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1109칙 장경묘봉 長慶妙峯

실론섬 2026. 4. 22. 17:22

1109칙 장경묘봉 長慶妙峯1)

[본칙]

장경과 보복이 산행을 하던 중에 보복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바로 묘봉의 꼭대기라네.” 장경이 말했다. “옳다면 옳지만, 안타깝다!”2) 그 뒤에 경청이 이 문답을 듣고서 말했다. “손공3)이 아니었다면, 해골이 들판에 널렸으리라.”4)〈설두중현(雪竇重顯)이 착어(著語)하기를 “오늘 이 사람(보복)과 함께 산행을 해서 도대체 무엇 하겠는가?”라고 하였고, 다시 “백천 년이 지난 후대에는 이와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다만 그런 사람이 드물 뿐이리라”고 하였다.〉  
長慶與保福遊山次, 福以手指云, “只者裏, 便是妙峯頂.” 師云, “是則是, 可惜許!” 後擧似鏡淸, 淸云, “若不是孫公,
便見髑髏徧野.”〈雪竇顯着語, “今日共這漢遊山, 圖箇什麽?” 復云, “百千年後不道無. 只是小.”〉
1) 설봉의존(雪峯義存)의 제자인 장경혜릉(長慶慧稜)이 보복종전(保福從展), 경청도부(鏡淸道怤)와 주고받은 
   문답에 기초한 공안. ‘묘봉’이란 세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가장 높은 산, 곧 수미산(須彌山)이다. 보복은 
   매일같이 산행하던 곳을 ‘묘봉’이라 하여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킴으로써 관문을 설정했다. 그러나 그 
   의도를 장경이 간파하여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지 않도록 안목을 발휘했다. 바로 이 두측면이 제가의 염송에 
   나타나는 평가의 요점이다. 수미산 꼭대기는 언어와 사유분별이 통하지 않는 경지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한다.
2) 보복의 말을 관문으로 알아차리고 허용하는 듯하다가 그래도 아직 모자라다는 느낌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정상에 앉아 본분을 지키기만 하고 그곳에서 내려오는 방편이 없다는 뜻도 된다.<설화>의 해설이 
   그것이다.
3) 孫公.장경혜릉을 말한다.‘孫’은속성,‘公’은 존칭이다.
4) 보복의 말은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의 상황에서 뚫고 나가기 어려운 관문으로 설정된 것인데, 이것을 장경이 
   간파했다.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대하여 분별의 수단으로 접근하여 본분의 목숨을 
   잃어 버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이『碧巖錄』 23則 大48 p.164b1에서 
   “평지에 해골이 높이 쌓였구나.” (平地上起骨堆)라고한「착어」와 같은 취지이다.

[설화]

​묘봉의 꼭대기:덕운비구5)가 머무는 장소로 상(相)이 모두 사라지고 명(名)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이다.6)
옳다면 옳지만, 안타깝다:묘봉의 꼭대기에는 풀이 무성하고 길게 늘어져 있다는 뜻이다.7)
손공이 아니었다면, 해골이 들판에 널렸으리라:죽은 사람과 같기 때문이다.
설두의 착어 중 첫 번째는 보복의 말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며, 두 번째는 인정한 것이다.
妙峰頂者, 德雲比丘住處, 相盡名忘處也. 是則是, 可惜許者, 妙峰高頂草離離也. 若不是云云者, 如同死漢故也. 
雪竇今日云云者, 不肯也. 復云云者, 却肯也.
5) 德雲比丘. Meghaśrī-bhiksu. 공덕운비구(功德雲比丘)·길상운비구(吉祥雲比丘)라고도 한다.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지시를 받고 친견한 53명의 선지식 중 최초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던 스승이다. “선남자여! 이곳에서 남쪽에 승락(勝樂)이라는 나라가 있다. 그 나라에 묘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에 덕운이라는 비구가 살고 있다. 그대는 그에게 가서 법을 물어라.”(80권본『華嚴經』권62
   「入法界品」大10 p.334a9. 善男子! 於此南方, 有一國土, 名爲勝樂. 其國有山, 名曰妙峰. 於彼山中, 有一比丘, 
   名曰德雲. 汝可往問.);“(『화엄경』을 설한) 제3의 법회는 수미산 정상에 올라가 법혜(法慧) 등 
   십혜(十慧)보살이 각각 하나의 법문을 설하여 모두 십주(十住)를 이룬 것이다. 가령 선재동자가 남쪽으로 
   향해가다가 묘봉산 꼭대기에 이르러 덕운비구를 만난 다음 이하의 10선지식에게까지 이른 것은『화엄경』
   중에서 수미산 꼭대기에 올라가 법혜 등 십혜보살이 십주법문을 설한 것과 같다.”(『華嚴論節要』 권2 韓4 
   p.801b16. 第三會, 昇須彌山頂, 法慧等十慧菩薩, 各說一法門, 共成十住. 如善財童子, 南行至妙峰山頂, 
   見德雲比丘, 及已下十善知識, 還如前經中, 昇須彌山頂, 法慧等十慧菩薩, 說十住法門.)
6) 만물의 차별된 특징[相]과 각각에 상응하는 의미와 개념[名]이 전혀 없으므로 분별할 틈이 없고 말로 드러낼 
   대상이 아니다.
7) 가장 높은 곳에 사는 것이 마땅하기는 하지만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말. 산이 
   너무 높고 험하여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하기에 풀만 무성하게 자랐다는 뜻이다.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송」첫구절과 같다.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송

