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780칙 설봉종승 雪峰宗乘

실론섬 2026. 4. 21. 17:29

780칙 설봉종승 雪峰宗乘

​[본칙]

​복주 설봉산의 의존선사가 덕산에게 물었다. “선대로부터 이어져 온 근본적인 가르침1)을 추구하는 일2)에 대한 능력이 저에게도 있습니까?” 덕산이 한 대 때리면서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 설봉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다음 날 다시 가르침을 청하자 덕산이 말했다. “우리 선종에는 어떤 언어의 구절도 없고, 진실로 남에게 전해 줄 법이라곤 하나도 없다.” 설봉이 이 말을 듣고 깨우친 것이 있었다. 훗날 어떤 학인이 설봉에게 물었다. “화상께서는 덕산을 만나고 무엇을 터득하여 번뇌망상을 쉬었습니까?” “나는 빈손으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福州, 雪峯山, 義存禪師, 問德山, “從上宗乘中事, 學人還有分也無?” 山打一棒云, “道什麽?” 師不會, 至明日請益, 山云, 
“我宗無語句, 實無一法與人.” 師因此有省. 後有僧問師, “和尙見德山, 得个什麽, 便休去?” 師云, “我空手去空手歸.”
1) 종승(宗乘). 달마 이래로 이어져 온 선종의 근본 취지. 선(禪)의 궁극적 경지로 실어 나르는[乘] 종지를 가리킨다.
2) 본분사(本分事)와 같은 뜻.

[설화]

선대로부터 이어져 온 근본적인 가르침:앞서 풀이한 뜻과 같다.
한 대 때리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라고 한 말:한 자루 생짜의 몽둥이3)를 말한다.
우리 선종에는 어떤 언어의 구절도 없고 ~ 하나도 없다:스승이 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빈손으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나 또한 얻은 것이 없었다.
從上宗乘, 已如前釋. 打一棒云道什麽者, 一條白棒也. 我宗無語句云云者, 非師相授與也. 我空手去云云者, 我亦無所得也.
3) 일조백방(一條白棒).본서672則 주석2)·3)참조.

보령인용(保寧仁勇)의 송

이 병4) 불러들인 뒤 수많은 시간 동안,
의사 찾아 까닭 묻고 많은 스승 만났네.
짙게 달여 한 번 먹고 온몸에 퍼지니,5)
사지 전체에 피와 땀 비 오듯 흐른다.
〈‘선대로부터 이어져 온 근본적인 가르침’이라는 구절부터 ‘이 말을 듣고 깨우친 것이 있었다’라는 구절까지에 대해 읊은 송〉
保寧勇頌, “此疾懷來6)沒量時, 尋醫求卜過多師. 濃煎一服通身散, 血汗雱流徹四肢.” 〈頌從上宗乘下, 至因此有省.〉
4) 설봉이 깨우치기 이전에 미혹된 상황을 비유한다. 스승을 찾아다니며 도를 물었던 꼴이 마치 병이 들어 의사와 
   약을 찾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5) 온몸에 사무치게 느껴졌던 덕산의 말이 치료의 묘약과 같았다는 뜻
6) 회래(懷來).‘懷徠’라고도 하고 초래(招來)와 같은 말.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송

분명히 보노니 낱낱의 현상 어느 것도 없지만,7)
없다는 이 말만은 공허하지 않구나.
고개 돌려 없음도 없는 길조차 짓밟아버려야,
비로소 되돌아와 중간쯤 이르렀다 인정하리라.
〈‘빈손으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구절에 대하여 읊은 게송이다.〉
心聞賁頌, “見了分明事事無, 此無且不是空虛. 廻頭踏斷無無路, 方許歸來到半途.” 〈頌空手去空手歸.〉
7) 덕산이 두번에 걸쳐서 ‘없다’고 한 말을 나타낸 구절.

​[설화]

​없음도 없는 길:(전해 줄 하나의 법도) 없다는 것 또한 없다.
짓밟아버려야:없음까지 짓밟아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앞에서 ‘공허하지 않구나’라고 한 말은 없음도 없는 길을 나타낸다. 여
기서 깨우침이 있었으므로 길 중간에 이른 것과 같다.
心聞:無無路者, 無亦無也. 踏斷者, 無亦踏斷也. 前虛空卽無無路也. 於此有省故, 猶在半途.

