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1294칙 법안지렴 法眼指廉

실론섬 2026. 4. 23. 11:20

1294칙 법안지렴 法眼指廉1)

[본칙]

법안이 어떤 학인이 밖에서 찾아오는 모습을 보고서 손가락으로 발[簾]을 가리키자 방안의 두 학인이 함께 가서 발을 말아 올렸다. 법안이 말했다. “한 사람은 얻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잃었다.”  
法眼, 因見僧來參, 以手指簾. 時有二僧, 同去捲簾. 師云, “一得一失.”
1) 득과 실을 나누면서도 득은 득 그대로, 실은 실 그대로 허용하여 두가지의 차별과 무차별을 단정할 수 없도록 
   만든 설정에 이 공안의 관문이 있다.

[설화]

한 사람은 얻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잃었다:얻었다면 모두 얻었고, 잃었다면 모두 잃었다는 뜻이다.
一得一失者, 得則摠得, 失則摠失也.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송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으며,2)
학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으니,
복희 황제건 평민들이건 그 누구도
치세와 난세라는 차별 모두 잊었네.
한가하기는 연못 속 깊이 잠겨 오가는 잉어요,
자유롭기는 새장 벗어나 날개 펴고 나는 새라네.
어떤 조사도 인도에서 온 일 없었으나,3)
이 안에서 득실이 반씩 나누어졌다네.
쑥대는 바람 부는 대로 허공에서 날리고,
배는 물줄기 가로질러 언덕에 이른다네.
이 중에 영리한 납승이라면,
나의 수단을 간파했으리라.
天童覺頌, “松直棘曲, 鶴長鳧短, 羲皇世人, 俱忘治亂. 其安也潛鱗在淵, 其逸也翔鳥脫絆. 無何祖禰西來, 
許裏4)得失相半. 蓬隨風而轉空, 船截流而到岸. 个中靈利衲僧, 看取淸凉手段.”
2)『楞嚴經』권5 大19 p.125b18.
3) 현사사비(玄沙師備)의 말을 활용한 구절. 본서931則  주석6) 참조.
4)『宏智廣錄』권2 大48 p.21a4 등에‘裏許’로 된것이 옳다.

​[설화]

​소나무는 곧고 ~ 날개 펴고 나는 새라네:득과 실이 없는 경계이다.
어떤 조사도 ~ 언덕에 이른다네:득과 실이 뚜렷이 나누어진 경계이다.
이 중에 영리한 ~ 간파했으리라:득과 실이 나누어진 그곳에서 뚜렷하게 득과 실이 없는 도리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아래 나오는 천동의 상당법문의 뜻도 이 해설에 따라 추정하면 된다.
天童:松直云云至脫絆者, 無得失處也. 無何云云至到岸者, 得失宛然也. 箇中靈利云云者, 當得失, 宛然會得無得失也. 
次上堂義, 以此推之也.

​묘지곽의 송

​한 사람은 얻었고 한 사람은 잃었다 하니,
누구에 의지하면 그 뜻을 다 알 수 있을까?
부싯돌 번득이듯 재빠른 솜씨로도 통할 수 없고,
번갯불과 같이 민첩한 분별로도 미치지 못한다네.
妙智廓頌, “一得一失, 憑誰委悉? 石火罔通, 電光不及.”

​열재거사의 송

​달이 지자 발을 말아 고리에 걸었고,
나그네는 짐 꾸려 떠날 채비 마쳤다.
호각소리에 실려 온 바람이 발길 붙들어,
남루5)를 지나가려 하지 않는구나.
〈또한 ‘둘 다 얻기도 했고 둘 다 잃기도 했다’라고 한다>
悅齋居士頌, “月落上簾鉤, 行人已裹頭. 角聲風約住, 不肯過南樓.” 〈又云, ‘全得亦全失.’〉
5) 南樓. 중국 호북성(湖北省) 악성현(鄂城縣) 남쪽에 위치한 누대. 달맞이를 하기 좋은 누대라고 하여 
   완월루(玩月樓)라고도 한다.

천동정각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이렇게 간 사람은 빗나갔고, 이렇게 간 사람은 들어맞았다. 빗나갈 때는 철저하게 빗나가고, 들어맞을 때는 딱 들어맞게 진실을 본다.6) 알고 지내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 찼지만,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天童覺, 上堂, 擧此話云, “恁麽去底錯, 恁麽去底親. 錯時錯到底, 親時親見眞.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6) 법안은 득실을 나누었지만 득은 득으로서 자리를 지니고 실은 실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빗나가거나 
   들어맞거나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법안이 처음부터 득실이 없는 경계에서 득실을 나누어 점검의 틀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불안청원(佛眼淸遠)의 보설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그대들은 마땅히 ‘무슨 득과 실의 차별이 있는가!’라고 말해서는 안 되며, 또한 ‘한 사람은 알아차리고 발을 말아 올렸으니 얻은 것이며, 다른 한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발을 말아 올렸으니 잃은 것이다’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만약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어떻게 의사의 마음을 이해하겠는가? 지금껏 이 공안의 진실을 밝히지 못한 까닭은 그 마음을 자세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의사라 자칭하는 자는 다른 사람이 이해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이해하지 못해도 그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 견해가 있거나 없거나 전혀 변별하지 못하니, 어떻게 남들을 가르칠 수 있겠으며, 어떻게 남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뼈를 깎는 노력으로 진실을 궁구해야 한다. 만약 뼈를 깎는 노력으로 진실을 궁구하기로 받아들인다면 이해하지 못할 자가 없을 것이다. 옛사람이 ‘그대들이 다만 도리를 궁구하며 이삼십 년 동안 좌선하였음에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의 머리를 잘라 오줌통으로 만들라’7)라고 한 말을 모르는가?”  
佛眼遠, 普說, 擧此話云, “你等事須不得道, ‘有什麽得失!’ 又道, ‘一人會來去捲, 是得;一人不會來去捲, 是失.’ 若伊麽, 
作生會醫? 如今明未得, 蓋爲悟心未諦. 如不識病稱醫者, 他人會也不識, 不會也不識. 有無見處, 總辨別不得, 却如何爲人, 
如何說向人? 須是剋骨究實, 始得. 若肯去剋骨究實, 無有不會者. 不見古人道, ‘你但究理而坐二三十年, 若不會, 
截取老僧頭去, 作尿鉢子.’”
7) 조주종심(趙州從諗)의말. 『景德傳燈錄』권28 「趙州從諗和尚語」大51 p.446b22.

[설화]

그대들은 마땅히 ‘무슨 득과 실의 차별이 있는가!’라고 말해서는 안 되며:득과 실이 없는 경계에 착안한 견해이다. 천동의 게송에 ‘소나무는 곧고 ~ 치세와 난세라는 차별 모두 잊었네’라고 한 말이 그것이다. 
한 사람은 알아차리고 ~ 잃은 것이다:천동이 ‘이 안에서 득실이 반씩 나누어 졌다네’라고 한 말이 그것이다.
佛眼:你等事須不得云云者, 無得失處著眼也. 天童所言, 松直至俱亡治亂者, 是也. 一人會來云云者, 許裏得失相半云云,
是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