나타낼 수있는 것은 해인삼매(海印三昧) 의 작용에 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해인삼매란 어떠한 것인가?

 

바다에 바람이 불지 않고 파도가 조용하면 만물의 모습이 그대로 해면에 투영되는 것과 같이, 무명과 번뇌의 풍파가 소멸되었을 때 청정한 마음의 바다에는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모든 것들이 다 함께 투영된다. 이것을 해인삼매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일념의 청정한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었을 때를 해인삼매라 한다. 일념(一念)의 념(念)이란 현재의 마음을 말한다. 현재의 마음이 청정하게 되는 것, 이것이 곧 해인삼매인 것이다. 청정한 마음에는 모든 것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또다른 말로는 해인삼매란 큰바다와 같이 크고 깊은 삼매라는 뜻으로서 절대무(絶對無)의 세계이다. 절대무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비칠수 밖에 없다. 절대무의 세계는 거울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반영하고 투영하지만 거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거울 자체는 어디까지나 청정하다. 일체의 아집이 없어진 삼매, 자기의 견해가 없어진 삼매다.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보는 일이 없어진 모습이기 때문에 거울과 같다. 그러니까 모든것을 비춰 나가는 것이다.

 

다음에는 화엄삼매(華嚴三昧)를 설한다. 화엄이란 꽃으로서 부처님의 과보를 장엄하는 것을 말하며, 화(華)란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정심(定心)으로써 법신의 묘한 과보를 장엄하는 것을 화엄삼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수보살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불가사의한 모든 세계를 다 장엄하고

  일체의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광명의 그 장엄이 불가사의하여

  중생을 교화함이 한량이 없습니다

  지혜는 자재(自在)하여 불가사의하고

  설법해서 교화함도 자재하며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방편.지혜등

  모든 공덕은 일체에 자재하여 불가사의하니

  이것은 화엄삼매의 힘 때문 입니다.

 

화엄삼매를 얻을 수 없다면 자유자재한 작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법 하나만 보다라도 보통의 인간은 자유자재로 설법할 수 없다. [무량수경] 권상에도

 

  보살은 법의 창고에 깊이 들어가

  부처님의 화엄삼매를 얻어

  일체의 모든 경전을 선양하고 설법 하신다.

 

라고 하는 것처럼, 경전의 가르침을 자유자재로 설법하기 위해서는 화엄삼매를 얻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 수행법에 들어감으로서 비로소 자재로운 무변행(無邊行)이 생겨나는 것이다. 경전은 화엄삼매의 설명에 이어서 다시 8가지의 삼매에 관해 설한다. 이 가운데 흥미 있는 문구를 하나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은 8만 4천의 갖가지 법문으로써

  중생들을 제도 하시고

  온갖 무량한 법문을 분별 하시며

  중생들의 성품에 따라 교화 합니다.

 

여기에 8만 4천의 법문이라는 말이 보인다. 중생의 능력은 각양각색이어서 8만 4천의 번뇌를 가지고 있으므로 8만 4천의 법문, 소위 무량한 법문이 필요한 것이다. 설법이 자유자재하면 무량한 법문을 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8의 모광각조삼매(毛光覺照三昧) 에서는 광명의 작용을 44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광명을 발하며, 이 광명을 받으면 중생은 과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광명은 일체의 어둠을 제거할 수 있으며, 등불은 부처님을 공양할 수 있다.

 

광명은 제도(濟度)라고 한다. 그것은 욕망으로 가득찬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광명은 제애(除愛)라고도 한다. 광명으로써 오욕의 갈애(渴愛)를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광명은 환희라고도 한다. 중생들이 환희심으로 발심해서 보리를 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광명은 인장어(忍莊嚴)이라고도 한다.

 

  그 광명은 성을 잘 내는 이를 깨우쳐서

  분노와 교만함을 버리고

  항상 부드럽고 참는 법을 원하게 합니다.

 

성을 잘내고, 또한 자신이 최고로 훌륭하고 자신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먼저 분노와 교만함을 버리라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드러워야 하고, 참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경전은 광명을 비추는 것에 대해 끝없이 설명해 간다. 광명에 의해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모두가 청정하게 되고, 또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청정하게 된다. 이 광명은 무처님의 모공(毛孔)으로부터 나와서 일체의 모든 중생을 비추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적용무애삼매(寂用無涯三昧)가 35게송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현수보살이 이 품의 설명을 끝마치자 시방의 모든 세계가 여섯번 진동하고 광명을 받아 악도가 소멸되었다. 또한 시방의 부처님이 현수보살 앞에 나타나 오른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장하고 장하구나 참다운 불자여, 시원하게 그 법을 설해 주어서 우리도 기뻐하네"라고 말씀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