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칙 말산남녀 末山男女
[본칙]
말산(末山)의 비구니 요연(了然)1)에게 관계지한(灌溪志閑)화상이 물었다. “말산의 진실한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정상(頂上)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말산의 주인은 어떤 모습입니까?” “남자와 여자로 차별되는 모습이 아닙니다.” 지한이 한 소리 내지르면서 말했다. “왜 변하지 않습니까?” “신(神)도 아니고 귀(鬼)도 아니니 무엇으로 변하겠습니까?” 지한이 이 말에 굴복하여 그 밑에서 3년 동안 원두(園頭)2) 소임을 맡아 보았다.
末山尼了然, 因灌溪閑和尙問, “如何是末山?” 然云, “不露頂.” 閑云, “如何是末山主?” 然云, “非男女相.” 閑乃喝云,
“何不變去?” 然云, “不是神, 不是鬼, 變个什麽?” 閑於是伏膺, 作園頭三載.
1) 생몰연대 미상. 홍주(洪州) 출신으로 고안대우(高安大愚)의 제자이다. 균주(筠州)말산에서 주석했다.
2) 선원의 채원(菜園)을 경작하여 대중에게 채소를 공양하는 소임.
[설화]
‘말산’은 경계이니 주인 중의 주인의 지위이며, ‘말산의 주인’은 경계 속의 사람이니 주인 중의 주인이다.3)
정상(頂上)을 드러내지 않습니다:아무도 정상이 드러난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니, 구름이 빽빽하게 모여 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로 차별되는 모습이 아닙니다:편위(偏位)나 정위(正位)4)와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한 소리 내지르면서 ~ 왜 변하지 않습니까:관계가 임제의 제자이기는 하나 터득한 경지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신(神)도 아니고 ~ 무엇으로 변하겠습니까:본래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천석(泉石)은 “변하지 않음이여! 편위와 정위를 멀리 넘어섰구나. 한 소리 내지름이여! 강함과 부드러움을 번갈아 써먹는구나. 괴겁(壞劫)의 불5)이 털끝까지 모두 태워도 청산은 옛날 그대로 흰 구름 끄트머리에 솟아 있으리라6)”고 해설하였다.
지한이 이 말에 ~ 소임을 맡아 보았다:이 말에서 또한 얻은 것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미 임제의 자손으로서 대용(大用)을 얻었다면 곧 궁극적인 구절7)을 알아차려 더 이상 할 일이 남아 있지 않거늘 여기에 이르러 굴복한 것은 어째서일까? 이 까닭은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관계는 처음에 임제에게 불법의 근본적인 뜻을 물었다가 꼼짝없이 붙들려서는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라고 말했다.8) 이것은 단지 임제의 체(體)를 얻은 계기일 뿐이며, 이후에 반드시 그 용(用)을 얻게 되는 공안이 하나 있으므로 임제의 뜻을 모두 얻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가령 백장이 마조가 불자를 선상에 걸어 두거나 불자를 꼿꼿이 세운 것에서 근본적인 체와 용을 깨닫지 못하고9) 단지 파정(把定)과 방행(放行)10)을 알아차리는 데 불과했던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관계가 말산에 이르러 “제대로 대답을 하면 이곳에 머물 것입니다”라 하고, 다시 할을 하면서 “왜 변하지 않습니까?”라 말한 것은 임제의 용(用)을 얻은 것을 가지고 스스로 궁극적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치 등불 그림자 안에서 걸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말산에게 “왜 일산을 쓰지 않습니까?”라는 말을 듣고 대답하지 못하여 마침내 굴복했고, 원두 소임 3년을 살면서 말산의 뜻을 모두 얻고 비로소 임제의 수단이 근본적인 체와 용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마치 흥화(興化)11)가 삼성(三聖)의 회하에서 두 번의 할(喝)을 써먹고 또 대각(大覺)의 회하에 이르러 그에 의해 가사가 벗겨진 채 매서운 일돈(一頓)의 방12)을 얻어맞고서야 임제의 종지를 깨닫고 적손(嫡孫)이 되었던 것과 같다.13) 그러므로 관계는 일가를 이룬 다음에 대중에게 “말산의 어머니에게서 한 국자를 얻었고, 임제 아버지로부터 한 국자를 얻었다”14)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 어찌 말산으로부터 얻은 한 국자가 임제에게 꼼짝없이 붙들려 깨달은 것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굴복했다[伏膺]’는 말은 머리를 가슴[膺]까지 굽혔다[伏]는 뜻일까? 아니다. 복(伏)은 복(服)과 같은 말로 복종[服]하며 그 뜻을 받아들였음[膺]을 나타낸다.
