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1078칙 운문시궐 雲門屎橛

실론섬 2026. 4. 22. 17:14

1078칙 운문시궐 雲門屎橛1)

[본칙]

운문에게 어떤 학인이 물었다. “부처란 어떤 것입니까?” “마른 똥막대기이니라.”
雲門因僧問, “如何是佛?” 師云, “乾屎橛.”
1) 부처와 마른 똥막대기에 대하여 ‘하나는 귀하고 하나는 천하다’는 일반적 관념을 역이용하여 두 가지 모두 
   귀와 천을 넘어선 몰자미(沒滋味)의 화두로 제시한 것에 이 공안의 요점이 있다.

​[설화]

​본분에 대한 질문에 응답한 것이다.
本分答話也.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송

운문의 마른 똥막대기여!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을 완전히 넘어섰구나.
일 없이 산에서 나와 노니는데,
백 전이 지팡이 끝에 걸려 있네.2)
雲門杲頌, “雲門乾屎橛! 全超法報化. 無事出山遊, 百錢杖頭掛.”
2) 지팡이 끝에 걸어 놓은 백 전은 ‘술을 살 돈’이다. 이것을 장두전(杖頭錢)이라 한다. “늘 걸어가면서 백 전을 
   지팡이 끝에 걸어 놓고 주점에 이르러 한껏 즐겨 마셨다.”(『晉書』「阮脩傳」. 常步行, 以百錢掛杖頭, 至酒店, 
   便獨酣暢.) 여기서는 할 일을 모두 마친 다음 귀·천을 넘어선 여유로운 운신을 나타낸다.

[설화]

​법신·보신·화신을 완전히 넘어섰구나:(마른 똥막대기는) 지극히 천하기 때문에 지극히 귀하다.
일 없이 ~ 걸려 있네:인연을 따라 자유자재하게 노니는 까닭에 이렇게 말한다.
雲門:全超法報化者, 極賤故極貴也. 無事云云者, 隨緣自在故也.

죽암사규(竹庵士珪)의 송

중국말로 바꾸지도 말고,
인도말로 전달하지도 마라.
마혜수라3)의 눈일지라도,
마주하고도 서천 거리로다.4)
竹庵珪頌, “不用唐言譯, 休將梵語傳. 摩醯首羅眼, 對面隔西天.”
3) 摩醯首羅. Maheśvara, Mahissara의 음사어. 막혜이습벌라(莫醯伊濕伐羅)라고도하며, 한역어는 
   대자재천(大自在天)이다. 원래는 힌두교의 주신(主神) 쉬바( Śiva)의 다른 이름으로 세계의 창조와 
   파괴를 주관하는 춤의 신이다. 불교에 흡수되어 불교를 외호하는 신으로서 제4선천(禪天)의 
   색구경천(色究竟天)에 머무는 것으로 본다. 마혜수라의 정수리에 진리를 보는 제3의 눈이 박혀 
   있다고 묘사된다.
4) 눈앞에 분명히 드러나 있지만, 유래를 알 수 없어 아주 먼 서천(인도)에 떨어진 것처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 ‘간시궐’이라는 말이 분명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언어의 형식에도 담을 수 없는 몰자미(沒滋味)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대면천리(對面千里)와 같은 
   뜻이다.

​[설화]

공안의 근본 요지를 나타냈다. 앞의 두 구절은 제3구로 거둘 수 없다.
마혜수라의 ~ 서천 거리로다:제1구로 남김없이 거둘 수 없다는 뜻이다. 서천이란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신 곳을 말한다.
竹庵:大體也. 上二句, 三句收攝不得也. 摩醯云云者, 一句收攝不得也. 西天者, 佛出世處也.

