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1칙 수산죽비 首山竹篦1)
[본칙]
수산성념(首山省念)이 죽비를 집어 들고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죽비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죽비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된다. 말해 보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首山, 拈起竹篦子, 問僧云, “喚作竹篦卽觸, 不喚作竹篦卽背. 且道! 喚作什麽?”
1) 물들거나[觸] 등지는[背] 두 가지를 모두 부정함으로써 설정한 화두의 관문이다. 이를 배촉관(背觸關)
이라 하며, 수산의 이 말이 선구적 역할을 한다. ‘배’는 일정한 언어의 관념에서 등을 돌리고 완전히
벗어나 사실과 어긋나게 되는 잘못이며, ‘촉’은 그 말에 속박되어 물드는 잘못이다. 즉(卽)과 리(離)를
모두 차단하여 관문을 설정하는 방식과 같다. 즉은 촉, 리는 배에 각각 상응한다. 본서 5則 주석39),
108則 주석2), 165則 주석3), 181則 주석5), 399則 주석2), 429則 주석60)참조.
[설화]
죽비란 죽비 한 자루를 말한다. 죽비라 부르거나 그렇게 부르지 않거나 모두 옳지 않으니, 등지는 것이나 물드는 것이나 모두 벗어나야만 한다.
竹篦者, 一條竹篦子也. 喚作不喚作俱不是, 背觸俱離, 始得.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송
등지거나 물든다는 말에 가린 것 없으니,
분명하게 곧바로 다 들어 보인 것이로다.2)
비록 취모검을 휘두르지는 않았으나,
곳곳에 칼과 창이 없는 곳이 없구나.3)
雲門杲頌, “背觸非遮護, 明明直擧揚. 吹毛雖不動, 遍地是刀鎗.”
2) 배(背)·촉(觸) 자체에 화두가 모두 실현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 덧붙일 뜻이 없다는 말이다.
3) 취모검과 같은 특별한 방편을 쓰지 않더라도, 배·촉의 방법을 적용하기만 한다면 모든 대상이 본분을
깨우치기 위한 무기(수단)가 된다는 뜻이다.
죽암사규(竹庵士珪)의 송
죽비를 들어 제기하니,
어떻게 근본에 이를까?
비마암도 이해하지 못했으니,
뒤쫓아 가 집게로 집었을 뿐.4)
竹庵珪頌, “擧起竹篦子, 如何便到家? 秘魔嵓不會, 隨後便擎叉.”
4) 비마암이 항상 나무집게 하나를 들고 있다가 학인들의 목을 집고서 그 반응을 살피면서 점검한 인연을
말한다. 본서508則「秘魔杈却」참조.
[설화]
분명하게 핵심을 드러내어 보였으니, 그 자리에서 근본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비마암이 집게로 학인들의 목덜미를 집었다는 것은 덧붙인 말이다.
竹菴:明明直擧揚, 卽時便到家也. 秘魔擎叉, 乃是剩法也.
무용정전(無用淨全)의 송
검게 옻칠한 죽비를 잡아 제기하나,
우렁찬 천둥소리도 가린 귀에는 들리지 않노라.5)
덕산과 임제도 어찌할 도리를 모를 것이니,
어리석은 자가 무슨 방도로 말할 수 있으랴?
無用全頌, “黑漆竹篦握起, 迅雷不及掩耳. 德山臨際茫然, 懵底如何揷觜?”
5) 분명한 본분의 울림도 제대로 알아듣는 밝은 귀가 없으면 전할 수 없다는 뜻.
[설화]
덕산과 임제도 어찌할 도리를 모른다:덕산의 엄정한 법령과 임제의 근본적 작용은 향상하기 위한 본분사이다. 그것이 참으로 향상이라면 무슨 이유로 어찌할 도리를 모른다는 말일까?6)
無用:德山臨濟茫然者, 德山正令, 臨濟大用, 是向上事. 旣是向上, 爲什麽茫然?
6) 이 배촉관은 본분의 화두가 남김없이 실현되어 있기 때문에 덕산의 방(棒)과 임제의 할(喝)과 같은 향상을
위한 수단도 들어 올 틈이 없다는 뜻이다.