末山者, 境, 是主中主位也;末山主者, 境中人, 是主中主也. 不露頂者, 無見頂露, 雲攢急也. 非男女相者, 偏正不干也.
乃喝云云者, 灌溪是臨濟之子, 所得不同故也. 不是神云云者, 本無轉變也. 泉石云, “不變兮! 逈超偏正. 喝咄兮! 迭用剛柔.
劫火洞然毫末盡, 靑山依舊白雲邊.” 於是伏膺云云者, 於此, 又有所得也. 旣是臨濟得大用, 則會得末後句, 更無後事,
到此伏膺者, 何也? 此不可不辨. 灌溪初問臨濟佛法大意, 被他擒住, 却道, “領領.” 是只得其體. 此後必有得其用地一公案,
非盡得臨濟意. 如百丈, 於馬祖掛拂竪拂處, 未悟得大體大用, 只知得把定放行也. 故到末山處云, “道得卽住.” 又喝云,
“何不變去?” 是得臨濟之用, 自以爲究竟. 然如在燈影裏行相似故, 被末山道, “何不盖却?” 不能對, 乃終伏膺也, 作園頭三年,
盡得末山意, 方知臨濟手段, 是大體大用. 如興化在三聖處, 用得兩喝, 又到大覺處, 被他脫下衲衣, 痛打一頓, 悟得臨濟宗旨,
爲嫡孫也. 故住後示衆云, “末山孃孃處, 得一杓;臨濟爺爺處, 得一杓.” 末山處得一杓, 豈非被臨濟擒住處悟得, 更是分明也!
伏膺者, 首伏於膺耶? 伏, 服同, 服而膺之也.
3) 조동종(曹洞宗)의 사빈주(四賓主) 중에서 ‘주인 중의 주인[主中主]’을 가지고 본칙을설명한것이다.
4) 조동종(曹洞宗)의 편정오위설(偏正五位說)에 따르는 용어. 정위는 본체·무차별·평등·정(靜)·이(理) 등의 음적인
양상을, 편위는 작용·차별·동(動)·색(色)·사(事)등의 생멸변화하는 양적인 양상을 각각 가리킨다.
5) 겁화(劫火). kalpāni, kappaggi. 우주의 생멸과정인 사겁(성겁·주겁·괴겁·공겁) 중 괴겁의 마지막에 일어나는
거대한 불. 세계를 모조리 태우고 파괴시킨다고한다.
6) ‘劫火洞然毫末盡, 靑山依舊白雲邊.’ 차별과 무차별 그 어느 편에도 얽매이지 않고 발휘되는 본분의 자유자재한
작용을 말한다. 여러 선적에 나오는 상용구인데, 대개 마지막 글자 ‘邊’이 ‘中’으로 되어 있다.『圜悟語錄』권2
大47 p.718c23, 『續傳燈錄』권14「妙覺願傳」大51 p.562b17 등참조
7) 말후구(末後句).본서1則 주석24)·26)참조.
8) “관계지한이 임제를 처음으로 참문하러 방장실 문에 들어서자마자 임제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 비틀어 쥐었다.
관계가 바로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라고 말하자 밀치며 놓아주었다.”(『正法眼藏』 권1상 卍118 p.12b4.
灌溪初參臨濟, 纔入門, 濟驀胸擒住.灌溪便云,‘領領.’濟便托開.)
