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칙 장사백척 長沙百尺1)
1)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사경잠(長沙景岑)의 말과 백척간두를
고수하는 여회(如會)의 말을 대칭시킨 공안이다. 백척간두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향상의 극치이다.
진보도 퇴보도 불가능한 이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진일보를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가 이 공안의
관문인데, 여회의 입장이 대척점에서 이 공안의 긴장을 효과적으로 높이고 있다. 두 선사에 대하여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는 식으로 편중된 견해를 보이면 이 공안의 기초는무너진다.
[본칙]
장사경잠선사가 어떤 학인을 시켜 여회(如會)화상에게 물었다. “화상께서 남전을 만나기 이전의 시기2)에는 어떠했습니까?” 여회가 말없이 있었다. 그 학인이 “만난 다음에는 어떠했습니까?”라고 묻자 “특별한 일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학인이 돌아와 그 문답을 들려주자 경잠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었다. “백척간두에 앉아 요지부동한 사람이여! 깨달았다 해도 아직은 진실이 아니라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내딛고 나아가야, 시방세계 전체가 자신의 온몸이 되리라.” 그 학인이 물었다. “백척간두에서 어떻게 진보합니까?” “낭주는 산이 좋고 예주는 물이 좋다.”3) “잘 모르겠습니다.” “4해와 5호 4)가 모두 왕의 교화5) 안에 있다.”
長沙景岑禪師, 令僧問會和尙曰, “和尙未見南泉時, 如何?” 會良久. 僧云, “見後, 如何?” 會云, “不可更別有也.” 僧迴擧似師, 師作偈云, “百尺竿頭坐底人! 雖然得入未爲眞. 百尺竿頭須進步, 十方世界是全身.” 其僧便問, “百尺竿頭如何進步?” 師云, “朗州山, 澧州水.” 僧云, “不會.” 師云, “四海五湖王化裏.”
2) 남전을 만났다는 말은 단순히 남전의 처소로 찾아가 그 얼굴을 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남전의 본분과
마주쳐서 그것을 알아차렸다는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만나기 이전은 남전의 본의를 파악하기 이전을
나타낸다.
3) 낭주는 중국 호남성 상덕현, 예주는 호남성 예현. 백척간두에 머물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 산과 물과
같은 차별된 현상을 마주해야 한다는 말이지만, 근본적으로 어떤 의미 속에도 한정되지 않는 화두이다.
4) 사해오호(四海五湖). 중국 전역을 통괄하여 나타내는 말. 오호사해(五湖四海)라고도 한다.
5) 왕화(王化). 왕의통치. 주로 덕으로 다스리는 덕치(德治)를 나타내는 말.
[설화]
만송행수(萬松行秀)는 “호남 장사초현대사의 휘는 경잠이고, 마조의 손제자이며 남전의 제자이자 조주의 사형이다. 그 당시 앙산(仰山)과 같이 강직하고 남에게 굽히지 않던 선사도 몸을 낮추도록 만들었기에 잠대충(岑大蟲)6)이라 일컬어졌다”7)라고 말했다. 회화상은 동사여회(東寺如會)라는 선사로서 마조의 법을 이은 제자인 절상여회(折床如會)8)를 말한다.
6) 호랑이[大蟲]와같은위세를발휘했기때문에붙여진명칭이라는뜻.
7) 만송행수가 이 화두에 대한 「평창」에서 한 말이다. 『從容錄』 79則 「評唱」 大48 p.277c18.
8) ‘折床’(평상이 부러졌다는 뜻)이라는 호가 붙여진 유래는 다음과 같다. “학도가 많아지자 승당 안의 평상이
그로 인해 부러졌고, 당시 학인들이 절상회(折床會)라 불렀다.”(『景德傳燈錄』 권7 「東寺如會傳」 大51
p.255b15. 學徒旣衆, 僧堂內床榻, 爲之陷折. 時稱折床會也.) 이 고사에 따라 ‘절상’은 대중이 많은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들은 남전의 가르침을 받고 은밀하게 부합하여 친밀하게 깨달은 문도들이다.
‘남전을 만나기 이전의 시기’란 미혹하였을 때를 말하고 ‘만난 다음’이란 깨달았을 때를 가리킨다. 그러나 ‘우두(牛頭)가 4조(四祖)를 만나기 이전의 사정, 4조를 만난 다음의 사정’9)이라는 인연과 같은 뜻은 아니다.
