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화엄경

화엄경 - 십지품(十地品)

실론섬 2015. 5. 5. 13:28


비로자나불과 보살



22. 십지품

 

[화엄경]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보살 수행의 단계 또는 도달하는 경지를 단계적으로 설명한 [십지품(十地品)]이다. 여기서 지(地)란 어머니의 사랑과 같이 무한한 공덕이 그곳에서 나오기 때문에 땅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이러한 [화엄경]의 십지품은 초기불교의 경전인 [아함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깨달음의 단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아함경은 예류과.일래과.불환과 그리고 아라한으로 네단계의 聖者(성자)가 있다고 구분 하였으며 그리고 각 단계마다 부수어야 할 족쇄를 총 10가지에 걸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십지품]에서 [보와여래성기품(寶王如來性起品)]까지의 11품은 제6회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에서의 설법이다. 타화자재천궁은 욕계(欲界)의 제 6천(天)에 해당하는 하늘로서, 욕계에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부처님은 이 타화자재천궁의 마니보전(摩尼寶殿) 에서 설법을 한 것이다.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은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은 먼저 십지(十地) 에 관해 설명 하였다. 금강장보살에 이어 모든 보살을 대표해서 해탈월보살(解脫月菩薩) 은 십지의 중요성에 대해,

 

  십지는 모든 부처님 법의 근본으로서

  보살이 이 십지를 갖추어 행하면

  능히 일체의 지혜를 얻습니다

 

고 말하면서그 내용에 대해 명확히 설며을 해 줄것을 청했다. 그러자 금강장보살은 해탈월보살의 요청에 답하여 십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 하였다.

 

1) 환희지(歡喜地)

크고 큰 환희심을 내는 경지이다. 그것은 부처님과 보살들의 마음을 염(念)함으로써 생기는 종교적인 환희심이다.   크고 큰 환희심이 생기는 것은 "대자비를 우두머리로 삼기" 때문이다. "비심(悲心)은 지혜의 우두머리"라고 하는   것처럼, 대비심이 없으면 중생을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혜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언제나 자비심을 내고 항상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공덕을 갖추고

  밤낮으로 좋은 법을 더욱 늘리며

  공덕의 참된 이익을 서원하고

  다른 욕심은 원하지 않습니다

 

위의 문장과 같이, 항상 자비심을 가지고 불보살을 믿고 공경하며, 스스로 부끄러운 줄을 알고 밤낮으로 좋은   공덕 쌓기를 서원하며, 자신의 퀘락을 만족 시키는 것을 일체 구하지 않는 것이 환희지에 들어간 보살의 실천인 것이다.

 

2) 이구지(離垢地)

여기서는 번뇌의 더러운 때를 버리고 청정한 계율을 지킨다. 먼저 삼취정계(三聚淨戒)를 설하는데,  삼취정계란 섭률의계(攝律儀戒), 섭선법계(攝善法戒),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섭룰의계는 일체의 악을 끊고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살생을 하지 않고(不殺),   도둑질을 하지 않고(不盜), 사음 하지 않고 (不淫),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不妄語)등을 지키는 것이다.   섭선법계는 적극적으로 선(善)을 행하는 것이며, 섭중생계는 일체 중생을 보살펴 널리 이익을 주는 이타행(利他行)을 말한다.  또한 경전에서는 사음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는 또 사음(邪淫)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고

  남의 여자에 대해서는 한생각도 내지 않습니다.

