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890칙 조산천주 曺山泉州

실론섬 2026. 4. 22. 14:26

890칙 조산천주 曺山泉州

​[본칙]

어떤 학인(청예)이 조산에게 물었다. “청예1)는 외롭고 가난하니 스님께서 구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산이 “예사리,2) 가까이 오라!”고 하자 청예가 가까이 다가섰다. 조산이 말했다. “천주3) 지방 백(白)씨 집의 술 석 잔을 마셔 놓고 입술도 축이지 않았다고 말하는구나.” 
曺山因僧問, “淸銳孤貧, 乞師拯濟.” 師云, “銳闍梨, 近前來!” 僧近前. 師云, “泉州白家酒三盞, 猶道未沾脣.”
1) 淸銳.청세(淸稅)라고도한다.
2) 闍梨. 아사리(阿闍梨 ācārya)의 줄임말. 제자를 가르칠 수 있고, 행실이 단정하여 자기 자신이 제자의 모범이 될 
   자격이 있는 스승을 말한다. 선문헌에서는 일반적인 승(僧)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와 
   같이 주로 스승이 제자나 손아래 스님을 존칭하는 말로 쓰인다.
3) 泉州.일설에는 청원(淸原)이라고도 한다.

[설화]

​외롭고 가난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부친이 없는 것을 외롭다[孤]고 하며,4)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하다[貧]고 한다. 곧 자기 집의 보물 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버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5) 타향에서 떠도는 것을 비유한다.5) ‘예사리, 가까이 오라’고 하고, 다시 ‘천주 지방 백씨 집’이라 운운한 것은 청예가 느릿하고 여유롭게 많은 말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백씨 집의 독한 술을 마셔 놓고도 취중에 여전히 아직 입술도 축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6) 곧 그렇게 (청예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이와 같이 (조산의) 말에 따라 가까이 다가온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입술도 축이지 않았다’라고 한 말과 같다는 뜻이다.7) 그러나 누구든 조산의 본래 뜻을 모른다면 흑산8) 아래서 살림살이를 도모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孤貧者, 無父曰孤, 無財曰貧, 則自家寶藏不顧, 抛家散走, 流落他鄕也. 銳闍梨近前來, 又泉州白家云云者, 
略略綽綽思大口, 醇醇釅釅白家酒, 醉中猶道未沾唇也. 則伊麽近前來時, 如是隨言近前, 是猶道未沾唇也. 雖然, 
未知曺山意, 則未免黑山下作活計也.
4)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은 자를‘고’라 한다.”(『禮記』「王制」.少而無父者,謂之孤.)
5) 마조(馬祖)가 대주혜해(大珠慧海)에게 들려준 말이다. “마조가 대주에게 말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의 
   대운사에서 옵니다.’ ‘여기에 온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해서인가?’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의 보물 
   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버리고 여기저기 돌아 다녀서 무엇하겠는가? 내가 있는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불법을 구한단 말이냐!’”(『景德傳燈錄』 권5 大51 p.246c10. 祖問   曰, ‘從何處來?’ 曰, 
   ‘越州大雲寺來.’ 祖曰, ‘來此擬須何事?’ 曰, ‘來求佛法.’ 祖曰, ‘自家寶藏不顧,拋家散走,作什麽?我遮裏一物也無,
   求什麽佛法!’)
6)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무엇에 취한 줄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하여 말할 상대가 못된다는 평가이다.
7) 굉지정각(宏智正覺)의말이다.『宏智廣錄』권4 大48 p.43a10.
8) 黑山.분별에 사로잡혀 활발한 작용을 하지 못하고 생각만하고 있는 것을 흑산의 시커먼 굴에 떨어져 사는 
   것에 비유한 말.『俱舍論』권11「分別世品」大29 p.58a18에 따르면 남섬부주(南贍部洲) 북쪽 세 곳에 각각 
   세 겹의 흑산, 즉 모두 합쳐 아홉개의 흑산이 있는데, 이곳은 매우 어두우며 악귀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백운지병(白雲知昺)의 송

집 가득 채운 황금은 가까이하려 들지 않고,
아! 스스로 외롭고 가난함을 한탄하며 감수하네.
까닭도 없이 석 잔의 술을 마셔 놓고는,
취한 뒤 흐트러져 몹시도 남들의 비웃음을 사네.
白雲昺頌, “滿屋黃金不肯親, 吁嗟甘自怨孤貧. 無端更飮三盃酒, 醉後郞當笑殺人.”