말없이 있다가 ‘특별한 일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한 말:만나기 이전에도 그랬고, 만난 다음에도 그랬다는 뜻이니, 미혹과 깨달음이 모두 사라진 경계를 나타낸다.
백척간두에 앉아 ~ 진실이 아니라네:우물 안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작다고 생각하는 격이니,10) 포단(蒲團)에서 보이는 것을 하늘 전체로 여긴다11)는 뜻이다.11)
백척간두에서 ~ 온몸이 되리라:(이렇게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해야) 비로소 좌선하는 자리(포단)에서 본 것이 하늘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낭주는 산이 좋고, 예주는 물이 좋다:천차만별의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4해와 5호가 모두 왕의 교화 안에 있다:더욱 높이 한 수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니, 남들에게 가르침을 주려면 철저해야 한다는 뜻이다.
『화엄경』에 “미륵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말했다. ‘이 장자는 110개의 성을 거쳐서 내가 있는 이곳에 왔다’”12)라고 하였다. 10신(信)13)에 각각 원인과 결과가 있어 모두 20이 되고, 10주·10행·10회향·10지[住行向地]14)도 이것을 기준으로 따른다. 또한 5위에 각각 원인과 결과가 있으므로 모두 합하여 110이다. 공공시(共功時)는 입문이고, 지위를 바꿈으로써 마지막에 사문과(沙門果)에 이르면 공공시(功功時)가 된다.15) 이전의 본인(本因)과 본과(本果)를 제외하면 100위가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백척(百尺)이라 한다.
萬松云, “湖南長沙招賢大師, 諱景岑, 馬祖之孫, 南泉之子, 趙州之兄. 當時, 倔强如仰山者, 猶下之, 而呼以爲岑大蟲.”
會和尙者, 有東寺如會者, 法嗣馬祖, 謂折床如會. 此則南泉下, 潛符密證之徒也. 未見南泉者, 迷時也. 見後者, 悟時也.
然, 非如牛頭未見四祖前事, 已見四祖後事也. 良久, 又云, 不可更別有也者, 見前也伊麽, 見後也伊麽也, 則迷悟幷沉也.
百尺竿頭至未爲眞者, 坐井裏觀天, 蒲團以爲天也. 百尺云云者, 方信蒲團, 不是天也. 朗州山云云者, 差別萬法也.
四海五湖云云者, 更高一著耶, 爲人須爲徹也. 華嚴經云, “彌勒謂善財曰, ‘此長者子, 經歷一百一十城, 來至我所.’” 言十信,
各有因有果, 合成二十, 住行向地例此. 又五位, 各有因有果, 摠爲一百一十也. 共功時爲入門, 從轉位後至沙門果, 功功時也.
前除本因本果, 一百位也. 則此所謂百尺也.
9) 남전(南泉)과 학인의 문답에서 비롯한 화두이다. “‘우두가 4조를 아직 만나지 않았을 때 어째서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쳤습니까?’ ‘그는 걸음마다 부처님의 계단을 밟고 다녔기 때문이다.’ ‘만나서 가르침을
받은 다음에는 어째서 꽃을 물어다 바치지 않았습니까?’ ‘설사 물어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제시한
한가닥의 길에는 아직 조금 미치지 못한다.’”(『南泉普願語要』 古尊宿語錄12 卍118 p.291a13. ‘牛頭,
未見四祖時, 爲甚麽, 百鳥銜花獻?’ 師云, ‘爲渠步步踏佛階梯.’ 云, ‘見後, 爲甚麽, 不銜花獻?’ 師云, ‘直饒不來,
猶較王老師一線道.’) 수행이 아직 완전해지지 않은 시기는 ‘4조를 만나지 않았을 때’를 가리키고, ‘4조를
만나 가르침을 받은 다음’은 본분을 깨달은 지위를 나타낸다. 새들도 그 수행을 존경하여 꽃을 바치는
단계는 깨달음의 자취가 남아 있다는 뜻이며, 그 자취마저 사라진 경지가 되어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칠
여지가 없어야 된다는 뜻이다. 간화선에서는 이 문답을 화두로 제기하면서 꽃을 바쳤거나 바치지 않았거나
어느 한편도 더 나은 것으로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의심을 촉발하는 관문으로 활용한다.