 

라고 설하고 있다. 재가의 입장에서 불사음계(不邪淫戒)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섭선법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선법(善法)을 설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선법을 실행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은 선(善)을 행하지 않고  

  남을 위해 법을 설하고 선(善)에 머물려고 한다면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은 선을 행하지 않고 남에게 가르침을 설하면서 선을 실행하라고 한다면,  이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먼저 선을 실행한 후에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더구나 그 선의 내용은 상대방에게 보시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말을 하며, 상대방을 이익되게 하고, 상대방과 같은 행동을 하는 사섭법(四攝法)이다. 다시말해 여기서 말하는 선의 실행이란, 대승보살의 실천으로서 가장 중요한 사섭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구지에서 삼취정계를 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3) 명지(明地)

명지는 발광지(發光地)라고도 한다. 먼저 제3지에 들어 가려면 10가지의 깊은 마음(深心)이 필요하다고 설한다. 10가지의 깊은 마음이란

  

  첫째는 깨끗한 마음이요                    둘째는 씩씩하고 예리한 마음

  셋째는 싫어하는 마음이요                  네째는 욕심을 떠난 마음이다

  다섯째는 물러서지 않는 마음이요          여섯째는 견고한 마음이며

  일곱째는 매우 밝은 마음이요               여덟째는 만족이 없는 마음

  아홉째는 훌륭한 마음이요                  열번째는 큰 마음이다.

 

번뇌를 떠나 불도(佛道)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10가지 마음이다. 여기서 여덟번째의 만족이 없는 마음이란 만족함이 없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설하는 바 그대로 행하는 자는

  곧 불법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만 말로만 그친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처럼, 가르침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진실로 불법을 자기것으로 만들 수 없다. 또한 불법을 구하기 위해서 어떠한 괴로움도 참아야 된다고 하는 것을 경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아비지옥의 고통도 받습니다

  

아비지옥의 고통에 비한다면 인간세계의 고통쯤이야 문제가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참고 견딜 수 없다면 불법을 구할 수 없다. 또한 경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밤낮으로 항상 정진하고

  듣고 받아들여 게으르거나 싫어하지 않으며

  즐거이 법을 독송하고 지녀

  오직 법만을 귀하게 여기네

  온 정열을 다 바쳐서 오직 불법만을 귀하게 여기고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하는 것이

  도(道)를 배우는 마음가짐인 것이다.

 

4)  염혜지(焰慧地)

지혜의 불이 번뇌를 태워버리므로 염혜지라고 한다. 여기서는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팔정도(八正道)를 닦을 것을 요구한다. 사정근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법의 하나로서

  

  1.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이나 선하지 못한 일을 생기지 않게 발심하여 정진 하는 것

  2. 이미 생긴 악이나 선하지 못한 일을 끊으려고 노력하는 것

  3. 아직 생기지 않은 선한 일을 생기게 노력 하는 것

  4. 이미 생긴 선한 일을 잃지 않고 점점 더 증장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사여의족이란 사신족(四神足)이라고도 하며, 선정(禪定)으로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족(足)이란 원인을 말하는 것으로서, 마음대로(如意) 갖가지 신통력을 발휘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여기서는 욕정(欲定)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욕정에 의해 끊는 행을 성취한다"라고 하는 바와 같이, 먼저 선하지 못한 일을 퇴치할 것을 강하게 원하는 것이 '욕(欲)'이며, '정(定)'이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 정(定)의 힘에 의해 번뇌를 끊는 것을 "끊는 행을 성취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즉 번뇌의 퇴치를 강렬히 원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선정을 닦아 몸과 마음을 통일하는 것이 '욕정(欲定)'이다.

 

보살이 이 제4지에 머물면 천억의 악마도 청정한 도(道)를 파괴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투명한 구슬이 진흙 속에 빠지거나 비를 맞아도 결코 맑고 깨끗함을 잃지 않는 것과 같이, 제4지에 머물면 그 지혜도 청정하게 되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청정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5) 난승지(難勝地)

난승지에서는 끊기 어려운 무명을 끊을 수 있다. 이 단계에 오르면 먼저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제). 세제(世제).제일의제(第一義제)등 갖가지 진리를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제( )란 진리를 말한다.

 

세제(世제.世俗제)와 제일의제를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세제란 세속의 입장에서의 진리를 말하며, 제일의제란   최고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경전에 나와 있는 것 처럼 "보살은 중생의 뜻을 따라 그들을 기쁘게 하기 때문에 세제를 알고, 일승(一乘)을 통달하기 때문에 제일의제를 안다"고 하는 것처럼, 중생을 기쁘게 함으로써 세속의 진리를 아는 것이다.

