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7칙 덕산아야 德山啊 1)
1) 병들지 않는 자가 어떤지에 대하여 물었는데, ‘아야!’라는 고통의 소리를 내어 관문으로 제시한 공안이다.
이 ‘아야!’라는 소리는 병이 들었다는 관점으로도 파악할 수 없고, 병들지 않았다는 관점으로도 분별할 수
없는 ‘의미없는’ 소리 자체이다. 유사한 내용의 공안으로는 본서 351則「天皇快活」과 707則「洞山不病」이
있다.
[본칙]
덕산이 병이 들었을 때 어떤 학인이 물었다. “병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까?” “있다.” “병들지 않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아야! 아야!”
德山不安, 有僧問, “還有不病者也無?” 師云, “有.” 曰, “如何是不病者?” 師云, “啊 ! 啊 !”
[설화]
아야! 아야:병든 자임을 나타내는 소리이다. 병든 자를 벗어나서 따로 병들지 않은 자가 없다는 뜻이다.
啊 啊 者, 是病者也. 病者外無不病者也.
대각회련(大覺懷璉)의 송
병든 눈으로 보니 허공에서 꽃이 피지만,
맑고 맑아지면 무엇이 있고 또 무엇이 없을손가!
‘아야’ 하는 벼락 같은 소리의 뜻 아는가?
깨어나고 보면 원래 병든 몸은 없다네.
大覺璉頌, “翳目觀花起大虛, 澄澄何有復何無! 啊 一震還知否? 見覺元來不病軀.”
[설화]
병든 눈으로 ~ 꽃이 피지만:미혹되면 이와 같이 된다는 뜻이다. 그 아래의
구절들은 덕산이 말한 내용을 가리킨다.
大覺云云, 大虛者, 迷則如是也. 下言, 德山道得處也.
천복본일(薦福本逸)의 상당
천복본일이 병에서 회복한 뒤 법좌에 올라앉아 이 공안을 제기하고 대중에게 말했다. “작가종장2)은 말을 함부로 늘어놓지 않으니, 마치 활쏘기에 통달한 사람이 백 번 쏘아서 백 번 모두 적중시키듯이3) 그 말에 진실하고 딱 들어맞는 점이 있는 것이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지만 내가 본 경계를 여러분이 함께 알기 바란다. 참으로 병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 “있다”라고 대답하고, 다시금 “병들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가?”라 묻고는 또 스스로 “감기가 들어 콧물이 흐른다”라고 대답하고, “편히들 쉬게!”4)라 인사하였다.
薦福逸, 因病起, 上堂, 擧此話, 召大衆云, “作家宗匠, 語不浪陳. 如人解射, 百發百中, 信而有之. 然雖如是, 薦福見處,
也要諸人共知. 還有不病者也無?” 自云, “有.” “如何是不病者?” 自云, “傷寒鼻涕流.” “珍重!”
3) 백발백중(百發百中). 말이나 행동이 어느 것이나 모두 본분에 들어맞아 어긋남이 없다는 뜻을 비유하는 말.
“초나라에 양유기(養由基)라는 사람은 활쏘기를 잘했다. 버드나무 잎으로부터 백 보 거리에서 쏘아도 백 번
쏘아서 백 번 모두 적중했다.”(『戰國策』 「西周策」.楚有養由基者,善射.去柳葉者百步而射之,百發百中.)
4) 진중(珍重). 헤어지면서 나누는 일상적인 인사. 자신을 보배처럼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 담겨 있는 말. 만났을
때 하는 인사말인 ‘불심(不審)’과 대칭되는 말.『大宋僧史略』권상「禮儀沿革」大54 p.239a9에도 같은 뜻이
보인다. “떠나면서 ‘진중’이라 하는 말은 어떤 뜻인가? 이 말은 상견을 마치고 생각을 주고받은 다음 ‘진중’이라
당부하는 말로서 ‘더욱 자신을 잘 지키고 소중히 하라’, ‘더욱 스스로 아끼기를 바란다’, ‘편히 쉬어라’, ‘자신을
지키고 아끼라’는 등의 말과 같다.”(臨去辭云珍重者何? 此則相見旣畢, 情意已通, 囑云珍重, 猶言善加保重,
請加自愛, 好將息, 宜保惜, 同也.) 『釋氏要覽』 권중 大54 p.278c5에 따르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떠날때는 ‘진중’이라고 하지 않고 단지 합장하고 머리를 숙여 경의를 나타내면 된다고 한다.
[설화]
감기가 들어 콧물이 흐른다:온몸에 병이 들었다는 뜻이다.
薦福:傷寒鼻涕流者, 全是病也.
