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벽암록 제081칙 - 제090칙

실론섬 2023. 2. 23. 14:41

[제081칙] 삼보수활(三步雖活. 세 걸음은 살아서 갔으나) - 약산화상과 큰 사슴 사냥
"납자의 사량분별 지혜의 화살로 명중시켜"

[수시]
모름지기 선의 수행자가 적의 군기를 빼앗고 북을 차지할 만한 역량이 있다면 천 명의
성인이 들이닥쳐도 그의 힘을 막을 수 없고 어떤 어려운 문제를 들고 와도 송두리째 
해결할 수 있으며 그 어떤 기략으로도 범접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무슨 신통한 힘도 
아니고 본래부터 그렇게 갖추어진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생활의 태도가 그런 것이다.
자 말해 보아라. 무엇으로 해서 그렇듯 기특한 힘을 얻을 수 있는지를 ...

[본칙]
어떤 스님이 약산스님에게 물었다.
"널찍한 초원에 왕고라니와 사슴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고라니 가운데
왕고라니를 쏘아 맞출 수 있겠습니까?
"화살을 보아라."
스님이 벌떡 몸을 누이며 거꾸러지자 약산스님이 말하였다.
"시자야, 이 죽은 놈을 끌어내라."
스님이 문득 도망치자 약산스님이 말하였다.
"허튼 짓하는 놈! 어찌 깨달을 날이 있으랴."
설두스님은 이를 들어 말하였다. "세 걸음까지는 살아 있다 해도 다섯 걸음가면 꼭 죽을 것이다."

[송]
대뜸 고라니를 알아차리고
한 방 드날린 약산의 솜씨
다섯 걸음 살아서 돌아갔던들
호랑이쯤 내몰 수 있었으련만
아, 그 사냥꾼 눈도 밝아라
설두스님도 큰소리 한마디를 하였다. "화살 나간다!"

*약산화상은 {벽암록} 제41칙에도 등장했다. 본칙 공안의 출처는 분명하지 않은데, 후대의 자료인 {오등회원} 제5권 약산장에 수록하고 있고, {연등회요} 19권에도 전하고 있지만 내용에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석두희천의 선법을 이은 약산유엄(藥山惟嚴, 751~834)은 전기는 {조당집} 제4권 {송고승전} 17권, {전등록} 14권 등에 전하고 있는 것처럼, 속성은 한(韓)씨, 강서성 신풍현에서 출생하여 17살에 출가했다. 뒤에 석두희천선사를 친견하고 나눈 선문답을 {조당집}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약산이 앉아있는데, 석두선사가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약산이 대답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가히 앉은 것이구나!" "한가히 앉았다면 하는 것이 됩니다." "그대는 하지 않는다 하는데,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천명의 성인도 알 수 없습니다." 이에 석두선사가 게송으로 약산을 찬탄하였다. '전부터 함께 있었지만, 이름조차 모르는데, 마음대로 서로잡고 그런 행동 짓는다. 예부터 높은 현인도 알지 못했거늘, 경솔한 예사 무리야 어찌 밝힐 수가 있으랴!'

 

[第081則]三步雖活
〈垂示〉垂示云。攙旗奪鼓。千聖莫窮。坐斷[言+肴]訛。萬機不到。不是神通妙用。亦非本體如然。且道。憑箇什麽。得恁麽奇特。
〈本則〉擧。僧問藥山。平田淺草麈鹿成群。如何射得麈中麈。山云。看箭。僧放身便倒。山云。侍者拖出這死漢。僧便走。山云。弄泥團漢有什麽限。雪竇拈云。三步雖活五步須死。
〈頌〉麈中麈。君看取下一箭。走三步。五步若活。成群趁虎。正眼從來付獵人。雪竇高聲云。看箭。

 

[제082칙] 산화개사금(山花開似錦. 산에 핀 꽃은 비단결 같고) - 대룡(大龍)화상의 견고한 법신(法身)
"사량분별 초월한 모습이 곧 '청정법신'"

[수시]
아무리 낚싯줄을 늘어뜨려도 눈 밝은 자는 그 속셈을 다 알아차린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재로운 솜씨로 덤벼들어도 견식이 뛰어난 자는 대뜸 그 솜씨를 분별한다. 자, 말해 보아라.
그 낚싯줄이며 자재로운 솜씨란 어떤 것인지를 ...