​묘봉의 우뚝한 꼭대기에 길게 늘어진 풀을,
분명하게 집어 들었으나 누구에게 전해줄까?
손공이 그 단적인 뜻 가려내지 않았더라면,
해골이 땅 가득 했으리니 몇 사람이나 알까!
雪竇顯頌, “妙峯孤頂草離離, 拈得分明付與誰? 不是孫公辨端的, 髑髏著地幾人知!”

​[설화]

​분명하게 ~ 전해줄까:묘봉의 높은 꼭대기에 풀이 무성하고 길게 늘어져 있는데, 이곳이 바로 몸과 마음을 편안히 의탁할 경계라는 뜻이다.
손공이 ~ 몇 사람이나 알까:또한 죽은 사람8) 앞에서 해설의 말을 붙이는 뜻이다.  
雪竇:拈得云云者, 妙峰高頂草離離, 便是安身立命處也. 不是云云者, 又是死漢前著語義也.
8) 사한(死漢). 화두의 뜻을 잘못 알아 본분의 핵심을 잃은 사람.

법진수일(法眞守一)의 염

“보복은 마치 오이가 풍성한 과주(瓜洲)9)에서 오이를 파는 사람과 같았다.10) 만일 장경이 그 뜻을 알아차리지 않았다면 언제나 성급하게 그말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째서 이와 같은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배부른 사람이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다’11)라는 말을 모르는가?”  
法眞一拈, “保福, 大似瓜洲賣瓜漢. 若不是長慶識破, 往往造次承當. 爲什麽如此? 不見道, 美食不中飽人飡?”
9) 중국 강소성(江蘇省) 한강현(邗江縣) 남부. 장강(長江)으로 흐르는 대운하(大運河)의 지류에 위치하여 운수와 
   교통의 요충지이다.
10) 과주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집에 오이가 모자라지 않기 때문에 오이를 밖에서 살 필요가 없는데도 뛰어난 
    상술과 언변에 속아 남의 오이를 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본분에 입각하지 
    못하고 남의 견해와 말에 지배되는 사람은 보복의 겉말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것에 물들게 된다는 
    뜻이다.
11) 배부른 사람은 맛있는 음식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듯이, 본질을 간파한 사람은 상대가 설정한 수단과 기틀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설화]

