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639칙 목주담판 睦州擔板

실론섬 2026. 4. 21. 16:05

639칙 목주담판 睦州擔板

[본칙]

​목주1)가 어떤 학인을 향해 “대덕2)이여!”라고 부르자 그 학인이 고개를 돌렸다. 목주가 말했다. “담판한3)이로군.”
睦州喚僧云, “大德!” 僧迴首. 師云, “擔板漢.”
1) 목주도명(睦州道明 780~877). 당나라 때 스님. 황벽희운(黃檗希運)의 제자. 도종(道蹤),진포혜(陳蒲鞋),
   진존숙(陳尊宿)등으로도 불린다. 본서607則 주석4) 참조.
2) 大德. 원래는 부처님·보살 혹은 고승을 높여 부르던 말로서 지혜와 덕망이 높은 스님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 
   상하를 막론하고 상대를 높여 부르는 2인칭 대명사 정도로 보아도 무방하다.
3) 擔板漢. 어깨에 멘 널빤지가 한쪽을 가려 양쪽을 모두 보지 못하는 사람에 빗대어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편에 
   사로잡힌 편견을 가진 사람 또는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선종에서는 견해가 한쪽으로 치우쳐 
   전체를 볼 줄 아는 안목이 없는 사람을 비판하는 말로 쓰인다.“목주는 평상시에 납승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바로 문을 닫았고, 강승(講僧)을 보면 ‘좌주!’ 하고 불러 그 납승이 ‘예!’ 하고 응답하면 ‘담판한이로군’이라고 
   말했다.”(『景德傳燈錄』 권12 「睦州傳」 大51 p.291b3. 師尋常或見衲僧來, 卽閉門, 或見講僧, 乃召云, ‘座主!’ 
   其僧應諾, 師云, ‘擔板漢.’)

​[설화]

‘담판한’이라고 한 것은 그 학인이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린 것이 널빤지를 짊어지고 있어 한쪽밖에 볼 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담판한이란 말을 들었을 것이다.
擔板漢者, 這僧隨聲回首, 是擔板也. 直饒不回首, 亦未免擔板漢也.

​장령수탁(長靈守卓)의 송

뒤통수를 한 방 찌를 때마다,
번번이 구덩이로 떨어지네.
설령 돌아보지 않았다 해도,
이 또한 한갓 담판한일 뿐이라네.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그치고,
목주의 관문을 뚫으면,
온 누리 꿰뚫어 보는 눈4) 갖추리라.
長靈卓頌, “䐉後與一錐, 頭頭墮坑坎. 直饒喚不回, 也是虛擔板. 休擔板, 透過睦州關, 乾坤一隻眼.”
4) 일척안(一隻眼).원래하나의눈곧외눈박이를가리키지만,진리를 꿰뚫어 보는 탁월한 안목 또는 뛰어난 
   식견(識見)이나 견해를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두 개의 육안(肉眼)과 다르다 하여 제3의 눈이라 하고, 
   정문안(頂門眼)·정안(正眼)·활안(活眼)·명안(明眼)등이라고도 한다.

​[설화]

뒤통수를 한 방 찌를 때마다:고개를 돌린 것을 가리키니, 담판한이라는 뜻이다.
‘번번이’라고 한 것은 다음 구절의 ‘돌아보지 않았다 해도 ~ 담판한일 뿐’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개를 돌려도[觸] 옳지 않고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背] 또한 옳지 않다는 뜻이다.5)
長靈:腦後云云者, 回首也, 擔板漢也. 頭頭者, 後云不迴頭也擔板也. 謂觸亦不是, 背亦不是也.
5) ‘배(背)’는 등지고 전혀 관계하지 않는 부정적 지향을 가리키며, ‘촉(觸)’은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수긍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에 집착하고 물드는 오촉(汚觸)의 방식을 나타낸다. 배(背)도 촉(觸)도 모두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방법으로도 열리지 않도록 제시된 관문을 배촉관(背觸關)이라 하며, 화두를 설정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본서1331則 주석1) 참조.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송

목주가 담판한이라 한 말이여,
어찌 눈 깜박일 거리나 있겠는가!6)
넓거나 좁거나 짧거나 길거나,
더하거나 덜어내서는 안 된다네.
徑山杲頌, “睦州擔板, 那容眨眼! 闊狹短長, 不須增減.”
6) 눈을 깜빡인다는 말은 눈을 깜박이며 헤아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곧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며 분별하는 모습을 형용한다. 목주의 ‘담판한’은분별할여지가전혀없다는말이다.

