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802칙 설봉불일 雪峯佛日

실론섬 2026. 4. 22. 09:04

802칙 설봉불일 雪峯佛日

[본칙]

설봉이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불일(佛日)에서 왔습니다?” “올 때 해는 떴던가?”1) “해가 떴다면 설봉을 녹여버렸을 것입니다.”2) 설봉이 문답을 마쳤다가 다시 그 학인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현기(玄機)라고 합니다.” “하루에 베를 얼마나 짜는가?”3) “베틀에 한 올의 실도 걸어 놓지 않습니다.” “승당에 들어가거라.”4) 그 학인이 곧바로 나가서 몇 걸음 걸어가는데, 설봉이 다시 “상좌여, 가사의 끝자락이 바닥에 쓸리는구나”라고 하자 학인이 고개를 돌렸고 설봉은 곧바로 때렸다.  
雪峯問僧, “什麽處來?” 僧云, “佛日來.” 師云, “來時日出也未?” 僧云, “日若出, 卽鎔却雪峯.” 師休去, 復問僧, “你名什麽?” 
僧云, “玄機.” 師云, “日織多少?” 僧云, “寸絲不掛.” 師云, “叅堂去.” 僧便出行三五步, 師復召云, “上座, 袈裟角落地.” 僧迴首, 師便打.
1) 불일(佛日)이 부처님의 해라는 뜻도 되므로 바로 그 말에 입각해서 점검한 말이다.
2)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라는 ‘설봉’의 말뜻에 따라 대응한 것. 온통 눈으로 덮인 설봉은 본래 아무도 오르지 
   못하는 험한 산으로 험준한 본분의 관문을 나타낸다. 그 관문을 뚫는다면 지혜의 해가 떠서 설봉에 내린 눈을 
   녹였을 것이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달리 해설하면, 설봉의 눈을 녹이지 않고 눈내린 상태 
   그대로 두고 본분을 고수하는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앞의 것은 본칙에 대한 <설화>의 관점이고, 뒤의 
   것은 대홍보은(大洪報恩)의 염에 대한 <설화>의 관점이다.
3) 현기(玄機)의 ‘기’자에 옷감을 짜는 베틀이라는 뜻이 있으므로 이에 따라 다시 점검한 것이다.
4) 참당(參堂).승당(僧堂)의 일원으로 처음 들어가 대중과 함께 생활하는 것.

​[설화]

그 학인은 본분을 깨달은 자인 듯 가장했으니 그 점이 기특하기는 했다. 그러나 작가종사였던 설봉이 설정한 갈고리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어쩌겠느냐는 뜻이다.5)
올 때 해는 떴던가:이 말을 빌려 그의 수준을 점검한 것이다.
해가 떴다면 설봉을 녹여버렸을 것입니다:관문을 뚫고 나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가사의 끝자락이 바닥에 쓸리는구나:격외의 언구를 감파했다.
마지막에 말에 따라 고개를 돌렸으므로 곧바로 때린 것이니,6) 어떻게 해야 이 방(棒)을 면할 수 있을까?
這僧也, 似个本分漢, 不妨奇特. 爭柰雪峯是作家宗師, 未免上他鉤頭也. 來時日出也未者, 借此語勘驗也. 日出鎔却雪峯者,
透關支對也. 袈裟角落地者, 格外言句勘破也. 下隨言回首故, 便打, 作麽生免得此棒?
5) 설봉이 설정해 놓은 점검의 틀에 걸려들어 학인의 거짓이 드러났다는 뜻.
6) 설봉의 말에 미혹되어 고개를 돌린 잘못에 대한 질책의 매라는 해설이다.

