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2칙 설봉복선 雪峯覆船
[본칙]
설봉(雪峯)이 학인에게 물었다. “최근에 어디를 떠나왔는가?” “복선(覆舩)에서 왔습니다.” “생사(生死)의 바다를 아직 건너지도 못했는데, 어찌하여 배를 뒤집어[覆船] 버렸는가?” 그 학인은 아무 대답을 못하고 돌아가 복선에게 설봉의 말을 들려주었다. 복선이 말했다. “왜 그에게 생사가 없다고 말하지 못했는가?” 학인이 다시 설봉에게 가서 이 말을 하자 설봉이 말했다. “이것은 그대의 말이 아닌 것 같구나.” “그렇습니다. 복선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20방이 있으니 복선에게 전해 줄 것이고, 다른 20방은 내가 스스로 맞을 것이니, 아사리1) 그대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雪峯問僧, “近離甚處?” 云, “覆船.” 師云, “生死海未渡, 爲甚覆却船?” 其僧無語, 歸擧似覆船, 船云, “何不道渠無生死?”
僧再去, 進此語, 師云, “此不是汝語.” 僧云, “是. 覆船恁麽道.” 師云, “我有二十棒, 寄與覆船. 二十棒, 老僧自喫, 不干闍梨事.”
1) 본서890則 주석2) 참조.
[설화]
생사의 바다를 ~ 배를 뒤집어 버렸는가:그의 반응을 살피려는 질문이다.
왜 그에게 생사가 없다고 말하지 못했는가:건널 생사의 바다가 없다는 뜻이다.
나에게 20방이 있으니 ~ 내가 스스로 맞을 것이다:금시(今時)는 본분(本分)을 갖추고 있고, 본분은 금시를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2)
아사리 그대와는 관계없는 일이다:설봉과 복선 그 어느 입장과도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生死海未渡云云者, 看他支對也. 何不道渠無云云者, 無生死海可渡也. 我有二十棒云云者, 今時具本分, 本分具今時也.
闍梨事者, 兩處不干也.
2) 금시는 차별된 현상, 본분은 무차별의 본질을 각각 뜻한다. 금시는 금일(今日), 본분은 본래(本來)라고 하기도
한다. 본서 1則 주석31), 165則 주석2), 181則 주석10)참조.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송
생사의 바다 건너지 못했으니,
배 뒤집어서는 안 된다 하고,
그에게는 본래 생사가 없으니,
훌쩍 이변 모두 떠났다 하네.
중천에 뜬 밝은 태양처럼 장구하니,
그 빛 비추어 설봉 앞에 이르렀네.
圜悟勤頌, “未渡生死海, 不應覆却船;渠本無生死, 超然離二邊. 長如杲日麗中天, 舒光照到雪峯前.”
[설화]
‘훌쩍 이변 모두 떠났다’라고 한 말에서 생사와 열반이 그 이변이다.
圜悟:超然云云, 生死涅槃, 二邊也.
설두중현(雪竇重顯)의 거
‘어찌하여 배를 뒤집어 버렸는가’라고 한 구절에 이르러 그 학인을 대신하여 말했다. “‘설봉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설봉이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는 순간 소매를 털고 가버려야 했다.” 다시 제기하고 ‘아사리 그대와는 관계없는 일이다’라고 한 구절에 이르러 말했다. “각자에게 나누어 주며,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만약 이 뜻을 가려낸다면 세상 어디나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雪竇顯, 擧此話, 至爲甚覆船, 師代云, “‘久嚮雪峯.’ 待者老漢擬議. 拂袖便行.” 又擧, 至不干闍梨事, 師云, “能區能別,
能殺能活. 若也辨得, 天下橫行.”
[설화]
설봉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설봉이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
말이다. 의도는 소매를 털고 가버리는 데 있다.
가르기도 하고 나누기도 한다:설봉을 찬탄한 것이다.3)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20방을 갈라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뜻이니, 아사리의 일과는 관계가 없다.
雪竇:久嚮雪峯, 歇後語也. 意則拂袖便行. 能區云云, 讚嘆雪峯. 能殺能活者, 二十棒能區能別, 不干闍梨事也.
3) 생사와 열반을 분명하게 갈라서 관문으로 제시한 것을 찬탄했다는 뜻.
