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8칙 북선세진 北禪歲盡
[본칙]
담주(潭州)의 북선지현(北禪智賢)1)화상이 제야2)에 대중에게 말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여러분에게 분세3)의 잔치를 베풀어 줄 것이 없어 노승은 한 마리 노지백우4)를 삶고 기장밥을 짓고 야채국을 끓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화롯가를 둘러싸고 땔나무 불을 쪼이며 농부가를 부르리라. 어째서 이와 같이 하는가? 남의 문에 의지하거나 남의 담장에 기대는 잘못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5) 나아가 남들로부터 주인이라 불리기 위해서이다.” 법좌에서 내려와 방장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어떤 학인이 방장의 발을 걷어 올리고 “화상이시여! 현의 관리가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무슨 일로 왔다더냐?” “화상으로부터 소의 가죽과 뿔을 받아가겠답니다.” 이에 북선이 모자를 집어서 바닥에 던져 놓자 그 학인이 가까이 다가와 바로 주웠다. 북선이 그를 꽉 붙들고 말했다. “도둑을 잡았다! 도둑을 잡았어!” 학인이 모자를 북선의 머리에 씌우며 “날씨가 추우니 화상의 모자를 돌려드립니다”라고 말하자 북선이 껄껄대고 크게 웃었다. 〈당시에 법창의우(法昌倚遇)화상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북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요즘 성 안에 종이가 부족하니, 한 통의 판결문에 모두 처리하십시오”라고 대답했다.>6)
潭州, 北禪智賢和尙, 除夜, 示衆云, “年窮歲盡, 無可諸人分歲, 老僧烹一頭露地白牛, 炊黍米飯, 煮野菜羹, 大家與諸人,
圍爐向榾柮火, 唱村田樂. 何謂如此? 免見倚他門戶, 傍他墻, 更被他人喚作郎.” 下座, 歸方丈. 次有一僧, 揭簾叫, “和尙!
縣中有公人到此.” 師云, “作什麽?” 僧云, “勾和尙納皮角.” 師拈頭帽, 擲放地下. 其僧近前便拾. 師搊住云, “捉賊! 捉賊!”
僧以頭帽裹放師頭上云, “天寒, 還和尙頭帽.” 師呵呵大笑. 〈時, 法昌遇和尙在彼, 師問, “如何?” 遇曰, “近日城中紙貴,
一狀領過.”〉
1) 생몰연대 미상. 송나라 때 선사. 형주(衡州) 북선사(北禪寺)에 주석하였다. 운문종(雲門宗) 담주(潭州)
복엄양아(福嚴良雅)의 제자이다.
2) 除夜.한해의 마지막날 맞이하는 밤.
3) 分歲.섣달 그믐에 한해의 마지막날을 기념하여 치르는 향연의 일종.
4) 露地白牛. 각자의 본래면목을 상징한다. 원래 『法華經』「譬喩品」大9 p.12c13에서 일승(一乘)의 묘법
(妙法)을 백우에 비유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노지는 사방이 막히지 않고 훤히 드러난 안온한 곳을
이르는 말로서 장애가 사라진 불지(佛地)를 비유한다.
5) 타인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자신의 체험에 근거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는 말이다. 남의 집문에
의지한다는 방인문호(傍人門戶)와 통한다.이는 남들이 세워 놓은 문을 통하여 출입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체득 없이 남들의 견해를 맹종하여 얽매이는 잘못을 가리킨다.
6) 이 공안을 소재로 한 법창의우의 다음과 같은 문답도 있다. “제야에 탕을 먹다가 감수좌가 물었다.
‘옛날 북선이 분세를 베풀때는 노지백우를 삶았는데, 스님은 오늘밤 분세에 무엇을 베풀어 주시렵니까?’
