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칙 향엄여인 香嚴如人1)
1) 나무 위의 소식[樹上]과 나무 아래의 소식[樹下]을 대치시켜 관문으로 제시한 공안.곤경에 처한 나무위의
상황과 아무일도 일어나기 이전인 나무아래의 상황을 두고‘다른가,같은가?’라는 식의 의문을 던진 것이다.
[본칙]
향엄이 대중에게 말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입으로만 나뭇가지를 물고 있을 뿐, 더위잡을 가지도 없고 밟고 디딜 나무도 없는데, 나무 아래서 어떤 사람이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었다고 하자. 대답하지 않으면 그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며, 대답한다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러한 순간에 당면한다면 어떻게 해야 옳을까?” 그때 호두상좌가 나와서 “나무에 올라가 매달려 있는 상황은 그만두고, 아직 올라가지 않았을 때는 어떤지 화상께서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묻자, 향엄은 껄껄대고 크게 웃었다.
香嚴, 示衆云, “如人上樹, 口㘅樹枝, 手不攀枝, 脚不踏樹, 樹下有人問西來意. 不對則違他所問, 若對則喪身失命. 當與麽時, 作麽生則是?” 時有虎頭上座, 出問, “上樹卽不問, 未上樹時, 請和尙道.” 師呵呵大笑.
[설화]
가령 어떤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 어떻게 해야 옳을까:말해도 착각이고 침묵해도 착각이다.2)
나무에 올라가 매달려 있는 상황은 그만두고 ~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말해도 되고 침묵해도 된다는 뜻일까? 아니다! ‘나무 아래’[樹下]라는 말은 나무에 올라간 뒤에 나무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무에 올라가지 않은 상황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염송을 붙이는 사람들은 ‘나무 아래’ 또는 ‘나무에 올라가지 않다’[未上樹]라고도 하지만, ‘나무에서 내려오다’[下樹]라고 하지는 않는다.
껄껄대고 크게 웃었다:호랑이 머리와 호랑이 꼬리를 한꺼번에 거두어들였다.3)
如人上樹口㘅樹枝云云者, 語也錯, 默也錯也. 上樹卽不問云云者, 語也得默也得耶? 非也! 樹下者, 非上樹然後下樹,
始初未上樹時也. 故拈頌家云, ‘樹下.’ 或云, ‘未上樹.’ 而不云‘下樹’也. 呵呵大笑者, 虎頭虎尾一時收也.
2) 말과 침묵의 두 길을 모두 차단하는 전형적인 배촉관(背觸關)이다. 본서 1331則 주석1) 참조.
3) 호두(虎頭)상좌의 법명이 ‘호랑이 머리’이므로 이것에 상응하여 해설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고
자유롭게 대상과 접하는 선사로서의 기량을 말한다. “호랑이 머리에 타고 호랑이 꼬리를 거둔다.”(騎虎頭,
收虎尾)라는 표현도 일반적으로쓰인다. ‘騎’는 據 또는踞와 통한다.
분양선소(汾陽善昭)의 송
향엄이 이 화두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준 이유는,
벗들을 이끌어 본래 진실에 통달케 하도록 함이었네.
하지만 분별하면서 도리어 겉말에서 찾아 헤매다가,
목숨을 잃은 자들이 티끌과 같이 무수히 많노라.
분양이 그대들에게 하늘로 통하는 길을 열어 주리니,
구름 흩어져 끝없이 펼쳐진 허공에 달빛 신선하구나.
汾陽昭頌, “香嚴㘅樹示多人, 要引同袍達本眞. 擬議却從言下覓, 喪身失命數如塵. 汾陽爲你開天路, 雲散長空月色新.”
[설화]
티끌과 같이 무수히 많노라:향엄이 말한 내용이다.
구름 흩어져 ~ 신선하구나:나무 위의 소식이 나무 아래 소식을 떠난 적이 없다. 아래 장산의 게송도 이 뜻이다.
汾陽云云, 數如塵者, 香嚴道地也. 雲散云云者, 樹上地未嘗離下樹地也. 下蔣山頌亦此意.
장산법천(蔣山法泉)의 송
껄껄대고 크게 웃으니 찌르고 들어갈 틈이 없도다.4)
나무에 올라간 것이 오르지 않은 것과 어떻게 다른가?
향엄 자신이 갖가지 기량을 한껏 펼친다 하더라도,
옆에서 지켜보면 눈썹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도다.5)
蔣山泉頌, “呵呵大笑沒針錐. 上樹何如未上時? 任使香嚴多伎倆, 傍觀不免爲攢眉.”
4) 나무 위에서 침묵과 언어가 모두 통하지 않는 것과 같이 향엄이 마지막에 보낸 웃음속으로도 분별의
수단이 파고들어 갈 여지가 없다.
