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벽암록 제071칙 - 제080칙

실론섬 2023. 2. 23. 00:09

[제071칙] 작액망여(斫額望汝. 이마에 손을 얹고 너를 바라보겠다) - 백장화상이 오봉의 안목을 점검하다
“깨달음의 세계엔 언어문자 초월해야”

[본칙]
백장스님이 다시 오봉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막고 어떻게 말하겠느냐?"
"스님도 막아야 합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마에 손을 얹고 너를 바라보겠다."

[송]
스님더러 먼저 목도 입도 없애라니
용사의 진을 단숨에 쳐부쉈네
이 장군 같은 솜씨 길이 못 잊으리
아득한 하늘가의 물수리를 맞추었네

 

*본칙의 공안도 {벽암록} 제70칙과 똑같이 {전등록} 제6권 백장전에 전하고 있는데, 본칙에서는 백장화상이 제자인 오봉상관(常觀)스님의 안목을 점검하고 있다. 오봉스님 대한 자료는 {전등록} 제9권과 {연등회요} 제7권 균주 오봉산 상관선사전에 몇 편의 선문답을 전하고 있지만 그의 생애와 생몰년대는 전혀알 수가 없다. {전등록}에 어떤 사람이 오봉스님에게 '어떤 것이 오봉의 경지입니까?'라고 질문하니, 오봉스님은 '험준하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어떤 것이 그 경계안의 사람입니까?'라고 질문하니, '막혔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오봉화상의 깨달음의 경지를 일체의 언어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산이 험준하여 접근 할 수 없다는 표현으로 하고 있다. 깨달음의 경계에 사는 사람은 깨달음의 경계에 갇힌 사람이다. 깨달음의 경지까지 초월해야 자유자재한 지혜작용을 무애자재하게 펼칠 수가 있는 것이다.

 

[第071則]斫額望汝
〈本則〉擧。百丈復問五峰。倂卻咽喉唇吻。作麽生道。峰云。和尙也須倂卻。丈云。無人處斫額望汝。
〈頌〉和尙也倂卻。龍蛇陣上看謀略。令人長憶李將軍。萬里天邊飛一鶚。

 

[제072칙] 상아아손(喪我兒孫. 나의 자손을 잃어버렸군) - 백장화상이 운암(雲巖)의 안목을 점검하다
선기없는 멍청한 답변에 "법손 잃었다" 탄식

[본칙]
백장스님이 또 다시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막고 어떻게 말하겠느냐?"
"스님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나의 자손을 잃어버렸구나."

[송]
스님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웅크린 황금사자 일어날 줄 모르네
여기 둘 저기 셋 옛길만 헤매누나
대웅산 밑에 손가락 퉁기는 소리

 

*{벽암록} 제70칙에서 72칙의 공안은 {전등록} 제6권 백장전에서 인용한 것이다. 백장화상은 마지막으로 운암스님에게 문제를 제시하여 운암의 안목을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운암담성(雲巖曇晟. 782~841)은 백장의 문하에서 20년간 수행한 뒤 약산유엄선사의 법을 계승했다. 그의 전기는 {송고승전} 제11권, {조당집} 제5권, {전등록} 14권에 담주운암산 담성선전에 전하고 있다. 그의 문하에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가 배출되어 조동종을 개창하였다.
운암스님이 처음 백장화상의 문하에서 수행하였다는 말은 {전등록} 14권 운암장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운암스님은 종릉 건창사람이니 속성은 왕(王)씨다. 어려서 석문사에서 출가하여 처음 백장회해선사를 친견하고 수학하였으나, 불법의 현묘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채 20년 동안 시자로 백장화상을 모시다가 끝내 백장화상이 열반에 들고 말았다. 그래서 약산유엄선사를 찾아가 한마디 법문에 불법을 깨닫게 되었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운암스님은 백장화상의 문하에서 20년 동안 시자로 있었다. 그 뒤에 도오원지(道吾圓智. 769~835)스님과 함께 약산에 이르자, 약산유엄(藥山惟嚴. 751~834)선사가 물었다. '백장선사 문하에서 무슨 일들을 했는가?' '투철하게 생사(生死)를 해탈하는 일을 했습니다.' '투철하게 벗어났는가?' '거기에는 생사가 없습니다.' '20년 동안 백장의 문하에서 수행하고도 아직 번뇌(習氣)를 없애지 못했구나' 운암스님은 약산선사를 하직하고 남전선사를 찾아 갔다가 그 뒤에 다시 약산으로 돌아와 불법을 깨달았다. 옛 사람을 살펴보건대, 20년 동안 참구하고도 미숙하여 살에 달라붙고 뼈에 달라붙어 썩 빠져 나오지 못하였다."