‘섣달에 내린 눈이 하늘까지 하얗게 물들이고, 봄바람은 방문을 뚫고 차갑게 들어오는구나.’ ‘대중은
무엇을 먹습니까?’ ‘차고 담담하여 아무 맛이 없는 것을 싫다 하지 마라! 한 번 배를 채우면 만겁의
굶주림도 해소시킬 수 있다.’ ‘이 경지는 어떤 사람이 갖추고 있습니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이로구나!
그 까닭도 모르느냐?’”(『法昌倚遇語錄』 卍126 p.480b6. 歲夜喫湯次, 感首座云, ‘昔日, 北禪分歲,
曾烹露地白牛, 和尙今夜分歲, 有何施設?’ 師云, ‘臘雪連天白, 春風逼戶寒.’ 感云, ‘大衆喫箇什麽?’ 師云,
‘莫嫌冷淡無滋味!一餉能消萬劫飢.’ 感云,‘未審是什麽人置辦?’師云,‘無慚愧漢!來處也不知?’)
[설화]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 노지백우를 삶고:마음에 있는 한 마리 소를 말한다.
기장밥을 짓고 ~ 농부가를 부르리라:억지로 하지 않고 할 일도 모두 마친[無爲無事] 촌노인의 종풍(宗風)이다.
남의 문에 의지하거나 ~ 주인이라 불리기 위해서이다:끝내 밖으로 치달리며 구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어떤 학인이 방장의 발을 걷어 올리고 ~ 화상으로부터 소의 가죽과 뿔을 받아가겠답니다:노지백우는 가죽과 뿔이 없는 듯이 보이므로 그렇게 헤아려 따진 것이다.
북선이 모자를 집어서 ~ 가까이 다가와 바로 주웠다: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니, 그 학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핀 것이다. 그 이하의 구절들은 각각 사실에 근거한 뜻은 아니다.
껄껄대고 크게 웃었다:문답을 마무리 지은 것이다.
年窮歲盡至白牛者, 一頭心牛也. 炊黎米至村田樂者, 無爲無事野老宗風也. 免見倚他門戶云云者, 終不向外馳求也.
有一僧揭簾呌和尙云云, 又勾和尙納皮角者, 露地白牛, 似乎無皮角, 故推徵也. 拈頭帽云云者, 不道無也, 則看他支對也.
下節節各各, 本非實意也. 呵呵大笑者, 決折也.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송
상도 있고 벌도 있지만,
어느 편에도 치우침 없네.
정성껏 노지백우를 삶아,
저무는 한 해7) 보내노라.
먹어도 배부르지 않아 다시 침을 흘리니,
천고 세월 동안 북선을 원망하게 하누나.
기미 이전 경계로 발걸음 옮겨 살활을 따지다가,
하늘까지 치솟은 콧구멍8) 한순간에 뚫려버렸네.
心聞賁頌, “有賞有罰, 無黨無偏. 殷勤烹露地, 相與送殘年. 喫不飽再垂涎, 千古令人怨北禪. 轉步機前論殺活,
遼天鼻孔一時穿.”
7) 잔년(殘年).세모(歲暮)와 같은 말.
8) 요천비공(遼天鼻孔).자존심이 높고 오만한 태도를 말한다.
[설화]
‘상도 있고 벌도 있다’는 말은 그 학인의 의중이고, ‘어느 편에도 치우침이 없다’는 말은 북선의 의중이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아 ~ 원망하게 하누나:모든 사람이 북선의 의중을 몰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북선의 의중은 무엇일까? 어느 편에도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
기미 이전 경계로 발걸음 옮겨 ~ 뚫려버렸네:다시 살활을 따져도 옳지 않다는 뜻이다.
心聞:有賞有罰者, 這僧意也. 無黨無偏者, 此師意也. 喫不飽云云者, 諸人不會北禪意也. 北禪意如何? 無黨無偏也.
轉步云云者, 又論殺活, 亦不是也.
