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화엄경

화엄경 - 19.여래승도솔천일체보전품, 20.도솔천궁보살운집찬불품, 21.금강당보살십회향품

실론섬 2015. 5. 5. 13:10

부처님과 보살들



19. 여래승도솔천궁일체보전품

 

[화엄경]의 제5회인 도솔천궁회에서는 10가지의 회향에 대해 설한다. 이 회에서는 [여래승도솔천궁일체보전품(如來昇兜率天宮一切寶殿品)], [도솔천궁보살운집찬불품(兜率天宮菩薩雲集讚佛品)], [금강당보살십회향품(金剛幢菩薩十廻向品)] 의 3품이 설해진다. 처음의 2품은 이 회의 서문에 해당되고, 세번째 품은 본문에 해당된다. 여기서 도솔천궁(兜率天宮)이란 도솔천의 궁전을 말하는 것으로서, 미륵보살이 여기서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먼저 [여래승도솔천궁일체보전품]은 부처님을 초빙하는 것을 설한다. 부처님은 야마천궁(夜摩天宮)의 보장엄전(寶莊嚴殿)을 떠나지 않고도 도솔천궁의 일체 보장엄전에 나타나셔서 장엄된 사자좌에 앉으셨다. 이 궁전은 갖가지 장엄도구로 장식되어 있었다. 궁전안에는 백만억의 천신(天神). 용왕(龍王). 야차왕(夜叉王). 아수라왕(阿修羅王) .금시조왕(金翅鳥王). 화락천왕(化樂天王)을 위시하여 모든 천(天)과 모든 왕들이 부처님을 공경.예배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부처님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데

  그 공덕이 원만하고 지혜가 결함이 없으며

  평둥하게 정각을 이루신 분을

  지금 우리는 뵙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부처님을 만나게 된 기쁨과 부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즐거움을 나타내며 꽃과 향으로써 부처님을 공양했다. 도솔천왕(兜率天王)은 다음과 같이 부처님을 찬탄했다.

 

  아무런 걸림이 없는 여래는 마치 보름달 같아

  모든 길상(吉祥) 가운데 최상 이십니다

  중보장엄전(重寶莊嚴殿)에 드시었으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한 곳 입니다


20. 도솔천궁보살운집찬불품(兜率天宮菩薩雲集讚佛品)

 

다음은 금강당보살을 위시하여 10명의 보살이 각 세계의 보살들을 거느리고 부처님을 참배하고 공양.예배하였다. 이때 부처님은 양 무릎에서 백천만억의 광명을 발하여 일체의 세계를 비추었다. 그러자 10명의 보살은 게송으로써 부처님의 덕을 찬양 하였다. 먼저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은,

 

  부처님은 세상에 나지도 않고 

  또한 열반에 드는 일도 없지만

  원래 지닌 그 큰 원력으로서

  자재한 법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화엄경]의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이 바로 이와 같은 분이다. 우주 어디에도 충만하신 법신(法身)이신 것이다. 야광당(夜光幢)보살은,

 

  비유하면 이 한 마음의 힘이

  갖가지 마음을 내는 것 처럼

  부처님의 저 한 법신이

  갖가지 부처님의 몸을 나타냅니다

 

라고 찬탄하였다. 하나의 마음의 힘, 의지의 힘, 원력의 힘이 갖가지 마음을 내는 것 처럼, 법신이 모든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는 것이다. 법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의 생명력 또는 대자연의  그 자체이며 그 생명력이 부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그 법신은 다 청정하지만 

  교화해야 할 중생의 근기에 따라 

  두루 묘한 색신(色身)을 나타 내십니다

 

법신(法身)은 청정하다. 그 청정한 생명력을 발현하여 부처님의 색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육신으로써 이 세상에 출현하신 부처님은 우주의 생명력이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화엄경]은 이 우주의 생명력을 비로자나불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면 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 보당보살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법신은 있는 곳이 없지만 시방세계에 가득하나니

  허공이 그 한계가 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몸은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우주의 대생명의 작용 그 자체인 법신은 눈에 보일리도 없으며, 존재할 장소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거이 아니라 시방세계에 충만해 있는 것이다. 이 법신은 우리들의 머리나 지혜로써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허공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광대무변한 것이다. 또한 진실당보살은 다음과 같이 설한다

  

  중생들은 모두 허망하기 때문에 

  부처라 세계라 분별하지만

  진실한 법을 깨달으면

  부처도 없거니와 세계도 없습니다

 

21.금강당보살십회향품(金剛幢菩薩十廻向品)

 

이때 금강당보살은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명지(明智)삼매에 들어 백만의 부처님을 보았다. 이들 모든 부처님은 금강당이라 불렸다. 모든 부처님은 금강당보살에게 "장하다, 불자여! 그대는 명지삼매(明智三昧)에 잘 들수 있었구나."라고 말했다. 그것은 노사나불의 본원력에 의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은 오른손으로 금강당보살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회향에 관해 설할 것을 권했다. 그러자 금강당보살은 10가지의 회향(廻向)을 설 했다.

 

  1. 일체 중생을 구제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생각을 떠나는 회향

  2. 무너지지 않는 회향

  3. 모든 부처님에게 평등한 회향

  4. 일체의 모든 곳에 이르는 회향

  5. 무진장한 공덕 창고의 회향

  6. 일체의 견고한 선근을 따르는 회향

  7.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따르는 회향

  8. 진여 모양의 회향

  9.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의 회향

 10. 법계와 같은 무량한 회향

 

위의 10가지 회향에 관해 경전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10가지 회향이란 보살이 닦은 선근을 중생과 보리와 진여의 3가지로 회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0가지의 회향은 중생회향(衆生廻向). 보리회향(菩提廻向). 진여회향(眞如廻向)의 3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중생회향이란 대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고, 보리회향은 선근(善根)을 위없는 깨달음으로 똑바로 향하게 하는 것이며, 진여회향이란 형상(相)을 버리고 이치(理)에 깨달아 들어 가는 것을 말한다. 10가지 큰 행으로써 3가지로 회향 시키는 것을 설한 것이 10가지 회향의 법문이다.