[본칙]
어떤 스님이 대룡스님에게 물었다.
"색신은 부서지는데 어떠한 것이 견고한 법신입니까?"
대룡스님이 말하였다.
"산에 핀 꽃은 비단결 같고 시냇물은 쪽빛처럼 맑구나."

[송]
물을 줄 모르니 대꾸인들 알 리 없지
시린 달 높은 바람 묵은 바위 외로운 노송
가소롭구나 성인에겐 어도 묵도 안된다니
흰구슬 채찍 들어 아주 잘도 쳐부셨다
아니면 한바탕 소동이 있었을 것을
삼천조의 나라 벌이 한꺼번에 쏟아지리

 

*본칙의 공안은 어디서 채택한 것인지 알 수가 없으나, 후대의 자료인 {오등회원} 제8권 대룡화상전에 수록하고 있다. 대룡화상은 송대에 낭주(朗州) 대용산에서 활약한 지홍(智洪)선사로 덕산의 법맥을 계승한 백조지원(白兆志圓) 선사의 선법을 이었다. 그의 법문은 {전등록} 23권 지홍 홍제(弘濟)대사전 약간의 선문답을 전하고 있지만 전기는 전혀 알 수가 없다.

[第082則]山花開似錦
〈垂示〉垂示云。竿頭絲線具眼方知。格外之機作家方辨。且道作麽生是竿頭絲線格外之機。試擧看。
〈本則〉擧。僧問大龍。色身敗壞。如何是堅固法身。龍云。山花開似錦。澗水湛如藍。
〈頌〉問曾不知答還不會。月冷風高古巖寒檜。堪笑路逢達道人。不將語黙對。手把白玉鞭。驪珠盡擊碎。不擊碎增瑕纇。國有憲章三千條罪

 

[제083칙] 남산운북산우(南山雲北山雨. 남산 구름 북산 비) - 운문화상의 고불(古佛)과 기둥(露柱)
"남산과 북산, 고불과 기둥이 '하나의 경지'"

[본칙]
운문스님이 대중에게 법문을 하였다.
"고불과 노주가 사이좋게 지내는데, 이는 몇 번째 등급이겠느냐?"
스스로 대신하여 말하였다.
"남산에서 구름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운문화상이 법당에서 대중들에게 설법을 했다.

"고불(古佛)과 기둥(露柱)이 사이좋게 교제하는데, 이것은 어떤 단계의 마음작용(機)인가?"

운문화상 스스로 대답했다.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송]
남산에는 구름 북산에는 비
사칠은 이십팔, 이삼은 육
조사님네들 다 알고 있어
당나라에서는 북도 치지 않았는데
신라는 벌써 상당식이네
괴로움이네 즐거움이네
떠들지 말아라
황금이 똥 같다 누가 말했나

*본칙 공안은 {운문광록} 중권(中卷)의 수시대어(垂示代語)에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운문화상이 법당에 올라 설법하였다.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고불(古佛)과 기둥(露柱)이 사이좋게 교제하는데, 이것은 몇 번째 기틀(機)인가?'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운문화상이 물었다. '그대들에게 묻는다. 나는 그대들을 위해서 말한 것이다.' 어떤 스님이 곧바로 질문했다. 운문화상은 말했다. '이 채찍 끈은 삽십전(三十文)이다.' 앞의 말을 대신하여 말했다.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어떤 스님이 질문했다. '어째서 채찍 끈이 삽십전입니까?' 운문화상은 곧장 내리쳤다." 설두화상은 이 일단의 대화에서 요약한 것인데, {굉지송고} 31칙에도 똑같은 공안을 제시하고 있다.


[第083則]南山雲北山雨
〈本則〉擧。雲門示衆云。古佛與露柱相交。是第幾機。自代云。南山起雲北山下雨。
〈頌〉南山雲北山雨。四七二三面相睹。新羅國裏曾上堂。大唐國裏未打鼓。苦中樂。樂中苦。誰道黃金如糞土。

 

[제084칙] 불이법문(不二法門. 둘이 아닌 법문) - 유마거사의 불이법문
"일체 자취와 흔적 없는 유마힐의 '침묵'"