설봉료의 거
“덕산이 입적할 즈음에 병의 조짐을 보이고 ~ ‘아야! 아야!’라고 했을 때5) 학인들이 아무 말이 없자 덕산이 말했다. ‘허공을 더듬고 메아리를 따라다니며 그대들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다가 꿈에서 깨면 그러한 노력이 틀렸다는 것을 알 것이니, 결국은 어떤 할 일이 남아 있겠는가!’ 이 말을 마친 뒤 편안히 좌선한 채로 입적하였다.” 설봉료가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안타깝구나! 덕산은 평상시에 학인들이 방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빗방울 치듯이 무수하게 방(棒)을 휘둘렀는데, 임종 무렵에 이르러 학인들에게 대답을 강요받고는 할 말조차 잃어버렸다. 비록 이렇다고는 하지만 소리 높여 ‘아야! 아야!’ 하고 내지른 소리는 도대체 어떤 병의 고통 때문에 나온 것일까?”
雪峰了, 擧, “德山臨遷化示疾, 〈至〉啊 啊 , 僧無語, 山云, ‘捫空追響, 勞汝身心, 夢覺覺非, 竟有何事!’ 言訖安坐而逝.”
師拍膝云, “可惜許! 老漢, 平生見僧入門, 棒如雨點, 及乎臨行, 被人拶著, 忘了話頭. 雖然恁麽, 祗如高聲呌, ‘啊 !
啊 !’ 是是麽病痛?”
5) 여기까지는 본서에서 거론된 것이며, 이하는『景德傳燈錄』권15「德山宣鑒傳」 大51 p.318a24 등에 연속된
내용으로 수록되어 있다.
[설화]
덕산의 병을 밑바닥까지 밝혔다.
雪峰:明得德山病到底也.
보림본의 상당
보림본이 병에서 회복한 뒤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수일 동안 하찮은 병에 사로잡혀 대중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몸 자체가 괴로움의 근본이며 모든 병이 의지하는 소굴이어서 어떤 병이건 일단 발생하면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기억하건대6) ‘덕산 ~ 아야! 아야!’라 했다.” 이 공안에 대하여 평가하였다. “참으로 우습구나! 여러분들, 이 노장님이 평소에는 등줄기가 무쇠와 같이 단단하였는데,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앞뒤도 구분하지 못했다. 천고 이래로 사람들이 맛보지 못한 뜻을 이제 남들에게 주어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고 다시 광채를 빛나게 함으로써 서로들 멍청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하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문득 주장자를 잡고 “어디로 가느냐?”라 말한 뒤, 선상(禪床)을 쳤다.
寶林本, 因病起, 上堂云, “數日劣疾所拘, 不得與大衆相見. 然卽身爲苦本, 衆病攸依, 凡厥有生, 無能免者. 記得, ‘德山,
至啊 啊 ’” 師云, “好笑! 諸仁者, 這老漢, 尋常一條脊梁硬似鐵, 洎乎到此, 便乃忘前失後, 千古之下, 令人不甘.
如今欲與佗, 扭正頹綱, 令重生光彩, 免見遞相鈍置, 豈不快哉!” 乃驀拈拄杖云, “甚處去也?” 擊禪床.
6) 기득(記得). 공안을 제기할 때, 당사자가 직접 그것을 제기하여 말할 경우는 ‘기득’이라 하고, 제3자가 그 말을
받아 적을 경우는‘거(擧)’라 한다.
[설화]
주장자를 잡고 “어디로 가느냐?”라고 물은 말:‘어디서 더듬으며 찾느냐’라는 뜻이다.
寶林:拈拄杖云甚處去者, 向甚麽處摸 .
죽암사규(竹庵士珪)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다시 다음의 공안을 제기했다. 하루는 수곽시자(守廓侍者)가 덕산에게 물었다. ‘선대로부터 있었던 모든 성인들은 어느 곳으로 갔습니까?’ ‘무슨 말이냐, 무슨 말이야?’ ‘용과 같이 비상하는 날랜 말을 오라고 불렀는데, 절름발이 자라가 나오는군요.’ 죽암사규가 이 두 공안을 아울러 평가했다. “‘아야, 아야’와 ‘무슨 말이냐, 무슨 말이야’라고 한 말은 유사한 점이 전혀 없지만, 서로 차이점도 많지 않다.7) 남이 한 말이나 따라다니며 분별한다면8) 그대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는가? 백로가 눈 위에 있지만 눈과 같은 색이 아니며, 밝은 달과 달빛 아래 갈대꽃은 남남인 듯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9)” 마침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신 덕산이시여! 서로 유사한 구절만 말하셨구려. 그렇다면 유사하지 않은 구절은 어떤 것일까?10) ‘연꽃잎은 둥글둥글하여 거울과 같고, 마름잎은 뾰족뾰족하여 송곳과 다르지 않다. 버들개지에 바람이 부니 솜털씨앗[毛毬] 날리고 배꽃에 비가 내리니 나비가 날아간다.’11) 이것이 바로 유사하지 않은 구절이 아니겠는가!” 불자(拂子)를 내던지고 말했다. “칠통같은 사람들아, 승당에 들어가 참구하라!”