5) 향엄자신이 분별의 기량을 펼치더라도 통하지 않는다는 뜻.
석문원이(石門元易)의 송
옛 성인의 자비심은 후인들을 이롭게 하니,
입으로 나뭇가지를 물고 온몸을 드러냈도다.6)
설령 가물가물 먼 길에 아무 소식 없더라도,
집안의 양친 돌아가셨다는 소식 있으리라.7)
石門易頌, “古聖悲心利後人, 口㘅枝上露全身. 直饒玄路無消息, 未免家中喪二親.”
6) 향엄의 이 화두는 본분의 소식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남김없이 전하고 있다는 말.
7) ‘양친’이란 향엄의 화두에 들어 있는 언어와 침묵을 말한다. 언어의 길도 침묵의 길도 모두 막히면서 이
화두가 가물가물 멀어져 결국 어떤 소식도 들리지 않게 되는 바로 그때, 침묵과 언어라는 관문의 빗장이
풀린다는 뜻이다. 화두를 공부하다가 은산철벽(銀山鐵壁) 또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도달한 경계를
나타낸다.
보령인용(保寧仁勇)의 송
다양한 방편을 자세히 세우는 노고추8)시여!
어찌 가지에 쓸데없이 또 가지를 붙이셨는가?
뛰어난 말이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듯이 해야 하며,9)
흙덩이를 쫓는 개와 같이 하면 사자의 위용은 아니라네.10)
保寧勇頌, “曲設多方老古錐! 那堪枝上更生枝? 好如良馬窺鞭影, 逐塊且非師子兒.”
8) 老古錐. 종사(宗師)에 대한 존칭 중 하나로 여기서는 향엄을 가리킨다. 노와 고는 법력이 높은 노덕(老德)과
고덕(古德)이라는 뜻이며,‘추’는핵심을 찌르는 선기(禪機)가 송곳처럼 날카로운 것을 비유한다.
9) 언어의단서만보고도가리키는뜻을안다는말.선어록에널리활용된다. “온갖 악(惡)을 멀리 여의는 것이 마치
채찍의 모습만 보고도 달리는 뛰어난 말과 같다.”(『雜阿含經』권22 大2 p.154a11.能遠離諸惡, 如顧鞭良馬.)
10) 본서417則 주석37)참조.
설두법령(雪竇法寧)의 송11)
11) 이 게송은 나무 위에서 제기한 언어와 침묵의 긴장보다 나무에 오르기 이전에 아무일도 없이 고요한
경계를 수긍하는 관점에 따른다.
향엄은 나무 위에서 풍파를 일으켰으나,
나무 아래 궁원12)에서 웃음으로 응답했네.
나무에 오르면 더욱 향상을 밝힐 수 있겠지만,
어찌 고요한 곳에서 성취하는 경지와 비교하랴!13)
雪竇寧頌, “香嚴樹上皷風波, 樹下窮源笑答他. 上樹更能明向上, 爭如靜處薩婆訶!”
12) 窮源. 물의 흐름이 끊어진 곳. 곧 물의 발원지(發源地)를 말한다. 나무 위에서 발생한 침묵과 언어의 갈등은
풍파에, 나무 아래의 어떤 갈등도 없는 상황은 궁원에 비유했다.
13) 정처사바하(靜處薩婆訶). ‘사바하’는 svāhā의 음사어 중 하나로 길상(吉祥)·성취(成就) 등을 뜻하며, 주로
주문(呪文)의 마지막 구절에 쓰인다.『雲門廣錄』권상 大47 p.549b26,『大慧語錄』권1 大47 p.814c17 등에
나온다. 제2구의 ‘궁원’과 상응한다. 반면 제3구의‘향상’은 제1구의‘풍파’와 상응한다.
삽계일익(霅溪日益)의 송
좁은 길에서는 몸 놀리기 어려우니,
동쪽이나 서쪽이나 온통 산이로구나.14)
나그네가 이르지 못하는 그곳,
바람이 멎으니 떨어지는 꽃 한가롭다.
霅溪益頌, “狹路轉身難, 東西盡是山. 行人不到處, 風定落花閑.”
14) 말할 수도 없고 침묵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을 나타낸다.
열재거사의 송
그를 가엾게 여겨 나무 위의 소식을 물었건만,
나무 아래 소식 아무리 헤아려도 모자라구나.
저울추를 직접 밟아보면 무쇠와 같이 단단하고,
장안도 알고 보면 산하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15)
悅齋居士頌, “憐渠上樹問如何, 樹下商量不較多. 踏著秤槌硬似䥫, 長安元不隔山河.”