 

  일체의 선근을 쌓는 것은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고

  일체 중생을 위해 안락함을 구하기 위함이며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함 입니다.

 

라고 하는 것처럼, 일체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해탈 시키기 위해 선근을 쌓는 이가 난승지에 머무는 보살이다.

 

이 난승지에 머무는 보살은 염자(念者) 혹은 지자(智者)라 불리기도 하고, 견신자(堅信者). 수혜자(隨慧者). 득신통자(得神通者)등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체의 모든 것을 잊어 버리지 않고 기억에 뛰어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염자라 부르며, "결정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자라고 부른다" 라고 하는 것처럼 지혜로써 모든 일들을 결정할 수 있으므로 지자라 하는 것이다.

 

또한 "계율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굳은(堅心) 사람이라고 한다"고 하는 것처럼, 계율을 지키는 사람은 견심자(堅心者) 이다. 경전은 "선정을 잘 닦기 때문에 신통을 얻은자(得神通者)라고 한다"고  한다. 보살이 이 난승지에 머물면

 

  는 모든 중생의 머리가 되고 뛰어난 이가 되며

  모든 중생들이 의지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라는 서원을 세우게 된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주인공이 되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며, 일체 중생들이 의지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다.

 

  중생들을 참으로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무명의 어둠에 떨어져 있고,  

  애욕의 인연에 얽매여 있습니다.

 

라고 하기 때문에,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고 어둠을 비치는 등불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중생이 무명의 어두운 길을 헤매고, 애욕의 인연에 얽매여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나 보살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범부들은 무명의 어두운 길을 헤매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십지품]의 제1환희지에서 제5난승지까지의 보살의 수행방법과 그 결과에 대해 설명 하였다. 경전은 각각의 지(地)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그쳤다.


지혜가 있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가르침이지만, 가르침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라도 실행함으로써 보살도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6) 현전지(現前地)

제6현전지에 들어가면 보살들이 부처님을 찬탄하고, 또한 음악을 연주하는 천녀들도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한다. 그 게송 가운데는,

 

  언제나 보시를 행하여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비록 본래부터 청정하지만 

  계율을 지켜 그 마음을 견고히 합니다

 

라는 내용이 있다. 또한 해탈월 보살이 금강장보살에게 제 6지의 경지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자 금강장보살은 제6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0가지의 평등을 얻어야만 한다고 대답했다. 10가지의 평등이란,

 

  일체법은 성품이 없고(無性)     모양이 없고(無相)

  태어나는 일이 없고(無生)       멸함이 없고(無滅)

  본래 청정하고                   쓸데없는 말이 없고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며       떠나고(離)

  꿈과 같고                        있고 없음이 둘이 아님(有無不二)


이 6현전지에 머무는 보살은 이어서 12연기를 관(觀)함과 동시에

 

  삼계(三界)는 허망하여

  다만 이 마음이 지은 것이요

  12인연도 다 마음을 의지하는 것 입니다

 

라고 하는 유심게(唯心偈)를 관(觀)한다. 이 세계는 망념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12인연도 마음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 '유심게'의 문장이 게송으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삼계는 다만 탐하는 마음을 쫓아 있다는 것을 환히 알고

  12인연도 오직 하나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이 나고 죽는 것은 단지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만일 그 마음을 멸하게 되면 생사도 또한 다 없어지네

 

"삼계는 다 허망하여 다만 이 마음이 지은 것이다" 를 몸으로 직접 받아 들이게 되면 사후의 세계가 있건 없건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탐심이 만들어 낸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는다. 죽으면 일심(一心)도 없어진다. 일심이 없어지면 극락도 지옥도 없다.