9) 대체대용(大體大用). 그대로의 작용[卽]과 떠난 작용[離]에 모두 의문을 붙여 해결할 단서를 빼앗는 마조의
기틀이다. 그것에 이어진 할(喝)은 눈과 귀를 멀게 만들었는데, 이렇게 어떤 분별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오히려 화두의 본질이 실현된 경계였다는 것을 백장은 그 뒤에 알게 된다. “백장이 드디어 마조를 다시 찾아가
법을 물은 인연에 대해 말했다. ‘마조께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불자를 꼿꼿이 세우기에 내가 「이것 그대로의
작용입니까? 이것을 떠난 작용입니까?」라고 물었다. 마조께서 불자를 선상 모서리에 걸쳐 놓고 잠자코
있다가 내게 「그대는 다음에 입술을 쓸데없이 나불거리며 어떻게 남들을 가르치겠는가?」라고 물었다. 내가
그 불자를 가져다 꼿꼿이 세우자 마조께서「이것 그대로의 작용인가? 이것을 떠난 작용인가?」라고 하였다.
내가 불자를 가져다가 선상의 모서리에 걸어 놓자 마조께서 한번 크게 할(喝)을 하여 나는 당시에 삼일동안
귀가 먹었다.’”(『碧巖錄』 11則 「評唱」 大48 p.151c2. 丈遂擧再參馬祖因緣, ‘祖見我來, 便竪起拂子, 我問云,
「卽此用? 離此用?」 祖遂掛拂子於禪床角, 良久, 祖却問我 「汝已後鼓兩片皮, 如何爲人?」 我取拂子竪起,
祖云,「卽此用? 離此用?」 我將拂子掛禪床角, 祖振威一喝, 我當時直得三日耳聾.’)본서181則 참조.
10) 파정과방행.본서1則 주석37)참조.
11) 흥화존장(興化存獎 830~888). 산동성 출신, 속성은 공(孔)씨. 임제의 제자. 임제가 입적한 후에는
삼성혜연(三聖慧然) 회하에서 수좌로 있었다. 위부(魏府)의 흥화사(興化寺)에서임제종풍을크게선양했다.
12) 일돈방(一頓棒). 일돈은 죄인을 다스리는 태형(笞刑)을 세는 단위로 20방이 1돈이다. 선종에서는 글자 뜻
그대로 20대를 때렸다는 뜻이 아니라 시의적절하게 제대로 때리거나 맞았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13) 삼성과 대각은 모두 임제의 제자로서 흥화의 사형이 된다. 이 부분의 서술 내용은 전해오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할을 두 번 내지른 것도 대각에게 한 것이고 가사를 벗고 맞은 것도 대각에게 맞은 것이다.
“흥화존장이 원주로 있을 때 어느 날 대각선사가 물었다. ‘그대가「남방을 한번 돌아다니고 왔는데, 주장자로
여기저기 파 뒤집어 보았으나 불법을 이해한 사람을 한 명도 찾아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어왔다. 그대는 무슨 도리에 의지해 이런 말을 하는가?’ 흥화가 할을 내지르자 대각은 바로 때렸다.
흥화가 다시 할을 내지르자 대각도 다시 때렸다. 다음 날 흥화가 불당을 지나는 것을 보고서 대각이 불렀다.
‘원주! 나는 지금 그대가 어제 내지른 할의 의미를 모르겠는데, 나에게 말해 주게.’ ‘제가 평생토록 삼성에게
배운 것이 화상에 의해 모두 꺾여버렸습니다. 제게 안락한 법문을 내려주십시오.’ ‘이 눈먼 나귀야! 여기 와서
큰 실수를 했으니 가사를 벗고 뼈저리게 일돈방을 맞아야겠구나.’ 흥화는 이 말에 종지를 깨쳤다.”