대혜종고의보설1 7)
“나는 방에서 항상 선수행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죽비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죽비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된다.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말이 없어도 안 되며, 생각해서도 안 되고 헤아려서도 안 되며, 옷소매를 털고 떠나서도 안 되니, 그중 어떤 것도 안 된다. 그대들이 죽비를 빼앗아 부정하려 한다면 내가 빼앗도록 허용하겠지만, 내가 주먹이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주먹이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된다고 할 경우, 그대들은 다시 어떻게 빼앗아 부정할 것인가? 또한 설령 그대들이 ‘화상께서는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라고 한다면 나는 내려놓겠지만, 내가 노주(露柱)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노주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된다고 할 경우, 그대들은 다시 어떻게 빼앗아 부정하겠는가? 내가 산하대지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산하대지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되니, 그대들은 다시 어떻게 그것을 빼앗아 부정하겠는가? 주봉장로(舟峯長老)가 ‘제가 화상의 죽비 화두를 살펴보니, 마치 세금으로 한 가문의 재산을 모두 빼앗아 놓고서 또 다시 물건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8)라고 하기에 내가 말했다. ‘장로의 비유는 지극히 묘한 뜻을 가지고 있군요. 나는 진실로 당신이 물건을 바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어디서도 물건을 내놓지 못한다면 반드시 죽을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강물에 몸을 던지든가 불속에 뛰어들든가 하여 목숨을 버려야 비로소 죽을 것입니다. 죽고 나면 도리어 천천히 다시 살아날 것이지만, 그때 당신을 보살이라 부를 경우 기뻐하고 도둑놈이라 부를 경우 화를 낸다면 여전히 죽기 전의 바로 그 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옛사람은 ‘아득한 절벽에서 손을 뿌리쳐 놓아야 스스로 수긍하며 알아차리며, 목숨이 끊어진 다음 다시 살아난다면 누구도 그대를 속이지 못할 것이다’9)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죽비자 화두를 깨달을 것이다.”
雲門杲, 普說云, “室中常問禪和子, 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卽背. 不得下語, 不得無語, 不得思量, 不得卜度,
不得拂袖便行, 一切惣不得. 你便奪却竹篦, 我且許你奪却, 我喚作拳頭則觸, 不喚作拳頭卽背, 你又如何奪? 更饒你道,
‘个請和尙, 放下着.’ 我且放下着, 我喚作露柱則觸, 不喚作露柱則背, 你又如何奪? 我喚作山河大地則觸,
不喚作山河大地則背, 你又如何奪? 有个舟峯長老云, ‘某看和尙竹篦子話, 如籍沒却人家財産了, 更要人納物事.’ 妙喜曰,
‘你譬喩得極妙, 我眞箇要你納物事. 你無從所出, 便須討死路去也. 或投河, 或赴火, 拌得命, 方始死得. 死了却緩緩地,
再活起來. 喚你作菩薩便歡喜, 喚你作賊漢便惡發, 依前只是舊時人.’ 所以, 古人道, ‘縣崖撒手, 自肯承當, 絶後再蘇,
欺君不得.’ 到這裏, 始契得竹篦子話.”
7) 모든 대상을 배촉의 논리로 수용하여 남김없이 화두로 만드는 요령을 보여주는 법문이다.
8) 모두 빼앗겨 더이상 써먹을 수단이 사라진 경계를 나타낸다.
9) 영광원진(永光院眞)의 말.『景德傳燈錄』권20 大51 p.362a21 참조.
[설화]
주봉장로가 한 말까지의 내용은 화두를 알아차렸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강물에 몸을 던지든가 ~ 그 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예전 그대로 기쁨과 노여움이 남아 있다면 이는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라는 뜻이다.
아득한 절벽에서 손을 뿌리쳐 놓아야 ~ 그대를 속이지 못할 것이다:‘달 속의 계수나무를 베어 없애면, 밝은 달빛이 더욱 많이 쏟아지리라’10)라는 말과 같다.
雲門云云, 舟峯長老云云者, 會也, 伊麽道也. 投河赴火拌得命云云者, 是則依前有喜有怒也, 然則是不會也.
懸崖撒手云云者, 斫却月中桂云云也.
10) 두보(杜甫)의 시에 나오는 구절. 본서181則 주석18) 참조.