두 선사의 본의가 비록 어느 한 부분에 제한되지 않지만12) 사람들이 잘못 이해할까 염려하여 장경이 이처럼 말했다는 뜻이다.
法眞:兩箇意則雖無限, 恐人錯會故, 長慶伊麽道也.
12) 무한(無限). <설화>에서 상용하는 용어이다. 선어(禪語)로서의 모든 화두는 말에 담긴 개념이나 뜻에 한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무수한 활용의 가능성을 지니므로 ‘한계가 없다’고 한다.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사람을 살리는 수단을 지니고 유유자적하게 도(道)와 노니는 공부를 하려면 반드시 이와 같은 소식과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보복은 한 걸음도 잘못 내디디지 않았고, 장경은 한 구절도 헛되게 말하지 않았다. 당시에 만약 손공이 아니었다면 해골이 들판에 널렸을 것이라고 하니, 무슨 헤아릴 일이 있겠는가? 경청스님이여, 경청스님이여! 태평하게 만물을 다스리며 전혀 동요하지 않았도다. 터럭만큼의 싹도 돋지 않아 평온하게 쉬니, 바로 이렇게 변함없이 여여(如如)한 것이 원래 도인 것이다.”  
天童覺, 上堂, 擧此話云, “活人手段, 游道工夫, 須到恁麽時節, 恁麽田地, 始得. 保福, 不錯行一步;長慶, 不妄說一句.
當時, 若不是孫公, 髑髏遍野, 有甚麽數? 鏡淸老, 鏡淸老! 太平治象渾無擾. 毛髮不萌平穩休, 只箇如如元是道.”

[설화]

‘사람을 살리는 수단’은 장경의 입장을 가리키고, ‘도와 노니는 공부’는 보복의 입장을 나타낸다.13) 이하 ‘한 걸음도 내디디지 않고’라고 한 등의 네 구절은 드러낸 말 자체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린 것이다.
天童:活人手段者, 長慶地也. 遊道功夫者, 保福地也. 云云不錯行一步等四句, 據款結案也.
13) 보복이 자유롭게 시험의 기틀을 설정한 것과 장경이 그것을 바르게 포착하여 얽매이지 않도록 한 것에 각각 
    대응한다.

천동정각의 시중

​이 공안을 제기하고 ‘해골이 들판에 널렸으리라’고 한 구절에 이르러 말했다. “‘대지를 바꾸어 모두 황금으로 만들고 강물을 휘저어 소락으로 만든다’14)라는 말이 있으니, 보복이 그렇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킬 이유가 무엇이며 평지에 어찌 구태여 언덕을 쌓으려 하는가’라는 말이 있으니, 장경이 바로 그렇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15) 설두의 생각은 종과 솥에 문양을 새기려는 것이었고,16) 경청의 말은 태평성대에 특별히 형상이 없다는 것이다.17)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뜻을 알까? 촌노인은 요순(堯舜)의 치세는 알지도 못하고, 둥둥 북을 치면서 강신(江神)에게 감사의 제사를 올린다.”   
又示衆, 擧此話, 〈至〉髑髏遍野, 師云, “變大地作黃金, 攪長河爲酥酪, 保福要恁麽;無風何須起浪, 平地豈肯生堆! 
長慶要恁麽. 雪竇意, 鍾鼎刻銘;鏡淸道, 太平無像. 且作麽生體悉? 野老不知堯舜力, 鼕鼕打鼓祭江神.”
14)『五祖法演語錄』권2 大47 p.658a23 등에나오는구절.
15) 보복의 기특한 화두의 장치와 그것을 장치 그대로 포착하여 평상무사(平常無事)로 나타낸 장경의 경계를 
    말한다.
16) 종과 솥[鍾鼎]은 명기(名器) 또는 보기(寶器)로서 귀중한 기물을 대표한다. 이것에 공업(功業)을 기리기 
    위한 사적(事蹟)이나 문양을 새기는데, 이것을 명정(銘鼎)·금전(金篆)·전서(篆書)·전각(篆刻) 등이라 한다. 
    곧 설두의 게송에는 장경이 간파한 뜻을 분명히 드러내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는 취지이다.
17) 보복의 장치를 간파하고 더 이상 그것에 교란당하지 않고 평정한 장경의 안목을 가리킨다. 또한 보복의 
    입장에서 보면 장경은 자신의 의중을 알아준 사람이다. “금을 팔려면 금을 사려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賣金須遇買金人)”라는 말과 같은 소식이다.

[설화]

​대지를 바꾸어 ~ 언덕을 쌓으려 하는가:두 선사가 드러낸 말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린 것이다.
촌노인은 ~ 감사의 제사를 올린다:네 선사들18)은 저 요순이 펼친 것과 같은 무위(無爲)의 교화를 잇지 않음이 없었으나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又示衆:變大地作黃金, 云云四着語, 亦據款結案也. 野老不知云云者, 四箇無不承, 他無爲化, 而自不知也.
18) 보복·장경·설두·경청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