15) 저울추가 겉으로 보기에 작고 여리지만 아무리 밟아 보아도 찌그러지지 않는 무쇠이고, 장안이 번잡한
도시라 자연의 산하와 먼 거리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비유. 나무 위의 긴장과 나무
아래의 평온은 주어진 그대로 보이는 진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무 위도 나무 아래도 모두 주어진 그대로
통과할 수 없는 관문(關門)이자 효와( 訛)이기 때문이다.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염16)
16) 침묵과 언어가 모두 통하지 않는 나무 위의 곤경(困境)은 어려운 반면 나무 아래에서는 쉽다고 여기는
상식적 판단을 뒤집어 ‘나무 위는 쉽고 나무 아래는 어렵다’라고 한 것이 설두의 요소이다. 여기서
쉽다·어렵다는 틀이 또 하나의 관문이다. 하나의 관문(공안)에 대하여 이와 같이 또 하나의 관문을 설정하여
해설하는 방식을 이중공안(二重公案)이라 한다. 대부분의 염과 송에는 이중공안의 방식이 잠재되어 있다.
“나무 위에서 말하기는 쉽지만, 나무 아래서 말하기는 어렵다. 노승이 나무 위에 매달렸으니, 질문 하나를 던져보라.”
雪竇顯拈, “樹上道卽易, 樹下道則難. 老僧上樹也, 致將一問來.”
[설화]
나무 위의 소식이 나무 아래 소식과 같다는 대의이다.
雪竇大意, 樹上卽樹下也.
취암수지(翠巖守芝)의 염
“질문하는 자와 대답하는 자 모두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납승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翠巖芝拈, “問者對者, 不免喪身失命. 如今衲僧作麽生?”
[설화]
그렇다면 납승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나무 위에서 알아차리라는 뜻일까? 아니면, 나무 아래서 알아차리라는 뜻일까?
翠巖:如今衲僧作麽生者, 樹上會耶? 樹下會耶?
지해본일(智海本逸)의 상당
이 공안과 설두의 염을 더불어 제기하고 말했다. “설두노인은 평상시에 이전에도 앞으로도 비교할 상대가 없고 세상 전체에서 독보적인 인물이었으나, 자신도 모르게 향엄에게 나무 위로 쫓겨나게 되어 지금에 이르도록 다리로 바닥을 밟지 못하고 있다. 바른 안목이 있는 자라면 분간해 보라!”
智海逸, 上堂, 擧此話, 連擧雪竇拈, 師云, “雪竇老漢, 尋常, 光前絕後, 獨步寰中, 不覺被香嚴送放樹上, 直至于今, 脚不履地. 具眼者, 辨取!”
[설화]
호두상좌가 ‘아직 나무 위에 올라가지 않았을 때’라고 한 뜻을 긍정적으로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호두상좌야말로 이전에도 앞으로도 비교할 상대가 없고 세상 전체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라 할 만하다는 뜻이다.
智海:扶他虎頭上座未上樹時也. 然則虎頭可謂光前絶後, 獨步寰中.
천동정각(天童正覺)의 거
이 공안과 설두의 염을 더불어 제기하고 말했다. “호두상좌는 지독한 도적이었으니, 도의17)가 전혀 없는 손으로 아무 방비도 없는 스승의 집을 털었다.18) 설령 본색을 갖춘 작가19)일지라도 왕왕 손발을 둘 곳을 몰라 당황하지만, 설두는 특별한 근기였으니 그는 허물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 또한 몸만 숨기고 그림자는 드러내는 잘못을 저질렀을 뿐이다.20) 향엄이 걸어간 경지를 알겠는가? 3천 검객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로지 장주(莊周)만이 태평한 세상을 이룰 수 있었다네.21)”
天童覺, 擧此話, 連擧雪竇拈, 師云, “虎頭上座, 是个惡賊, 用無義手, 打不妨22)家. 直饒本色作家, 往往措手脚不辦,
雪竇是別機, 冝識休咎底漢. 到這裏, 亦只得藏身露影. 還會香嚴做處麽? 三千劒客今何在? 獨許莊周見23)太平.”
17) 의(義).도의(道義)·은의(恩義)·정의(情誼)·은정(恩情)등과 통한다.
18) 호두상좌가 향엄의 속마음을 훔친 진실한 제자라는 뜻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19) 본색작가(本色作家). 다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 타고난 바탕 그대로의 색을 갖춘 탁월한 선수행자.
‘본색’이란 본분과 같은 말이고, ‘작가’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선수행자를 나타낸다. 본색종사(本色宗師) 또는
본색납승(本色衲僧) 등이라고도한다.
20) 몸을 숨겼다고 생각하지만 그림자가 드러나 결국 정체가 발각되었다는 뜻이다. 호두상좌도 자기 말의
자취를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는 것을 비유한다.
