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883칙 조산변이 曺山變異

실론섬 2026. 4. 22. 14:20

883칙 조산변이 曺山變異

​[본칙]

조산이 동산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 동산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변함이 없는 곳으로 가려 합니다.” “변함이 없는 곳에 어찌 가는 것이 있겠는가?” 이에 조산이 “가더라도 변함이 없습니다”라 말하고 마침내 인사하고 떠났다.   
曺山辭洞山, 山云, “子向什麽處去?” 師云, “不變異處去.” 洞山云, “不變異處, 豈有去耶?” 師云, “去亦無變異.” 遂辭去.

​[설화]

변함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변함이 없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사람마다 모두 본분사를 가지고 있다는 진실이고, 둘째는 본분사가 있는 줄 아는 사람(본분사를 깨달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모든 소리와 색(일체의 현상) 그리고 시비를 버리지 않으면서 사물 하나하나에 막히지도 않는다. 그들을 가리켜 모든 곳에서 변함이 없다고 하며, 털옷을 입고 뿔을 달았다고도 하고,1) 정처 없이 여행하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가더라도 변함이 없다는 말은 모든 사물 경계에서 막힘없이 움직이며 변화한다는 뜻이다.
不變異者, 不變異處有二種, 一者, 人人盡有本分事也, 二者, 知有地人, 不捨一切聲色是非, 於物物上不滯. 
呼爲一切處不變異, 亦喚作披毛戴角, 亦喚作行李地漢也. 去亦無變異者, 於一切物物上轉無滯也.
1) 피모대각(披毛戴角). 여섯 가지 윤회의 길[六途輪廻] 중 축생(畜生)을 나타낸다. 인간에서 축생에 떨어져서도 
   중생제도의 뜻을 버리지 않고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을 나타낸다. 조산본적의 삼종타(三種墮) 중 하나이다. 
   “고덕(조산)의 삼종타에 붙이는 게송. 첫째 털옷을 입고 뿔을 달고 축생으로 태어나 해골을 따라 자유자재하다:
   뿔은 진흙과 먼지로 얼룩이 졌으나, 분명하게 이 몸(본래면목)을 드러냈도다. 초록빛 수양버들과 향기로운 
   풀이 우거진 언덕, 그 어디에선들 존귀하다는 칭송을 받지 않으리오!”(『人天眼目』 권3 大48 p.318c14. 
   古德三種墮頌. 一, 披毛戴角, 隨髏自在:頭角混泥塵, 分明露此身. 綠楊芳草岸, 何處不稱尊!)

단하자순(丹霞子淳)의 송

​집집마다 밤 깊어 문을 닫았는데 달빛은 가득 비치고,
곳곳마다 꾀꼬리 울고 버드나무는 바람에 하늘거리네.
만일 종횡 그 어디로 가도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칼을 내던져 허공에 상처를 내고자 하는 것과 같으리.2)
丹霞淳頌, “家家門掩蟾蜍月, 處處鸎啼楊柳風. 若謂縱橫無變異, 猶如擲劒擬揮空.”
2) 반산보적(盤山寶積)의말.『禪門拈頌說話』251則 참조.

​[설화]

​소리와 색을 벗어나서 별도로 자취가 없는 경계를 찾는다면 자취가 없는 경계에 걸려 뒤집힐 뿐이기 때문에 이처럼 읊은 것이다. 그러므로 소리와 색 그 안에 앉거나 눕고, 소리와 색 그 안에서 잠을 잘 수도 있어야 한다. 종횡이란 종횡 그 어느 방향으로나 자유롭게 간다는 뜻이다.
丹霞:聲色外, 別討無蹤迹處, 則只向無蹤迹處著倒, 故云云也. 然則聲色裏坐臥, 聲色裏睡眠, 始得也. 縱橫者, 
縱橫而去也.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염

