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7칙 운거우종 雲居雨從
[본칙]
운거에게 유우단공(劉禹端公)이 물었다. “비는 어디서 옵니까?” “단공께서 질문한 곳으로부터 옵니다.” 단공이 마침내 삼배를 올리고 기뻐하며 물러나 몇 걸음 가고 있을 때 운거가 “단공!” 하고 불렀다. 단공이 고개를 돌리자 운거가 “질문은 어디로부터 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단공은 아무 말도 없었다. 〈어떤 노스님이 단공을 대신하여 대답했다. “조금 전에는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귀종의유(歸宗義柔)는 이와 다르게 대답했다. “스님께서 거듭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단공은 집으로 돌아와 3일 만에 죽었다.
雲居, 因劉禹端公問, “雨從何來?” 師云, “從端公問處來.” 端公遂禮三拜, 歡喜而退, 行數步, 師召云, “端公!” 公廻首, 師云,
“問從何來?” 端公無語.〈有老宿代云, “適來道什麽?” 歸宗柔別云, “謝和尙再三.”〉歸家三日而死.
[설화]
비는 어디서 옵니까:기우제를 지내고 비가 내린 다음에 물은 것이다.
단공께서 질문한 곳으로부터 옵니다:방울방울 떨어지는 빗물은 별다른 곳에 귀착되는 것이 아니다.
마침내 삼배를 ~ 몇 걸음 가고 있을 때:처음으로 법공(法空)1)의 도리를 깨우친 사람은 희열에 차 있음을 나타낸다.
질문은 어디로부터 옵니까:질문이 발생한 근거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 말도 없었다:오직 식(識)일 뿐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는 자는 자연히 말이 없다.
집으로 돌아와 3일 만에 죽었다:모든 시끄러운 언쟁에서 벗어나 고요함이 눈앞에 실현된 경지에서는 허황되게 움직이면 안 된다는 뜻이지만, 그렇게 고요한 저편으로 갈 줄만 알았지 이렇게 이편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음을 나타낸다.2)
어떤 노스님의 말은 ‘어디서 모색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는 뜻이다. ‘조금 전’이라 한 말은 앞서 단공이 질문한 말이 유래한 곳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질문은 어디로부터 오는가?’라는 물음 역시 쓸데없이 남아도는 말이라는 뜻이다. 귀종의 말은 처음 해준 대답에서 분명한 뜻을 알았음을 나타낸다.
兩3)從何來者, 祈雨得雨後問也. 從端公問云云者, 滴滴不落別處也. 遂禮三拜至數步者, 初得法空者, 多喜悅也.
問從何來者, 又須知有問所從來也. 無語者, 住唯識者, 自然無語也. 歸家云云者, 離諸喧諍, 寂滅現前處, 動誕不得也.
只解伊麽去, 不解伊麽來也. 有老宿, 向甚處摸 也. 適來, 謂前端公問處來也. 然則今云問從何來, 亦是剩語也. 歸宗,
從前答處, 知其端的也.
1) 비가 오는 현상과 같이 모든 법은 오로지 마음에 귀착될 뿐, 그 자체는 공(空)이라는 뜻.
2) 오거나[來] 가는것[去]이 자유롭지 못하고 가는 한편에 치우쳐 있다는 말.
3) ‘兩’은‘雨’자의오식.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송
비는 어디로부터 오며,
바람은 어디서 부는가?
만 길로 솟은 용문4)에,
일찍이 묵었던 길손들,5)
진퇴를 함께 나누는데,
누가 점액6)을 당할까?
雪竇顯頌, “雨從何來, 風作何色? 龍門萬仞, 曾留宿客, 進退相將, 誰遭點額?”
4) 龍門. 과거 시험장의 정문(正門). 잉어가 용이 되기위해 뛰어 오르는 목표가 되는 문. 화두의 관문을 상징하는
말이다.
5) 운거가 제시한 화두의 관문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궁구하던 사람들.
6) 點額. 용문에 오르는 데 실패한 잉어의 이마에 남은 상처. 본서 607則 주석24) 참조.
[설화]
옛사람은 “만 길의 용문에 일찍이 묵었던 길손들 없었네”7)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설두는 “일찍이 묵었던 길손들”이라 하였으니, 곧 허황되게 움직이면 안 된다는 단공의 입장을 나타낸다.
雪竇:古云, “龍門萬仞, 曾不宿客.” 今云, “曾留宿客.” 則端公動誕不得也.
7) 화두를험하고높아오르기어려운만길의용문에비유한말이다.‘용문에는머무는 나그네가 없다’(龍門無宿客)는
말과 같다. 설두가 그의 어록에서 제기한 보자(報慈)선사의 문답에 이 말이 나온다. “보자가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와룡에서 옵니다.’ ‘그곳에서 얼마간 있었는가?’ ‘동안거와 하안거를 지냈습니다.’
‘용문에는 머무는 나그네가 없거늘 어째서 그곳에 그토록 오래 있었는가?’ ‘사자의 굴에는 다른 짐승이
없습니다.’ ‘그대가 한번 사자후를 내질러 보라.’ ‘만약 사자후를 내지른다면 화상도 없을 것입니다.’ ‘그대가
처음으로 이곳에 왔다는 것을 감안하여 30방 맞을 잘못을 용서해 준다.’”(『雪竇語錄』 권3 大47 p.691c29.
先報慈問僧, ‘近離甚處?’ 云, ‘臥龍.’ 慈云, ‘在彼多少時?’ 云, ‘經冬過夏.’ 慈云, ‘龍門無宿客, 爲什麽在彼許多時?’
