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782칙 설봉해탈 雪峯解脫

실론섬 2026. 4. 21. 17:37

782칙 설봉해탈 雪峯解脫

​[본칙]

설봉이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시방세계 전체가 곧 해탈문인데 손을 잡고 끌어도 들어오려 하지 않는구나.” 그때 한 학인이 나아와 말했다. “화상께서는 제가 들어갈 수 없다고 의심하시는군요.” 또 다른 학인 하나가 “들어간들 무엇 하겠습니까!”라고 하자 설봉이 바로 때렸다.   
雪峯, 示衆云, “盡十方世界, 是解脫門, 把手拽伊, 不肯入.” 時, 一僧出云, “和尙, 怪某甲不得.” 一僧云, “用入作什麽!” 師便打.

​[설화]

​시방세계 전체가 ~ 들어오려 하지 않는구나:‘시방세계 전체가 한 알의 밝은 구슬1)이다’라는 말과 같다. ‘화상께서는 제가 들어갈 수 없다고 의심하시는군요’라고 한 것은 이미 들어와 있다는 말이고, ‘들어간들 무엇 하겠습니까’라고 한 것은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이니, 이 두 학인 사이에는 금시와 본분2)의 차이가 있다.  
설봉이 바로 때렸다:엄정한 법령을 반드시 시행한다는 뜻이다. 나중에 말한 학인뿐만 아니라 먼저 말했던 학인도 마땅히 맞았어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화상께서는 제가 들어갈 수 없다고 의심하시는군요’라고 한 학인은 설봉의 뜻과 같았기 때문에 때리지 않은 것이고, ‘들어간들 무엇하겠습니까’라고 한 학인은 설봉을 수긍하지도 않았고 설봉의 뜻을 이해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때린 것이다. 설봉이 만일 (두 번째로 말한) 학인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한평생 굴욕을 당했을 것이다. 말해 보라, 설봉의 뜻은 무엇인가?
盡十方世界云云者, 如云盡十方世界, 是一顆明珠也. 和尙怪某甲不得者, 早已入也;用入作什麽者, 不入也. 此兩僧, 
是今時本分也. 便打者, 正令當行. 非但此僧, 前頭僧, 也須被打耶? 不然. 怪某甲不得者, 與和尙意一般故, 不打也;
用入作什麽者, 不肯雪峯, 却不會雪峯意故, 便打. 雪峯, 若不得這僧, 一生受屈. 且道, 雪峯意作麽生?
1) 명주(明珠).마니(摩尼 mani)를 그 성격에 따라 여러가지로 분류한 것 중 하나. 특히 밝은 달과 같은 빛을 가진 
   마니를 가리킨다. 명월주(明月珠), 명월마니(明月摩尼) 등이라고도 한다.이것은 사람들이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둥글고 원만하여 어떤 결함도 없으며, 겉과 속의 구별이 없이 영롱하기 때문에, 불성·정법·진여·청정한
   계율·대승경전등에 비유된다.
2) 금시와 본분에 대해서는 본서165則 주석2) 참조.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염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만 구제받았다. 만약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평지에 몇 사람이나 남아 있을 것인가.”
雪竇顯拈, “三箇中, 有一人受救在. 忽若摠不辨明, 平地上有甚數.”

[설화]

​한 사람만 구제받았다:설봉에게 맞은 학인을 가리킨다.
만약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 남아 있을 것인가:만약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설봉도 아주 잘못이 없지는 않다는 말이다.
雪竇:一人受救者, 後頭被打僧也. 忽若云云者, 若不辨明, 雪峯, 亦不得無過也.

운거요원(雲居了元)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대단하신 설봉이여, 알고도 고의로 범하였구나. 이 일을 점검해 낼 자가 있다면 두 학인을 구제하여 밥통 옆에서 굶어 죽는 꼴3)은 면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雲居元, 上堂, 擧此話云, “大小雪峯, 知而故犯. 有人檢點得出, 救取兩僧, 免見飯籮裏飽4)死.”
3) 설봉의 말을 활용하여 해설한 것이다. “설봉이 ‘밥 짓는 통 옆에 앉아서 굶어죽은 사람이요, 강가에서 목말라 
   죽은 사람과 같구나’라 한말과 현사가 ‘밥통 속에 앉아 굶어죽은 사람이요,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목이 말라 
   죽은 사람이다’라 한 말을 제기하고 운문이 말하였다. ‘온몸이 밥이요, 온몸이 물이다.’”(『雲門廣錄』권 중 大47 
   p.556c29. 擧雪峯云, ‘飯籮邊坐餓死人, 臨河渴死漢.’ 玄沙云, ‘飯籮裏坐餓死漢, 水裏沒頭浸渴死漢.’ 師云, 
   ‘通身是飯, 通身是水.’);“근세에는 모두 ‘도가 아닌 것이 없다’라고 말들은 하지만 비유하자면 밥 짓는 통 
   주변에 앉아 아무리 밥에 대하여 말을 하여도 끝내 배가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직접 밥을 먹지 않기 때문이니, 
   진실로 증득한 자에게는 먹는 주체와 먹는 대상으로서의 밥 사이에 전혀 차별이 없다. 별도로 깊은 도리가 
   있는 것은 아니며,평상시에 매일 써먹는 그 자체일 뿐이다.”(『佛眼語錄』 고존숙어록34 卍118 p.603a11. 
   近世皆曰, ‘無不是道.’ 譬如飯籮邊坐說食, 終不能飽. 爲不親下口也, 證者絶能所也. 非別有玄理在, 
   尋常日用處.)
4) ‘飽’는‘餓’의 오식.