[수시]
옳다고 말하나 과연 옳다고 할 만한 것이란 없고, 또 옳지 않다고 말하지만 과연 옳지 않다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옳다 옳지 않다를 이미 저버리고 얻었다 잃었다를 모두 잊어버리면
깨끗한 벌거숭이가 되어 아무 거칠 것이 없지 않느냐. 자 말해 보아라. 내 앞뒤에 있는 것은
무엇이냐? 어쩌다 한 중이 불쑥 다가와 '앞에 있는 것은 삼문이오, 뒤에 있는 것은 침당방장
입니다 '한다면, 이 자는 제대로 눈을 가진 자라 할 수 있겠느냐. 어떠냐? 만약 이런 인물을
알아보려 한다면 너희들 스스로가 직접 고인의 경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본칙]
유마힐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그것은 무엇인가?"
"제 생각으로는 일체의 법에 말도 없고 설명도 없으며, 보여줌도 없고 알려줌도 없으며,
모든 물음과 답변을 떠난 그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각자의 설명이 끝났습니다. 인자께서 말씀하셔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설두스님은 말하였다. "유마야, 무슨 말을 하겠느냐?" 다시 말하였다. "속셈을 간파해버렸다."

(유마힐이 문수사리에게 질문했다. 

"보살이 둘이 아닌 불이법문(不二法門)을 깨닫는 것은 어떤 경지인가?" 

문수가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일체의 법에 관하여 말할 수도 없고, 설할 수도 없고, 제시할 수도 없고, 알게 할 수도 없으며, 

일체의 질문과 대답을 여읜 그것이 불이법문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에 문수사리보살이 유마힐 거사에게 물었다. 

"우리들은 각자의 설명을 마쳤습니다. 거사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불이법문을 깨닫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설두화상이 말했다. "유마거사가 무슨 말을 했는가!" 설두화상은 다시 말했다. "완전히 파악(勘破)해 버렸다.")

[송]
가련타 유마노, 공연한 걱정으로
온 몸 꼬챙이 된 채 병들어 누웠구나
문수가 온다 하니 방안 털고 야단일세
불이문이 무언가 공연한 질문으로
그나마 낡은 문짝 박살난 뻔했다네
일묵으로 빠져가니
황금사자 문수도 찾아낼 길 없구나

 

*본칙의 공안은 {유마경} '입불이법문품'에 의거한 것이다. 

[第084則]不二法門
〈垂示〉垂示云。道是是無可是。言非非無可非。是非已去。得失兩忘。淨裸裸赤灑灑。且道。面前背後是箇什麽。或有箇衲僧出來道。面前是佛殿三門。背後是寢堂方丈。且道。此人還具眼
也無。若辨得此人。許爾親見古人來。
〈本則〉擧。維摩詰問文殊師利。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文殊曰。如我意者。於一切法。無言無說。無示無識。離諸問答。是爲入不二法門。於是文殊師利問維摩詰。我等各自說已。仁者當說。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雪竇云。維摩道什麽。復云。勘破了也。
〈頌〉咄這維摩老。悲生空懊惱。臥疾毘耶離。全身太枯槁。七佛祖師來。一室且頻掃。請問不二門。當時便靠倒。不靠倒。金毛獅子無處討。

 

[제085칙] 엄이투령(掩耳偸鈴.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니) - 동봉(桐峰)화상과 호랑이
“어리석은 고양이가 호랑이 흉내내는 격”

[수시]
온 세상을 움켜쥔 채 털끌만큼도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끽소리 못하게
말문을 막아 버릴 수 있어야 중(수행승)의 올바른 행동이라 한다. 지혜의 대광명으로 모든 존재를 
밝게 비추어 그 진상을 알아내야만 금강안을 지닌 중이라 한다. 쇠를 금으로 바꾸고 금을 쇠로 
바꾸는 사로잡고 놓아주는 솜씨가 있어야 중도 주장자를 든 보람이 있다고 한다, 천하 사람의 말문을
꽉 막아버려서 감히 한 마디도 못 꺼내게 하여 삼천리 밖으로 내쫓을 수 있어야 중의 도량이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일을 전혀 못한다면 대체 그런 자를 뭐라고 해야 하겠느냐?

[본칙]
어느 스님이 동봉암주의 처소에 이르러 물었다.
"여기에서 느닷없이 호랑이를 만났을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암주가 대뜸 호랑이 울음소리를 내자, 스님은 바로 겁먹은 시늉을 하였다. 암주가 껄껄대며 크게 웃자, 
스님이 말하였다.
"이 도적아!"
"노승을 어떻게 하겠느냐"
스님은 어쩌지 못하였다.
설두스님은 말하였다. "옳기는 옳지만, 어리석은 도둑처럼 자신의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칠줄만 아는구나."

