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8칙 동산체득 洞山體得
[본칙]
동산이 대중에게 “부처 이상으로 넘어서는 경지를 체득한 사람이라야 비로소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때 어떤 학인이 “부처의 경지 이상으로 넘어선 사람이란 어떤 뜻입니까?”라고 묻자 동산이 “부처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洞山, 垂語云, “體得佛向上人, 方有說話分.” 時有僧問, “如何是佛向上人.” 師云, “非佛.”
[설화]
부처의 경지 이상으로 넘어선 사람:주인 중의 주인이며,1) 모든 위계 차별을 벗어난 참 사람[無位眞人]2)이 바로 그이다.
부처 이상으로 ~ 자격이 있다:어떤 문답을 나누건 결함이 없고 그 맥락을 모두 안다는 뜻이다. 다만 (사람들이 빠져 있는) 어삼루3)를 꿰뚫을 목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뿐이다.
부처가 아니다: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으로 나타낼 수도 없으니, 딱 들어맞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佛向上人者, 主中主, 無位眞人, 是也. 體得至說話分者, 但有問答不虧欠, 摠識伊來處. 只爲透得語滲漏,
不疑天下人舌頭故也. 非佛者, 名不得狀不得, 不可的言也.
1) 주중주(主中主).부처가 되었건 조사가 되었건 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므로 부처의
경지조차 넘어선 사람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가 손님과 주인의 관계를 네 구절로 제시하여 종지를 나타낸
사빈주(四賓主) 중 하나이다. 주인중의 주인·주인중의 손님[主中賓]·손님중의 주인[賓中主]·손님 중의
손님[賓中賓] 등을 말한다. 『洞上古轍』 권상「洞山賓主句」卍125 p.718a8 참조. “‘주인 중의 주인이란 어떤
것입니까?’ ‘홀로 앉아(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세계에 군림한다.’”(『續傳燈錄』권3「瑯琊慧覺傳」大51
p.484b29. 曰, ‘如何是主中主?’師曰, ‘獨坐鎭寰宇.’)
2) 무위진인(無位眞人). 임제의현(臨濟義玄)의 말. 『臨濟語錄』 大47 p.496c10 참조. ‘무위’란 자리잡은 지위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상하의 어떤 지위에도 속박되지않고 응하는 자유자재한 기틀을 형용하는 말이다.
3) 語滲漏. 동산양개가 세운 동산 3삼루 중 하나. 나머지 두 가지는 견삼루(見滲漏)·정삼루(情滲漏)이다.
수행자들이 빠지기 쉬운 번뇌[滲漏]의 속박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학인들을 점검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어삼루란 부처님이나 조사의 말씀이 진리를 깨닫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문자로 표현된 구절을
해명하는데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가리킨다. “말법시대에는 메마른 지혜[乾慧]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지혜가 참인지 거짓인지 점검하고자 하는가? 세 종류의 삼루가 있다. 첫째는 견삼루이다.
마음의 기틀이 확정된 자리[位]를 벗어나지 못하여 독해(毒海)에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둘째는 정삼루이다.
앞으로 가거나 뒤로 돌아서거나 어느 한편에 막혀서 보는 안목이 치우친 것을 말한다.셋째는 어삼루이다.
말에서 묘한 이치를 궁구하다가 종지(宗旨)를 잃어버리고 마음의 기틀이 근본과 지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도를 배우는 자들이 탁한 지혜에 휩쓸리면 이 세 부류의 번뇌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洞山語錄』大47 p.513c9. 末法時代, 人多乾慧, 若要辨驗眞僞?
有三種滲漏. 一曰, 見滲漏. 機不離位, 墮在毒海. 二曰, 情滲漏. 滯在向背, 見處偏枯. 三曰, 語滲漏. 究妙失宗,
機昧終始. 學者, 濁智流轉, 不出此三種, 子宜知之.);“세 번째 어삼루는 말에서 묘한 이치를 궁구하다가
종지를 잃어버리고 마음의 기틀이 근본과 지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과 구절에 막혀서 종지를
잃어버리고, 언전삼매(言詮三昧)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눈앞의
정황에 어둡고 종지를 원만히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반드시 말이 있는 중에 말이 없는 도리와 말이 없는
중에 말이 있는 도리에 통달하여야 진리를 드러내는 미묘한 소리의 은밀하고 원만한 내용을 터득할 수
있다.”(『五家宗旨纂要』 권중 卍114 p.540a16. 三, 語滲漏. 究妙失宗, 機昧終始. 謂滯在語言句失宗旨,
不能於言詮三昧下轉身. 所以, 當機暗昧, 宗旨不圓. 須是通有語中無語, 無語中有語,乃得妙音密圓.)
운문문언(雲門文偃)의 염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으로 나타낼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부처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雲門偃拈云, “名不得, 狀不得. 所以言非.”
[설화]
만일 부처 이상의 경지로 넘어선 사람이라면 어떤 속성이라고 딱 들어맞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雲門:若是佛向上人, 則不可的言某物故也.