(『景德傳燈錄』권12 「魏府大覺傳」大51 p.295a15. 興化存獎禪師爲院宰時, 師一日問曰,‘我常聞汝道,
「向南行一迴,拄杖頭,未曾撥著箇會佛法底人.」汝憑什麽道理, 有此語?’ 興化乃喝, 師便打. 興化又喝, 師又打.
來日, 興化從法堂過, 師召曰, ‘院主! 我直下疑汝昨日行底喝, 與我說來.’ 興化曰, ‘存獎平生, 於三聖處學得底,
盡被和尚折倒了也. 願與存獎箇安樂法門.’ 師曰, ‘遮瞎驢! 來遮裏納敗缺, 卸却衲帔, 待痛決一頓.’ 興化卽於語下,
領旨.)
14 『宏智廣錄』권3 大48 p.32b5,『列祖提綱錄』권7 卍112 p.265b2 참조.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송
남녀로 차별된 모습이 아니니,
있다거나 없다는 헤아림을 벗어났다.
온갖 기미 나기 전의 경계를 뚫고서,
삼계(三界)를 넘어섰구나.
막히지만 통하고,15)
간결하지만 딱 들어맞는다.
소나무가 달을 머금으니 밤 풍경이 밝고,
비 내린 개울에는 봄물이 넘실거리네.
天童覺頌, “非男女之相, 出有無之量. 透萬機之前, 超三界之上. 窮而通, 簡而當. 松含月兮夜寒, 溪帶雨而春漲.”
15) 헤아릴 수도 없고 어떤 기미도 없이 막힌 곳에 이르러야 비로소 통한다는 뜻. 백척간두(百尺竿頭) 또는
은산철벽(銀山鐵壁)의 소식과 같다.
[설화]
‘막히지만 통한다’라고 한 앞뒤의 말은 편위와 정위가 본래의 지위를 떠
난 적이 없다는 뜻이다.
天童云云, 窮而通云云者, 偏正不曾離本位.
진정극문(眞淨克文)의 송
말산이 구름 위로 솟은 정상을 드러내지 않으나,
예나 지금이나 우뚝 솟은 모습은 눈앞에 있도다.
또한 본래 남녀로 차별되는 상이 없다고 하니,
그대 아니었다면 불 속의 연꽃16) 가려내지 못했으리.
眞淨文頌, “未山不露凌雲頂, 今古岧嶢在目前. 又道本無男女相, 非君莫辨火中蓮.”
16) 화중연(火中蓮). 정상을 드러내지 않는 그대로 말산이 전하는 진실을 말한다. 본래 번뇌의 경계속에 피는
깨달음의 꽃이라는 뜻이다.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송
산이 정상을 드러내지 않으니,
형상은 있으되 또렷하지 않네.
눈앞에 드러내 놓고 있는
이것은 어떤 모양인가?
문 나서도 한 올의 실조차 보이지 않더니,
눈 안 가득 흰 구름과 푸른 산이로다.
心聞賁頌, “山不露頂, 形非有相. 覿面相呈, 是何模樣? 出門不見一絲毫, 滿目白雲與靑嶂.”
대홍보은(大洪報恩)의 거
"관계가 제방을 돌아다니던 시절에 말산의 비구니 요연의 회중에 가서 먼저 말했다. ‘진실과 부합하면 머물 것이요, 진실과 부합하지 않으면 선상(禪床)을 뒤엎을 것입니다.’ 요연이 법좌에 오르자 관계가 참문하러 올라갔다. 요연이 물었다. ‘오늘 어디서 떠났습니까?’ ‘길 어귀에서 떠났습니다.’ ‘왜 일산을 쓰지 않았습니까?’ 이에 관계가 대답하지 못하고 절을 하고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말산의 진실한 모습입니까?’ ‘정상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관계가 굴복하여 3년 동안 그의 회상에서 원두의 소임을 맡아 보았다”는 공안을 제기하고, 대홍이 요연의 앞말에 대하여 관계를 대신하여 “오래전부터 말산의 소문을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뒤의 말에 대해서는 “말산을 다 알아버렸습니다”라는 대어(代語)를 붙인 다음 말했다. “그가 여인네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다만 그렇게 말해 두고 다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야 했다. 만일 그가 전과 다름없이 다시 노파처럼 군다면 그 다음에 선상을 뒤엎었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제방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산에 원두의 소임이 꼭 필요했다’라고 말한다.”