[설화]

앞의 두 구절은 청예가 미혹된 상태를 나타내고, 뒤의 두 구절은 그가
조산이 한 말에 대하여 오인했음을 말한다.
白雲:前二句, 言這僧迷時也. 後二句, 言又向曹山言句裏認着也.
  
육왕개심(育王介諶)의 송

가엾다, 청예는 대단히 외롭고 가난하여라!
백씨네 술 석 잔이 입술에 닿지도 않았네.
고향의 풍물을 얻었다 하더라도
홀로 깨어 있는 사람9)을 등져서는 안 되노라.
育王諶頌, “可憐淸銳大孤貧! 白酒三杯未入唇. 趂取故園風物在, 不須辜負獨醒人.”
9) 독성인(獨醒人). 모두가 취했지만 홀로 깨어 있는 사람. 본래 굴원(屈原)이 스스로를 가리켰던 말로서, 
   유속(流俗)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쓰이게 되었다. “세상 사람 모두 흐린데 
   나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모두 취했지만 나 홀로 깨어 있노라.”(『楚辭』 「漁父」. 世人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스스로 말하기를 한 척의 배 맑은 물가에 매어두고 기다렸건만, 홀로 깨어있는 
   사람은 만난적 없다고 하네.”(杜牧 「贈漁父」. 自說孤舟寒水畔, 不曾逢著獨醒人.)

[설화]

고향의 풍물을 얻었다 하더라도:본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을 등져서는 안 되노라:술 마시지 않고 홀로 깨어 있는 것이 등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育王:趂取云云者, 返本還源也. 不須云云者, 不飮獨醒, 是辜負也.

설두중현(雪竇重顯)의 별어10)

​예사리가 ‘예!’ 하고 응답한 것에 대하여, “그 말의 속뜻11)은 무엇입니까?”라고 별도로 응답했다.
雪竇顯別, 銳闍梨應喏, “是什麽心行?”
10) 別語. 다른 선사들이 나눈 문답 중에서 이미 대답한 내용과는 별도로 자신의 견해로 대답하는 것. 그 
    질문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현장에서 대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해진 문답을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선기(禪機)를 드러내는 방법이다.『精選 선어록』백운어록주석137)참조.
11) 심행(心行).본서780則 주석10)참조.

[설화]
“예!” 하고 응답했을 때, 소의 머리를 눌러 억지로 여물을 먹이는 격이었다는 뜻이다.
雪竇:當應諾時, 按牛頭喫草也.

현각의 징12)

​“도대체 학인에게 술을 먹도록 한 것은 어떤 부분일까?”
玄覺徵, “什麽處是與他酒喫?”
12) 徵. 공안의 문답에 대하여 그 본래의 취지를 따지며 묻는 형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

[설화]

조산은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13)
玄覺:先師無此語也.
13) 조산이 그렇게 한 말도 참구해야 할 관문이기 때문에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불감선사가 야참(夜參) 
    때 조주의 백수자(柏樹子)화두를 들면서 각철자가 ‘조주는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으니 조주를 비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한 대목에 이르러 근본적 의심을 일으켜 이 화두를 들고 공부하다가 어느 날 활연히 
    타파했다.”(『五燈會元』 권19 「文殊心道章」 卍138 p.770b18. 聞佛鑑禪師夜參, 擧趙州柏樹子話, 至覺鐵觜云, 
    ‘先師無此語, 莫謗先師好. ’因大疑,提撕旣久, 一夕豁然.)

송원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예사리는 벽돌을 버리고 옥을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굽지 않은 젖은 벽돌과 바꾸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조산은 비록 법을 물어온 학인(청예)의 뜻을 잘 가려냈지만 애석하게도 그에게 한결같은 본분의 식량을 주어 지금까지 흑산에서 살림살이를 하지 않도록은 못했다.  
松源, 上堂, 擧此話云, “銳闍梨抛塼引玉, 不知換得个墼子. 曹山雖來風深辨, 可惜不一等與他本分草料, 
免致今時向黑山下作活計.”

[설화]

벽돌을 버리고 ~ 모르고 있었다:조산이 청예를 잘못 지도하여 그가 귀신의 굴속에서 살림살이를 하게 되었다14)는 말이다. 곧 만일 그에게 본분의 식량을 주었더라면 송원에게 점검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松源:抛塼云云者, 曹山誤他, 這僧鬼窟裏作活計. 若與他本分草料, 免被松源點撿也.
14) ‘귀신의 굴’이란 뜻의 귀굴리(鬼窟裏)는 흑산과 유사한 말이며, 그 속에서 살림살이를 한다는 말은 분별로 
    헤아려 알아 맞히려는 시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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