10) 우물 안에서 본 크기가 하늘 전체라고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의 비유에서 나온 말. 자신의 견해가
장애가 되어 근본을 알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물 안의 개구리와 바다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우물이라는 좁은 공간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莊子』「秋水」.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11) 좌선하는 것을 전부로 착각하는 잘못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포단에 앉아 좌선을 통하여 도달하는 절정을
백척간두로 해설한 것이다. 이 경지에 오르더라도 그것을 완성으로 생각한다면 우물에 갇힌 개구리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12) 80권본『華嚴經』권35 大10 p.824a25에 나오는 이야기. ‘백척’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하에서 도입한
교설이 타당한지는 미지수이다. 여기에 나오는 교설에 대한 번잡한 설명은 염송의 대의와 관련이 희박하므로
생략한다.
13) 보살의 52계위 중 최초의 10위에서 닦아야하는 열가지 마음.
14) 보살의 계위는 41위·51위·52위·57위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菩薩瓔珞本業經』에서 제기한 52위설이
일반적이다. 곧 10신위(信位:초위~10위)·10주위(住位:11위~20위)·10행위(行位:21위~30위)·10회향위
(廻向位:31위~40위)·10지위(地位:41위~50위)·등각(等覺:51위)·묘각(妙覺:52위)을말한다.
15) 조동종(曹洞宗)의 동산양개(洞山良价)가 설정한 공훈오위(功勳五位) 중 네 번째가 ‘共功時’이고 마지막
단계가 ‘功功時’이다.
장산법천(蔣山法泉)의 송
슬프다, 회로16)여!
종일토록 구차하게도 거친 풀 속을 그리워하는구나.
안타깝다, 장사여!
진보에만 욕심을 부려 집으로 돌아올 줄 모르네.
백 척의 장대 끝에 누구인들 도달하지 못하리오?
안개 걷히고 구름 흩어지면 해는 밝게 비추리라.
남으로 북으로 돌아다니던 나그네가 되돌아오니,
예주와 낭주의 산과 물이 참으로 좋구나.
蔣山泉頌, “悲哉會老! 終日區區戀荒草. 嗟爾長沙! 秪貪進步忘還家. 百尺竿頭誰不到? 霧卷雲收日杲杲. 南北遊人歸去來,
澧朗州中山水好.”
16) 會老.여회(如會)에 대한 존칭.
[설화]
슬프다 ~ 돌아올 줄 모르네:두 선사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는 뜻을 읊었다.
‘백 척의 장대 끝에 ~ 참으로 좋구나:두 선사 모두에게 잘못이 없다는 뜻을 읊었다.
蔣山云云, 忘還家者, 二俱有過也. 百尺云云已下, 二俱無過也.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송
옥인17)을 꿈에서 깨우는 외마디 닭 울음,
살림살이 눈 돌려보니 색색이 고루 있네.18)
봄 알리는 바람과 우레는 재촉하며 동면을 깨우려 하고,
말 없는 복숭아 나무와 자두나무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기네.19)
때가 되면 부지런히 밭을 가는 법이거늘,
봄 밭두둑의 진흙에 발목 빠지는 것 누가 두려워하리오!
天童覺頌, “玉人夢破一聲雞, 轉眄生涯色色齊. 有信風雷催出蟄, 無言桃李自成蹊. 及時節力耕犁, 誰怕春疇沒脛泥!”
17) 玉人.용모가 옥같이 아름다운 사람.
18) 시방세계 전체가 자신의 온몸이라한 장사의 소식과 같다.
19)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 부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아래에 사람들의 잦은 발길로 길이
난다는 뜻. 덕이 있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덕이 세상 사람들을 감화시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따른다는
뜻을 나타내는 비유이다. “이광(李廣)이 죽었을 때, 천하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모두 극진히
슬퍼했다. 그의 충직하고 진실한 마음이 참으로 사대부들의 신망을 얻었기 때문이다. 속담에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말이 없어도 그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라고 하였는데, 이말은 비록 작지만 큰뜻을 깨우치게
한다고 할 것이다.”(『史記』「李將軍列傳」. 及死之日, 天下知與不知, 皆爲盡哀. 彼其忠實心, 誠信於士大夫也.
諺曰, ‘桃李不言下自成蹊.’此言雖小, 可以諭大也.)
[설화]
앞의 두 구절은 여회화상의 백척간두를 밝혔고, 그 아래 구절들은 장사가 제시한 진일보의 경계를 밝혔다.