[第072則]喪我兒孫
〈本則〉擧。百丈又問雲巖。倂卻咽喉唇吻。作麽生道。巖云。和尙有也未。丈云。喪我兒孫。
〈頌〉和尙有也未。金毛獅子不踞地。兩兩三三舊路行。大雄山下空彈指。

 

[제073칙] 두백두흑(頭白頭黑. 휜머리 검은머리) - 마조문하의 서당(西堂)과 백장(百丈)
"글과 말과 모든 수단을 끊고 대답하다"

[수시]
법을 말하는 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타내 보이지 않으며, 법을 듣는 자도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터득하지 않는다. 사실 말하는 입장에서도 이미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나타내지 않는 것이라면 차라리 말하지 않늠만 못하고, 듣는 쪽에서도 이미 
아무것도 듣지 않고 얻지 않은 것이라면 아라리 듣지 않음만 못하다. 그러면 말하지 않고
듣지 않으면 되는가 하면 그것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지금 여러분이 내 이야기를 귀로
듣고 있다면 아직 멀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잘못을 면하고 밝은 눈을 갖춘 자가 될 수
있겠는가?

[본칙]
어떤 스님이 마조스님에게 물었다.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떠나서, 스님께서는 저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그대로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오늘 피곤하여 너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지장스님에게 물어 보거라."
스님이 지장스님에게 물으니, 지장스님이 말하였다.
"왜 큰 스님에게 묻지 않았느냐?"
"스님에게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머리가 아파서 자네에게 말할 수 없으니 회해 사형에게 묻도록 하게."
스님이 회해스님에게 물어보니 회해스님이 말하였다.
"나도 그것은 모른다."
스님이 이를 마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마조스님은 말하였다.
"지장스님의 머리는 희고, 회해스님의 머리는 검다."

[송]
뛰는 놈에 나는 놈, 누가 알아들으랴
마대사의 한마디, 천하를 휩쓸었네
백주 강도 임제인들, 어지 그를 당하랴
글과 말 없는 경지 배울 길이 없어
스스로 이곳 저곳 찾아서 헤매노라

 

*본칙 공안의 출처는 {조당집}14권 마조장인데, {마조어록}, {전등록}7권 서당장에도 수록하며, 조주와 앙산, 굉지 등 많은 선승들이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떠나서 불법의 진실을 밝히는 설법을 주장하고 있다. 

*사구(四句) 백비(百非)란 불법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일체의 논의와 언어 문자를 총칭하는 말이다. 사구(四句)란 일(一), 이(異), 유(有), 무(無)라는 근본 사구(四句)로 일체의 모든 사물과 존재의 이론을 세워서 논리적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이 근본 사구를 세밀하게 구분하고 분별하면 백비(百非)가 되는데, 동일한 것(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것(異)이 있고, 있다(有)고 말하지만, 없다(無)고 말하면 없는 것이다. 즉 어떤 사물이라도 동일한 것이지만 다름(異別)이 있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견해가 있다. 이 네 가지의 입장(四句)에 또 각각 사구(四句)가 있기 때문에 16이라는 숫자가 된다. 다시 그 16에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배치하면 48비(非)가 되고, 거기에 이전에 이미 일어난 일(已起)과 일어나지 않은 일(未起)은 합치면 96비(非)가 되며, 여기에 일(一), 이(異), 유(有), 무(無)의 근본 사구(四句)를 합치면 100비(非)가 된다. 이렇게 백비(百非)라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무수한 부정으로 연장되는 논리로서 결국 일(一), 이(異), 유(有), 무(無)의 사구(四句)에 귀결되는 것이다.