21)『莊子』「說劍」에 나오는 이야기에 기초한다. 칼을 좋아했던 조나라 문왕 밑으로 3천 검객이 몰려들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칼싸움을 하여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었다. 그때 장자가 천자의 칼과 제후의 칼과
서민의 칼 등 세 종류의 칼에 대하여 설명하는 소리를 듣고 문왕은 석 달 동안 궁전 밖을 나가지 않았고
검객들은 모두 자결했다. 호두상좌를 칼 한번 안 쓰고 난국을 평정한 장자와 견주고 있다.
22)『請益錄』7則 卍117 p.819a1에는 ‘妨’으로, 『宏智廣錄』권3 大48 p.28b2를 비롯한 모든 문헌에는 ‘防’으로
되어 있다.
23) ‘見’은 ‘致’와 통한다.
[설화]
호두상좌의 입장을 부각시켰다.
天童:扶虎頭上座也.
법진수일(法眞守一)의염
“향엄은 무엇 때문에 웃었을까?”라 하고, 이어서 설두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말해 보라! 설두의 말은 나무 위에서 한 말인가, 나무 아래에서 한 말인가?24) 시험 삼아 말해 보라.”
法眞一拈, “秪如香嚴, 笑箇什麽?” 乃擧雪竇拈, 師云, “且道! 雪竇是樹上語, 樹下語? 試請道看.”
24) 설두는 자신이 나무 위에 (입으로 가지를 물고) 있다고 하고 나무 아래보다 나무 위가 쉽다고 했다. 그렇다면
설두가 그렇게 말하고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무사했겠느냐는 뜻이다.
[설화]
향엄이 웃은 까닭을 마음껏 드러내었다.
法眞:弄現香嚴笑處.
죽암사규(竹庵士珪)의 거
이 공안을 제기하고 ‘목숨을 잃는다’라고 한 부분에 이르러 말했다. “향엄은 마치 소하25)가 법률을 제정하는 것과 같았다.”26)
竹庵珪, 擧此話, 至喪身失命, 師云, “香嚴, 大似蕭何置律.”
25) 본서110則 주석64)참조.
26) 본서110則 주석65)참조.
[설화]
다만 나무 위에서 몸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竹庵:只向樹上著倒故也.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상당
어떤 학인이 물었다. “옛사람이 ‘가령 어떤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입으로만 나뭇가지를 물고 있을 뿐, 더위잡을 가지도 없고 밟고 디딜 나무도 없다고 하자’라고 제시한 상황에서도 대답할 여지가 있습니까?” “이미 대답을 마쳤다.” “저는 나무 위의 이야기를 물었는데, 화상께서는 어째서 나무 아래에서 대답하십니까?” “바로 그대가 나무 아래에서 물었기 때문이다.” “대중의 눈을 속이는 것입니까?” “분명히 드러나 있어 속이지 못하겠군.” “나무가 아직 자라지 않았고 어떤 소식도 없다고 한다면, 향엄은 어디서 이 화두를 얻을 수 있을까요?” “그대가 말한 그 칠통27) 안에서 얻는다.” “화상께서 ‘죽비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죽비라 부르지 않으면 사실과 어긋난다’28)라고 한 말에도 지시하는 내용이 있습니까?” “없다.” “그렇다면 헛된 시설이군요.” “헛된 시설29)이다.” 이어서 대혜선사가 “‘가령 어떤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 대답하지 않으면 그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때 향엄이 이렇게 말하자마자 그 말을 수긍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던 호두상좌라는 이가 대중 속에서 나와 ‘나무에 올라가 매달려 있는 상황은 그만두고, 아직 올라가지 않았을 때는 어떤지 한마디 해보시기 바랍니다’”라는 문답을 제기하고 “험(險)!”30)이라 하였고, 향엄이 껄껄대고 크게 웃은 것에 대해서도 “험!”이라 하였다. “내가 이렇게 말한 두 가지 ‘험’ 중 하나의 험은 하늘이 만물을 두루 덮는 것과 같고 땅이 만물을 두루 떠받치는 것과 같으며, 다른 하나의 험은 어떤 것과도 상관이 없다. 이 차이를 가려낼 사람 있는가? 만약 가려낸다면, 향엄의 의중을 속속들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호두상좌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편안히 의탁할 곳이 없도록 만들 것이다. 그럴 사람이 없다면 내가 실현된 공안31)을 가지고 그대들에게 하나의 해설을 달아주겠다. 죽비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죽비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된다.”
徑山杲, 上堂, 僧問, “古人道, ‘如人上樹, 口㘅樹枝, 手不攀枝, 脚不踏樹.’ 未審還有答話分也無?” 師云, “答話了也.”
進云, “學人問樹上話, 和尙爲什麽, 向樹下答?” 師云, “只爲你在樹下問.” 進云, “謾得大衆眼麽?” 師云, “灼然, 謾不得.”