大洪恩擧, “灌溪遊方日, 至未山尼了然會中, 先自云, ‘相當卽住;若不相當卽推倒禪床.’ 然陞座, 溪上參. 然問,
‘今日離何處?’ 溪云, ‘路口.’ 然云, ‘何不盖却?’ 溪無對, 乃禮拜復問, ‘如何是末山?’ 然云, ‘不露頂’ 至溪於是伏膺,
作園頭三年.” 師代前語云, “久響末山.” 代後語云, “識得末山了也. 念伊是女人家, 但且恁麽道, 更看伊如何. 若他依舊,
又作老婆相然後, 與推倒禪床, 未遲. 諸方或謂, 不然末山園頭甚要.”
[설화]
오래전부터 말산의 소문을 들었습니다:또한 그 다음에 ‘왜 일산을 쓰지 않았습니까’라고 하였으니, 이는 말로 상대를 이기려는 것이다.
말산을 다 알아버렸습니다:원래의 견해가 단지 이와 같았다는 뜻이다.
그가 여인네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 선상을 뒤엎었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만일 이렇게 했더라면 제방에서 ‘원두의 소임이 꼭 필요했다’라고 질책하는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지(遲)는 상성(上聲)이니 ‘지체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불이마(不伊麽)라는 표현과 같은 말로서, 선상을 뒤엎지 못한 것을 비판한 말이다.
大洪:久響末山者, 又有後語云, ‘何不盖却?’ 此言壓倒也. 識者, 若伊麽, 不待諸方園頭甚要之嘖. 遲, 上聲, 待也. 不然者,
如云不伊麽也, 嘖不能推倒禪床.
천동정각의 소참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신도 아니고 귀도 아니며, 부처도 아니요 중생도 아니로다. 단지 흰 구름이 무심한 줄만 알 뿐 누가 청산이 눈앞에 있는 줄 알랴? 어두운 밤에 광채가 나니 단사주(斷蛇珠)17)임을 알 수 있고, 물이 맑으니 창룡(蒼龍)의 뼈18)가 떨어져 있기 때문이로다. 대수롭지 않게 자줏빛 끈을 당겨 끊으니, 하늘과 인간세상 어디서도 거두지 못한다. 거두지 못하는 일은 원래부터 함정이 없느니라.”
天童覺, 小參, 擧此話云, “不是男, 不是女;不是神, 不是鬼;不是佛, 不是物. 只知白雲無心, 誰辨靑山在目?
夜明識取斷蛇珠, 潭寒退下蒼龍骨. 等閑掣斷紫絲條,19) 天上人間收不得. 收不得底事, 從來沒窠窟.”
17) 허리가 끊어졌던 뱀이 물어온 야광주(夜光珠).『從容錄』48則「頌 評唱」大48 p.258a4에『史記』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전한다. “수(隋)나라제후축원창(祝元暢)이 제(齊)나라로 가던 길에 허리가 끊겨 죽어가는
뱀한마리를 보고 물에 씻고 문지른 다음 신약(神藥)을 발라주고 떠났다. 그 뒤 어느 날 밤 뜰에 광채가 빛나는
것을 보고 도적이라 생각하고 칼을 뽑아들고 다가가서 보니, 뱀 한 마리가 구슬을 물어다가 땅에다 놓고갔다.
그는 뱀이 은혜를 갚으러 왔다고 알았다.”
18) 창룡은 곧 청룡을 말한다. 창룡은 선종의 신묘한 종지를 상징한다. 이런 창룡의 뼈이므로 선종의 골수 중에
골수라고 볼 수 있다.
19) ‘條’는‘絛’자의오식.