[第073則]頭白頭黑
〈垂示〉垂示云。夫說法者。無說無示。其聽法者。無聞無得。說旣無說無示。爭如不說。聽旣無聞無得。爭如不聽。而無說又無聽。卻較些子。只如今諸人。聽山僧在這裏說。作麽生免得此過。具透關眼者。試擧看。
〈本則〉擧。僧問馬大師。離四句絶百非。請師直指某甲西來意。馬師云。我今日勞倦。不能爲汝說。問取智藏去。僧問智藏。藏云。何不問和尙。僧云。和尙敎來問。藏云。我今日頭痛。不能爲汝說。問取海兄去。僧問海兄。海云。我到這裏卻不會。僧擧似馬大師。馬師云。藏頭白海頭黑。
〈頌〉藏頭白海頭黑。明眼衲僧會不得。馬駒踏殺天下人。臨濟未是白拈賊。離四句絶百非。天上人間唯我知。

 

[제074칙] 반통작무(飯桶作舞. 밥통을 들고 춤을 추다) - 금우화상의 밥통
"음식 공덕 찬탄위해 밥통들고 춤추는 선승"

[수시]
모름지기 선승이란 막야의 명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그 칼날로 마음에 달라붙은 갈등의
병을 즉석에서 잘라버리며 명경 같은 반야의 지혜를 높이 내걸고 단 한마디로도 분명하게 
본래 불심의 불가사의한 대광명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은밀한 신비의 경지에서는
추우면 옷을 입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 식으로 자유무애하게 뜻대로의 생활을 한다. 그런 사람은
또 보통 사람이 상상도 못할 만큼 신출귀몰한 활약을 하므로 도저히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
자, 그럼 알 수 있겠느냐?

[본칙]
금우스님은 언제나 점심 때가 되면 몸소 밥통을 가지고 승당 앞에서 춤을 추면서 껄껄대며
말하였다.
"보살아! 밥 먹어라."
설두스님은 말하였다. "그러나 금우스님의 마음씨가 좋지는 않다."

(금우화상은 언제나 점심 공양시간이 되면 몸소 밥통을 들고 승당 앞에서 춤을 추면서 껄껄 웃으며 말했다. 

"보살들이여! 공양하러 오시오." 

설두스님이 말했다. "비록 이와 같이 하였지만 금우화상은 호의로 한 것이 아니다.")

[송]
구름 속 어디선가 터지는 웃음소리
두 손으로 안아다 나누어 준 듯
번뜩이는 눈을 가진 황금사자여
그대는 어디서나 선뜻 알아보리

 

*본칙의 공안은 {조당집} 제15권, {전등록} 제8권 금우화상전에 전하고 있으며, {종문통요집} 3권, {연등회요} 5권, {오등회원} 3권 등에도 수록하고 있다. 금우화상은 마조도일선사의 제자인데,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상산정석지(常山貞石志)} 13권에 수록한 '진정부정림통법대사탑명(眞定府定林通法大師塔銘)'에 의하면 당 현종의 개원(開元)시대에 입적한 금우화상의 탑에 대한 기사를 기록하고 있다. {임제록}에도 임제가 금우화상을 참문하여 선문답을 나눈 일단을 전하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금우화상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第074則]飯桶作舞
〈垂示〉垂示云。鏌鎁[金+耶]橫按。鋒前剪斷葛藤窠。明鏡高懸。句中引出毘盧印。田地穩密處。著衣喫飯。神通遊戲處。如何湊泊。還委悉麽。看取下文。
〈本則〉擧。金牛和尙每至齋時。自將飯桶。於僧堂前作舞。呵呵大笑云。菩薩子喫飯來。雪竇云。雖然如此。金牛不是好心。僧問長慶。古人道。菩薩子喫飯來。意旨如何。慶云。大似因齋慶讚。
〈頌〉白雲影裏笑呵呵。兩手持來付與他。若是金毛獅子子。三千里外見[言+肴]訛。

 

[제075칙] 타저일개(打著一箇. 한 놈만 팬다) - 오구화상이 정주화상의 선법을 묻다
"수행자 근기 간파한 방망이 선문답 한판"

[수시]
반야의 지검을 언제나 눈 앞에 드러내 놓고 있는 사람은 남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일도 때와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서, 손에 꼭 잡고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내던져
버리거나 제 뜻대로이다. 자 말해 보아라. 너와 나라는 차별에 빠지지 않고 서로의 상대적인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

