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2칙 덕산편방 德山便棒1)
1) 임제할(臨濟喝)과 대칭되는 덕산방(德山棒)의 선풍을 소재로 한 공안. 방은 아프다거나 아프지 않다거나 하는
등의 어떤 맛도 없는 몰자미(沒滋味)한 것으로 화두와 다르지 않다. 이것은 사유분별과 언어문자의 개념으로
모색할 길을 차단하고 바로 이 상태에서 본분을 궁구하도록 만드는 방편이다. 때로는 상대의 반응을 통하여
그 경지를 점검해 보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본서 633則「臨濟便喝」참조.
[본칙]
덕산은 학인이 방장에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방(棒)을 내리쳐 때렸다.
德山, 見僧入門, 便棒.
[설화]
방장에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방을 내리쳐 때렸다: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한 자루 생짜의 몽둥이2)로 부처가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리는3) 수단을 말한다. 옛사람은 “빗방울처럼 무수히 몽둥이를 내리쳐도 몽둥이질한 곳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천둥처럼 할을 내질러도 할을 내지른 곳에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비록 그렇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또한 상황에 적절하게 상대의 안목을 바꾸어주는 수단이 있으므로 학인들이 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곧바로 방을 내리쳐 때렸던 것이다.
入門便棒者, 一條白棒, 佛來也打, 祖來也打也. 古人云, “棒如雨滴, 棒處無痕;喝似雷奔, 喝處無聲.” 雖然如是,
亦有隨機換却眼睛地手段故, 凡見僧來便棒也.
2) 일조백방(一條白棒). 백방이란 어떤 칠도 하지 않고 장식도 없는 순수한 몽둥이를 말한다.곧 주장자나 불자와
같이 어떤 형식이나 의례와도 상관이 없고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생짜(raw, unripe)의 몽둥이 자체를
가리킨다. 선종에서는 어떤 권위와 형식도 물리치기 위하여 부처를 만나건 조사를 만나건 휘둘러서 물리치는
덕산의 방(棒)이 지니는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렇게 부른다. 어떤 뜻과 도리로도 파악할 수 없는 순수한
방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을 물리치는 수단이다. “주금강(周金剛:德山)의 순수한 방은 부처가 와도 때리니,
마치 큰 비바람이 울리며 휩쓸고 갈 때 눈앞에 남은 것들이 없는 것과 같다.”(『東山慧空和尙語』 續古尊宿語要6
卍119 p.161a5.周金剛白棒,佛來也打, 一似大風雨,鼓蕩直無前.)
3)『金剛經』에 조예가 깊어 주금강(周金剛)이라 불렸던 덕산이 용담숭신(龍潭崇信)의 가르침에서 전기를 맞이한
이후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독행하는 수단으로서 방을 시행했다. “이때부터(龍潭의 가르침을 받고
깨달은 다음) 덕산은 한자루 생짜의 방에 의지하여 부처가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렸다. 이것에 다른 뜻은
없고 후인들이 관념과 형상에 막히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학인들의 질문이 지리멸렬하게 늘어질
때마다 곧바로 한 방을 휘둘렀으니, 이것이 바로 방이 생겨난 유래이다. 그래서 ‘덕산은 학인이 방장에
들어오자마자 방을 휘둘렀고, 임제는 누구든 방장에 들어오자마자 할을 내질렀다’라고 한 것이다. 방과 할을
어찌 까닭도 없이 행하였겠는가!”(『佛祖歷代通載』 권22 大49 p.720c22. 自是, 據條白棒, 佛來也打, 祖來也打.
此無他, 恐後人滯於名相. 凡有所問, 至支離處, 便與一棒, 此棒之所由生也. 所謂德山入門便棒, 臨濟入門便喝.