[설화]
단지 흰 구름이 ~ 눈앞에 있는 줄 알랴:단지 체(體)만 알았을 뿐 용(用)이 있음은 몰랐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두운 밤에 광채가 나니 ~ 창룡의 뼈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라 한 말은 그 용을 밝힌 것이다. 아래도 이와 같은 뜻이다.
天童:只知白雲至在目者, 只知是體, 不知有用也. 故夜明至龍骨者, 辨其用也. 下亦此意也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설20)
“예전에 관계가 말산에게 갔더니 말산이 물었다. ‘요즘 어디서 떠났습니까?’ ‘길 어귀에서 떠났습니다.’ ‘왜 일산을 쓰지 않았습니까?’ 이에 관계가 대답을 못하고 다음 날 ‘어떤 것이 말산의 경계입니까?’라는 물음부터 ‘무엇으로 변하겠습니까?’라고 반문당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와 같다면 어찌 몸소 궁극적 경지를 밟고서21) 만 길의 벼랑에 도달한 소식22)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궁극적인 한 구절을 궁구하다가 비로소 견고하게 닫힌 관문에 도달했으니, 길목23)을 틀어막고 서서 범부도 성인도 통과하지 못하게 하라’24)고 한 것이다. 옛사람도 그랬거늘 요즘 사람이라 해서 어찌 모자라겠는가! 다행히 금강왕의 보검25)이 있으니 장차 그 뜻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집어내어 줄 만하리라.”
佛果勤, 心要云, “昔灌溪往末山, 山問, ‘近離甚處?’ 溪云, ‘路口.’ 山云, ‘何不盖却?’ 溪無語. 次日致問, ‘如何是末山境?’
〈至〉‘變个什麽?’ 如此, 豈不是脚踏實地, 到壁立萬仞處? 所以道, ‘末後一句, 始到牢關, 把斷要津, 不通凡聖.’ 古人旣爾,
今人豈少欠耶! 幸有金剛王寶劒, 當須遇著知音, 可以拈出.”
20)『圜悟心要』권상종卍120 p.722a13~b1에나온다.
21) 각답실지(脚踏實地). 송나라 때 소강절(邵康節)이 사마광(司馬光)에 대하여 ‘실지를 밟아본 사람’(脚踏實地人)
이라고 평가한 말이 널리 알려졌고, 그 말이 선문(禪門)이나 주자학(朱子學)에서 상용하는 구절이 되었다.
22) 본서1則 주석21)참조.
23) 요진(要津). 통과의 요소가 되는 나루터.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요소로 관문과 같은
뜻이다.
24) “궁극적인 한 구절을 궁구하다가 처음으로 견고하게 닫힌 관문에 도달했으니, 길목을 틀어막고 서서 범부도
성인도 통하지 못하게 하라. 최상근기의 뜻을 알고자 하면, 조사나 부처에 집착하는 견해를 이마에 붙이고
내세우지 마라. 마치 신령한 거북이가 도상(圖相)을 몸에 새기고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잃는 원인을 취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景德傳燈錄』권16「樂普元安傳」大51 p.331b3. 末後一句, 始到牢關. 鎖斷要津, 不通凡聖.
欲知上流之士, 不將祖佛見解, 貼在額頭. 如靈龜負圖,自取喪身之本.)
25)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劒). 금강이인(金剛利刃)이라고도 한다. 임제사할(臨濟四喝)의 하나. 금강으로 만들어진
검이 모든 것을 자르고 부수듯이, 적확하게 한번 크게 내지르는 할이 일체의 분별을 용납하지 않고 없애버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어떤 때의 한 할은 금강왕의 보검과 같다.”(『臨濟語錄』大47 p.504a26. 有時一喝,
如金剛王寶劍.);“금강왕보검이란 한칼에 모든 정해(情解)를 끊어버리는 것이다.”(『人天眼目』권2 大48
p.311b21.金剛王寶劍者, 一刀揮斷,一切情解.)
[설화]
말산의 입장은 결코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을 밝힌 것이다.
佛果:明末山地, 更無轉變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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