​[설화]

목주가 ~ 있겠는가:등지거나[背] 물들거나[觸] 모두 벗어나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넓거나 좁거나 짧거나 길거나 어떤 것에 대해서도 더하거나 덜어낸다면 이것이 바로 등지거나 물드는 것이다.
徑山:睦州云云者, 直須離却背觸會也. 闊狹短長增減, 則是背觸也.

죽암사규(竹菴士珪)의 송

번갯불 속에서 허둥지둥 서두르지 말고,
휘두르는 칼날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무심코 놓아버리고 온몸으로 들어가면,
처음부터 한 터럭도 결코 다치지 않으리.
竹庵珪頌, “電火光中休草草, 釰7)輪鋒上莫忉忉. 等閑却放全身入, 終不當頭犯一毫.”
7) ‘劍’과통한다.

​[설화]

​위의 설화와 같다.
竹庵頌, 上同

무위자의 송

목주가 부르는 소리,
수괘8)로 판단한다네.
돌아보건 돌아보지 않건,
모두 담판한일 뿐이라네.
無爲子頌, “睦州喚, 隨卦斷. 回不回, 擔板漢.”
8) 隨卦. 64괘중하나.진하태상(震下兌上). “수는크게형통하니곧으면이롭다.허물이 없으리라.”(『周易』 「隨卦」. 
   隨, 元亨, 利貞. 無咎.) 못 아래 우레가 있는 형상[澤雷隨]이다. 못이 우레의 진동에 따라[隨] 움직인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부르는 소리에 그대로 따라[隨]고개 돌리고 돌아보는 미혹된 반응을 가리킨다.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염

​“목주는 단지 하나의 눈9)만 갖추고 있었을 뿐이다. 왜 그런가? 그 학인은 부르는 소리에 고개 돌려 보았을 뿐인데, 어째서 도리어 담판한이라 한 것인가!”
雪竇顯拈, “睦州只具一隻眼. 何故? 這僧喚旣回頭, 因甚却成擔板!”
9) 일척안(一隻眼). 주석4)의 뜻과 달리 여기서는 외눈박이라는 말이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뜻이다.

[설화]

목주가 그렇게 담판한이라고 한 말이 도리어 쓸데없는 일10)을 만들었을 뿐이니, 돌아본 그 학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雪竇:睦州伊麽道, 却成多事, 這僧有什麽過!
10) 다사(多事).쓸데없는 일에 손을 대어 일을 번다하게 만든다는 말.

회당조심(晦堂祖心)의 염

​“설두 또한 단지 하나의 눈만을 갖추었을 뿐이다. 그 학인이 한 번 부르는 소리에 곧바로 고개를 돌렸으니, 어찌 담판한이 아니겠는가!”
晦堂心拈, “雪竇亦秪具一隻眼. 這僧一喚便迴, 爲甚麽不成擔板!”

취암종의 염

​“그 학인은 고개를 돌렸지만 참과 거짓을 가려내지 못했다. 목주가 자신의 기세에 의지하여 아무 일 없는 사람을 속여 굴복시켰던 것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만일 설두가 증명하지 않았다면 그 학인은 다시금 굴욕을 당했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목주는 오히려 호의를 가지고 있었으니, 설두가 그렇게 한 말11)에 따르더라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본 것과 담판한이라 한 말 모두 좋다.”
翠嵓宗拈, “這僧迴首, 眞虛莫辨. 爭奈睦州用勢, 欺壓平人! 若無雪竇證明, 這僧還同受屈. 雖然如是, 睦州却是好心, 
若據雪竇恁麽道, 也好喚迴與箇檐板漢.”
11) 목주를 가리켜 하나의 눈만 갖추고 있었을 뿐이라고 폄하한 말.