법안의 염
“방편상 부처라고 부를 뿐이다.”
法眼拈云, “方便呼爲佛.”
[설화]
부처라는 말이 방편인 줄 안다면 실제로 집착할 여지가 없으며, 실제로 집착할 여지가 없다면 더 이상 향상하고자 해서 무엇 하겠느냐는 뜻이다.
法眼:知佛是方便, 則無實執處. 無實執處, 則更要向上作麽?
천동정각(天童正覺)의 거1
어떤 학인이 동산에게 ‘부처 이상의 경지로 넘어선 사람이란 어떤 뜻입니까?’라고 물음에 동산이 ‘부처가 아니다’라고 대답한 문답을 제기하고 말했다. “동산이 이렇게 말한 것은 단지 가풍을 확고하게 움켜잡아 물 한방울도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보고 듣는 것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게 한 것이니, 마음과 그 마음을 드러내는 자취까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모든 변화에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싫증나지 않도록 하여야 청룡이 허물을 벗고 속뼈를 드러내며 봉황이 새끼를 낳는 경지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에 통하는 도리를 말해야 할까? 알겠는가? 맑은 바람은 노를 저음에 따라 더욱 충만해지고, 밝은 달은 배를 쫓아온다.”
天童覺, 擧僧問洞山, ‘如何是佛向上人?’ 山云, ‘非佛.’ 師云, “洞山恁麽道, 直是把斷家風, 不通水泄, 見聞匪及, 心迹俱消.
到這裏, 却須通其變, 使人不倦, 直得蒼龍蛻骨, 玉鳳生雛. 且作麽生說个通變底道理? 還會麽? 淸風隨棹滿, 明月逐舟來.”
천동정각의 거2
이 공안과 더불어 법안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두 노숙4)들이 한 말은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가? 조(刁)와 도(刀)라는 두 글자는 같은 글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고, 어(魚)와 노(魯)라는 두 글자는 겉모양으로도 차이가 매우 심한 것을 어찌하랴! 이 경계에 이르면 반드시 겁(劫)을 벗어난 기틀을 움직이고, 바람 앞에서 화살을 쏘며, 온몸을 던져 짊어지고, 손에 든 모든 것을 놓고 알아차리며, 이런 종류의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이 말뜻을 분별할 수 있겠는가? 눈 속에 섞인 밀가루는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검은 먹 속에 묻은 그을음은 가려내기 어렵다.”
又擧此話, 連擧法眼拈云, “二老宿, 相去多小? 直是刁刀相似, 奈何魚魯參差! 到者裏, 須是轉劫外機, 放風前箭, 橫身擔荷,
撒手承當, 具者般眼目, 始得. 還辨得麽? 易分雪裏粉, 難辨墨中煤.”
4) 老宿. 노년숙덕(老年宿德)의 줄임말로 장로(長老)·존숙(尊宿) 등과 같은 뜻이다.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스님을 말한다. “체비리( sthavira, thera)는 노숙이라 한역한다.”(『飜譯名義集』권1 大54 p.1074c14.體毘履,
此云, 老宿.)
[설화]
두 노숙들:운문과 법안이다.
조(刁)와 도(刀)라는 두 글자는 ~ 어찌하랴: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같지 않다는 뜻이다.
겁을 벗어난 기틀을 움직이고, 온몸을 던져 짊어진다:운문의 뜻을 이해했다는 뜻이다.
바람 앞에서 화살을 쏘고, 손에 든 모든 것을 놓고 알아차린다:법안의 뜻을 이해했다는 뜻이다.
눈 속에 섞인 밀가루는 ~ 가려내기 어렵다:결국은 두 가지를 가려낼 수 없다는 말이다.
天童又擧:二老宿者, 雲門法眼也. 刁刀相似云云者, 似而不似也. 轉劫外機, 橫身荷擔者, 會雲門意也. 放風前箭,
撒手承當者, 會法眼意也. 易分雪裏云云者, 畢竟分辨不得也.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시중
이 공안과 더불어 운문문언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두 존숙이 이렇게 제기한 부처의 경지 이상으로 넘어서는 일은 느슨하기 짝이 없다. 나의 문하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부처의 경지 이상으로 향상하는 일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주장자를 끌어다가 등골을 곧바로 때려서 질문한 자가 부처의 경지 이상으로 넘어선다는 관념에 뿌리를 내리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雲門杲, 示衆, 擧此話, 連擧雲門拈, 師云, “二尊宿, 恁麽提持佛向上事, 且緩緩. 這裏卽不然. 如何是佛向上事? 拽拄杖,
劈脊便打, 免敎伊在佛向上垜根.”
[설화]
송원의 뜻과 같다.
雲門:松源意同也.
송원의 상당
이 공안과 더불어 대혜종고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운문의 말은 훌륭하지만 못을 박고 아교까지 붙여 놓은 것과 같았다.
松源, 上堂, 擧此話, 連擧雲門拈, 師云, “雲門好語, 未免釘釘膠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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