[송]
제 때에 안 가지면 아뿔사 천리일세
얼룩무늬 호랑이 이빨 발톱 아직 없네
그대도 알리라 대웅산 밑 두 호랑이
우렁찬 목소리와 모습 천지를 흔들어
그대 정녕 아는가
호랑이 꼬리와 수염 한 손에 움켜쥠을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 12권과 {광등록} 13권 동봉암주전에 선문답으로 전하고 있다. {전등록}에 그의 전기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어 잘 알 수가 없다. 원오도 '평창'에 '백장회해선사의 법을 계승한 임제의 문하에서 대매(大梅), 백운(白雲), 호계(虎溪), 동봉(桐峰) 등의 네 암주가 배출되었다.'라고 한다. 대매(大梅) 백운(白雲)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전등록}에는 임제의현선사의 문하에 동봉(桐峰), 삼양(杉洋), 호계(虎溪), 복분(覆盆)등의 4인의 암주가 배출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동봉화상도 임제의 선법을 잇고 깊은 산중에 은거한 선승이 아닌가 생각된다. 

[第085則]掩耳偸鈴
〈垂示〉垂示云。把定世界不漏纖毫。盡大地人亡鋒結舌。是衲僧正令。頂門放光。照破四天下。是衲僧金剛眼睛。點鐵成金。點金成鐵。忽擒忽縱。是衲僧拄杖子。坐斷天下人舌頭。直得無出氣處。倒退三千里。是衲僧氣宇。且道總不恁麽時。畢竟是箇什麽人。試擧看。
〈本則〉擧。僧到桐峰庵主處便問。這裏忽逢大蟲時。又作麽生。庵主便作虎聲。僧便作怕勢。庵主呵呵大笑。僧云。這老賊。庵主云。爭奈老僧何。僧休去。雪竇云。是則是兩箇惡賊。只解掩耳偸鈴。
〈頌〉見之不取。思之千里。好箇斑斑。爪牙未備。君不見。大雄山下忽相逢。落落聲光皆振地。大丈夫見也無。收虎尾兮捋虎鬚。

 

[제086칙] 호사불여무(好事不如無. 좋은 일도 없는 것만 못하다) - 운문화상의 광명(光明)
"중생심 차별경계 넘어야 지혜광명 비춰"

[수시]
온 세상을 한 손에 움켜쥔 채 털끌만큼도 새어나가지 않게 한다. 온갖 번뇌와 망상 따위를
끊어 버리고 사려와 분별이 조금도 남지 않게 한다. 함부로 입을 놀려 지껄이면 잘못되고 만다.
또 망설이면 엉뚱하게 빗나가 버린다. 자, 그럼 말해 보아라. 난관을 헤쳐 나간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무애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를 ...

[본칙]
운문스님이 법어를 내리셨다.
"사람마다 모두가 광명을 가지고 있다. 이를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고 어두컴컴하다. 어떤 것이
여러분의 광명이겠느냐?"
스스로 대신하여 말하였다.
"부엌의 삼문이다."
다시 또 말하였다.
"좋은 일도 없는 것만 못하다."

[송]
저절로 눈부셔라 광명 여기 있으니
눈먼 그대 위해 알뜰히 말해 주었건만
꽃 지고 숲은 비어 광명천지 열렸으니
누군들 못 보랴
보인다 안 보인다 모두 부질없어라
거꾸로 소 타고도 불전에 드는 것을

*본칙의 공안은 {운문광록} 중권 수시대어를 인용한 것이다. 광명(光明)은 {화엄경} 11권에 '세존이 도량에 앉아 청정한 대광명을 놓으니 마치 천개의 태양이 나타나 허공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과 같다.'라고 읊고 있는 것처럼, {방광반야경}, {관무량수경} 등 경전에서는 부처나 보살의 지혜작용을 광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미혹의 어둠을 타파하는 진리의 빛으로 나타낸 것인데, 아미타불을 무량(無量)의 수명(壽命)과 광명(光明)으로 표현하고 있다.
운문화상이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광명이 있다. 이 광명을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고 어둡고 깜깜하다."라고 고인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말은 {조당집} 제4권, 단하천연서사의 {고적음(孤寂吟)}에 "광명 있는 줄 모두가 다 알지만, 그 광명을 보려하면 어둡고 깜깜하여 볼 수 없다."는 말에 의거한 것이다.