天童:二句, 明會和尙百尺竿頭也. 下明長沙進步處.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상당
영은사(靈隱寺)에 이르러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논쟁20)에 대해 말하자면, 당사자 개개의 역량이 화살촉이 허공에서 맞닿은 것21)과 같이 되어 반드시 특출 난 사람들이라야 한다. 만약 분별하는 기관[意根]이 여전히 막혀 있다면22) 마땅히 앞으로 나아갈지 말지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장사는 ‘백척간두에 앉아 ~ 온몸이 되리라’고 했던 것이다.” 이어서 “어떤 학인이 남전에게 장사의 게송을 제기하고 ‘백척간두에서 어떻게 걸음을 내디딥니까?’라고 묻자 남전은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대답했고, 와관(瓦官)〈어떤 본에는 염관(鹽官)으로 되어 있다〉에게 묻자 와관은 ‘백척간두에서 나아가 무엇 하겠는가?’23)라고 대답했는데, 그 학인이 그 말을 수긍하지 않자 와관이 그를 때렸다”는 문답을 제기하고 설두가 이에 대하여 말했다. “대중들이여, 옛사람들이 기틀에 응하여 드러내는 작용[機變]은 한순간의 특수성에서 나오는 방편이기에 그 행간에는 별도로 헤아릴 거리가 남아 있으니, 그것은 아직 말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가령 내가 오늘 영은사에 다시 들어온 것은 백척간두와 같았지만, 남전의 말에 의지하여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며, 기쁘게도 대중과 이렇게 만났으니 시방세계를 한순간에 빠짐없이 둘러본 것과 같다.”
雪竇顯, 到靈隱, 上堂云, “論戰也, 箇箇力在箭鋒相柱, 又須是箇特達漢, 始得. 若意根尙滯, 直須向前決擇. 所以, 長沙道,
‘百尺竿頭至是全身.’ 僧擧問南泉, ‘百尺竿頭如何進步?’ 泉云, ‘更進一步.’ 僧復問瓦官〈一本鹽官〉, 官云, ‘百尺竿頭用進,
作什麽?’ 僧不肯, 官便打.” 師云, “大衆, 古人機變, 出在一時, 其閒別有商量, 亦未言著. 且如雪竇, 今日再入靈隱,
也似百尺竿頭, 依南泉之言, 得進一步. 喜與大衆相見, 則十方世界, 一時周匝.”
20) 논전(論戰).불법의진실을두고벌이는논쟁.법전(法戰)과상통한다.
21) 전봉상주(箭鋒相柱). ‘柱’는 ‘拄’ 또는 ‘値’와 통한다. 하나의 화살촉과 또 다른 화 살촉이 허공에서 맞닿는 것.
실력이 대등하여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적수들이 탁월한 기량을 드러내는 것 또는 서로의 의중이 부합하는
것을 말한다. “화살촉이 허공에서 맞닿는 것이니, 날카로운 기봉(機鋒)으로 서로 대적한다는 뜻이다;
삼산등래(三山燈來)의 송. ‘두 진영에서 기봉을 교환하니 누구도 대적할 상대가 없고, 활을 당기고 화살을
메겼으니 어찌 보통 일이겠는가! 화살촉이 딱 들어맞게 허공에서 마주치는 순간, 갑옷[征衣]을 벗고 한바탕
웃노라.’”(『五家宗旨纂要』 권하 卍114 p.561b4. 箭鋒相拄, 機鋒相敵也;三山來頌云, ‘兩陣交鋒莫可當,
彎弓架矢豈尋常!箭頭的的相逢處,脫却征衣笑一場.)
22) 의근(意根)은 분별을 본질로 하는 인식기관이다. 이것이 막혀 있다는 것은 무분별과 무차별의 백척간두만
고수하여 머물고 진일보를 외면하는 입장을 나타낸다.
23) 남전과 와관의 대립되는 말을 저 ‘화살촉’처럼 맞붙여 놓아 우열이 없는 경계로 유도한 것은 설두의 의도적
연출이다. 백척간두와 진일보 중 어느 한편을 선택할 수도 없고 물리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야 이 문답이
화두로서 바르게 드러난다.
[설화]
논쟁에 대해 말하자면~:‘백척간두’라 한 말[여회]과 ‘낭주는 산이 좋고 예주는 물이 좋다’라는 말[장사]은 특출 난 사람들의 본분에서 나온 것이니 허공에서 화살촉이 맞닿은 것과 같다. 여회화상의 의근은 여전히 막혀 있으니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라[남전]:장사의 진일보를 거듭 밝힌 말.
백척간두에서 나아가 무엇 하겠는가:백척간두의 뜻을 밝혔다.