“모름지기 납승이라면 팔꿈치 아래에는 호신부3)를 차고 정수리에는 진리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갖추고서 마주치는 모든 경계와 인연을 정면에서 짓눌러 버릴 것이니, 이것이 어찌 변함이 없는 경지가 아니겠는가!4) 왜 그런가? 금강의 정체는 고요하고 편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산은 비록 이 뜻을 터득하기는 했지만, 자식을 가엾게 여겨 친절하게 가르치다가 자신이 초라하게 되는 것5)을 몰랐던 동산의 처지는 어쩌랴! 만약 나였다면 그가 ‘변함이 없는 곳으로 가려 합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에게 ‘이놈아! 문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벌써 변해버렸다’6)라고 말해 주었으리라.”
將山勤拈, “大凡衲僧, 佩肘臂下符, 具頂門上眼, 向一切萬境萬緣, 當頭坐斷, 豈不是箇無變異! 何故? 金剛正體, 湛寂凝然. 
曺山雖得此意, 爭奈洞山憐兒不覺醜! 若是山僧, 待他道, ‘向不變異處去.’ 只向他道, ‘者漢! 未出門早變了也.’”
3) 주부(肘符).팔꿈치 아래 곧 옆구리에 차는 호신부(護身符). ‘부’는 삿된 기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몸에 지니는 부적 곧 호신부를 말한다. 주후부(肘後符)라고도 한다. 납승으로서 확고한 증명이 되는 
   심인(心印)이며, 누구의 견해에도 흔들리지 않는 납승으로서의 근거를 이것에 비유한다. 또는 부역(賦役)을 
   면제받는 승도(僧徒)로서의 증명서가 되는 도첩(度牒)을 가리키기도 한다.
4) 원오가 ‘호신부’와 ‘정수리의 눈’을 납승의 조건으로 내세운 예는 그 어록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대체로 
   종지를 떠받치고 가르침의 방편을 세우려면 반드시 정수리에 진리를 보는 눈을 붙이고 팔꿈치 아래 호신부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저 두 노숙(老宿)의 기틀을 살펴보면 종횡으로 걸림 없이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나타났다 사라지고 거두었다 펼치며 자유자재하니 이 얼마나 기특한 솜씨인가! 그러나 자세히 점검해 보면 
   여전히 마디 밖에서 가지가 자라난 것처럼 본래의 일 밖에서 사단을 일으킨 격이다.”(『圜悟語錄』 권3 大47 
   p.725c24. 大凡扶宗立敎, 須是頂門上具眼, 肘臂下有符. 看他二老宿, 縱橫殺活, 出沒卷舒, 甚生奇特! 
   子細點檢將來, 猶是節外生枝.);“원오의 염(拈). 현상을 빌려서 본래의 기틀을 밝히고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무엇인가를 불러낸다. 이는 대체로 납승의 팔꿈치 아래에는 호신부를 달고 정수리에는 진리를 보는 눈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拈八方珠玉集』 卍119 p.279b6. 佛果拈云, 借事明機, 無中唱出. 蓋是衲僧, 
   肘臂下有符, 頂門上具眼.)
5) 연아불각추(憐兒不覺醜). 학인을 가르치기 위해 본분을 고수하지 않고 방편을 펼치기 위해 낮은 단계로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초라하게 또는 추하게 된다는 말은 본래의 모습을 잃을 정도로 상대의 말을 
   그대로 허용하는 방식을 비유한다. 물과 진흙을 묻히며 온몸을 더럽힌다는 타니대수(拖泥帶水)와 같은 
   뜻이다. 여기서는 동산이 조산의 말을 본분의 입장에서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수긍하는 형식으로 응한 것을 
   가리킨다. “자식을 가엾이 여기다가 자신이 추하게 되는 것을 모른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법대로만 
   시행하면 살아 남을 백성이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雲峰語錄』 古尊宿語錄40 卍118 p.686a7. 憐兒不覺醜. 
   然雖如是,盡法無民.)
6) 원오는 동산과 달리 조산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허용하지 않는 파주(把住)의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설화]

​‘문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벌써 변해버렸다’라고 한 말은 고요하고 편안한 경계도 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蔣山云云, 未出門早變了也者, 湛寂凝然, 亦不立也.