進云, “只如樹子未生, 消息未動, 香嚴向甚麽處, 得這个話頭來?” 師云, “向你柒桶裏得來.” 進云, “只如和尙道,
‘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還有爲人處也無?” 師云, “無.” 進云, “恁麽則却成虛設.” 師云, “虛設.” 乃云, “‘如人上樹,
至違他所問.’ 是時香嚴, 才恁麽道, 便有个傍不肯底, 喚作虎頭上座, 出衆云, ‘樹上卽不問, 樹下道將一句來.’” 師云, “險!”
香嚴呵呵大笑, 師云, “險!” “徑山這兩險, 有一險, 如天普盖, 似地普擎;有一險, 料掉沒交涉. 還有揀得出者麽? 若揀得出,
非唯親見香嚴, 亦使虎頭上座, 無安身立命處. 如無, 徑山將現成公案, 爲你諸人, 下个注脚. 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27) 柒桶. 칠통(漆桶)과 같다. 어떤 소식도 없고 알아챌 실마리가 전혀 없는 상황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시커멓기만한 ‘칠통안’에 비유했다.
28) 원래수산성념(首山省念)이 제기한 화두이지만(본서1331則「首山竹篦」참조), 대혜종고(大慧宗杲)가 법문때
이 화두를 즐겨 활용했다.
29) 허설(虛設).보통은 실효성이 없는 시설 또는 진실하지 못한 시설을 나타내지만, 여기서는 위에서 말한 죽비
화두가 상대를 시험하기 위한 임시 설정의 함정으로서 ‘장치’라는 뜻이다.
30) 위험하다 또는 험난하다는 뜻이지만, 한 글자로 선의 종지를 표현하는 일반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바로
이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 수월하게 알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도 된다. 향엄의 웃음에 붙인 바로
다음의 ‘험’도 마찬가지이다.
31) 현성공안(現成公案). 가감할 여지가 조금도 없이 그 본질을 온전히 실현하고 있는 공안. 곧 진퇴양난의
관문으로서 그 본질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공안을 가리킨다.
[설화]
이미 대답을 마쳤다:나무 위에서도 대답한 뜻이 있다.
대중의 눈을 속이는 것입니까:대중의 눈은 나무 위나 나무 아래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대혜도 ‘분명히 드러나 있어 속이지 못하겠군’이라 말한 것이다.
나무가 아직 자라지 않았고 ~ 이 화두를 얻을 수 있을까요:나무 위나 나무 아래 그 어느 편과도 상관이 없는 경계를 집어내었다.
칠통 안에서 얻는다:나무 위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경계가 바로 칠통이다.
화상께서 ‘죽비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 어긋난다’라고 한 말에 대해 질문한 것:이 또한 나무 아래의 경계에서 그에게 던진 질문이다.
지시하는 내용이 있습니까:지시한 내용이 없다는 뜻이다. 곧 나무 위의 소식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헛된 시설이군요:점검한다는 뜻이다. 헛된 시설이란 ‘과연 어디서 모색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진실로 헛된 시설이라는 뜻이다.
호두상좌가 던진 질문에 대한 착어(著語)로 ‘험’이라 하고, 향엄이 껄껄대고 크게 웃은 것에 대하여 ‘험’이라고 한 착어:‘향엄의 말은 험난한 장치이지만, 호두상좌의 말이야 어찌 험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뜻이다.
내가 이렇게 말한 두 가지 ‘험’ 중 ~ 어떤 것과도 상관이 없다:험을 가리키니, 향엄의 웃음이 그것이다.
하늘이 만물을 두루 덮는 것과 같고 ~ 떠받치는 것과 같으며:‘어찌 호두상좌가 이렇단 말인가!’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의 험은 어떤 것과도 상관이 없다:이전에 호두상좌가 물었던 ‘나무 아래’의 ‘험’을 가리킨다. 이것이 어떤 것과도 상관이 없는 이상 어찌 험이겠느냐는 뜻이다.
향엄의 의중을 속속들이 ~ 없도록 만들 것이다:향엄의 의중을 속속들이 안다면 호두상좌는 몸과 마음을 편안히 의탁할 곳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죽비라 부르면 ~ 등지게 된다:그렇다면 호두상좌 또한 몸과 마음을 편안히 의탁할 곳이 있다는 뜻이다.
徑山:答話了也者, 樹上亦有答話意也. 謾得大衆眼麽者, 大衆眼則不在樹上樹下也. 故灼然謾不得也.
只如樹子至話頭來者, 樹上樹下不干處拈出也. 漆桶裏得來者, 樹上道不得, 是漆桶也. 和尙道, 喚作竹篦子云云者,
又向樹下問他. 爲人不爲人也無者, 無爲人處也. 卽是樹上也. 却成虛設者, 勘驗也. 虛設者, 果然甚處摸 , 眞是虛設也.
虎頭上座問處著語, 險, 香嚴呵呵大笑處, 險, 香嚴語, 是險也, 虎頭語, 豈是險也. 有一險如天云云者, 指險也, 呵呵大笑是.