대혜종고의 보설 2
“죽비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죽비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된다.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말이 없어도 안 되며, 생각으로 헤아려도 안 되고 머뭇거리며 분별해도 안 된다. 바로 이런 순간에 당면해서는 비록 석가노자와 달마대사에게 콧구멍이 있더라도 숨을 쉴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11) 말해보라! 이 한 칙의 공안에 어떤 장점이 있을까? 잘 알겠는가? 신분이 귀한 자를 만나면 천하게 굴고 천한 자를 만나면 귀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만약 귀하다거나 천하다거나 하는 차별에 뿌리를 내리고 분별한다면 다시 짚신을 사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수행해야 할 것이다.12) 그러므로 ‘유심(有心)으로도 구할 수 없고 무심(無心)으로도 얻을 수 없으며, 언어로 꾸며낼 수도 없고 침묵으로 통할 수도 없다’라고 한다. 비록 이렇기는 하지만 하늘이 모든 것을 두루 덮어주고 땅이 만물을 받쳐주는 것과 같이, 모두 놓아주고 모조리 거두어들이며 모두 죽이고 남김없이 살려준다.13) 내가 이렇게 한 말도 이런 본분의 소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又普說云, “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不得下語, 不得無語;不得思量, 不得擬議. 正當伊麽時, 釋迦老子, 達磨大師,
雖有鼻孔, 直是無出氣處. 且道! 遮一則公案, 有甚長處? 還委悉麽? 遇貴則賤, 遇賤則貴. 若向貴賤處著到,
更須買草鞋行脚, 始得. 所以道, ‘不可以有心求, 不可以無心得;不可以語言做, 不可以寂默通.’ 雖然如是, 如天普蓋,
似地普擎, 全放全收, 全殺全活. 妙喜伊麽道, 也不離者箇消息.”〈云云〉
11) 교(敎:석가노자)의 이론과 선(禪:달마대사)의 도리에 각각 본분을 파악하는 본질적인 수단[鼻孔]이
있지만,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도록 설정된 죽비 화두 앞에서는 두가지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12) 귀하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려고 하면 천한 것을 제시하여 부정하고, 천하다는 생각에 근거하려 하면
거꾸로 귀한 것을 제시하여 부정하는 방식이다. 결국 귀와 천을 각각 활용할 뿐 그 어느 편에도
안착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것이 배(背)와 촉(觸) 그 어느 편도 허용하지 않는 죽비 화두의 근본적
수단이다. 따라서 귀와 천의 대립을 하나의 인식 범주로 삼아 분별하게 되면 이 또한 잘못이므로 수행을
다시 해야 된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은 대혜종고(大慧宗杲) 이외에도 굉지정각(宏智正覺)이 공안을 해설할
때 활용했다. 다만 굉지는 물건의 값이 비싸다[貴] 또는 싸다[賤]는 뜻으로 썼다. “다음의 공안을 제기했다.
어떤 학인이 조산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어떤 물건이 가장 비쌉니까?’ ‘죽은 고양이가 가장 비싸다.’
‘어째서 죽은 고양이가 가장 비쌉니까?’ ‘아무도 그 값을 매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굉지정각이 평가한다.
‘조산은 물건을 시장에 들여놓지도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1전의 가치도 없다. 조산은 싼
물건을 마주하고 비싼 값으로 불렀지만, 나의 이곳에서는 비싼 물건을 마주하고 싼 값으로 부른다.
말해보라! 나와 조산 사이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가?’”(『宏智廣錄』 권3 大48 p.32c4. 擧. 僧問曹山,
‘世間什麽物最貴?’ 山云, ‘死猫兒最貴.’ 僧云, ‘爲什麽死猫兒最貴?’ 山云, ‘無人著價.’ 師云, ‘曹山,
物貨不入行市, 子細看來, 直是一錢不直. 曹山, 遇賤則貴;我這裏,遇貴則賤. 且道!還有相違處麽?’)
13) 부정할 때는 철저하게 모두 부정하고 긍정할 때는 모든 것을 허용하지만, 양자에 똑같이 화두가 실현되어
있다는 뜻이다. 마치 하늘과 땅이 일체의 존재를 덮거나 받쳐주면서 생성과 소멸 등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관장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앞에서 배촉의 관문이 어떤 수단도 가능하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지만, 동시에 긍정과 부정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뜻을 제기하고 있다.
[설화]
죽비라 부르면 그 말에 물들고 ~ 숨을 쉴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조사의 뜻과 경전의 뜻도 붙어 있을 곳이 없다는 뜻이다.
귀한 자를 만나면 천하게 굴고 천한 자를 만나면 귀하게 행동한다:천한 듯하지만 귀하고 귀한 듯하지만 천하다는 뜻이다.
하늘이 모든 것을 두루 덮어주고 ~ 모두 죽이고 남김없이 살려준다:거두거나 놓아주고 죽이거나 살리는 등 긍정과 부정이 함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렇게 한 말도 이런 본분의 소식을 벗어나지 않는다:비록 죽이거나 살리는 도리가 있지만 두 가지를 분명하게 가려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앞부분에서는 한 수를 높이 제기하였지만14) 이 본분의 소식을 벗어나지 않고, 뒷부분에서는 넓게 한 발 내디딘 것이지만15) 이 또한 본분의 소식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又普說云云, 釋迦達摩云云, 無出氣處者, 祖意敎意湊泊不得也. 遇貴則賤云云者, 似賤而貴也. 如天普盖云云者,
亦有收放殺活也. 妙喜伊麽道云云者, 雖有殺活, 分辨不得也. 前則高一著也, 不離這箇消息;此則廣一步也,
不離這箇消息也.
14) 불가(不可)와 부득(不得)이라는 말로 이 화두에 대한 접근의 통로를 모조리 부정하여 높고 아득하게[高遠]
만든 것.
15) 전살전활(全殺全活)등으로 긍정과 부정을 모두 허용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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