때렸다:질문한 학인은 진보만 좋은 것으로 알았을 뿐이니, 그 또한 의근이 여전히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24)
설두가 ‘오늘 영은사에 다시 ~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라고 한 말:장사의 진일보가 곧 남전의 진일보이기 때문에 이전에 영은사에 주석했다가 그 뒤 다시 영은사에 주석하는 것도 그와 같다.
기쁘게도 대중과 이렇게 만났으니 ~ 둘러본 것과 같다:그 현장에 있는 본분의 소식을 밝힌 것이다.
雪竇:論戰云云者, 百尺竿頭, 朗州山澧州水, 在特達漢分上, 則箭鋒相拄. 如會和尙, 意根尙滯, 則未可也. 更進一步者,
重明長沙進步也. 用進作什麽者, 明百尺竿頭也. 便打者, 這僧只知進步, 亦意根尙滯故也. 雪竇今日云云者, 長沙進一步,
卽是南泉進一步故, 前住靈隱, 後住靈隱如之也. 喜與大衆云云者, 明其中消息也.
24) 생각으로는 진일보가 더 나은 견해라 여겼지만, 백척간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는 뜻.
승천전종(承天傳宗)의 상당
장사가 ‘백척간두에 ~ 내딛고 나아가야 한다’라고 한 말을 제기한 다음, 주장자를 집어 들고 말했다. “백척간두는 바로 이 안(주장자)에 있다! 진일보해도 여기서 뛰쳐나가지 못하고, 진일보하지 않아도 뛰쳐나가지 못하고, 돌부처의 주장자를 꺾어버린다고 해도 또한 뛰쳐나가지 못할 것이다.25) 어째서 이러한가? 우리가 이해하는 부분을 돌부처는 모두 이해하지만, 돌부처가 이해하는 부분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구절에 ‘시방세계 전체가 자신의 온몸이 되리라’고 한 말로써도 또한 뛰쳐나가지 못한다. 사방팔방으로 자유롭게 통하는 안목이 없다면 장사가 파놓은 함정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承天宗, 上堂, 擧長沙道, ‘百尺竿頭, 至須進步.’ 師拈柱杖云, “百尺竿頭在者裏! 進也跳不出, 不進也跳不出,
忽若拗折石佛柱杖子, 也跳不出. 爲什麽如此? 諸人會處, 石佛總會;石佛會處, 諸人不會. 末後一句道, ‘十方世界是全身.’
更跳不出. 若無七穿八穴底眼, 未免墮在長沙窠裏.”
25) 진일보 자체를 하나의 화두로 설정한 것이다. 진일보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밖의 어떤 시도로도 이 주장자의
함정에서 뛰쳐 나갈 수 없다.
[설화]
진일보해도 여기서 뛰쳐나가지 못한다:진일보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한 자루의 주장자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돌부처의 주장자를 꺾어버리면 견해가 고매하다 할 만하지만, 이 또한 이 소식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이해하는 부분을 ~ 뛰쳐나가지 못한다:돌부처가 이해하는 부분은 어떤 것으로도 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시방세계 전체가 자신의 온몸이 되리라’는 구절로도 뛰쳐나가지 못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반드시 사방팔방으로 자유롭게 통하는 안목이 있어야 비로소 이러한 경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장사가 파놓은 함정:언어의 함정26)을 가리킨다.
承天:進也跳不出者, 進不進, 不離一條柱杖也. 拗折石佛柱杖, 則見解可謂高邁, 亦不離這箇消息也. 諸人會處云云者,
石佛會處, 直得無限故, 十方世界是全身, 更跳不出也. 雖然, 須有七穿八穴地眼, 方能如是也. 長沙窠裏者, 葛藤窠裏也.
26) 갈등과리(葛藤窠裏). 선사들의 언어는 앞에서 긍정했다가 뒤에서 부정하기도 하고, 빼앗았다가 다시
돌려주기도 하며, 진일보를 예찬하다가 돌연 백척간두의 경계를 지키라고도 한다. 이처럼 겉으로 한 말의
이면에 그것을 잘라내는 다른 언어가 잠복하여 복잡하게 꼬인 칡넝쿨과 같으므로 ‘갈등’이라 한다. 이러한
갈등의 언어는 그 본질을 모른다면 함정과 소굴로 바뀔 요소가 많은 까닭에 갈등과리라 한다.
승천전종의 거
다시 남전과 염관의 말을 제기하고 말했다. “만약 남전 문하에서 공부했다면 틀림없이 한 걸음 나아갈 것이며, 염관 문하에서 공부했다면 반드시 한 걸음 물러날 것이다.27) 밝은 눈을 가진 자라면 그 뜻을 가려내 보라!”