[본칙]
어느 스님이 정주스님의 회하에 있다가 오구스님을 찾아오자, 오구스님이 물었다.
"정주스님의 가르침은 이곳과 무엇이 다르냐?"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지 않다면 다시 그에게로 가거라."
그리고는 대뜸 후려쳤다. 그러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방망이 끝에 눈이 있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쳐서는 안됩니다."
오구스님이 말하였다.
"오늘은 한 놈만 친다."
그리고는 또 다시 세 차례를 후려치자, 스님이 나가버렸다.
오구스님이 말하였다.
"억울한 방망이를 얻어맞는 놈이 있기는 있었구나."
스님이 몸을 돌리면서 말하였다.
"국자 자루가 스님의 손아귀에 있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오구스님의 손에 있던 방망이를 빼앗아 세 차례 후펴치니,
오구스님은 말하였다.
"억울한 매로구나. 억울한 매야."
"누가 맞고 있습니까?"
"경솔하게 치는 놈이구나."
스님이 문득 절을 올리자, 오구스님이 말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스님이 큰 소리로 웃고 밖으로 나가자, 오구스님은 말하였다.
"이럴 수가, 이렇게 할 수 있다니."

(어떤 스님이 정주화상의 문하에서 수행한 뒤에 오구화상을 참문하자, 오구화상이 물었다. 

"정주화상의 선법은 이곳의 선법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스님은 대답했다. 

"다르지 않습니다." 

오구화상은 "만약 다르지 않다면 다시 거기로 가라!"하면서 주장자로 곧장 후려쳤다. 

스님은 말했다. 

"방망이에 눈이 있습니다. 함부로 사람을 후려치면 안 됩니다." 

오구화상이 말했다. 

"오늘은 한 사람(一箇)을 친다"하면서 또 세 번이나 후려쳤다. 스님은 곧장 승당 밖으로 나갔다.
오구화상이 말했다.

"억울한 방망이를 얻어맞은 사람이 있었구나!"

스님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국자 자루를 화상이 쥐고 있는데, 어떡합니까?"

오구화상이 말했다.

"그대가 필요하다면 그대에게 빌려주겠다."

스님은 앞으로 나아가 오구화상의 주장자를 빼앗아 세 차례나 치니, 오구화상이 말했다.

"억울한 방망이야, 억울한 방망이!"

스님은 말했다.

"어떤 사람이 방망이를 맞습니까?"

오구화상이 말했다.

"함부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놈이군!"

스님은 곧 예배를 올렸다.

오구화상이 말했다.

"화상! 이렇게 하는 것이야!"

스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나갔다.

오구화상이 말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니, 이렇게 할 수 있다니.")

[송]
부르기는 쉬워도 주기는 어렵다네
일대 일의 선기 자세히 보라
굳은 반석도 언젠가는 부서지고
깊은 바닷물도 언젠가는 마르리
오구여, 오구 늙은이여
그 누가 무모하게 몽둥이를 내어주리

*본칙의 공안은 {종문통요집} 제5권, {오등회원} 제3권의 오구화상장에 전하고 있다. 오구화상은 마조선사의 선법을 이은 제자로 {전등록} 제8권에 선문답을 전하고 있지만, 그의 전기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본 공안은 정주화상의 문하에서 수행한 어떤 스님이 오구화상을 참문하여 나눈 대화이다. 정주화상은 북종선 보적(普寂)선사의 법을 이은 석장(石藏)선사인데, 그에 대한 행적도 전하지 않는다.


[第075則]打著一箇
〈垂示〉垂示云。靈鋒寶劍。常露現前。亦能殺人亦能活人。在彼在此。同得同失。若要提持。一任提持。若要平展。一任平展。且道不落賓主。不拘回互時如何。試擧看。
〈本則〉擧。僧從定州和尙會裏。來到烏臼。烏臼問。定州法道何似這裏。僧云。不別。臼云。若不別更轉彼中去。便打。僧云。棒頭有眼。不得草草打人。臼云。今日打著一箇也。又打三下。僧便出去。臼云。屆棒元來有人喫在。僧轉身云。爭奈杓柄。在和尙手裏。臼云。汝若要山僧回與汝。僧近前奪臼手中棒。打臼三下。臼云。屈棒屈棒。僧云。有人喫在。臼云。草草打著箇漢。僧便禮拜。臼云。和尙卻恁麽去也。僧大笑而出。臼云。消得恁麽。消得恁麽。
〈頌〉呼卽易。遣卽難。互換機鋒子細看。劫石固來猶可壞。滄溟深處立須乾。烏臼老烏臼老。幾何般。與他杓柄太無端。

 

[제076칙] 끽반료미(喫飯了未. 밥은 먹었느냐) - 단하화상이 어디서 왔는가 묻다
“안목없는 수행자가 밥만 축냈구나” 비꼬아

[수시]
우리의 본심은 아주 작다고 보면 싸라기 같고, 아주 차갑다고 보면 어름이나 서리처럼 차갑다.
그러나 넓게 보면 온 누리에 가득 차 있어서 밝음이나 어둠 따위를 초월한다. 낮고 낮은 밑바닥,
즉 미혹으로 찬 범부의 세계에도 본심 본성 곧, 여래이 지혜덕상은 넘치고 있고 높고 높은 곳, 
즉 부처나 깨달은 자라도 범부보다 더 많은 것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또 긍정도 부정도 모두 이 우주 절대 진리 속에 있다. 과연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자가 있으냐
없느냐?