죽암사규(竹菴士珪)의 거
“대중들이여, 그대들은 저 밝은 눈을 가진 종사들이 상황에 따라 핵심만 간략하게 드러내는 뛰어난 솜씨를 보라. 그대들과 얼마나 다른가! 요즘 사람들은 단지 문자에 의한 분별과 말에 근거한 이해를 과시하고 자랑하며, 허튼 말을 마구 늘어놓으며, 타인과 자신의 견해를 갈라서 승부를 다투며, 본분에 딱 들어맞는 듯한 말들을 가지고 큰스님에게 인가를 받아 박복한 업을 짓기에 관심을 둘 뿐이니, 어디서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산승의 이곳에서는 노지백우를 삶아 그대들에게 먹여 주지도 않을 것이며, 기장밥을 짓거나 야채국을 끓여서 그대들에게 공양할 시간도 없고, 그대들에게 화롯가에서 타는 땔나무불도 베풀지 않겠다. 다만 그대들과 짝하여 한가롭게 앉아 그대들이 남의 문에 의지하여 기대고 사는 그대로 두고서 임종하는 날9) 눈빛이 땅에 떨어져 죽는 바로 그 순간의 선(禪)에 대해 말해 주겠다. 요는 그대들 각자가 삶을 걱정하고 죽음을 염려하여 출가한 본분사를 바르게 가려낸다면, 임종하는 순간에 아직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아 손발을 버둥거리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것이다.” 주장자를 한 번 들었다 내리치며 말하였다. “알겠는가? 천당과 지옥의 문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수없이 철퇴를 휘둘러 쳐도 열리지 않는구나.”10)
竹庵珪, 擧此話云, “大衆, 你看佗明眼宗師, 隨分露些子. 自是不同你! 今時人, 只管逞知逞解, 逞驢唇馬觜, 爭人負我,
以合頭相似語句, 印可老宿, 作薄福業, 那裏到得恁麽田地! 山僧這裏, 也不烹露地白牛與你喫, 也無工夫, 炊黍米飯,
煮野菜羹, 供養你, 也不共你, 向爐邊燒榾炪火. 伴你閑坐, 從敎你諸人, 倚他人門, 傍他人戶, 却與你說些子臘月三十日,
眼光落地底禪. 且要, 諸人各自憂生念死, 辦出家事, 免見臘月三十日, 未有去處, 手脚忙亂.” 以拄杖, 卓一下云, “還會麽?
天堂地獄門相對, 無限輪槌擊不開.”
9) 납월삼십일(臘月三十日).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0일이다. 한 해를 일생과 대응시켜 이것으로써
생의 마지막 날인 임종하는 순간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10) 설두중현(雪竇重顯)의 게송에도 같은 구절이 보인다. “구절 속에 선기를 드러내어 정면으로 드러내니,
삭가라안[金剛眼]에는 한 점 티끌도 없구나. 동서남북의 문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수없이 철퇴를
휘둘러 쳐도 열리지 않네.”(『頌古聯珠通集』권20 卍115 p.245a10. 句裏呈機劈面來, 爍迦羅眼絶纖埃.
東西南北門相對, 無限輪槌擊不開.)
[설화]
삶을 걱정하고 죽음을 염려해도 현재의 상황[今時]을 가로막지 않는다는 뜻이다.
竹菴:優生念死, 不礙今時也.
개암붕의 거
“북선은 법이 생기면서 간교한 계략도 아울러 일으킨 것과 같았고,11) 그 학인은 감옥에 갇혀서 분별을 키우는 것과 같았다.12) 점검해 보면 양편에 모두 잘못이 있다. 북선은 노지백우를 삶았다고 하여 많은 말을 야기한 잘못을 벗어나지 못했다. 만약 나였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지백우를 삶지도 않고 다만 쇠로 만든 만두13) 하나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분세의 잔치를 베풀어 주었을 것이다. 만약 씹어서 부순다면 온갖 맛을 모두 갖추어 입에는 향기가 가득할 것이다.14) 그러나 만일 씹어서 부수지 못한다면 치아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마침내 주먹을 세우고 말했다. “여러분은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제대로 말해 볼 사람 있는가? 한번 나와서 말해 보라. 있는가? 있는가? 그럴 사람이 없는 이상 내가 스스로 팔고 스스로 사지 않을 수 없구나. 궁극적으로 무슨 뜻일까? 한평생 마음껏 써먹어도 다하지 않는 것이다.15) 알겠는가? 모르겠다면 다시 게송 한 수를 들어 보라. ‘뿔 달고 털옷 입은 채로 불쑥 나타나니, 쟁기와 갈퀴 끌 때는 마음 그치지 않네. 가죽 뚫고 뼈 드러나야 쉬게 될 것이니, 종승16) 가지고 수수께끼 만들지 않으리.’”