[第086則]好事不如無
〈垂示〉垂示云。把定世界不漏絲毫。截斷衆流不存涓滴。開口便錯擬議卽差。且道作麽生是透關底眼。試道看。
〈本則〉擧。雲門垂語云。人人盡有光明在。看時不見暗昏昏。作麽生是諸人光明。自代云。廚庫三門。又云。好事不如無。
〈頌〉自照列孤明。爲君通一線。花謝樹無影。看時誰不見。見不見。倒騎牛兮入佛殿。

 

[제087칙] 약병상치(藥病相治. 약과 병이 서로 치료한다) - 운문화상의 병(病)과 약(藥)
"병 주고 약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본래 자기'"

[수시]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는 아무런 난관도 없다. 어떤 때는 호젓한 봉우리 끝의 우거진 풀숲에
살고 또 어떤 때는 시끄러운 저자 속에서 저나라하게 아무 거리낌없이 거동한다. 또 느닷없이
분노하여 나타태자처럼 머리 셋과 팔 여섯을 휘두르는가 하면 홀연 일면불 월면불처럼 자비의
빛을 내뿜으며 도처에 나타나서 임기웅변의 방편으로 진흙과도 화합하고 물과도 화합한다.
그리고 홀연히 선의 궁극적인 경지에 오르면 부처의 눈으로도 엿볼 수가 없고 가령 천 명의
성인이 나타난다. 삼천리 저 밖으로 물러가 버릴 수밖에 없다. 자 그런 인물에 공명할 만한 자가
있느냐?

[본칙]
운문스님이 대중 법문을 하였다.
"약과 병이 서로 딱딱 맞으니, 온 대지가 약이다. 어느 것이 자기이겠느냐."

[송]
온 세상이 다 약이다.
이 말을 잘못 안 이 얼마나 많았던가
억지로 재고 깎고
서툰 짓 안 해도 길은 환히 트인 것을
아뿔싸, 실수로다
하늘 위 높은 콧대 단숨에 꺾었구나

*본칙의 공안은 {운문광록} 권중에 보이는 짧은 법문이지만, 최상의 선기를 설한 것이다. 

[第087則]藥病相治
〈垂示〉垂示云。明眼漢沒窠臼。有時孤峰頂上草漫漫。有時鬧市裏頭赤灑灑。忽若忿怒那吒。現三頭六臂。忽若日面月面。放普攝慈光。於一塵現一切身。爲隨類人。和泥合水。忽若撥著向上竅。佛眼也覰不著。設使千聖出頭來。也須倒退三千里。還有同得同證者麽。試擧看。
〈本則〉擧。雲門示衆云。藥病相治。盡大地是藥。那箇是自己。
〈頌〉盡大地是藥。古今何太錯。閉門不造車。通途自寥廓。錯錯。鼻孔遼天亦穿卻。

 

[제088칙] 현사삼병(玄沙三病. 현사가 세 가지 병에 관해 말하다) - 현사화상의 세 가지 병
"보고듣고 말한다고 다 같은 경계가 아니다"

[수시]
선문에서 지도하는 방법이란 어떤 것이 있는가 하면 바로 둘을 쪼개어 셋을 만드는 융통성이
있어야 하며, 사물의 깊은 도리를 이야기하는 데에도 자유자재의 솜씨가 있어야 한다. 또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을 지도함에 있어서 쇠사슬이나 오묘한 관문 같은 난문, 난제를 깨부수어야 
한다. 불조의 정령에 따라 행동하며 수행자의 집착이나 망념을 남김없이 없애 주어야 한다.
자, 이런 활동을 할 때에도 어딘가 흠잡을 데가 있는지 말해 보아라. 밝은 눈을 가진 자는 예를
하나 들 것이니 잘 보아 두어라.

[본칙]
현사스님이 대중 법문을 하였다.
"여러 총림의 노스님들이 모두 사람을 제접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하니, 갑자기 귀머거리,
봉사, 벙어리가 찾아왔을 때는 어떻게 맞이하겠는가? 봉사에게 백추를 잡고 불자를 곧추세워도
그는 보지 못하며, 귀머거리는 일체의 어언삼매도 듣지 못하며, 벙어리에게는 말을 하도록 시켜도
하지 못한다. 이들을 어떻게 맞이할까? 만일 이들을 제접하지 못한다면 불법은 영험이 없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가르쳐주기를 청하자,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절 좀 해봐라."
스님이 절을 올리고 일어나자, 운문스님은 주장자로 밀쳐버리니, 스님이 뒷걸음치자,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너는 눈이 멀지는 않았구나."
다시 그를 불러 앞으로 가까이 오라 하여 스님이 다가오자,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귀머거리는 아니구나."
그리고는 물었다.
"알았느냐."
"모르겠습니다."
"너는 벙어리는 아니구나."
스님이 그로 인해 알아차리는 바가 있었다.