[본칙]
단하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느냐?"
"산밑에서 왔습니다."
"밥은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너에게 밥을 먹여준 사람은 안목을 갖추었느냐?"
스님은 말이 없었다.
장경스님이 보복스님에게 물었다.
"밥을 먹여주었으니, 은혜를 갚을 만한 자격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였을까?"
"주는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둘 다 장님이다."
"그 기틀을 다하여도 장님이 되었을까?"
"나를 장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단하화상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스님은 대답했다. 

"산 밑에서 왔습니다." 

단하화상이 말했다.

"밥은 먹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밥은 먹었습니다."

단하화상이 말했다.

"그대에게 밥을 먹도록 한 사람은 안목을 갖추었는가?"

스님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장경선사가 보복선사에게 물었다.

"밥을 먹도록 한 것은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자격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을까?"

보복선사가 말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두 사람 모두 눈먼 놈이다."

장경선사가 말했다.

"본분의 선기를 다했다면 눈먼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보복선사가 말했다.

"나를 눈먼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송]
애썼다느니 장님이 아니라느니
소 머리 눌려 풀 먹이는 꼴이네
많고 많은 조사들 어쩌자고
바리때들은 들고 왔는가
그 잘못 헤아릴 수가 없으니
온 세상 모두 그 때문에 고생이네

 

"본칙의 공안은 {조당집} 제4권과 {전등록} 14권 단하천연장에 전하고 있으며, 장경과 보복의 문답도 수록하고 있지만, 약간의 문구와 내용이 다르다. 단하천연(丹霞天然 : 738~824)화상은 석두희천의 선법을 이었고, 등주 단하산에서 행화를 펼친 선승이다. 행각하다가 추운 날 혜림사에서 목불을 쪼개어 태워 추위를 막은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조당집}에 의하면 단하화상은 어릴 때 유교와 묵자(墨子)를 공부하였고, 9경(經)에 통달하였다고 한다. '평창'에도 {전등록}에 의거하여 단하화상의 전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출가하기 전에 {벽암록} 42칙에 등장한 방거사와 과거시험을 보러 가다가 행각하는 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강서 마조선사의 선불장(選佛場)을 참문하여 마조의 안내로 석두선사와의 인연을 맺었다.

[第076則]喫飯了未
〈垂示〉垂示云。細如米末。冷似冰霜。幅塞乾坤。離明絶暗。低低處觀之有餘。高高處平之不足。把住放行。總在這裏許還有出身處也無。試擧看。
〈本則〉擧。丹霞問僧。甚處來。僧云。山下來。霞云。喫飯了也未。僧云。喫飯了。霞云。將飯來與汝喫底人。還具眼麽。僧無語。長慶問保福。將飯與人喫。報恩有分。爲什麽不具眼。福云。施者受者二俱瞎漢。長慶云。盡其機來。還成瞎否。福云。道我瞎得麽。
〈頌〉盡機不成瞎。按牛頭喫草。四七二三諸祖師。寶器持來成過咎。過咎深無處尋。天上人間同陸沈。

 

[제077칙] 호병(餬餅. 호떡) - 운문화상의 호떡
"깨달음의 정법 불립문자 일깨워"

[수시]
절대평등한 입장에서 활약하면 매가 비둘기를 잡듯이 천하 사람의 코를 꿰어 잡을 수 있고,
상대차별의 입장에서 살면 거북이 껍질 속에 갇혀 있듯이 남의 손에 코를 꿰인 채 끌려 
다니게 된다. 만약 지금 여기에 갑자기 튀어나와서 '선의 궁극적인 경지에는 본래 절대평등도 
상대차별도 없다. 그 아무것도 없는 데로 가서 어쩌겠다는 건가?"하고 묻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절대평등도 상대차별도 없다는 너는 그 아무것도 없는 유령의 세계로 떨어져 버려
유령 생활을 할 것이다.'라고 말해 줄 것이다. 자 말해보라. 어느 쪽이 검고 어느 쪽이 흰지를!
일정한 조문 같은 선의 규정이 있다면 그대로 하지만 없다면 종래의 관례를 따르거라.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말입니까?"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호떡!"