如天普盖云云者, 豈是虎頭如是也. 有一險料掉云云者, 指前虎頭上座樹下險也. 旣是了沒交涉, 豈是險也. 非唯親見云云者, 親得香嚴意, 則虎頭上座, 却是無安身立命處. 喚作竹篦云云者, 然則虎頭, 亦有安身立命處.
대혜종고의 보설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산승은 예전에 어떤 존숙에게 한 번 더 가르침을 청하며 ‘향엄의 뜻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존숙이 마침내 불자 자루를 입에 가로로 물고 눈을 꼭 감고서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자세를 취한 채 손을 흐느적거리고 발을 뻗어 산승의 질문에 응답했다.” 대혜가 이어서 손가락을 퉁기고 말했다. “이와 같이 당시에 명성을 드날리던 존숙조차도 이런 식의 응답을 했으니, 그 나머지 사람들이 괴이하게 대답한 것은 입에 담지도 않겠다. 그대들은 알고자 하는가? 다만 한 구절을 지어낸다면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말해 주겠다. 아무에게서도 한 구절을 지어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들려준 말에서 알아차리되 들려주자마자 곧바로 알아차려야 한다. 이러한 도리가 아니라면 어떤 도리일까? ‘가령 어떤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입으로는 나뭇가지를 물고 ~ 대답한다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이런 상황에서는 머리카락 한 올도 들어갈 틈이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시 향엄의 회중에서 오로지 호두상좌가 향엄의 뜻을 깨우쳤기에 앞으로 나와서 향엄의 막힌 숨통을 터주며 ‘나무에 올라가 매달려 있는 상황은 그만두고, 아직 올라가지 않았을 때는 어떤지 화상께서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대혜가 이에 대해 착어했다. “비록 한 번의 영광을 누리기는 했으나 한 쌍의 발꿈치를 모두 잘려버린 꼴이다.”32) 향엄이 껄껄대고 크게 웃었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철판을 얼굴에 깔았구나”33)라고 착어하고 또한 “천륜을 돌리고 지축을 움직인다”라고 착어했다. “후대에 설두는 이 공안의 핵심을 집어내어 ‘나무 위에서 말하기는 쉽지만 ~ 질문 하나를 던져보라’고 하였다. 이렇듯 설두가 비록 호두상좌의 숨통을 터주기는 했지만, 향엄의 뜻을 모르고 지나쳤던 것은 어쩌랴! 요즈음 잘못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은 설두가 이렇게 한 말을 듣고는 ‘단지 현재의 금계만 범하지 않는다면 이전 시대의 뛰어난 말재주꾼34)보다 나으리’35)라는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말을 끌어들이며, ‘향엄이 내세운 이 화두는 마치 한 덩어리의 불과 흡사하니 범해서는 안 된다’36)라고 한다. 비록 그렇더라도 언구를 그런 의미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부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동산수초(洞山守初)는 ‘삼 세 근’이라 대답했고,37)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조주(趙州)는 ‘뜰 앞의 잣나무’38)라고 했으니, 이렇게 대답한들 무슨 잘못이 있으랴! 그대들은 틀림없이 이해할 수 있다. 분양화상의 다음 게송을 모르는가?(이하에서 게송의 각 구절에 착어를 붙인다) ‘향엄이 이 화두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준 이유는, 벗들을 이끌어 본래 진실에 통달케 하도록 함이었네’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 대혜는 “진실에 따라 그대로 통하도록 힘쓴다”라 착어했고, ‘하지만 분별하면서 도리어 겉말에서 찾아 헤매다가, 목숨을 잃은 자들이 티끌과 같이 무수히 많노라’라는 구절에는 “고심하는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착어했으며, ‘분양이 그대들에게 하늘로 통하는 길을 열어 주리니, 구름 흩어져 끝없이 펼쳐진 허공에 달빛 신선하구나’라는 구절에는 “쓸데없는 말이다”라고 착어했다. “비록 이렇다 하더라도, 이들 구절 안에서 그 뜻을 들고 궁구하다 보면 한평생 공부할 일을 마치게 될 것이다.”
又普說, 擧此話云, “山僧昔年, 曾請益一个尊宿, ‘未審香嚴意旨, 如何?’ 遂以拂子柄, 銜在口中, 緊閉却眼, 便作銜樹枝勢,
搖手擺脚, 秪對山僧.” 師乃彈指云, “如此者, 亦是當年馳聲走譽底, 尙作這般去就, 其餘作怪, 不在言也. 你要會麽?