송원의 송

보잘것없고 천한5) 운문이,
사자후6)를 크게 내지르는구나.
코는 반 토막을 얻었으나,
입을 잃은 줄은 모르는구나.7)
松源頌, “雲門小廝兒, 作大師子吼. 鼻孔得半邊, 不知失却口.”
5) 소시아(小廝兒). ‘보잘것없고 천한 놈’이라고 경멸하는 말. 헐뜯는 말이지만 보화(普化)는 임제(臨濟)를 
   인정하는 역설적 의미로 썼다. “임제가 하루는 하양·목탑 두 장로와 함께 승당의 화로 주변에 앉아 
   있다가 말했다. ‘보화가 매일같이 거리에서 상식을 벗어난 짓을 하는데 도대체 그는 범부인가요, 
   성인인가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화가 들어오자 임제가 물었다. ‘당신은 범부인가, 성인인가?’ 
   ‘당신이 말해 보시오. 내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임제가 한 소리 내지르자 보화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양은 신부같이 남의 말만 잘 듣는 선이요, 목탑은 말을 많이 늘어놓는 노파선인데, 보잘것
   없고 천한 임제는 그래도 진리를 보는 눈 하나를 갖추었구나.’ 임제가 ‘이 도둑놈아!’라고 하자 보화도 
   ‘도둑놈아, 도둑놈아!’라 소리치고 바로 나가버렸다.”(『臨濟語錄』 大47 p.503b10. 師一日, 
   與河陽木塔長老, 同在僧堂地爐內坐. 因說, ‘普化每日在街市, 掣風掣顚, 知他是凡是聖?’ 言猶未了, 
   普化入來. 師便問, ‘汝是凡是聖?’ 普化云, ‘汝且道! 我是凡是聖?’ 師便喝. 普化以手指云, ‘河陽新婦子, 
   木塔老婆禪, 臨濟小廝兒, 却具一隻眼.’ 師云, ‘這賊!’普化云, ‘賊,賊!’便出去.)
6) 師子吼. simhanāda. 백수(百獸)의 왕인 사자의 포효. 사자는 두려워할 대상이 없지만 사자가 
   포효하면 다른 모든 동물은 두려워한다. 사람 중에서 왕의 지위에 이른 부처님의 설법을 이 사자의 
   포효에 비유한다.
7) 본분의 핵심(코:鼻孔)은 어느 정도 터득했지만, 그것을 표현한 ‘간시궐’은 빗나간 말이라는 뜻.

[설화]

1~2구에서는 운문을 긍정했고, 3~4구에서는 운문을 긍정하지 않았다. ‘사자후’는 두려움이 없는 설법을 나타낸다.
코는 ~ 모르는구나:모든 사람의 병통을 말한다. ‘반 토막을 얻었다’는 것은 완전히 얻지 못했다는 뜻이니, 하물며 입이 어찌 완전하겠는가! ‘입’이란 재잘재잘 떠드는 말을 비유한 것이다.  
松源:前頭則肯雲門, 後頭則不肯雲門也. 又師子吼, 無畏說也. 鼻孔云云者, 諸人之病. 得半邊, 則未全得也, 何況口乎!
口者, 喃喃說話地也.

대혜종고의 보설(普說)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예를 들면 단월8) 강급사(江給事)의 경우와 같다. 그가 도리에 근거한 말을 즐기는 것을 알고, 마침내 도리가 전혀 없는 인연을 그에게 주고 공부해 보도록 하였다. 어떤 학인이 운문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운문이 ‘마른 똥막대기’라고 대답한 문답이 그것이다. 여기서 또다시 그가 도리에 근거하여 분별할까 염려하여 이에 앞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도는 똥오줌에도 있고, 도는 돌피와 쭉정이에도 있으며, 도는 돌조각에도 있다」9)라고 한 말에 따라 「색(色)을 벗어나지 않은 채 마음을 밝히고 사물에 의탁하여 이치를 드러내라는 뜻이다」10)라고 말해서는 안 되며, 「낱낱의 대상마다 참되고, 티끌 하나하나까지 모두 본래인11)이다」12)라는 방식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雲門杲, 普說〈云云〉, “如檀越給事, 見其愛說道理, 遂將箇沒道理底因緣與渠看. 僧問雲門, 至乾尿橛. 又恐渠作道理會, 
先與渠說, ‘不得云, 「道在尿溺, 道在稊稗, 道在瓦礫.」 「卽色明心, 附物顯理.」 不得道, 「處處眞, 塵塵盡是本來人」之類’”
〈云云〉.
8) 檀越. dāna-pati의 음사어. 재물을 보시하는 신도.시주(施主)라 한역하고, 다나발저(陀那鉢底)·다나파
   (陀那婆) 등으로 음사한다.
9)『莊子』「知北遊」참조. 장자(莊子)와 동곽자(東郭子)의 대화 가운데 나오는 말.
10)『潙山語錄』大47 p.579c12,『圜悟語錄』권15 大47 p.784c18 등에 나오는 말.
11) 本來人.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 본인(本人)·본래면목(本來面目) 등과 같은 뜻이다.
12)『圜悟語錄』권9 大47 p.753b28 등에 옛사람의 말로 나오지만, 누구의 말인지는 알수 없다.

[설화]

​무수하게 많은 도리 중 그 어느 것도 운문의 뜻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雲門:許多義理, 皆契雲門意不得也.