夫棒喝者, 豈徒施也哉!);“초종도인이 청하여 지은 찬시(讚詩):한 자루 생짜의 방으로 부처나 조사나 모두
때리노라. 초종선인은 대담하여 겁이 없구나. 나의 초상을 그리고 찬시를 청하여, 죽음으로 통하는 문에
이를 붙여서 걸어두었네. 삼십 년 뒤 이 이야기가 크게 알려질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마음껏
분별하는 대로 맡겨 두리라.”(『大慧語錄』권12 大47 p.861b8. 超宗道人請讚:一條白棒, 佛祖俱打. 超宗禪人,
大膽不怕. 畫我來乞讚, 鬼門上帖卦. 三十年後, 此話大行, 任一切人, 讚龜打瓦.)
대홍보은(大洪報恩)의 송
한 방에 한 줄기의 흔적이 남으니,
그 매운 맛 말로 표현 할 수 없구나.
장부라면 기개가 있는 것 보통이나,
그 은혜 아는 사람 몇이나 될까?
〈돌!〉4)
大洪恩頌, “一棒一條痕, 辛酸不可論. 丈夫多意氣, 幾箇是知恩?” 〈咄!〉
4) 咄.주의를 환기 시키기 위하여 내지르는 소리.할(喝)과 같다.
[설화]
방의 아픔5)을 알아야 비로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다는 뜻이다.6)
大洪:須知痛痒, 方始報恩.
5) 언어를 넘어선 방으로 통렬하게 지시하는 내용.
6) 방(棒)의 뜻을 제대로 파악해야 바르게 응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엄수수(淨嚴守遂)의 송
소나기 내리치니 천둥 요란하게 치고,
구름 일어나니 번갯불 뒤따라 번득인다.
장군이 생사의 법령 쥐고 있다 하지만,
어찌 요순이 교화하던 시절만 하리오!
淨嚴遂頌, “驟雨迅雷擊, 雲興電影隨. 將軍雖有令, 何似舜堯時!”
[설화]
앞의 두 구절은 수단이 신속하고 묘하며 세밀하다는 뜻이다. 요순이 다스리던 때는 (별달리 교화의 수단을 펼칠 것도 없이) 본래부터 태평한 시대였다는 뜻이다.
淨嚴:二句, 手段迅速妙密也. 舜堯時, 本自太平時也.
정자본의 송
종장(宗匠)은 무엇에 의지하여 바름과 삿됨을 드러내는가?
한 자루 주장자로 용과 뱀을 가려내노라.
다리가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30방으로 답하니,
석가모니도 그 몽둥이에 묻혀버릴까 염려되누나.
淨慈本頌, “宗匠憑何顯正邪? 一條拄杖辨龍蛇. 脚纔跨戶答三十, 猶恐沈埋老釋迦.”
장령수탁(長靈守卓)의 송
덕산의 방과 임제의 할이여!
동금강이요 철보살이로다.7)
요란한 천둥 울리는 곳에 어떤 귀이건 모두 먹어버리고,
별들이 번쩍번쩍 흩어져 내릴 때 멀지 않는 눈은 없노라.8)
눈은 멀게 했지만 모두에게 조계의 달9) 거듭 가리켰다네.
長靈卓頌, “德山棒臨濟喝! 銅金剛鐵菩薩. 轟雷發處有耳皆聾, 撒星來時無眼不瞎. 瞎與公重指曺溪月.”
7) 동금강(銅金剛)은 동으로 만든 금강신장(金剛神將)을 가리키는 말로서 불법을 수호하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있으므로 방과 상응한다. 철보살(鐵菩薩)은 철로 주조된 보살상이며,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의 자비로운
가르침으로 할과 상응한다.
8) 눈이 멀고 귀가 상한 상태가 바로 어떤 수단도 통하지 않아 더이상 나아 갈 길이 없는 은산철벽(銀山鐵壁)의
궁지(窮地)이다. 절망의 경계가 아니라 본분의 소식이 올 조짐을 나타낸다.
9) 조계월(曹溪月).조사(祖師)의종지(宗旨).
[설화]
‘동금강’은 위엄과 용맹이 있는 모습으로 덕산의 방을 비유하며, ‘철보살’은 자비로운 마음이 있는 것으로 임제의 할을 나타낸다. 철과 동이라 형용한 까닭은 그 뜻으로 알 수 있다.