영원유청(靈源惟淸)의 상당

이 공안과 설두·회당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담판한이란 결국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며, 뛰어난 식견을 갖춘 사람은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깊은 산속 오밤중에 달빛 밝은데, 울부짖는 돌사람 심장에 화살이 꽂혔구나.”
靈源淸, 上堂, 擧此話, 連擧雪竇晦堂拈. 師云, “擔板漢落誰家, 一隻眼如何辨? 深山午夜月明中, 呌哭石人心中箭.”

[설화]

담판한이란 결국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며: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담판한이라는 뜻이다.
뛰어난 식견을 갖춘 사람은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모두 일척안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깊은 산속 오밤중에 ~ 화살이 꽂혔구나:돌사람이 화살을 맞고 울부짖는다고 했으니, 설두와 회당의 말이 모두 돌사람을 해쳤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만 목주의 뜻만 알아차렸음을 가리킨다. 깊은 산이란 돌사람이 사는 곳이다. 오밤중은 어둠이며 밝은 달은 밝음이니, 밝음과 어둠을 모두 갖추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靈源:擔板漢落誰家者, 皆是擔板也. 一隻眼云云者, 皆未具一隻眼也. 深山午夜云云者, 石人中箭而呌哭, 則雪竇晦堂地,
皆是害石人也. 然則但會取睦州意也. 深山則石人在處. 午夜則暗, 月明則明, 明暗具足.

대혜종고의 보설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예전에 한 수좌(首座)가 이 화두를 들고 학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학인이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여는 것을 보자마자 곧바로 ‘생각했던 그대로 담판한이로구나. 우습구나, 전혀 관계가 없다!’라고 말했다.” 마침내 설두와 회당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이 두 늙은이들이야말로 목주와 손을 잡고 함께 갈 만한 자격이 있다. 만일 영리한 사람이라면 그들이 하는 말을 듣자마자 눈을 방울과 같이 동그랗게 뜨고 알아차릴 것이며, 결코 여기서 갈지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雲門杲, 普說, 擧此話云, “曾有个禪頭, 擧這話問僧. ‘你作麽生會?’ 才見僧開口, 便道, ‘果然擔板. 且喜, 沒交涉!’” 
遂擧雪竇晦堂拈, 師云, “者兩个老漢, 可與睦州, 把手共行. 若是个靈利漢, 才聞擧着, 眼似銅鈴, 終不向者裏, 打之遶.”

[설화]

​그 학인이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여는 것을 보자마자 ~ 전혀 관계가 없다:잘못된 이해를 지어냈기 때문이다.
이 두 늙은이들이야말로 ~ 자격이 있다:그들 모두 목주의 본래 뜻에 일치했음을 나타낸다.
만일 영리한 사람이라면 ~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겉으로 드러난 말을 따라 마구 내달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雲門:才見僧開口云云者, 作得失會故也. 兩箇老漢云云者, 皆契睦州意也. 若是箇靈利云云者, 不以隨言走殺也.

​죽암사규의 염

“목주는 그 학인에게 간파당했다.”
竹庵珪拈, “睦州被這僧勘破.”

​[설화]

그 학인이 오히려 안목을 갖추었거늘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竹庵:這僧却具眼, 有什麽過!

백운지병(白雲知昺)의 염

​“진짜 놋쇠는 금과 바꾸지 않는 법이니, 세상에 이 사실을 아는 이 적구나.”12)
白雲昺拈, “眞鍮不愽金, 擧世小人信.”
12) 목주는 금과 같이 귀한 말을 했고, 학인은 금과 비교가 되지 않는 놋쇠와 같이 하열하다는 일반적인 편견을 
    배척한 말이다. 이처럼 스승은 항상 옳고 학인은 하열하다는 식으로 미리 결정지어 놓은 상하의 차별을 
    해체하는 것이 화두를 수용하는 근본적인 입장이다.

[설화]

​학인의 입장을 지지하는 말이다.
白雲:扶這僧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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