암두의 평

암두가 ‘설봉이 덕산에게 물었다’라는 구절부터 ‘이 말을 듣고 깨우친 것이 있었다’라는 구절까지 듣고 말했다. “당두노인8)의 쭉 뻗은 등골뼈는 무쇠와 같이 단단하지만 가르침을 펼치는 문 중에서 보면 여전히 조금 모자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복이 이 말을 집어내어 초경(招慶)에게 물었다. “암두의 경우 평상시에 어떤 가르침을 가지고 있었기에 덕산을 넘어 선 듯이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대는 암두가 ‘마치 활쏘기를 배운 지 오래되면 과녁을 맞히는 것과 같다’라고 한 말을 모르는가?” “맞힌 다음에는 어떻습니까?” “전사리!9)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화상이시여, 오늘 단지 화두를 들려주신 것만이 아니시로군요.” “사리여, 그 말의 속뜻10)은 무엇인가?” 그 뒤 명초가 이 문답을 전해 듣고 말했다. “대단한 초경이여! 이름과 말에서 착각을 일으켰도다.”
嵓頭聞, 雪峯問德山, 至因此有省, 師云, “堂頭老人, 一條脊梁骨, 硬似鐵, 於唱敎門中, 猶較些子.” 尋後, 保福拈問招慶, 
“祗如嵓頭, 平生有什麽言敎, 過於德山, 便與麽道?” 慶云, “汝不見, 嵓頭道, ‘如人學射久久中的.’” 福便問, “中後如何?” 
慶云, “展闍梨! 莫不識痛痒?” 福云, “和尙, 今日非唯擧話.” 慶云, “闍梨, 是什麽心行?” 後明招聞擧云, “大小招慶!
錯下名言.”
8) 堂頭老人. 한 절에서 대중을 이끄는 우두머리인 주지(住持). 당상(堂上) 또는 당두화상(堂頭和尙)이라고도 
   한다. ‘당두’ 자체가 그러한 뜻으로 쓰이며, 동시에 주지의 거실 곧 방장실(方丈室)을 가리키기도 한다.
9) 展闍梨. ‘전’은 보복(保福)의 법명인 종전(從展)을 가리키며, ‘사리’는 아사리(阿闍梨)의 줄임말이다. 이곳과 
   같이 선문헌에서 ‘사리’는 제자에 대한 경칭(敬稱)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아사리( ācārya, ācariya)는 
   학인들의 모범이 되어 이끌어 줄 수 있다는 뜻으로 궤범사(軌範師)·도사(導師)등이라 한역한다.
10) 심행(心行).마음의 기미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 속뜻은 드러나지 않은 것.

​[설화]

초경의 생각은 암두의 의중을 북돋아 드러냈고, 명초는 덕산의 의중을
북돋아 드러낸 것이라는 뜻이다. 덕산이 이렇게 한 말은 하나는 얻었지만
다른 하나는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巖頭:招慶意, 扶現巖頭, 明招則扶現德山. 德山伊麽道, 一則得, 一則不得也.

단하자순(丹霞子淳)의 거

​‘우리 선종에는 어떤 언어의 구절도 없고, 진실로 남에게 전해 줄 법이라곤 하나도 없다’라고 한 덕산의 말을 제기하고 말했다. “덕산이 이렇게 한 말은 ‘단지 우거진 풀 속에 들어가 사람을 구할 줄만 알았지 온몸에 흙탕물을 뒤집어 쓴 것은 몰랐다’고 할 만하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하나의 눈만 갖춘 것에 불과했다.11) 만일 나였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선종에는 언어의 구절이 있는데, 칼로 자르려 해도 쪼개지지 않는다.12) 대단히 깊고 아득하고 미묘한 뜻이 있으니, 아리따운 여인이 밤중에 아기를 배었노라.13)”   
丹霞淳, 擧德山云, ‘我宗無語句, 亦無一法與人.’ 師云, “德山恁麽說話, 可謂只知入草求人, 不覺通身泥水. 子細觀來, 
只具一隻眼. 若是丹霞, 則不然. 我宗有語句, 金刀剪不開. 深深玄妙旨, 玉女夜懷胎.”
11) 덕산은 언어의 구절이 ‘없다’는 측면만 말하여 ‘있다’고 하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보는 눈은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12) 날카로운 분별의 수단을 사용해도 그 뜻이 드러나지 않는 철벽과 같은 화두를 나타낸다.선종에서 제기되는 
    모든 언어의 본질을 나타낸다.
13) 분별할 수 없는 언어의 구절을 비유적으로 제시했다. 깊고 아득하고 미묘한 뜻은 아직 드러나지 않아 형상을 
    알 수 없는 배속의 아기와 같다는 뜻에서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설화]