[송]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세상일 어지러워 안 본 듯, 안 들은 듯
말조차 잊었구나 까마득한 딴 세상
가엾은 세상 사람 그것을 모르다니
천리안이 어지 보랴, 허허로운 이 경지
명악사가 어찌 들으랴 그윽한 이 소리
그 누가 알랴, 잎 지고 꽃피는 조화
창가에 홀로 앉아 지켜보는 이 기쁨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정녕 알겠느냐 무슨 뜻인지

*본칙의 공안은 {운문광록}에서 인용한 것인데, 현사의 법문은 {현사광록} 중권, {전등록} 18권 현사전에 수록하고 있다. 현사사비 화상은 복주 현사산에서 교화를 펼친 종일(宗一, 835~908)선사인데, 운문선사와 마찬가지로 설봉의존의 선법을 계승한 뛰어난 선승이다.

[第088則]玄沙三病
〈垂示〉垂示云。門庭施設。且恁麽。破二作三。入理深談。也須是七穿八穴。當機敲點。擊碎金鎖玄關。據令而行。直得掃蹤滅跡。且道[言+肴]訛在什麽處。具頂門眼者。請試擧看。
〈本則〉擧。玄沙示衆云。諸方老宿。盡道接物利生。忽遇三種病人來。作麽生接。患盲者。拈鎚豎拂。他又不見。患聾者。語言三昧。他又不聞。患啞者敎伊說。又說不得。且作麽生接。若接此人不得。佛法無靈驗。僧請益雲門。雲門云。汝禮拜著。僧禮拜起。雲門以拄杖挃。僧退後。門云。汝不是患盲。復喚近前來。僧近前。門云。汝不是患聾。門乃云。還會麽。僧云。不會。門云。汝不是患啞。僧於此有省。
〈頌〉盲聾瘖啞。杳絶機宜。天上天下。堪笑堪悲。離婁不辨正色。師曠豈識玄絲。爭如獨坐虛窗下。葉落花開自有時。復云。還會也無。無孔鐵鎚。

 

[제089칙] 통신수안(通身手眼. 온 몸이 손이고 눈이다) - 관음보살의 천수천안
“몸뚱아리 중 소중하지 않은 것 있더냐”

[수시]
온 몸이 다 눈이 되어 버리면 새삼 본다는 느낌이 없고, 온 몸이 다 귀가 되면 새삼 듣는다는
느낌이 없으며, 온 몸이 그대로 입이 된다면 새삼 말한다는 느낌이란 없고, 또 온 몸이 그대로
마음이 되어 생각한다면 새삼 생각한다는 것을 느끼지 않게 된다. 온 몸이 눈, 귀, 입, 생각이
된다는 것은 우선 그런대로 괜챦지만, 그러나 만약 눈이 없다면 어떻게 보고, 귀가 없다면 어떻게
들으며, 입이 없다면 어떻게 말하고,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만약 이 내 질문에 대해
그럴듯한 해답을 내비치기라도 할 수 있다면 그런 인물은 역대의 조사들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역대의 조사들과 한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또 그렇다 치고, 과연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대체 어떤 분을 찾아가야 하는가를 말해 보아라.

[본칙]
운암스님이 도오스님에게 물었다.
"대비보살은 수많은 손발을 사용하여, 무엇을 합니까?"
"사람이 한밤중에 등 뒤로 베개를 더듬는 것과 같다."
"알았습니다."
"뭐냐?"
"온 몸이 손이요, 눈입니다."
"큰 소리는 쳤다만 열이면 여덟을 말했을 뿐이다."
"사형께서는 어떠십니까?"
"온 몸이 손이요, 눈이다."