又連擧南泉鹽官語, 師云, “若叅南泉, 須進一步;若叅鹽官, 須退一步. 明眼底, 辨看!”
27) 위에서 말한 ‘언어의함정’에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남전과 염관은 진일보라 말하면서 사실은 퇴보하고,
퇴일보하는 듯하지만 진보하는 갈등의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설화〉의해설도이뜻이다.
[설화]
남전이 말한 진일보 이외에 결코 퇴보할 수 없고, 염관이 말한 퇴일보 이외에 결코 진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又擧:南泉, 進一步外, 更不退步;鹽官, 退一步外, 更不進步.
승천회의 상당
‘백척간두에서 ~ 자신의 온몸이 되리라’라는 구절을 제기하고 말했다.
“대중이여, 옛사람의 이와 같은 이야기는 대단히 기특했다. 그러나 점검해보면 물을 건널 줄만 알았지 물이 흐르는 방향은 알아채지 못한 것을 어쩌랴! 무슨 까닭인가? 가령 시방세계 전체가 온몸이라면 백척간두인들 그중 어디에 세워두겠는가? 이 문제를 알아맞힐 사람 있는가? 만약 알아맞힌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 편안히 앉아 쉬겠지만, 만약 아직 모르겠다면 해결할 때까지 짊어지고 다녀라.”
承天懷, 上堂, 擧百尺竿頭, 至是全身. 師云, “大衆, 古人與麽語話, 不妨奇特. 然, 奈檢點將來, 只知過渡, 不覺水流! 何故?
只如十方世界, 是个全身, 百尺竿頭, 向什麽處安着? 還有人於者裏見得麽? 若也見得, 便能放下, 歸家穩坐;若也未見,
一任擔取去.”
[설화]
물을 건널 줄만 알았지 ~ 어쩌랴:진보할 줄만 알았지 퇴보는 알아채지 못했다는 뜻이다. 장사가 그렇게 한 말은 다만 병든 몸을 다른 곳으로 옮겼을 뿐, 법을 어느 곳으로나 자유롭게 옮기지 못한 격이다. 곧 백척간두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承天:只知過渡云云者, 只知進步, 不覺退步也. 長沙伊麽道, 但轉其病, 不轉其法, 則未嘗離百尺竿頭也.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염
“장사의 견해를 알고자 하는가? 다시 한 걸음 나아가라!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야 이렇게 한 걸음을 나아갑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대가 간절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갈등28) 하나를 주겠다’라고 대답하리라.”
雲門杲拈, “要見長沙? 更進一步! 若有人問, ‘如何進這一步?’ ‘我待款款地, 與你葛藤.’”
28) 주석26) 참조. 장사의 ‘진일보’를 그대로 수긍하는 듯하지만 이 또한 이면의 갈등이 있는 말이다.
[설화]
장사가 한 말 그대로 철저하게 밝힌 것이니, 앞에서 제시한 설두의 뜻과 마찬가지이다.
雲門:明長沙道底徹底, 前雪竇義一般.
무용정전(無用淨全)의 상당
이 공안과 더불어 대혜가 ‘장사의 견해를 알고자 하는가? 다시 한 걸음 나아가라!’고 한 말을 제기한 뒤 말했다.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사의 견해를 알고자 하는가? 다시 한 걸음 물러서라!’ 결국 어떻게 해야 할까? 뼈를 씻어내고 장을 바꾸어 거듭 정돈하여 온몸이 눈[眼]이 된 다음에 다시 참구하라!”29)
無用全, 上堂, 擧此話, 連擧大慧道, ‘要見長沙麽? 更進一步!’ 師云, “保寧則不然. 要見長沙麽? 更退一步! 畢竟如何?
洗骨換腸重整頓, 通身是眼更須叅!”
29) 위에서 대혜가 장사의 진일보를 충실하게 고수하는 듯이 말했지만, 무용은 반대로 ‘퇴일보하라’고 제시했다.
진일보나 퇴일보나 모두 갈등이기 때문에 온몸이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이 될 정도로 참구한 뒤에라야 그들
말에 속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설화]
백척간두의 뜻을 밝혔다. 장사는 비록 진일보하라고 말했지만, 백척간두를 벗어나지 않고 다시 진일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無用:明百尺竿頭. 長沙雖道進步, 亦未嘗離百尺竿頭, 更進一步, 始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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