但只作一句看, 我先爲你說. 莫見道作一句看, 便向擧起處會, 擧了便會了. 且不是這个道理, 是什麽道理? ‘如人上樹,
口銜樹枝, 至喪身失命.’ 如何這裏閒不容髮? 當時香嚴會中, 只有个虎頭上座, 領得香嚴意, 便出來, 爲香嚴出氣云,
‘上樹卽不問, 未上樹, 請和尙道.’” 師云, “雖得一場榮, 刖却一雙足.” 香嚴呵呵大笑, 師云, “䥫作面皮.” 又云, “回天輪轉地軸.”
“後來雪竇拈云, ‘樹上道則易, 至致將一問來.’ 雪竇雖爲虎頭上座出氣, 爭奈蹉過香嚴! 今時有般謬漢, 聞雪竇恁麽道,
便引洞山語云, ‘但能莫觸當今諱, 也勝前朝斷舌才.’ 謂香嚴立此个問頭, 喩如一團火相似, 不可觸. 雖然如此, 不可斷却言句.
有問, ‘如何是佛?’ ‘麻三斤.’ ‘如何是祖師西來意?’ ‘庭前栢樹子.’ 又且何妨! 你不妨會得好. 不見汾陽和尙頌曰,
‘香嚴銜樹示多人, 要引同袍達本眞.’” 師云, “依實供通.” ‘擬議却從言下覓, 喪身失命數如塵.’ 師云, “不是苦心人不知.”
‘汾陽爲你開天路, 雲散長空月色新.’ 師云, “閑言語. 雖然如是, 若向這裏提得去, 一生叅學事畢.”
32) 전국시대 초나라 때 변화(卞和)의 고사에 따른다. 변화가 형산(荊山)에서 박옥(璞玉)을 주워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연이어 바쳤으나 두 번 모두 왕을 속였다고 하여 두 발의 뒤꿈치를 잘리는 형벌[刖刑]을
받았다. 후에 문왕(文王)이 이 옥의 가치를 알아보고 장인(匠人)을 시켜 다듬게 하여 마침내 최고의 옥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의 뜻은〈설화〉참조.
33) 웃기는 했지만 사사로운 정에 움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본분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호두상좌의 말도
인정하지 않고 냉정하게 대응한 웃음이라는 뜻이다.
34) 단설재(斷舌才). 혀를 끊어 놓은듯이 다른 사람들이 아무말도 못하도록 만드는 뛰어난 말재주 또는 그런
사람.
35) 동산의 오위군신설(五位君臣說) 중에서 정중래(正中來)에 대한 게송의 일부. 『洞山語錄』大47 p.525c4
참조.
36) 향엄의 말이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마치 타오르는 한 덩어리의 불에 손끝이라도 닿으면 피해를
보는 것과 같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말재주라도 침묵보다 못하다는 뜻. 대혜는 다른 곳에서 화두를
불덩어리에 비유했다. “마치 한 덩어리의 불과 흡사하여 건드리기만 하면 곧 타버릴 것이니, 어떻게 다가설
여지가 있겠는가!”(『書狀』「答曾侍郎」 第二書 大47 p.917b29. 如一團火相似, 觸著便燒,有甚麽向傍處!)
37)『禪門拈頌說話』1230則 참조.
38)『禪門拈頌說話』421則 참조.
[설화]
불자 자루를 입에 가로로 물고 ~ 응답했다:향엄의 말만 인정한 것이니, 이 어찌 ‘명성을 드날리던 존숙조차도 이런 식의 괴이한 응답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뜻이다.
다만 한 구절을 지어낸다면:나무 위와 나무 아래에서 한 구절 지어내 보라는 뜻이다.
들려준 말에서 알아차리되:향엄이 들려준 말을 가리킨다.
아무에게서도 한 구절을 ~ 이러한 도리가 아니라면:이렇게 이해해도 옳지 않으니 이 또한 말에 얽매여 생각을 마구 치달리는 짓이기 때문이다.
비록 한 번의 영광을 ~ 모두 잘려 버린 꼴이다:향엄의 나무 위 소식은 ‘비록 한 번의 영광을 누리기는 했다’라는 말과 상응하고, 나무 아래 소식을 알지 못한 것은 ‘한 쌍의 발꿈치를 모두 잘려버렸다’라는 말과 상응한다.
철판을 얼굴에 깔았구나:입장이 견고하므로 분별로 파고들어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천륜을 돌리고 지축을 움직인다:나무 아래서 대답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 없다.
향엄의 뜻을 모르고 지나쳤던 것은 어쩌랴:향엄의 뜻이 어떤 한계도 없다는 점을 몰랐다
요즈음 잘못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은 ~ 라고 한다:다만 향엄이 단정한 언구만 알고 있다.
비록 그렇더라도 ~ 무슨 잘못이 있으랴:나무 아래에도 이와 같은 뜻이 있다.
분양화상의 다음 게송을 ~ 쓸데없는 말이다:무슨 나무 아래 소식을 찾느냐는 뜻이다.