대홍보은(大洪報恩)의 염

“설봉이 비록 병에 적절하게 약을 주기는 했지만, 그 학인의 병이 고황(膏肓)에 들었다면 무슨 구할 방법이 있었겠는가?7) 반대로 만일 병이 낫고 약도 사라져 코가 비틀렸다면8) 설봉은 열반당9)에 들어가야만 했을 것이다.10)” 
大洪恩拈, “雪峯, 雖善能應病與藥, 然這僧病在膏肓, 有什麽救處? 忽若病瘥藥亡, 捩轉鼻孔, 却須雪峯入涅槃堂, 始得.”
7) 병이 고황에 들었다는 말은 불치병이라는 뜻이다. 어떤 방법으로도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과 같이 학인이 
   본분을 고수하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떤 약이라도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8) 설봉의 핵심을 파악하여 장악했다는 말.
9) 涅槃堂.늙거나 병든이들이 거처하는 절안의 요사. 옛날 총림에서는 늙은스님들은 안락당(安樂堂)으로 보내고, 
   병든 스님들은 연수당(延壽堂)에 보냈다. 연수원(延壽院)·연수료(延壽寮)·중병각(重病閣)·성행당(省行堂)·
   무상원(無常院)·장식료(將息寮) 등이라고도 한다.『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권하 大45 p.893c8에 따르면, 
   탐욕의 무상함을 깨우쳐 주기 위해 기원정사(祇園精舍)의 천동원(天童院) 안에 무상원을 지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그 명칭의 유래가 보인다. “무상원:서역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기원정사 서북쪽 해 지는 방향에 
   무상원을 지어두고 병든 사람을 그 안에서 쉬게 했다. 무상원이라 한 뜻은 보통 사람들이 집이나 옷이나 
   발우 등의 도구를 탐내어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 집을 지어 그 이름을 
   듣거나 건물 제목을 보고 모든 존재의 무상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오늘날 연수당이나 열반당이라 
   부르는 까닭은 후세인들이 좋아하는 느낌에 따라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釋氏要覽』 권3 大54 p.306b24. 
   無常院:西域傳云, ‘祇桓西北角日光沒處, 爲無常院. 若有病者, 當安其中. 意爲凡人內心貪著房舍, 衣鉢道具, 
   生戀著心, 無厭背故, 制此堂令聞名見題, 悟一切法, 無彼常故.<今稱延壽堂, 涅槃堂者, 皆後人隨情愛名之也.>;
   “연수당:늙거나 병든 스님들을 위안하는 곳이다. 옛날에는 총림의 노승들은 안락당으로 보내고, 병든 
   스님들은 연수당으로 보냈다. 오늘날의 열반당이 그것이다.”(『禪林寶訓音義』 卍113 p.275b10. 延壽堂:
   撫安老病之所也. 古者, 叢林老僧送安樂堂, 病者送延壽堂也. 又今涅槃堂是.)
10) 두가지 경우 모두 설봉이 실패한 것으로 보아 이 공안에 대한 모든 분별의 통로를 봉쇄했다.

​[설화]

그 학인은 오로지 본분을 고수하는 입장이었다.
설봉은 열반당에 들어가야만 했을 것이다:더욱 높이 착안했더라도 오히려 죽은 자와 같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大洪:這僧只守本分也. 雪峯入涅槃堂者, 更高一着, 猶是死漢也.

보령수의 거

​‘설봉이 문답을 마쳤다’라는 구절까지 제기하고 말했다. “설봉은 무엇때문에 문답을 마쳤을까? 연못이 넓으면 산을 숨길 수 있고,11) 살쾡이도 능력만 있다면 표범을 굴복시킬 수 있다.” 다시 ‘설봉은 곧바로 때렸다’라는 구절까지 제기하고 말했다. “그 학인은 불법은 말할 것도 없고 인사도 할 줄 몰랐고, 설봉은 천오백 학인을 이끄는 선지식으로서 약간의 자비심도 없었다. 말해 보라! 효와12)는 어디에 있을까? 시험 삼아 분간해 보라.”
保寧秀, 擧此話, 至峯休去, 師云, “雪峯因什麽休去? 澤廣藏山, 理13)能伏豹.” 又擧, 至峯便打, 師云, “這僧, 莫道是佛法,
人事尙未了在;雪峯, 是千五百人善知識, 略無些子慈悲. 且道! 殽訛在什麽處? 試爲辨看.”
11) 택광장산(澤廣藏山).『莊子』에 나오는 ‘藏山於澤’이라는 구절을 활용했다. “계곡에 배를 감추고 연못에 그 
    계곡의 산을 숨긴다면 배는 안전하다고 할만하다. 그러나 한밤에 힘센 사람이 등에 지고 달아난다면 어두운 
    곳에 있는 자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크거나 작은 것을 숨길 경우 그에 가장 적절한 장소가 
    있겠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달아날 것이다. 그러나 세상 전체를 세상 전체에 감춘다면 그것은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 변함없는 것의 근본적 진실이다.”(『莊子』 「大宗師」. 夫藏舟於壑, 藏山於澤, 
    謂之固矣. 然而夜半有力者, 負之而走, 昧者不知也. 藏大小有宜, 猶有所遯. 若夫藏天下於天下, 而不得所遯, 
    是恆物之大情也.)
12) 殽訛. 효와( 訛)와 같은 말. 하나의 공안에서 핵심이 되는 점 또는 난제가 걸려있는 관건(關鍵)을 가리킨다.
13) ‘理’는‘狸’또는‘貍’와통한다.