우리의 선종에는 언어의 구절이 있는데 ~ 아리따운 여인이 밤중에 아기를 배었노라:말이 없는 그 자리에 말이 있다는 뜻이며, 또한 ‘언어의 구절이 없다’는 말에 이치가 들어 있음을 나타낸다.   
丹霞:我宗有語句, 至夜懷胎者, 無語中有語也, 亦有無語句之義也.

오조법연(五祖法演)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나는 오늘 아직 이 공안을 뚫지 못한 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동경(東京:洛陽)에서 온 두 사람에게 ‘어디서 왔습니까?’라고 묻자 그들이 ‘소주(蘇州)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그들에게 ‘소주의 일은 어떠합니까?’라고 묻자 ‘모든 것이 보통 그대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비록 이렇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나를 속이지는 못했다. 왜 그런가? 단지 동경과 소주의 말소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14) 궁극적인 뜻은 어떤 것일까? 소주의 마름꽃이요, 소백의 연뿌리로다.”   
白雲演, 上堂, 擧此話云, “白雲今日, 說向透未過者. 有兩个人, 從東京來, 問, ‘伊什麽處來?’ 他却道, ‘蘇州來.’ 便問伊,
‘蘇州事, 如何?’ 伊道, ‘一切尋常.’ 雖然如是, 謾白雲不過. 何故? 只爲語音各別. 畢竟如何? 蘇州菱, 邵伯藕.”
14) 소주에서 왔다고 대답은 했지만 동경의 말투였기 때문에 동경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뜻이다. 겉으로 
    한 말과 진실이 다른 경우처럼 덕산과 설봉의 말에 속아서는 안되고 그 말에 숨은 뜻을 읽어야 한다는 비유이다.

​[설화]

백운이 ‘두 사람’이라 한 것은 덕산과 설봉을 비유한 말이다. 그 아래에서 한 말들은 덕산이 그렇게 말했고 설봉은 그렇게 깨달았다고 하지만, 득과 실을 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15) 두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그렇게 (드러난 이야기대로) 받아들고 마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백운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소주의 마름꽃이요, 소백의 연뿌리로다:내용은 상세히 알 수 없다. 아마도 ‘비록 소주에서 왔다고 말은 하지만 소주의 일을 모른다’16)라는 뜻으로 추정된다. ‘소’는 ‘시’와 ‘조’를 반절한 음이며, 사람의 성씨17)이다. 소백우는 연못 이름이다.   
白雲:有兩箇人者, 喩德山雪峯也. 下云云, 德山伊麽道, 雪峯伊麽悟去, 得失難定也. 恐有人不會兩家意, 只伊麽去故, 
伊麽道. 蘇州菱邵伯藕者, 未詳. 意謂雖道蘇州來, 不知蘇州事也. 邵, 市照切, 人姓也. 邵伯藕, 池名也.
15) 덕산과 설봉이 말한 것과 깨달았다는 부분에 대하여 표면적인 이야기 그대로를 수용하여 뜻을 확정할 수 
    없다는 말.
16) 소주는 마름꽃이 피기로 유명하고 그곳에 있는 소백이라는 연못은 연뿌리로 잘 알려져 있는데,소주에서 
    왔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모른다는 뜻으로 해설했다.
17)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인 소공석(邵公奭)의 후손들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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