비록 이렇다 하더라도 ~ 마치게 될 것이다:나무 아래 소식을 떠나서 또 무엇을 찾느냐는 뜻이다.39)
又普說:拂子柄銜在口中云云者, 只認得香嚴地, 豈不是馳聲走譽地作怪也. 只作一句看者, 樹上樹下作一句看也.
擧起處會者, 香嚴擧起處也. 莫見道至不是這箇道理者, 伊麽會又却不是, 此亦隨言走殺也. 雖得一場榮云云者, 香嚴樹上,
雖得一場榮云云也, 不會樹下, 刖雙足也. 䥫作面皮者, 立處堅固, 穿鑿不得也. 迴天輪云云者, 不妨向樹下答話也.
蹉過香嚴者, 不知香嚴意無限也. 便引至不可觸者, 只知香嚴斷却言句也. 雖然至何妨者, 樹下有此等意也.
汾陽云云閑言語者, 討甚樹下. 雖然如是云云者, 離樹下便討甚麽.
39) 나무 아래 소식 그대로 알거나 반대로 그것에서 벗어나거나 모두 안 된다고 판단한 해설이다. 화두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방향에 따른다.
개암붕의 상당
‘가령 어떤 사람이 천 길의 낭떠러지에서 입으로만 나뭇가지를 물고 있을 뿐, 손으로는 잡을 것이 없고 다리도 밟은 곳이 없는데, 어떤 사람이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었다고 하자. 바로 이럴 때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향엄이 대중에게 한 말을 제기하고 “도둑놈!” 하고 착어했다. ‘그때 호두상좌가 대중 속에서 나와 「나무에 올라가 매달려 있는 상황은 그만두고, 아직 올라가지 않았을 때는 어떤지 화상께서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는 구절에 다시 “도둑놈!” 하고 착어했고, 향엄이 껄껄대고 크게 웃었다는 구절에는 “물렁한 진흙 속에 가시가 숨어 있다”40)라고 착어했다. 설두가 ‘나무 위에서 말하기는 쉽지만, 나무 아래서 말하기는 어렵다. 노승이 나무 위에 매달렸으니, 질문 하나를 던져보라’고 한 구절에 또 다시 “도둑놈!” 하고 착어한 다음 말했다. “이 세 도둑 중에서 한 놈은 주범이고 다른 한 놈은 도둑에게 사다리를 타고 넘어가게 해 주었고 또 한 놈은 앉은자리에서 훔친 물건을 나누었다. 말해 보라! 누가 주범일까? 여러분이 여기서 가려낸다면 향엄의 의중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저절로 이 곤경을 벗어나는 길도 열릴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게송 한 수를 들어 보라. ‘난세의 간교한 무리들 대부분이 패도를 행하니, 처자식과 부자가 각자 서로를 지켜주지 못하네. 그물에 걸렸다가 목숨 건졌으니, 그 옛날 이광과 다르지 않구나.41)’”
介庵朋, 上堂, 擧香嚴示衆云, ‘如人在千尺懸崖, 口含樹枝, 手無所攀, 脚無所蹋, 忽有人問西來意, 至正恁麽時, 如何?’
師着語云, “賊!” 時有虎頭上座出衆云, ‘上樹卽不問, 未上樹時, 請和尙道.’ 師着語云, “賊!” 香嚴呵呵大笑, 師云,
“爛泥裏有刺.” 雪竇云, ‘樹上道卽易, 樹下道卽難. 老僧上樹也, 致將一問來.’ 師着語云, “賊!” 師云, “這三箇賊數中,
一人正賊, 人與賊過梯, 一人坐地分贓. 且道! 那箇是正賊? 諸人若向這裏, 揀辨得出, 非唯會得香嚴意, 抑亦自有出身之路.
脫或未然, 更聽一頌. ‘亂世姧雄多行覇道, 妻兒父子各不相保. 罕中拾得性命, 無異當年李廣.’”
40) 진흙이 물렁할 것으로 생각하고 밟다가 그 속에 숨은 가시에 찔리는 것처럼 향엄의 웃음을 단지 긍정하는
웃음으로 받아들이면 그가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는 숨은 의도를 알지 못한다는 뜻. 웃음 속에 칼이 숨어
있다는[笑中有刀] 말과 통한다.
41) 적진에 사로잡혔다가 탈출한 이광(李廣)장군의 고사.
[설화]
향엄·호두·설두가 모두 도둑인데, 그중 누가 주범일까? 하나하나가 모두 주범이다.
‘난세의 간교한 무리들’이라 한 게송:향엄·호두·설두의 의중을 이해하더라도 말에 얽매여 이해하는 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箇庵:香嚴虎頭雪竇, 皆是賊, 那箇是正賊? 一一是正賊也. 亂世奸雄云云者, 會香嚴虎頭雪竇意, 隨語生解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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