원오극근의 거

“몸소 궁극적 경지를 밟아보지7) 않고서야 어떻게 이와 같이 깊숙이 꿰뚫을 수 있었겠으며, 이 어찌 언어나 기지(機智)에 찬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대상이겠는가! 체험이 깊고 지극하여 번뇌가 없는 지위에 도달한 다음에는 어떤 속박의 틀로도 묶어두지 못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뜻을 확고히 세우고 나서 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생사를 하나로 여기고, 옛날과 오늘날을 하나로 뒤섞으며, 가고 오는 작용을 모두 끊은 뒤에 반드시 뛰어난 종사에 의지하여 진제(眞諦)의 알차고 깊은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잘 가려서 분별의 뿌리를 뽑아내어 이슬처럼 깨끗하게 하고, 번뇌의 인연에 떨어질 실오라기 하나만큼의 생각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그 자리에서 마음이 고목이나 썩은 그루터기처럼 되고, 마치 약간의 호흡도 붙어 있지 않은 완전히 죽은 사람과 같아야 한다. 마음마다 알음알이가 없고 일어나는 어떤 생각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무수한 성인이 나타나더라도 바꾸지 못하는 확고한 경지가 되어야 비로소 고목에서 꽃이 피듯이 온전한 기틀[大機]을 발휘하고 근본적인 작용[大用]을 일으키며8) 자비심을 일깨워 운용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애써 공을 들이지 않고도 이루어지는 공이고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는 행위이니, 어찌 득실과 시비의 차별에 떨어지겠는가! 털끝만큼의 생각이라도 남기는 순간 생사의 세계와 부딪치게 되어 자기 자신도 제도할 수 없거늘 어떻게 남을 제도할 수 있겠는가! 유마대사9)는 금속여래(金粟如來)10)의 지위에 머물지 않고 술집과 기방을 드나들면서도 대해탈의 불사(佛事)를 이루었고, 방노자(龐老子)는 보처보살(補處菩薩)11)의 응신(應身)이면서도 도솔천에 머물지 않고 진기한 보배를 버리고 한강12)에서 조리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13) 대종사들과 함께 주거니 빼앗거니 대결하며 종지를 드날렸다. 본분사14)에 대한 대대로 이어지는 체재는 모두 이와 같지 않은 예가 없었으니, 반드시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방울 그대로 얼어붙듯이15) 한다면, 귀천16)에 구애되지 않고 어느 신분에서나 도야하고 단련할 수 있을 것이다. 조산과 유마힐과 방거사의 경지가 되어야 비원17)을 버리지 않을 수 있으니 이 어찌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 나머지 인간세상에 어지럽게 널린 흙먼지와 같은 사례들이야 어찌 가슴에 품을 가치가 있겠는가!”
又擧此話云, “自非踏着實地, 安能透徹如此, 豈以語言機思所可測量哉! 盖履踐深極, 到無渗漏之地, 然後, 羅籠不住. 
學道之士立志, 外形骸一死生, 混古今絕去來, 要須攀上流, 造詣至眞諦, 實淵奧閫域, 打辦自己, 拔白露淨, 無絲毫意想, 
墮在塵然.18) 直下心如枯木朽株, 如大死人, 無些氣息. 心心無知, 念念無住, 千聖出來, 移換不得, 乃可以向枯木上生花, 
發大機起大用, 興慈運悲, 乃無功之功, 無作之作, 豈落得失是非哉! 纔留一毫毛, 則抵捂於生死界, 自己未能度, 安可度人! 
維摩大士, 不住金粟位, 入酒肆婬坊, 作大解脫佛事. 龐老子, 補處應身, 不住兜率陁, 棄却珎寶, 漢江織苽19)籬, 與大宗師, 
擊揚與奪. 此段從上體裁, 莫不皆爾. 要須滴水滴凍, 不拘朝野, 陶冶煆煉. 如曺山摩詰老龐, 乃可以不癈悲願, 不亦冝乎! 
自餘人間世, 紛紜塵坌, 何足致胸次哉!”
7) 답착실지(踏着實地). 본서553則 주석21) 참조.
8) 대기대용(大機大用). 속박을 벗어나 활발하게 드러나는 ‘근본적인 작용’을 말한다. 사유분별에 의지하여 
   대상을 파악하는 방법이 아니라 낱낱의 언행이 상황에 따라 빈틈없이 본분과 일치되어 발휘되는 작용을 
   말한다. 대체로 마조(馬祖)로부터 시작되어 임제(臨濟)에서 완성된 선풍(禪風)이라고 본다. 대기와 대용을 
   구별하는 경우 대기는 본래 기틀로서의 본심·법체(法體) 또는 근본을 깨달은 경지,대용은 그것을 밖으로 
   활발하게 응용하는 다양한 작용을 말한다.
9) 大士. 보살(菩薩)의 다른 명칭. mahāsattva는마하살타(摩訶薩埵) 또는마하살(摩訶薩)로 음사하는데, 이는 
   보살과 같은 뜻이며 보통은 두 가지를 엮어서 보살마하살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마하살타가 ‘대사’로 한역될 
   경우 보살은 개사(開士)로 한역하여 구별하기도 하지만 보살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10) 유마거사의 전신(前身). 유마거사는 과거세에 성불하여 금속여래가 되었다. 과거세에 이미 성불하였지만 
    중생 제도를 위하여 보살의 몸을 나타내었다는 일반적인 설에 따른다.『維摩經玄疏』권4 大38 p.546c12,
    『維摩經略疏』 권3大38 p.597c26,『淨名玄論』권2 大38 p.866b6 참조.
11) 앞의 부처가 입멸한 다음 성불하여 그 자리를 잇는 보살. 미륵(彌勒)이 석가여래(釋迦如來)의 보처보살인 
    것과 같다. 한 번 세상에 태어나면 성불한다는 뜻에서 일생보처(一生補處)라 한다. 그 지위는 등각(等覺)이다.
12) 漢江.장강(長江)중 가장 긴 지류(支流).
13) 방거사와 그 딸인 영조(靈照)의 일화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영조가 조리를 팔아 아버지를 봉양했다고 한다.
    『禪門拈頌說話』316則 참조.
14) 차단(此段). 본분사(本分事) 또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과 같은 말이다. 원오가 즐겨 쓰는 말이다.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차단대사인연(此段大事因緣)이라 한 말과 같다.
15) 적수적동(滴水滴凍). 간발의 틈도 없는 것을 비유한다. 빈틈없이 궁구하거나 마음을 쓰는 것을 나타낸다. 이 
    법문의 주인공 원오가 그 어록에서 쓴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하물며 본분사가 선지식 편에 있으면 계속 남아 
    있고 평범한 사람 편에 있으면 결국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그것은 잠시만 없어도 죽은 사람과 
    같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본을 세워 그 모양에 따라 그려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비록 평상대로 
    생활하면서도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방울 그대로 얼어붙는 것처럼 빈틈없이 분별심[識]을 단번에 
    끊어버린다면, 무위·무사·무심의 사업을 성취하여 겉과 속이 분명하게 한계가 없어져서 어떤 존재와도 짝이 
    되지 않고 어떤 성인과도 같은 길을 가지 않게 될 것이다.”(『圜悟語錄』권15 大47 p.782c14. 況此段事不道, 
    在善知識邊便有, 居鄉井時便無也! 所謂暫時不在, 如同死人, 正當在時, 亦不起模畫樣. 雖則平常, 而滴水滴凍, 
    卓然絶識, 成箇無爲無事無心事業, 表裏洞然無際,不與萬法爲侶, 不與千聖同途.)
16) 조야(朝野).원래는조정과민간을가리킨다.
17) 悲願.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큰 자비심에서 일으키는 서원(誓願)을 말한다. 대비원력(大悲願力)과 같다.
18)『圜悟語錄』권16 大47 p.787b21 등에 따라‘然’은‘緣’자로 교정한다.
19) ‘苽’는‘笊’가맞다.