 

보살의 십지품중 중요한 단계는 제 6 현전지(現前地)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정년 문자 그대로  비로소 여기서 불교의 근본지(根本地)를 깨닫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지라는 것은 무분별지(無分別地)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교의 지혜 즉 깨달음의 지혜가 여기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분별지만으로는 궁극적인 보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다시한번 세간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돌아와서 완성되는 것이 다음단계들 거쳐서 법운지(法雲地)에 도달한다. 여기서 반야바라밀이 완성되는 것이다.   

 

7) 원행지(遠行地)

제7지에 들어간 보살은 성문.연각의 이승(二乘)의 경지를 멀리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원행지라고 한다. 제 6지에서 제7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0가지의 묘한 행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중에는

 

  삼계를 멀리 떠났으면서도 삼계를 장엄한다

 

라는 실천도 있다. 구도자는 먼저 삼계를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삼계를 버린 것만으로는 보살이라 할 수 없다.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삼계를 장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삼계를 장엄한다고 하는 것은 이 현실에서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제7 원행지에는 다음과 같은 귀절도 있다.

 

  불자여, 비유하면 두가지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결정코 청정하고 

  다른 하나는 결정코 더러운 것 입니다.

  그 두 세계의 중간을 지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는 청정한 세계와 더러운 세계가 있으며, 이 두 세계의 중간을 지니기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어느 한쪽의 세계에 치우쳐 살게 된다. 청정한 세계에만 살게되면 더럽고 악에 물든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구제할 수 없다. 또한 더러운 세계에만 살고 있으면 평생이 걸려도 그에게 구원은 없다. 그러나 보살은 더럽고 혼탁한 세계에 살면 살수록 그만큼 더 청정한 세계를 의식하는 것이다.

 

  그 두 세계의 중간을 지니기는 어렵지만 

  그 세계를 지나려면 신통력과 큰 원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경전은 이어서

 

  보살도 그와 같아서 갖가지 도를 행할 때 그것은 지니기가 어렵지만

  큰 서원의 힘과 지혜의 힘과 큰 방편의 힘을 쓰기 때문에

  능히 지나갈 수 있는 것 입니다.

 

라고 한다. 갖가지 도(道)를 행하기는 어렵다. 갖가지 도를 행한다는 것은 삼계를 장엄하는 것이다. 경전을 강의하고, 주석서를 저술하는 등등 갖가지 보살도를 행하는 것인데, 이것들은 큰 서원과 큰 지혜와 큰 방편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큰 서원, 즉 원심(願心)인 것이다.  가거나 오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심을 일으키는 보살은 10 바라밀을 갖추어야 한다. 10 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은

  

  나는 마땅히 모든 중생의 머리(우두머리)가 되고

  또한 모든 중생들이 의지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라는 서원을 세워, 중생의 구제를 위해 용맹심을 발휘하여 보살도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8) 부동지(不動地)

수행이 완성되어 더 이상 흔들림이 없이, 저절로 보살행을 행하는 경지를 부동지라 한다. 그러므로 부동지에 들어간 보살을 심행(深行)의 보살이라 부른다. 이 보살은 일체 세간의 모습이나 탐욕과 집착을 벗어 났으며, 더구나 성문.연각과 같은 수행자가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는 부동의 경지에 머물 수 있다.

 

  부동지에 들어 간 보살을 심행(深行)보살이라고 하나니

  모든 세간 사람들이 그를 측량할 숙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체의 모양을 떠나고 

  일체의 생각을 떠나고

  일체의 집착을 떠났으므로

  어떠한 성문이나 벽지불도 그를 파괴 할 수 없습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이 머무는 이 지(地)는 깨트릴 수 없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부동지라 하고

  그 지혜를 굴릴 수 없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부전지(不轉地)라 합니다.