원오극근의 거
설봉이 학인에게 한 질문부터 설두가 ‘설봉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라고 대신 대답한 부분까지 제기하고, 학인을 대신하여 “선상을 뒤집어 엎어 주리라”고 한 다음 이어서 말했다. “설봉에게는 학인을 시험하는 구절이 있었고,4) 복선에게는 관문을 뚫는 눈이 있었으며,5) 설두에게는 호랑이를 함정에 빠뜨리는 기틀이 있었다.6) 말해 보라! 나[崇寧]7)는 어떤 일을 이루었는가?”
圜悟勤, 擧雪峯問僧, 至雪竇代云, ‘久嚮雪峯.’ 師代云, “便與掀倒禪床.” 乃云, “雪峯有驗人句;覆船有透關眼;
雪竇有陷虎之機. 且道! 崇寧, 成得个什麽邊事?”
4) 설봉이 생사와 열반을 차별하여 말한 것은 진실한 구절로 던진 말이 아니라 상대를 점검하기 위한 관문이었다는
취지이다.
5) 설봉이 관문을 제시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차별한 의중을 간파하는 안목이 있었다는 뜻이다.
6) 설봉이라는 종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점검하는 기틀을 설정할 줄 알았다는 말. 설두 자신이 이러한 수단을
강조했다. “호랑이를 함정에 빠뜨리는 기틀을 밝히고자 한다면 본분을 깨달은 납자라야 한다.”(『雪竇語錄』 권1
大47 p.672a25. 要明陷虎之機,也須是本分衲子.)
7) 숭녕.원오극근의 출신지 명이다. 사천성 성도(成都)북서쪽에 있다.
[설화]
선상을 뒤집어엎어 주리라:소매를 털고 가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생사라고 부르는가!’라는 말과 같은데, 이것도 여전히 의중을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에 점검할 단서를 남긴다는 뜻이다.8)
설봉에게는 학인을 ~ 빠뜨리는 기틀이 있었다:세 선사가 드러내 보인 말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린 것이다.
말해 보라 ~ 어떤 일을 이루었는가:선상을 뒤집어엎는 것 또한 세 선사가 가지고 있었던 의중을 벗어나지 않는 행위라는 뜻이다.
圜悟:便與云云者, 拂袖便行, 似是喚什麽作生死, 猶是露頭角故, 有點撿分. 雪峯有驗人句至陷虎之機者, 據款結案也.
且道云云者, 掀倒禪床, 亦不離前三師云云意而爲也.
8) 원오는 학인이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설두가 대신 응한 것에도 미진한 구석이 있다고 보고,
선상을 뒤집어 엎어야 완전하다고 여긴 것이다.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병불9)
9) 秉拂. 주지나 방장이 불자(拂子)를 잡고 법상에 올라앉아 대중에게 설법하는 것. 또는 이들을 대신하여 그
설법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은 후자의 뜻으로 많이 쓴다. 주지를 대신하여 병불 법문을 할 수 있는 자격은
전당수좌(前堂首座)·후당수좌(後堂首座)·동장주(東藏主)·서장주(西藏主)·서기(書記) 등에게 주어진다. 이들을
가리켜 병불오두수(秉拂五頭首)라 한다.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작가종사는 천연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었구나! 비록 그렇더라도 또한 도둑질하는 사람의 마음은 불안한 법이다. 그렇다면 ‘아사리 그대와는 관계없는 일이다’라 말하고 어째서 20방을 스스로 맞을 필요가 있었겠는가!10) 다만 다시 20방을 더해 복선을 때리면 그만일 뿐이다. 말해 보라! 그의 허물은 어디에 있는가? 노련하고 대단하신 분이 남에게 대어(代語)도 제대로 못해 주었던 것이다.”
雲門杲, 秉拂, 擧此話云, “作家宗師, 天然猶在! 雖然如是, 也是作賊人心虛. 是則不干闍梨事, 二十棒, 何須自喫!
但更添二十棒, 只打覆船便了. 且道! 渠過在什麽處? 老老大大, 不合與人代語.”
10) 도둑질한 사람이 불안한 마음에 자신이 지은 죄를 스스로 벌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20방을
맞겠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
[설화]
작가종사는 ~ 여전히 남아 있었구나:설봉을 두고 한 말이니 20방이라고 한 말 때문에 ‘천연 그대로’라고 한 것이다.
도둑질하는 ~ 불안한 법이다:설봉의 의중은 복선에게 20방을 전해 주고 자신도 20방을 맞겠다고 말한 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복선을 때리면 그만일 뿐이다:복선이 할 일을 모두 바친 무사(無事)의 경지를 아직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雪門:作家云云者, 雪峯也, 二十棒是天然也. 作賊云云, 其意不在二十棒也云云. 只打云云者, 覆船未得無事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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