介庵朋, 擧此話云, “北禪, 法出姦生;這僧, 停囚長智. 檢點將來, 二俱有過. 北禪, 烹露地白牛, 未免惹辭. 若是能仁,
又且不然. 也不烹露地白牛, 只將箇鐵酸豏, 與諸人分歲. 若也咬嚼得破, 百味具足, 滿口馨香. 其或咬嚼不破,
也須照顧牙齒.” 遂竪起拳云, “諸人喚這箇作什麽? 還有人道得麽? 試出來道看. 有麽有麽? 旣無, 能仁不免自賣自買去也.
畢竟如何? 一生受用不盡底. 會麽? 若也不會, 更聽一頌. ‘戴角披毛撞出來, 牽犁拽把未心灰. 皮穿骨露方休歇,
不把宗乘作謎猜.’”
11) 법출간생(法出姦生). 전한(前漢)의 동중서(董仲舒)가 한 말. 법률은 악행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악한 일을 하거나 법망을 빠져나가는 간교한 사태가 나온다는 뜻이다.
북선이 본분을 터득한 다음 그것을 전하기 위해 쓴 방편을 빗댄 말이다. 아래의 ‘많은말을야기시켰다’
라는 구절에 상응한다.
12) 정수장지(停囚長智). 죄인을 감옥에 가두었으나 오히려 그 속에서 죄의 근원이 되는 잘못된 지혜만
키우는 결과가 되었다는 말. 학인이 북선의 기틀에 갇혀서 분별하고 있다는 뜻이다.
13) 철산함(鐵酸豏). 아무 맛도 없고 씹을 수도 없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몰자미(沒滋味)의 화두 또는
통과하기 어려운 관문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오조법연(五祖法演) 노스님은 평생 높이 치솟은
산과 같이 본분을 고수하며 허용하는 방편이 거의 없었다. 무미건조하게 절벽처럼 지키고 서서
오로지 이 한 수(본분)에만 의지했던 것이다. 항상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마치 수미산에 한자리 틀고
앉아 있는 것처럼 공부하라. 어찌 남의 헛된 말만 훔쳐가지고 교묘한 말솜씨를 늘어놓으며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가!’라고 하며, 아무 맛도 없는 쇠로 만든 만두를 손에 들고 쪼개어 학인들에게 보여
주고는 씹어 먹게 했다.”(『圜悟克勤禪師語』 續古尊宿語要3 卍118 p.988a12. 五祖老師, 平生孤峻,
少許可. 乾嚗嚗地, 壁立只靠此一著. 常自云, ‘如倚一座須彌山, 豈可掠虛, 弄滑頭謾人!’
把箇沒滋味鐵酸餡, 劈頭拈似學者,令咬嚼.)
14) 아무 맛도 없는 화두를 타파하면 비로소 갖가지 차별 현상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게 된다는
비유.
15) 구지(俱胝)는 평생토록 무엇에 대해 묻든지 오로지 손가락 하나만 들어보였다. 이를 일지두선
(一指頭禪)이라 하는데, 스승인 천룡(天龍)으로부터 터득한 것이다. 구지는 임종할 당시에 이러한
자신의 선에 대하여 ‘일생동안 마음껏 써먹었지만 다하지 않았다’라고 자평했다. 개암이 주먹을
들어 보이고 던진 이말은 구지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圜悟語錄』권14 大47 p.780b22,
『大慧語錄』권5 大47 p.832c2 등참조.