竹庵珪, 上堂, 擧此話, 又擧, 一日廓侍者問德山, ‘從上諸聖, 向什麽處去?’ 山云, ‘作麽? 作麽?’ 廓云, ‘敕點飛龍馬,
跛鼈出頭來.’ 師云, “阿耶阿耶, 作麽作麽, 絶相似, 不爭多. 馬後驢前奈你何? 鷺鷥立雪非同色, 明月蘆花不似佗.”
遂大笑云, “大小老禪! 也只道得箇相似句, 如何是不相似句? 荷葉團團團似鏡, 菱角尖尖尖似錐. 風吹柳絮毛毬走,
雨打梨花蛺蝶飛. 莫便是不相似句麽!” 擲下拂子云, “漆桶, 參堂去!”
7) 말의 형식으로 보면 전혀 공통점이 없지만, 두가지 모두 몰자미(沒滋味)한 화두라는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뜻.
8) 마후여전(馬後驢前). 말의 뒤와 나귀 앞을 졸졸 따라다닌다는 말. 말과 나귀의 고삐를 잡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끌고 다니며 시중을 든다는 뜻으로, 남의 말과 견해를 추종하며 그것에 좌우되어 자신의 주견을 잃고 진실도
모른다는 말이다. “동산이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법명이 무엇인가?’ ‘아무개입니다.’ ‘어떤 것이 아사리의
주인공인가?’ ‘보십시오! 지금 대답하고 있는 중입니다.’ ‘괴롭다, 괴로워! 오늘날의 사람들은 다들 이와 같이
단지 남들의 말만 따라 하는 것을 참된 자기라고 잘못 알고 있다. 불법이 평지에서 가라앉았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손님 중의 주인도 분별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주인 중의 주인을 알 수 있겠는가?’”(『洞山語錄』
大47 p.511c22. 師問僧, ‘名什麽?’ 僧云, ‘某甲.’ 師曰, ‘阿那箇是闍黎主人公?’ 僧云, ‘見! 祇對次.’ 師曰, ‘苦哉,
苦哉! 今時人, 例皆如此, 只是認得驢前馬後底, 將爲自己.佛法平沈,此之是也.賓中主,尙未分,如何辨得主中主?’)
9)『大慧語錄』권15 大47 p.876a21에 따르면, 앞의 구절은 ‘동일한 것 중에 다른 것(同中有異)’이고, 뒤의 구절은
‘다른것 중에 동일한 것(異中有同)’이다.
10) 서로 유사한 구절과 유사하지 않은 구절이라고 설정한 대립 자체가 하나의 화두이다. 죽암은 덕산의 ‘아야’와‘
무슨말이냐’라고 하는 두종류의 말을‘서로 유사한 구절’에 배치했지만, 그것을 유사하지 않은 구절로 다시
환기시켜 화두로 만든 것이며 반드시 유사한 구절에 귀착된다는 뜻은 아니다. ‘유사하지 않은 구절’을 끌어들여
‘유사한 구절’이라는 관념을 해체하고, 더 나아가 ‘유사하지 않은 구절’ 자체도 해체하는 방식이다. 어떤 경우도
주석7)에 제시된 몰자미(沒滋味)의 취지에 따른다.
11)『書狀』「答林判院」大47 p.936b22.
[설화]
‘아야, 아야’와 ‘무슨 말이냐, 무슨 말이야’라 한 말은 서로 유사한 구절이라는 뜻이다.
대단하신 덕산이시여 ~ 나비가 날아간다:유사하지 않은 구절 그대로가 유사한 구절이라는 뜻이다.
불자를 내던지고 한 말:서로 유사한 구절을 듣고도 유사한 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거나 서로 유사한 점이 전혀 없는 구절을 듣고도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칠통이라는 말이다.
竹庵:啊 啊 , 作麽作麽者, 相似句也. 大小老禪至蝶飛者, 不相似句, 卽相似句也. 擲下拂子云云者, 聞相似句,
而便謂絶相似也, 絶相似, 而便謂相似, 是柒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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