 

즉 금강석과 같이 깨어지지 않기 때문에 부동지라 하고, 그 지혜가 확고하여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부전지라고도 한다. 이 외에도 8지를 위덕지(威德地). 동진지(童眞地). 자재지(自在地). 성지(成地). 구경지(究竟地)등 갖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 부동이라는 점에 있다. 더구나 그 부동을 지탱해 주는 것은 견고한 선정의 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9) 선혜지(善慧地)

이 9지에 들어간 보살은 지혜가 뛰어나서 어떠한 곳에서도 가르침을 설할 수 있다. 그러나 이 9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0가지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

 

  부처님의 깊고 묘한 법의 창고에 들어가기를 원 합니다

 

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이 설한 진리의 창고, 즉 경장(經藏)에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장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전의 강의란 단지 자기 혼자만이 깊이 연구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대기설법이라는 말이 있듯이, 설법을 듣는 사람의 능력을 잘 파악해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설법은 곧 상대나 듣는 중생들의 선근에 따라서 알맞는 가르침을 설 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보살이 이 지(地)에 머무르면

  모든 중생들의 마음과 모든 근기와 모든 욕망과

  갖가지 다른 이치를 모두다 잘 압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이 제 9지에 머무르는 보살은 중생의 마음과 능력과 욕망과, 각각 다른 중생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보살은 법사(法師) 입니다.

  사자왕. 우왕(牛王).보산왕(寶山王)같이

  안주하여 두려움이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처럼, 보살은 법사로써 큰 법을 설하는 자이다. 그는 백수의 왕인 사자왕이나 우왕, 보배산의 왕과 같이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큰 소리로 용기있게 법을 설한다. 제9지에 머무는 보살은 사무애변(四無碍弁)으로써 설법한다. 사무애변이란

 

  1. 법무애변(法無碍弁.가르침에 관해서 막힘이 없는 것) 

  2. 의무애변(義無碍弁.가르침의 내용을 잘 알아 막힘이 없는 것)

  3. 사무애변(辭無碍弁.여러가지 언어에 능통하여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

  4. 요설무애변(樂說無碍弁. 이상 3가지의 지혜로써 중생을 위해 자유자재로 설법하는 것)

 

을 말하다. 어느 하나만 결핍되어도 설법은 자유자재로 되지 않는다.

 

10) 법운지(法雲地)

지혜의 구름이 널리 감로를 내리는 경지이므로 법운지(法雲地)라 하고 또한 그 설법은 진리의 비를 내리게 하는 구름과 같기 때문에 법운지라 하는 것이다.

 

  법운지에 머물면 한 부처님이 내리는 큰 법의 광명의 비를 잘 맞으며

  두 부처님이나 세 부처님이나 내지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이 일으키는 

  큰 법의 구름비도 다 견디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를 법운지라 하는 것 입니다.

 

보살이 이 법운지에 머물면 무수한 부처님들로 부터 비를 맞을 수 있다. 또한 10지의 보살은 자재력을 갖출 수 있다.

 

  보살이 이 지에 머물면 지혜로써 최상의 자재한 힘을 얻어

  좁은 국토를 넓히기도 하고 넓은 국토를 좁히기도 하며

  더러운 국토를 깨끗하게 하기도 하고 깨끗한 국토를 더럽게도 하기도 하는 등

  이렇게 모든 세계에 신력을 부릴 수 있습니다

 

[십지품]의 마지막에는 십지의 정리로서 초지(初地) 에서 제10지에 이르는 단계가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초지에서 넓고 큰 서원을 발하고, 제2지에서 계율을 지키며, 제3지에서 선(禪)을 닦고, 제4지에서 오로지 도행(道行)을 닦는다. 제5지에서 방편의 지혜를 연마하고, 제6지에서 깊고 깊은 인연을 알며, 제7지에서 넓고 큰 마음을 닦고, 제8지에서 세간을 장엄하는 신통력을 발하며, 제9지에서 지혜의 빛으로 일체를 비추고, 제10지에서 모든 부처님의 큰 법의 비를 

맞는다고 하는 것이다.

 

십지에 머무는 보살이 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초지인 환희지에 들어간 사람들도 실제로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중생들은 원심(願心)을 가지고 보살행을 행하면 수행에 의해서 반드시 어느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