[송]
편신, 통신을 떠들 것 없네
둘 다 조정에선 십만리 저 편일세
대붕이 날개 펴고 구만리 상공으로
바람차고 치솟으니 새해가 뒤집히네
아서라 그 따위 짓 먼지 풀썩 떠오르듯
터럭하나 둥 뜨듯 보잘 것 없다네
그대는 못 보는가 제석천의 구슬 휘장
그림자 영롱한 채 겹겹이 둘러친 걸
어찌 대비보살뿐이랴
봉두의 손과 눈 여기저기 깔려있네
아는가, 그 손, 그 눈 어디서 오는지를

 

*본칙의 공안은 {조당집} 5권 도오장과, {전등록} 14권 운암장에 전하고 있는데, 질문자가 운암이 아니라 도오화상이다. 도오원지(道悟圓智:769~835)는 이미 {벽암록} 55칙에, 운암담성(雲巖曇晟: 782~841)은 70칙에 등장한 선승인데, 모두 약산유엄선사의 제자이다. 원오는 '평창'에 "운암은 도오와 함께 약산선사를 참문하고 40년 동안 눕지 않고 정진하였다.
약산선사는 조동종(曹洞宗)이라는 한 종파를 출현하게 했는데, 거기에 3인이 있어 법도가 성행했다. 운암선사 문하에 동산양개(洞山良价), 도오선사 문하에 석상경제(石霜慶諸), 선자덕성(船子德誠)선사 문하에 협산선회(夾山善會)가 배출되었으니 바로 그들이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도오와 운암은 약산문하를 대표하는 뛰어난 선승들이다.

[第089則]通身手眼
〈垂示〉垂示云。通身是眼見不到。通身是耳聞不及。通身是口說不著。通身是心鑒不出。通身卽且止。忽若無眼作麽生見。無耳作麽生聞。無口作麽生說。無心作麽生鑒。若向箇裏撥轉得一線道。便與古佛同參。參則且止。且道參箇什麽人。
〈本則〉擧。雲巖問道吾。大悲菩薩。用許多手眼作什麽。吾云。如人夜半背手摸枕子。巖云。我會也。吾云。汝作麽生會。巖云。遍身是手眼。吾云。道卽太殺道。只道得八成。巖云。師兄作麽生。吾云。通身是手眼。
〈頌〉遍身是。通身是。拈來猶較十萬里。展翅鵬騰六合雲。搏風鼓蕩四溟水。是何埃壒兮忽生。那箇毫釐兮未止。君不見。網珠垂範影重重。棒頭手眼從何起。咄。

 

[제090칙] 방함명월(蚌含明月. 조개가 달을 머금다) - 지문(智門)화상과 반야지혜의 본체
"반야지혜의 무분별지 體.用으로 잰들…"

[수시]
절대 그 자체에 의거한 한마디란 천만의 성현도 전해줄 수가 없다. 눈 앞의 한 오라기 실도
영원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다. 그렇듯 우주의 참 모습이 여기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자, 어떠냐 알 수 있겠느냐?

[본칙]
어떤 스님이 지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반야의 체입니까?"
"조개가 밝은 달을 머금었다."
"무엇이 반야의 용입니까?"
"토끼가 새끼를 뱄다."

[송]
텅 빈 채 한없이 커다란 이 덩어리
무어라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있으리
사람과 하늘 모두 이에서 공생 보내
조개와 토끼라 깊은 그 뜻 알 수 없어
스님네 옥신각신 그칠 날이 없구나

 

*본칙의 공안은 {고존숙어록} 제39권에 수록된 {지문광조선사어록}에 전하고 있는 선문답인데, {벽암록} 제21칙 본칙의 평창에도 인용하고 있다. 지문광조(智門光祚)화상은 운문문언선사의 제자로서 그의 전기는 {광등록} 22권, {속등록} 2권, {연등회용} 27권 등에 전하고 있는데, 사천성 향림원 징원(澄遠)선사를 참문해 법을 잇고 뒤에 호북성 수주 지문사에서 선법을 펼쳤다. 그의 문하에 설두중현 등 30여명의 훌륭한 선지식이 배출됐다.

[第090則]蚌含明月
〈垂示〉垂示云。聲前一句千聖不傳。面前一絲長時無間。淨裸裸赤灑灑。頭髼鬆耳卓朔。且道作麽生。試擧看。
〈本則〉擧。僧問智門。如何是般若體。門云。蚌含明月。僧云。如何是般若用。門云。免子懷胎。
〈頌〉一片虛凝絶謂情。人天從此見空生。蚌含玄免深深意。曾與禪家作戰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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