[설화]

증득(證得)과 교화(敎化)를 밝힌 것이다.
귀천에 구애되지 않고:안의 마음이나 밖의 법에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又:明證化也. 不拘朝野云云者, 不被內外心法使殺也.

자항요박(慈航了朴)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훌륭한 형제들이여! 변함이 없는 도리를 안다면 사는 모습도 한결같이 그러한 법이다. 모름지기 이쪽과 저쪽 그 어디서 응용해도 모자람이 없고, (이쪽과 저쪽이) 서로 의지하며 자유롭게 자리를 바꿀 수 있어야 조사의 혈맥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慈航朴, 上堂, 擧此話云, “好兄弟! 知不變異, 住亦如然. 須信者邊那邊, 應用不缺, 回互傍來, 血脈不斷.”

[설화]

​이 또한 증득과 교화를 밝힌 것이다. 변함이 없기 때문에 증득이고, 모든 곳으로 가는 것은 교화를 행하는 것이다. 또한 가는 행위뿐만 아니라 행·주·좌·와에 이르기까지 어떤 위의에도 빈틈과 끊어짐이 없다는 뜻이다.  
모름지기 ~ 알아야 한다:편위(偏位)와 정위(正位)가 서로 의지하며 자리를 바꾼다20)는 뜻이다.
慈航:此亦明證化也. 不變異故證, 一切處去行化也. 又非但去, 行住坐臥, 無有間斷也. 須信云云者, 偏正回互也.
20) 편정호회(偏正互回).차별의편위[無變異]와무차별의정위[一切處去]가 서로 걸림없이 자리를 바꾸며 본질을 
    드러내는 것. 편위와 정위는 조동종(曹洞宗) 오위설(五位說)의 두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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