[송]
부처도 안한 말 묻는 이 참 많다만
너덜너덜 남루한 그 꼴들을 보아라
호떡으로 때우나 붙어 있지 않으나
지금 천하 중들 떡 붙이기 분주하네

 

*본칙의 공안은 지극히 간단한 선문답인데, {운문록} 상권에는 운문문언(864~949)화상이 상당법문하는 가운데 나눈 대화로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한마디의 말을 겨우 들면 모든 천차만별의 발자국(궤적)이 같아지며, 미진(微塵)을 모두 다 포괄한다 해도 그것은 교화 방편문으로 하는 말이다. 만약 이러할 때 납승의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조사(祖師)의 의지나 부처의 의지를 가지고 사량분별(商量)한다면 조계의 일로(一路)에 빠지게 되리라. 누군가 (조사의 의지나 부처의 의지를 극복한) 경지에서 말할 사람이 있는가? 말할 수 있으면 나와라"

[第077則]餬餅
〈垂示〉垂示云。向上轉去。可以穿天下人鼻孔。似鶻捉鳩。向下轉去。自己鼻孔在別人手裏。如龜藏殼。箇中忽有箇出來道。本來無向上向下。用轉作什麽。只向伊道。我也知爾向鬼窟裏作活計。且道作麽生。辨箇緇素。良久云。有條攀條無條攀例。試擧看。
〈本則〉擧。僧問雲門。如何是超佛越祖之談。門云。餬餅。
〈頌〉超談禪客問偏多。縫罅披離見也麽。餬餅[祝/土]來猶不住。至今天下有[言+肴]訛。

 

[제078칙] 홀오수인(忽悟水因. 문득 물로 인해 깨닫다) - 16명의 보살이 목욕하며 깨닫다
"空한 물로 空한 몸을 씻는 것도 공(空)한 일…"

[본칙]
옛날에 열여섯 보살이 있었는데, 스님들을 목욕시킬 때 보통 때처럼 욕실에 들어갔다가
홀연히 물로 인해 깨우쳤다. 모든 선덕들이여, 저네들이 '오묘한 감촉 또렷이 빛나며 부처님의
아들이 되었네'라고 말했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모름지기 종횡으로 자재해야만이
비로소 그처럼 할 수 있다.

(옛날에 16명의 보살이 있었는데, 스님들을 목욕시킬 때 평상시처럼 욕실에 들어갔다가 문득 물의 인연(본질)을 깨달았다. 여러 선덕들이여! 저네들이 미묘한 감촉 또렷이 빛나며, 부처님의 아들이 되었네 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체득해야 하는가? 반드시 종횡으로 자유자재해야만 비로소 그와 같이 할 수 있다.)

[송]
정녕 깨달은 이 하나면 족하다네
그런 이 자리에 활개 펴고 누워 있게
물로 깨달았다니 잠꼬대 말아라
향수 목욕했다는 놈 침이나 뺕어주리

 

*본칙은 {수능엄경}제5권 다음의 일단에 의거한 것이다. 발타바라(跋陀婆羅)와 그 도반 16보살[開士]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말했다. “저희들은 처음 위음왕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으며, 스님들이 목욕할 때 차례차례로 욕실에 들어갔다가 문득 물의 원인(水因)을 깨닫고 보니, 때(번뇌)를 씻음도 아니오, 몸(體)을 씻음도 아니며, 중간에서 안연하게 무소유를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익힌 숙습(宿習)이 없어지지도 않았으며, 또한 금시에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무학(無學)을 체득하게 되었으며, 피불(彼佛)이 나를 발타바라라고 이름하니 미묘한 촉감(觸)이 선명(宣明)하여 불자의 보살지위(佛子住)를 이루었습니다. 부처님이 원통(圓通)을 질문하시니 제가 증득한 바는 촉인(觸因)이 으뜸이 되겠습니다.”