16) 宗乘.근본적인 가르침. 종지(宗旨)와 같은 뜻.
[설화]
다만 쇠로 만든 만두 하나를 가지고:이하에서 주먹을 세운 행위가 바로 쇠로 만든 만두에 상응한다.
뿔 달고 털옷 입은 채로 불쑥 나타나니 ~ 쉬게 될 것이니:사람과 다른 존재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17)이 아니다. 북선이 노지백우를 삶은 것은 죽이는 수단이며, 이것은 다시 살리는 수단이다. 바로 그 주먹이 노지백우이며 또한 쇠로 만든 만두인 것이다. 온갖 맛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말은 가죽과 뿔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종승이란 북선의 근본적 가르침을 말한다.
个菴:只將箇鐵酸豏云云者, 下竪起拳頭, 是鐵酸頭也. 戴角披毛云云者, 非異類中行. 北禪烹則殺却, 此則還活.
只這拳頭, 是路地白牛也, 亦鐵酸豏. 百味具足, 則皮角本自具足也. 所謂宗乘, 北禪底也.
17) 이류중행(異類中行). 비록 번뇌가 모두 사라져 윤회를 벗어났어도 반드시 모든 중생들의 삶 속에서
깨달은 경지를 펼치며 살아가는 보살행(菩薩行)을 가리킨다. ‘이류’란 아직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의 무리를 가리킨다. 남전보원(南泉普願)의 이류중행을 시작으로 조동종(曹洞宗)에서
체계화한 선종의 사상이다. “두 번째, 보살은 이류와 함께한다는 뜻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기 자신이
깨닫고 난 다음에 다시 생사윤회하는 이류의 세계로 들어가 저들을 거두는 것이다. 이미 열반의 불과
(佛果)를 증득하고서도 생사윤회하는 무리들을 버리지 않고 스스로 이롭게 한 뒤에 남들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이 빠짐없이 성불하도록 하고 자신은 마지막에 성불하리라’고 발원한 까닭에
대권(大權)보살은 먼저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일도 완성할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남전은
‘먼저 저편으로 건너가 본분사를 깨닫고, 다시 이편으로 돌아와 그 깨달음을 활용한다’라고 하거나
‘보살이 육도만행을 갖추었다’라고 한 것이다. 교학에서는 ‘한명의 중생이라도 제도되지 않은 자가
있다면 나는 결코 정각을 이루지 않으리라. 서원이 끝이 없으니 중생도 끝이 없다네’라고 한다. 이와
같이 서원하므로 ‘보살은 이류와 함께한다’고 한다.”(『重編曹洞五位』 권하「四種異類」卍111 p.263
b18. 二者, 菩薩同異類者. 先明自己, 然後却入生死異類中攝他. 已證涅槃之果, 不捨生死類, 自利利他.
願一切衆生皆成佛, 從末後成佛, 所以大權菩薩, 若不先化衆生, 己事無由得成辦. 故南泉云,
‘先過那邊知有, 却來遮邊行李.’ ‘菩薩具六度萬行.’ 敎云, ‘若有一衆生未度者, 吾終不成正覺. 誓願無邊,
衆生無邊.’ 如是誓願, 故名菩薩同異類.);“낡고 더러운 옷이 아니라면 값진 옷을 알아 볼 방법이 없고,
살쾡이 같이 하천한 존재가 아니라면 경이로운 존재를 알아 볼 방법이 없다. 부처님과 조사가 사람과
다른 존재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중생계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번뇌의 진흙 밭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최상의 깨달음(아누다라삼막삼보리)을 성취하리라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曹洞五位顯訣』 「寶鏡三昧玄義」 卍111 p.260a11. 非弊垢衣, 無以見珍御;非狸奴, 無以見驚異.
佛祖向異類中行, 所謂入衆生界.煩惱泥中,乃能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본서321則 주석2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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