 

일체중생을 구제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생각을 떠나는 회향이란, 자기 자신의 선근을 회향해서 일체 중생을 위해 집이 되고, 구호자가 되고, 귀의처가 되고, 길이 되고, 안온처가 되고, 큰 광명이 되고, 횃불이 되고, 등불이 되고, 어른이 될 결심으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중생의 상황은 도대체 어떠한가 ?

 

  중생들은 언제나 애욕의 그물에 휘감기고

  무명에 덮히고 생존에 대한 사랑에 집착하기 때문에

  스스로 심부름꾼이 되어 자재함을 얻지 못한다

  그리하여 괴로운 지옥에 얽매여서 온갖 악마의 업을 따르고

  모든 부처님에 대한 의혹을 내므로 출세간의 도를 얻지 못하며

  안온한 곳을 보지 못하여 언제나 무량한 생사의 광야를 달리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무너지지 않는 회향등 이하에 대해서도 경전은 먼저 긴 문장으로 그 내용을 설명하고, 이어서 금강당보살이 게송으로써 다시 설한다. 그중 중요한 경전의 문구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부처님에게 평등한 회향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인다.

 

  만일 집에 있을 때에는 처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잠깐도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비록 함께 살더라도 그 마음에 집착이 없고

  본래의 대자비로써 집에서 살고

  대자비로써 처자를 따르지만 보살의 깨끗한 도(道)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즉 재가불교를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곳에 이르는 회향에서는, 일체의 선근 공덕의 힘을 모든 곳에 이르게 한다.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서 먼저 모든곳에 이르는 몸으로 짓는 업. 입으로 짓는 업. 뜻으로 짓는 업을 얻을 수 있으며, 또한 모든 곳에 이르는 온갖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진장한 공덕 창고의 회향에서는, 일체의 선근을 회향하여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한다. 그 이유는 이 회향에 의하여 10가지의 무진장한 공덕의 창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살은 허망한 모든 소견을 없애고 버려서 남음이 없고

  세간의 번뇌의 뜨거움을 여의어 끝내 청정한 경지에 이릅니다.

 

무진장한 공덕의 창고 회향에 들어가면 아견(我見)과 번뇌를 완전히 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일체의 견고한 선근을 따르는 회향에서는 모든 보시행을 설하는데, 특히 청정한 보시에 대해 설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는 회향에 관해서도 설명을 첨가하고 있다. 회향이란 무슨 뜻인가?

 

  세간의 생사가 없는 저 언덕으로 영원히 건너가게 하므로 회향이라 하고

  모든 음(陰)이 없는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 하므로 회향이라 하며

  언어의 길이 없는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 하므로 회향이라 하고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는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 하므로 회향이라 하며

  몸이라는 소견이 없는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 하므로 회향이라 하고

  견고하지 않음이 없는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 하므로 회향이라 하며.....

  모든 세간 법이 없는 저 언덕으로 건너가게 하므로 회향이라 하는 것 입니다

 

회향이란 모든것의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것을 말한다. 보시를 행하는 것도 저 언덕으로 건너가기 위해서이다.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따르는 회향에서는, 보살이 한량없는 선근을 닦아서 중생을 위해 위없는 복밭이 되고,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설한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고

  일체의 서원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보살은 회항하여 저 언덕에 이르러

  청정하고 묘한 법문을 열게 됩니다

 

진여모양의 회향이란 닦은 진여를 향해 선근을 회향하는 것이다.보살이 이 회향에 안주하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된다.

 

  모든 법의 자성이 있지 않다고 회향하고

  진여의 모습처럼 선근도 또한 그러하며

  모든 법은 모습이 없는 것이 진실한 모습이라고 회향하고

  진여의 법처럼 선근도 또한 그러 합니다.

 

즉 일체의 것은 자성이 없으므로 진여도 선근도 또한 자성이 없으며, 일체의 모든 것은 모습이 없는 것이 곧 진실한 모습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회향 했다고 해서 선근이 증가되는 것도 아니며, 회향하지 않았다고 해서 선근이 감소되는 것도 아니다. 모습이 없는 선근, 공덕이 없는 선근이야말로 진짜 선근인 것이다.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의 회향이란, 모습에 속박되지 않고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해탈의 마음으로 선근을 회향하는 것이다.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한 마음으로 

  보현보살의 자재함을 얻어

  하나의 꽃 속에 모든 장엄한 세계를 

  다 편히 머물게 합니다

 

법계와 같은 무량한 회향이란, 법계와 동등한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고, 무량한 중생을 조복(調伏)하여 그 선근으로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다.

 

이 회향에 안주하면 법계와 동등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고, 법계와 동등한 무량한 중생을 조복할 수 있으며, 법계와 동등한 무수한 불국토를 장엄할 수 있다. 법계와 동등하다는 말은 허공처럼 한계가 없는 세계를 말한다.


선근을 무엇인가에 회향한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공덕을 쌓는 것을 의미하지만, 법계와 동등한 회향이 되면 회향하는 것도 회향 받는것도 한계가 없게 된다.[화엄경]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바로 무한의 세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