‘요란한 천둥 ~ 먹어버리고’라는 구절은 할을 나타내고, ‘별들이 번쩍번쩍 흩어져 ~ 눈은 없노라’라는 구절은 방을 말한다.
‘조계의 달을 거듭 가리켰다’라는 말은 눈만 멀게 한 것이 아니라 지시하여 주는 내용도 있다는 뜻이다. ‘공(公)’은 모든 사람을 말한다.
長靈:銅金剛, 有威猛之相, 喩德山棒也. 鐵菩薩, 有慈悲之心, 臨濟喝也. 所以鐵銅, 其意可知. 轟雷云云者, 喝也,
撒星云云者, 棒也. 重指云云者, 亦有指示處也. 公謂諸人也.
개암붕의 송
평소의 속뜻을 남에게 모두 쏟아 부었으니,
한 방 분명했지만 그 실물 그려내지 못하네.
만일 몸 뒤집어10) 그 귀결처를 알아차린다면,
물과 하늘 맞닿은 곳 드넓고 달은 맑디맑으리.
介庵朋頌, “平生心膽向人傾, 一棒分明畵不成. 若也翻身知落處, 水天空闊月澄淸.”
10) 번신(翻身).전신(轉身)과 같은 말로 얽매인 몸을 반전시켜 안목을 바꾸는 것.
무진거사의 송
한 자루 주장자 하늘에 기대 놓고,
삼승의 교설 밖에서 별도로 전하네.
눈 깜박이기도 전에 8백 방 맞으리니,
입을 열려고 하면 3천 방을 맞으리라.11)
無盡居士頌, “一條楖栗倚靑天, 別向三乘敎外傳. 未眨眼時遭八百, 擬開口處著三千.”
11) 덕산의 방은 어떤 조짐도 발생하기 이전의 소식이라는 뜻.
대우수지(大愚守芝)의 상당
“덕산은 누군가 방장에 들어서면 곧바로 방을 휘둘렀고, 임제는 누군가 방장에 들어서면 할을 내질렀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삼문12)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30방을 때려 주어야 한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는가? 방과 할을 동시에 시행해도 이미 핵심에서 멀리 떨어진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모두들 칭찬하며 떠들썩하게 말이 많았다.13) 이 두 가지 길과 상관없이 무엇에 의지하여 말해야 할까? 남해의 시커먼 페르시아인이 하얀 상아를 진상한다.”
大愚芝, 上堂云, “德山, 入門便棒;臨濟, 入門便喝. 翠嵓卽不然. 三門前好與三十棒. 何謂如此? 棒喝齊施早已賖,
古今皆贊絶周遮. 二途不涉憑何說? 南海波斯進象牙.”
12) 三門. 절 가장 앞에 세운 정문. 산문(山門)이라고도 한다.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삼해탈문(三解脫門)에
빗대어 해탈에 이르기 위해 들어서는 문이라는 뜻을 상징한다.
13) 주차(周遮).조차(啁嗻)와 같은 말.
[설화]
삼문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30방을 때려 주어야 한다:방장까지 들어오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 말이 많았다:예나 지금이나 방과 할을 찬양하는 무리들이 많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떠들썩하게 말이 많다는 뜻이다. 절(絶)은 지극하다는 의미의 극(極)과 같은 말이다.
두 가지 길과 상관 없이 ~ 말할까:두 가지 길이란 방과 할이라는 두 가지 길을 말한다.
남해의 ~ 진상한다:어두움 속에 밝음이 있다는 뜻이다. ‘상아를 진상한다’는 말은 태평성대가 되면 나라 밖에서도 공물을 보내온다는 말이다.
大愚:三門前云云者, 何用入門來也. 古今皆讚云云者, 古今讚揚棒喝, 是周遮也. 絶極也. 二途不涉云云者,
二途謂棒喝二途也. 南海云云者, 暗中有明也. 進象牙者, 言致得大平, 海外輸貢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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