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4칙 홍진명지 洪進明知
[본칙]
양주(襄州) 청계홍진(淸溪洪進)선사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물었다. “생성은 본래 생성과 소멸이 없는 법이라고 분명히 알고 있는데, 어째서 생사의 유전 속에 윤회할까?” “죽순이 언젠가는 결국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어찌 대 껍질로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이다음에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저의 소견은 이 정도일 뿐인데, 상좌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곳은 감원(監院)의 방이다. 어느 곳이 전좌(典座)의 방인가?” 수산주가 감사의 절을 올렸다. 〈『암바제녀경』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암바제녀가 문수에게 물었다. ‘생성은 본래 생성과 소멸이 없는 법이라고 분명히 알고 있는데, 어째서 생사의 유전 속에 윤회할까?’ ‘자신의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
襄州, 淸溪洪進禪師, 問修山主, “明知生是不生之法, 爲什麽, 被生死之所流?” 修云, “筍畢竟成竹去, 如今作篾使得麽?”
師云, “汝向後自悟去在.” 修云, “某甲所見秪如此, 上座意旨, 如何?” 師云, “這箇是監院房, 那箇是典座房.” 修乃禮謝.
〈菴婆提女經云, “菴婆提女, 問文殊云, ‘明知生是不生之法, 爲什麽, 卻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
1)『암바제녀경』이라는 제목과 일치하는 경전은 없지만,『長者女菴提遮師子吼了義經』大14 p.964a24의 다음
내용과 대체로 통한다.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암제차(菴提遮)에게 물었다. ‘생성하지만 생성하지 않는 법의
특징을 분명히 알면서도 생성에 붙들려 속박된 자들이 제법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비록 스스로 분명히
알더라도 힘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 생성에 붙들려 속박된 자들이 그들입니다.’”(爾時, 文殊師利, 又問曰,
‘頗有明知生而不生相, 爲生所留者不?’ 答曰, ‘有. 雖自明見,其力未充,而爲生所留者,是也.’)경의 ‘留’(붙들려
속박됨)가 본서와 마찬가지로 ‘流’로 바뀌어 쓰이는 선문헌이 많다. 이 경을 비교적 정확히 인용하고 있는
『祖庭事苑』권4 卍113 p.124a5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설화]
생성은 본래 ~ 윤회할까:‘돈오하면 비록 부처의 경지와 같다고 하지만, 윤회하던 여러 생 동안 쌓인 습기(習氣)는 뿌리가 깊다’라고 운운한 말2)과 같다.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수산주를 점검한 질문이다.
죽순이 언젠가는 ~ 어떠십니까:갓난아기가 비록 6식(識)을 갖추고 있더라도 세월이 제법 많이 흘러야 비로소 성인이 된다3)는 뜻과 같다. ‘이곳은’ 이하의 말은 생멸이 없는 그대로 생멸이라는 뜻이다.
明知生是不生云云者, 頓悟雖同佛, 多生習氣深云云也. 惜此驗他也. 筍畢竟成竹去云云者, 初生孩子, 雖具六識, 頗經歲月, 方始成人也. 這箇是下, 無生卽生也.
2)『修心訣』大48 p.1007c3 등에 인용으로 나오지만 정확한 출전은 알 수 없다. 생략된 부분은 “마치 바람이
멎었어도 물결은 일렁이듯이 이치가 분명히 나타나도 여전히 망념은 침입한다.”(風停波尚湧,理現念猶侵)라는
두 구절 이다.
3) “‘갓난아기에게도6식이있습니까?’ ‘급히흐르는물위에서공을친다’”(『趙州語錄』 古尊宿語錄14 卍118 p.319b17.
問, ‘初生孩子, 還具六識也無?’ 師云, ‘急流水上打毬子.’);“돈오[頓圓]는 마치 갓난아기가 하루 만에 지체가 이미
다 갖추어지는 것과 같고, 점수(漸修)는 양육하여 성인이 되고 많은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지기(志氣)가
확립되는 것과 같다.”(『景德傳燈錄』권13「圭峯宗密傳」大51 p.307b12. 頓圓, 如初生孩子, 一日而肢體已全;
漸修, 如長養成人, 多年而志氣方立.)
천복본일(薦福本逸)의 송
홍진은 분명히 오대산에 이르렀고,4)
수산주는 참으로 민(閩) 땅에 들어갔네.
유나와 원주의 방 마주보고 있어,
말 붙이면 두 눈을 뜨도록 하리라.
薦福逸頌, “進老分眀到五臺, 修師眞箇入閩來. 維那院主房相對, 說著令人雙眼開.”
4) 문수보살이 있다는 오대산에 들어가 그 가르침을 받은 경지와 같다는 말.
[설화]
첫째 구절은 암바제녀가 문수를 친견한 경지를 나타내고, 둘째 구절은 수산주가 설봉을 친견한 경지를 나타낸다. 수산주만 그렇다고 말하지 마
라. 홍진에게도 얽매인 몸을 벗어날 길이 있었다. 셋째 구절은 수산주의 경지이다. ‘두 눈’이란 차별과 무차별을 가리킨다.
薦福:初句, 菴婆提女, 親見文殊也. 二句, 親見雪峯也. 莫道修山主, 淸溪亦有出身之路也. 三句, 修山主底也. 雙眼者,
差別無差別也.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송
막힘없이 트이고 의지할 것 없으며,
드높고 할 일 없어 속박도 없노라.
고향은 태평하나 찾는 사람 드무니,
아주 작은 역량으로도 계급 나누고,
거침없는 몸과 마음 시비 끊어졌네.
시비가 들어설 틈이 전혀 없어,
우주에는 따라갈 법칙은 없도다.
天童覺頌, “豁落亡依, 高閑不羈. 家邦平貼到人稀, 些些力量分階級. 蕩蕩身心絶是非, 是非絶介立, 大方無軌轍.”
열재거사의 송
무정의 설법은 법 중의 왕이니,5)
한 번 쥐었다 풀면 시방에 가득하구나.
노주과 등롱6)이 일제히 북치고 춤추니,
한산과 습득은 더욱 미치광이 되었네.7)
悅齋居士頌, “無情說法法中王, 一捏攤開滿十方. 露柱燈籠齊鼓舞, 寒山拾得轉風狂.”
5) 사람이 아닌 돌·바람·구름등 무정(無情)의 차별된 모습과 그들이 내는 소리와 향기 등이 모두 진리를 전하는
설법이며, 그것이 법 중에서 가장 뛰어난 법이라는 뜻이다. “온몸 어디에도 알아차릴 수 있는 영상이라곤
없고, 전체가 남김없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소리와 빛깔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으나, 어찌 길고 짧은 차별이
있었겠는가! 무수한 존재들이 항상 모든 곳에 나타나 있으므로 법 중에서 가장 뛰어난 법이라 한다. 우담발화
(優曇鉢花)가 활짝 피었으나 냄새를 맡으려해도 향기를 느낄 수 없다.”(『佛眼語錄』古尊宿語錄30 卍118
p.544a8. 通身無影像, 脫體露堂堂. 不話非聲色, 何曾有短長! 河沙恒遍現, 故號法中王. 優曇花正開, 嗅著不聞香.)
6) 이 두 가지는 무정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많이 쓰인다. 181則 주석29), 204則 주석15) 참조.
7) 어떤 규범에도 속박되지 않는한 산과 습득의 언행이 범상한 눈에는 미치광이처럼 보인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 세계의 살아 있는 움직임과 어울려 한산과 습득도 더욱 궤범을 벗어나 격외(格外)의 선기(禪機)를 펼칠
것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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