[第078則]忽悟水因
〈本則〉擧。古有十六開士。於浴僧時隨例入浴。忽悟水因。諸禪德作麽生會。他道妙觸宣明。成佛子住。也須七穿八穴始得。
〈頌〉了事衲僧消一箇。長連床上展脚臥。夢中曾說悟圓通。香水洗來驀面唾。

 

[제079칙] 일체불성(一切佛聲. 모두가 부처님의 소리라는데) - 투자화상과 부처의 소리
“차별심에 빠진 졸승이 평등심 논하다니”

[수시]
지극한 도의 오묘한 활동은 세상의 속된 법칙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지도를
움켜쥐거나 사로잡는데 별 힘이 들지 않는다. 자 말해 보아라.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과연
있었는지를 ...

[본칙]
어떤 스님이 투자스님에게 물었다.
"모든 소리가 부처님의 소리라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그렇다."
"스님, 방귀뀌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투자스님이 문득 후려치자 또 다시 물었다.
"거친 말과 자세한 말이 모두 제일의제로 귀결한다는데, 그렇습니까?"
"그렇다."
"스님을 말뚝에 매여 있는 노새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투자스님은 다시 대뜸 후려쳤다.

 

[송]
투자화상, 투자화상이여, 그 솜씨 거칠데 없구나
두 번씩이나 두둘겨 주다니, 정녕 자유자재일세
겁도 없이 파도에 뛰어든 중, 물귀신 못 면하리
홀연 살아만 남다면, 백천이 거꾸로 치흐르련만

 

*본칙의 공안의 출처는 잘 알 수가 없지만, {연등회요} 제21권, {오등회원} 제5권 투자화상전에 수록하고 있다. 투자화상은 {벽암록} 제41칙 본칙에 조주선사와의 대화에도 등장한 바가 있는데, 단하천연-취미무학(翠微無學)선사의 법은 잇고 서주(舒州) 투자산에서 교화를 펼친 대동(大同, 819~914)선사이다. 그의 전기는 {조당집} 제6권, {전등록} 제15권에 전하고 있다.
*원오스님은 '평창'에서 "투자화상은 소박하고 진실하면서도 많은 사람 가운데서 뛰어난 변재를 발휘했다. 흔히 질문하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하면 곧바로 그의 속을 들여다보아 괜한 힘을 들이지 않고 그의 혀를 꽉 틀어막아 꼼짝 못하게 하였다. 이것은 장량(張良)이 천막 안에서 작전을 세워 천리 밖에서 전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것과 같았다"고 평하는 것처럼, 한나라의 명장 장량에 비교하고 있다.

[第079則]一切佛聲
〈垂示〉垂示云。大用現前。不存軌則。活捉生擒。不勞餘力。且道是什麽人。曾恁麽來。試擧看。
〈本則〉擧。僧問投子。一切聲是佛聲是否。投子云。是。僧云。和尙莫[尸+豖]沸碗鳴聲。投子便打。又問。麤言及細語皆歸第一義。是否。投子云。是。僧云。喚和尙作一頭驢得麽。投子便打。
〈頌〉投子投子。機輪無阻。放一得二。同彼同此。可憐無限弄潮人。畢竟還落潮中死。忽然活。百川倒流鬧[洱+舌][洱+舌]。

 

[제080칙] 급수상타구(急水上打毬. 급류 위에서 공을 친다) - 조주화상과 어린애의 육식
"어린애 육식은 흐르는 물처럼 머뭄이 없어"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갓 태어난 아이도 6식을 갖추고 있습니까?"
"급류 위에서 공을 친다."
스님은 다시 투자스님에게 물었다.
"급류 위에서 공을 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한 순간도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질문했다. 

"갓 태어난 어린애도 안, 이, 비, 설, 신, 의, 육식을 갖추고 있습니까?" 

조주화상이 말했다. 

"쏜살같이 흐르는 강물 위에 공을 치는 것과 같다." 

그 스님은 다시 투자화상에게 질문했다. 

"쏜살같이 급히 흐르는 강물 위에 공을 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투자화상이 말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한순간도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

[송]
무공한 6식을 알고 물은 중
그 속셈 조주도 투자도 알았네
망망한 급류에 공을 던지라
뉘라서 알랴, 그 물결
흐르고 흘러흘러 어디로 가는지를

[第080則]急水上打毬
〈本則〉擧。僧問趙州。初生孩子。還具六識也無。趙州云。急水上打毬子。僧復問投子。急水上打毬子。意旨如何。子云。念念不停流。
〈頌〉六識無功伸一問。作家曾共辨來端。茫茫急水打毬子。落處不停誰解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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