백운지병(白雲知昺)의 상당

​“나는 운문스님께서 한계도 없이 미묘하게 펼치는 활용을 이전부터 좋아했다. 이 스님은 손 가는 대로 집어들 뿐 조금도 힘을 낭비하지 않았다”라 말한 다음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말을 할 때는 소리에 의지하지 않고, 색이 드러나기 전에는 대상과 나를 구분하지 않는다.13) 만약 이해가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원인으로 불러들여 결과에 속박당할 것이다. 알고 싶은가? 진흙 속의 거북이 머리는 자라와 비슷한 듯이 보이고, 저울추를 직접 밟아보면 무쇠와 같이 단단하리라.14) 거듭 참선하는 그대들에게 알리노니, 결코 저 마른 똥막대기를 씹으며 맛보지 마라.”
白雲昺, 上堂云, “嘗愛雲門老, 妙用曾無極. 信手拈將來, 不費絲毫力.” 乃擧此話云, “言發非聲, 色前不物. 若是領解不眞, 
便見招因帶果. 要會麽? 泥裏烏龜頭似鼈, 秤鎚踏著硬如鐵. 叮寧報汝叅禪人, 切忌咬他乾屎厥.”
13) 불물(不物).『莊子』에 나오는 말.‘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는다’라는 뜻의 ‘불인(不人)’과 같다. “지극한 
    예(禮)는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지극한 의(義)는 대상과 나를 구분하지 않는다.”(『莊子』「庚桑楚」.
    至禮有不人, 至義不物.)
14) 거북이 머리와 자라 머리는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다르고, 저울추와 무쇠는 보기에는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무쇠로 만들어진 저울추의 단단한 속성은 무쇠와 다르지 않다. 본서 600則 주석15) 참조.

[설화]

나는 운문스님께서 ~ 낭비하지 않았다:운문은 근본적인 작용[大用]을 눈앞에 드러내었다는 뜻이다.
말을 할 때는 ~ 구분하지 않는다:소리나 색을 마주할 때 일정한 인식 범주에 얽매이지 말고, 또한 말소리와 사물의 형색으로 찾아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원인으로 불러들여 결과에 ~ 속박당할 것이다:운문이 부처를 비방했다고 생각하는 자는 도리어 재앙을 불러들일 것이라는 뜻이다.15)
진흙 속의 거북이 머리는 자라와 비슷한 듯이 보이고:본래의 것과 다른 물건은 진짜인 듯이 보이지만 가짜라는 뜻이니, 표면적인 말에 따라 뜻을 추정한다는 말이다.16)  
저울추 ~ 씹으며 맛보지 마라:본래의 것은 가짜인 듯이 보이지만 진짜이니, 뜻을 얻었으면 언어의 자취는 잊으라는 말이다.
白雲:嘗愛云云者, 大用現前也. 言發非聲云云者, 當聲色不存䡄則也, 又不可以言聲物色尋討也. 招因云云者, 
將謂雲門謗佛者, 反招其殃. 泥裏烏云云者, 他物似是而非者, 言隨言定旨也. 秤鎚云云者, 本物似非而是者, 言得意忘詮也.
15) 부처를 마른 똥막대기라고 한 말이 부처에 대한 비방이라 오해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똥막대기는 
    천하고 부처는 귀하다는 분별을 고의적으로 촉발시켜 그 귀천의 관념을 무너뜨리고 귀와천 어느편도 
    선택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간화선의 전략이다.
16) 간시궐이라는 말을 전하는 개념에 따라 헤아리면 비슷한 듯이 보일 뿐 이 화두의 진실은 아니라는 말.

송원의 상당

​‘마른 똥막대기’라 답한 운문의 말에 대해 어떤 학인이 “그 뜻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송원이 대답했다.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향기롭다.”17)
松源, 上堂, 因僧問, 〈至〉乾屎橛. “意旨如何?” 答云, “鷓鴣啼處百花香.”
17) 풍혈연소(風穴延沼) 등이 사용했던 말로 선가에서 상용한다. 자고새 우는 봄과 만발한 꽃을 소재로 
    제시하는 선지(禪旨)이다. 그러나 송원이 그려낸 이 봄 경치에 도(道)가 구현되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그의 의중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이치를 만들어내어 이해하면 똥막대기도 개념화되어 화두로서의 
    효용을 상실한다. “늘 강남의 3월 풍경을 기억하고 있노라.”(常憶江南三月裏)라는 구절과 짝을 이룬다.
    『景德傳燈錄』권13「風穴延沼傳」大51 p.303b23 참조.

​[설화]

미묘한 작용은 언제나 끝이 없었으니, 갖가지 현상을 소재로 한 구절 말해 보라는 뜻이다.18)
松源:妙用曾無極, 百草頭上, 道將一句來也.
18) 이<설화>는주석16)의 취지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