[설화]

알고도 고의로 범하였구나: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이 오만하게 행동하였으나 빠져나갈 길은 있었다는 뜻이다.
이 일을 점검해 낼 자가 있다면 ~ 면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설봉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해탈문 안에서 조금도 운신할 수 없었으리라는 뜻이다.
雲居:知而故犯者, 傍若無人也, 有出身之路也. 救取云云者, 若不會雪峯意, 解脫門裏, 動誕不得也.

해인초신(海印超信)의 염

“남의 쌀 한 말을 탐내다가 반년 먹을 식량을 잃어버렸다.”5)
海印信拈, “貪他一斗米, 損却半年粮.”
5) ‘남의 좁쌀 한 톨을 탐내다가 반년 먹을 식량을 잃어버렸네’(貪他一粒粟, 失卻半年糧.), ‘남의 술 한 잔을 탐내다가 
   물고기 가득한 배를 잃어버렸네’(貪他一盃酒, 失却滿船魚.)라는 등으로도 표현된 예도 있다.

[설화]

두 번째 학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海印:謂後頭僧也.

천령허조(天寧虛照)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저 늙은이가 쓸데없이 허다한 기운을 써서 무엇 하려는 것인가?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니, ‘빽빽하게 우뚝 솟은 뜰 앞의 잣나무 사이로 때마침 조각구름 떠다니네’라고 말하리라.”
天寧照, 上堂, 擧此話云, “這老漢, 費許多氣力, 作什麽? 崇寧則不然, 森森聳翠庭前栢, 時見斷雲飛去來.”

[설화]

빽빽하게 우뚝 솟은 ~ 조각구름 떠다니네:가거나 오거나 무방하다는 뜻이다.
天寧:森森云云者, 不妨有去有來也.

삽계일익(霅溪日益)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여러분, 그 학인이 들어오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만두고, 설봉이 한 말이 문 밖의 말인지 문 안의 말인지 말해 보라. 두루 참구하는 안목을 갖춘 자가 있다면 한번 살펴볼 일이다. 간파해 낸다면 오석령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겠지만6)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3천 리 밖에서 고향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나 바라보아야 하리라.”   
霅溪益, 上堂, 擧此話云, “諸仁者, 這僧不入卽且置, 你道, 雪峯, 是門外語, 門內語. 具遍叅眼底, 試定當看. 若定當得, 
許你向烏石嶺相見;苟或未明, 且向三千里外望鄕關.”
6) 설봉의 다음 말에 기초한다. “설봉이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망주정에서 그대들을 만나보았고, 오석령에서 
   그대들을 만나보았으며, 승당 앞에서 그대들을 만나보았다.’<보복이 아호에게 물었다. ‘승당앞에서 만나 
   보았다는 것은 그만두고 망주정과 오석령에서 어떻게 서로 만나보았다는 말입니까?’ 아호는 재빠른 걸음으로 
   방장으로 돌아가버렸고 보복은 바로 승당으로 들어가버렸다.>”(『雪峰語錄』 권하 卍119 p.968b12. 師示衆云, 
   ‘望州亭與儞相見了也, 烏石嶺與儞相見了也, 僧堂前與汝相見了也.’<保福問鵞湖, ‘僧堂前且置, 
   望州亭烏石嶺什麽處相見?’ 鵞湖驟步歸方丈, 保福便入僧堂.>) 망주정이나 오석령이나 승당이나 모두 설봉산에 
   있는 장소일 뿐 특별한 어떤 곳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나 언제든 만나 볼 수 있는데에 있다는 말이다. 
   이 세 곳에서 만나보았다는 것은 특정한 누가 특정한 누구를 만나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만난 것도 만나게 된 
   것도 없는 모든 대대(待對)가 끊어진 만남을 말한다.