云, ‘師子窟中無異獸.’ 慈云, ‘爾試作師子吼看.’ 云, ‘若作師子吼, 卽無和尚.’ 慈云, ‘念汝新到, 且放三十棒.’) ‘우뚝
솟은 봉우리에는 머무는 나그네가 없다’라는 말과 같은 취지이다. “‘옛 사람들이 건추를 잡거나 불자를 꼿꼿이
세우는 뜻은 어떤 것입니까?’ ‘우뚝 솟은 봉우리에는 머무는 나그네가 없다.’”(『景德傳燈錄』 권13 「首山省念傳」
大51 p.304a24. 問, ‘古人拈槌竪拂, 意旨如何?’師曰, ‘孤峯無宿客.’)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송1
단공의 질문이 유래한 곳이여!
곧게 뻗은 길을 돌아가지 마라.8)
선재동자는 가는 곳마다 미륵 만났으며,
손가락 퉁기는 소리마다 누각 열렸다네.9)
天童覺頌, “端公問處來! 徑直勿迂廻. 善財處處逢彌勒, 彈指作聲樓閣開.”
8) 눈앞에서 주고받은 대화에 이미 실현되어 있다는 뜻. 아래 3구와 4구의 취지와 같다.
9) 미륵보살이 손가락을 퉁기는 짧은 순간에 누각의 문이 곧바로 열려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그 안으로 들어갔던
『華嚴經』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때 선재동자가 공손하게 절을 올리고 미륵보살의 오른쪽으로 돌고 난 다음에
아뢰었다. ‘원하건대 위대하신 성인이시여, 누각의 문을 여시어 제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때
미륵보살이 앞서서 누각에 이르러 손가락을 퉁겨 소리를 내자 그 문이 곧바로 열렸고, 선재에게 들어가라고
하였다. 선재가 기쁜 마음으로 들어가고 나자 그 문은 다시 닫혔다. 그 누각을 보니 헤아릴 수 없이 드넓은 것이
허공과 같았다.”(80권본『華嚴經』권79 「入法界品」大10 p.434c26.爾時,善財童子,恭敬右遶彌勒菩薩摩訶薩已,
而白之言, ‘唯願大聖, 開樓閣門, 令我得入.’ 時, 彌勒菩薩, 前詣樓閣, 彈指出聲, 其門卽開, 命善財入. 善財心喜,
入已還閉. 見其樓閣, 廣博無量, 同於虛空.) 한편, 설두는 이 부분에 대하여 “손가락을 퉁길 필요도 없이 누각의
문은 열려 있다네.”(『雪竇語錄』권5 大47 p.700c24.不用彈指樓閣門開.)라고 읊었다.
천동정각의 송2
비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노라.
삼라만상과 대천세계여!
모두 마음에서 나온다네.
비추는 작용 속의 텅 빈 곳이요,
고요함 속에 있는 움직임이니,
납승의 본분에서 항상 함께하노라.
찬 이슬이 소나무 적시니 밤공기 맑아지고,
학은 달에 둥지 틀고 사는 꿈에서 깨었다네.
又頌, “雨從何來? 不離所問. 森羅大千! 出乎方寸. 照中之虛, 靜中之動, 衲僧分上常相共. 寒露濡松夜氣淸,
臯禽驚起月巢夢.”
[설화]
두 게송 중 앞의 게송은 천 방울 만 방울이 단지 하나의 물방울일 뿐이라는 뜻이며, 뒤의 게송은 하나의 빗방울 안에서 끝없는 물결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天童:二頌, 前千滴萬滴, 只是一滴也, 後一滴之內, 興無盡波瀾也.
천의의회(天衣義懷)의 거
“지금 결정적인 전기가 되는 한마디 말을 해볼 사람 있는가? 만일 바르게 말한다면 유우단공을 구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운거화상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하늘과 땅과 대지 전체가 단지 관을 짜는 재목에 불과할 것이다.”
天衣懷, 擧此話云, “而今, 還有人道得一轉語麽? 若道得, 非唯救得劉禹端公, 亦乃救得雲居和尙. 若道不得, 盡乾坤大地,
只是个棺材.”
[설화]
운거가 비록 ‘질문은 어디로부터 옵니까?’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죽은 자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어떻게 결정적인 전기가 되는 한마디 말을 할까?’라고 물은 것이다.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움직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天衣:雲居雖道得, 問從何來, 亦未免死漢, 然則作麽生道得一轉語. 進退相將, 始得.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유우단공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3일 만에 죽었다. 이것은 홍각(洪覺)의 가려운 부위를 바로 긁어준 격이었지만, 얽매인 몸을 돌려 벗어나는 한 가지 길은 몰랐다. 당초에 운거가 ‘질문은 어디로부터 옵니까?’라고 묻기를 기다렸다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삼배를 올리고 기쁜 마음으로 물러났다면 홍각으로 하여금 30년 동안 의심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雲門杲, 上堂, 擧此話云, “劉禹端公, 無語歸家, 三日而死. 正爬着洪覺痒處, 只是不知轉身一路. 當初待伊道, ‘問從何來?’
依前禮三拜, 歡喜而退, 且敎洪覺疑三十年.”
[설화]
집으로 돌아와 3일 만에 죽었다:세 가지 뜻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얽매인 몸을 돌려 벗어나는 한 가지 길은 몰랐다:‘단공이 몰랐던 것을 어찌하겠느냐’는 뜻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삼배를 올리고 기쁜 마음으로 물러났다면:앞의 뜻과 같다.
홍각으로 하여금 ~ 만들었을 것이다:운거가 말한 내용은 마치 30년 수행한 흔적이 없는 듯이 보인다는 뜻이다. 홍각은 운거의 시호이다.
雲門:歸家三日而死者, 三義不無也. 只是不知云云者, 爭乃端公不知也. 依前禮三拜云云者, 前意同也. 且敎洪覺云云者,
覺範道處, 似乎無三十年故. 洪覺, 雲居諡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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