[설화]

​연못이 넓으면 ~ 굴복시킬 수 있다: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모든 한계를 벗어났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그 학인은 ~ 몰랐고:그가 물러가면서 인사도 하지 않은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말이다.
설봉은 ~ 자비심도 없었다:그에게 자비심이 없었던 것을 싫어했다는 말이다.
효와는 ~ 분간해 보라:절실한 자비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 반드시 그것을 분간해 보라는 뜻이다.14)
保寧:澤廣藏山云云者, 未詳, 意謂直得無限也. 這僧莫道云云者, 嫌他無人事也. 雪峯是千五百云云者, 嫌他無慈悲也. 
誵訛至辨看者, 不無慈悲之切切, 須是辨看.
14) 선사로서 가장 크고 절실한 자비심은 학인을 본분으로 이끌기 위하여 관문을 설정해 주는 것이다. 바로 이 
    문답에서 설봉은 그것을 제시했으므로 ‘효와’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장로종색(長蘆宗賾)의 염

“그 학인은 풀 속에서 뒹구는 자에 불과했고, 게다가 처음에는 좋은 듯 했다가 마지막에는 초라한 꼴이 되었으니,15) 때리지 않았다면 또 어느 때를 기다려 가르칠 수 있었겠는가? 만약 작가였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설봉이 ‘올 때 해가 떴던가?’라는 물음에 다만 ‘사자는 사람을 뭅니다’16)라 대답하고, 또한 ‘하루에 베를 얼마나 짜는가?’라는 물음에는 ‘두 겹의 공안이로군요’17)라 대답하고, 또한 ‘가사의 끝자락이 바닥에 쓸리는구나’라는 말에는 ‘천오백 학인을 이끄는 선지식께서 자비심이라곤 조금도 없군요’18)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설령 이렇게 답했더라도 나의 아픈 매를 피할 수는 없다. 말해 보라! 어떤 잘못이 있는가? 밝은 눈을 가진 자는 가려내 보라.”
長蘆賾拈, “這僧只是草裏漢, 又更龍頭蛇尾, 不打更待何時? 若是作家卽不然. 當時待雪峯道, ‘來時日出也未?’ 但云, 
‘師子咬人.’ 又問, ‘日織多少?’ 但云, ‘兩重公案.’ 又召云, ‘袈裟角落地也.’ 但云, ‘一千五百人善知識, 略無些子慈悲.’ 
直饒如此, 亦未免山僧痛棒. 且道! 有什麽罪過? 明眼底辨取.”
15) 마지막에 고개를 돌려 설봉의 시험에 걸려든 것.
16) ‘사자는 흙덩이 던진 사람을 물지만 어리석은 개는 흙덩어리를 쫓아간다’라는 상용구를 줄인 말이다. 본서 
    184則 주석19) 참조. ‘올 때 해가 떴던가?’라고 점검하는 말에 미혹되지 않고 그 의중을 포착했다는 뜻.
17) 양중공안(兩重公案). 반드시 두 겹이라는 뜻이 아니라 던지는 말마다 겹겹이 모두 몰자미(沒滋味)를 본질로
    하는 공안이라는 말이다. 다시말해서, 아무리 분별로 벗기려해도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 관문의 연속일 
    뿐이라는 뜻이다.
18) 친절한 방편을 주어 들어가도록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본분의 화두만을 던지는 의중을 알고 있다는 
    소리이다. 곧 가사의 끝자락이 실제로 바닥에 쓸렸건 쓸리지 않았건 상관없이 이 역시 한겹 또두른 관문일 
    뿐이다.

​[설화]

​그 학인은 다만 본분을 고수할 뿐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풀 속에서 뒹구는 자라는 뜻이다.
사자는 사람을 뭅니다:자신의 입장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뜻이다.
두 겹의 공안이로군요:주체와 대상이 나누어져 있으므로 두 겹이다.
천오백 ~ 자비심이라곤 조금도 없군요:저 설봉에게 인정이 없는 것이 싫다는 뜻이다.
나의 아픈 매를 피할 수는 없다:여전히 무사(無事)의 경지를 얻지 못했다.
어떤 잘못이 있는가:그 학인의 입장이 아주 좋다는 뜻이다.
長蘆:這僧只守本分, 是落草漢也. 獅子咬人者, 立處到底也. 兩重公案者, 有能所故兩重也. 一千至慈悲者, 
嫌他雪峯勿人情也. 亦未免云云者, 猶未得無事也. 有什麽罪過者, 這僧立處恰好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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