​[설화]

문 밖의 말인지 문 안의 말인지 말해 보라:안과 밖이 따로 없다는 뜻이다. 
오석령에서 만났다:여기서 오석령이란 해탈문과 같은 뜻이다.
霅溪:是門外語云云者, 無內外也. 烏石嶺相見者, 烏石嶺, 是解脫門意同也.

​승천회의 상당

​“지금 당장에 알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지혜의 빛을 돌이켜 자신의 본분사를 알 일이며 남들 말에 속지 마라.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하루 어느 시각에나 갖가지로 행하는 행위 가운데 해탈 아닌 것이 없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하나마다 얽매이고 곳곳에서 물들지 않을 수 없어서 만물에 휘달릴 뿐 만물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할 것이다. 만물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면 곧 여래와 같아질 것이다. 만물을 마음대로 부리고자 하는가? 어떤 곳에서나 무심하기만 하다면 이것이 곧 해탈한 상태이다. 설봉과 두 학인과의 문답을 제기해 본다. 여러분에게 묻겠으니 말해보라. 설봉이 그때 건곤 안에서 그들을 끌었는가, 건곤 밖에서 끌었는가? 건곤 밖에서 끌었다고 한다면 힘을 낭비했다고 할 수 있고, 건곤 안에서 끌었다면 단지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었을 뿐7)이라 하겠다. 말해 보라! 어떤 점이 이득이고 손해인가? 아무 일 없이, 와서 살핀 소식을 말해 보라.”
承天懷, 上堂云, “如今莫要直下會麽? 須是迴光認取自家本分事, 莫受人瞞. 若也認得, 十二時中, 種種施爲, 無不解脫,
若也認未得, 不免頭頭繫絆, 處處染着, 被物所轉, 不能轉物. 若能轉物, 卽同如來. 莫要轉物麽? 但於一切處無心, 是爲解脫.

 記得, 雪峯道,〈至〉不肯入. 敢問諸人, 且道, 雪峯當時, 在乾坤內拽伊, 在乾坤外拽伊? 若在乾坤外拽伊, 也不妨費力;
若在內拽伊, 只是泥裏洗土塊. 且道! 利害在甚麽處? 無事, 看取上來, 道箇消息.”
7) 니리세토괴(泥裏洗土塊). 씻으면 씻을수록 더욱 더러워진다는 뜻에서 무익한 일, 쓸데없는 짓을 비유하는 말. 
   무엇이 무엇인지 전혀 뜻을 알 수 없는 일 또는 수치스러움을 뜻하기도 한다. “함께 죽고 함께 살 생각으로 
   그대에게 비결을 알려주네.<흙탕물 속에서 흙덩어리를 씻는다. 어떤 까닭인가? 미혹한 상태로 그대로 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다.>”(『碧巖錄』 15則 大48 p.155b22. 同死同生爲君訣.<泥裏洗土塊.著甚來由?放你不得.>)

​[설화]

​설봉이 그때 건곤 안에서 그들을 끌었는가:문 밖에 나가서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엄청나게 힘만 낭비했다고 말한 것이다.
건곤 밖에서 끌었는가:비록 안에 함께 있기는 하나 그와는 다르기 때문에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이니, 안팎의 차이가 없다는 도리를 안 것이다.8)  
承天云云, 在乾坤外拽伊者, 出門外拽入也, 故費力大多. 在乾坤內拽伊者, 雖在內, 與伊別故, 如泥裏洗土塊, 
大意見無內外也.
8) 안과 밖이 모두 불가능하다 또는 모두 옳지 않다는 도리를 알았다는 말이다.

육왕개심(育王介諶)의 염

“설봉이 기력을 다하여 백천만 명을 끌었다고 한들 무슨 이익이 있었겠는가! 왜 그러한가? 근심할 만한 곳에 이르러 건너지 못할 때는 어떠한가? 나는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대지 전체가 해탈문인데 손을 잡고 끌어도 나오려 하지 않는구나.’ 말해 보라, 설봉과 나와의 차이점이 얼마나 되는가?”
育王諶拈, “雪峯, 用盡氣力, 拽得百千萬个, 有什麽益! 何故? 及到堪憂處, 何如未濟時? 廬山向你道, 盡大地, 是个解脫門,
把手拽不肯出. 且道, 與雪峯相去多少?”

[설화]

​설봉을 긍정하지 않은 것이니, 해탈문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해탈문 밖으로 끌어내는 것과 비교하여 어떤지에 대해 물은 말이다.
育王:不肯雪峯, 拽入解脫門內, 爭如拽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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