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1378칙 혜각절중 慧覺浙中

실론섬 2026. 4. 23. 14:23

1378칙 혜각절중 慧覺浙中

​[본칙]

저주 낭야산의 혜각광조(慧覺廣照)화상이 법화전거(法華全擧)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습니까?” “절중(浙中)에서 왔습니다.” “배를 타고 왔습니까? 육지로 왔습니까?” “배를 타고 왔습니다.” “배는 어디에 있습니까?” “배는 발걸음 아래 있습니다.” “배나 육지 그 어느 길과도 상관없는 한 구절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이에 전거가 “제멋대로 지껄이는 엉터리[杜撰] 장로가 삼씨나 좁쌀처럼 많군요”라 말한 뒤 소매를 털고 곧바로 떠났다. 혜각이 시자에게 “그 스님은 누구냐?”라고 묻자 시자가 “거도자1)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낭야가 바로 뒤따라가 과당2)에서 보고는 “전거 사숙3)이 아니십니까? 제가 조금 전에 불경스러웠던 점은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라고 하자 전거가 할(喝)을 하고 다시 물었다. “장로는 언제 분양문하4)에 갔습니까?” “이러한 때였습니다.” “내가 절중에 있을 때부터 그 명성을 들었는데, 원래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견해를 가지고서, 어떻게 명성을 얻어 세상을 시끄럽게 합니까?” 낭야가 절을 올리며 말했다. “저의 잘못입니다.”    
滁州瑯琊山, 慧覺廣照和尙, 問擧和尙, “近離甚處?” 擧云, “浙中.” 師云, “船來? 陸來?” 擧云, “船來.” 師云, “船在甚處?” 
擧云, “船在步下.” 師云, “不涉程途一句, 作麽生道?” 擧云, “杜撰長老, 如麻似粟.” 拂袖便行. 師卻問侍者, “這僧是何人?” 
侍者云, “擧道者.” 師遂去, 旦過堂見問, “莫便是擧師叔麽? 莫怪某甲適來相觸忤.” 擧便喝, 復問, “長老何時到汾陽?” 
師云, “恁時.” 擧云, “我在浙中, 早聞你名, 元來見解秪如此, 何得名喧宇宙?” 師乃作禮曰, “慧覺罪過.”
1) 擧道者. ‘거’는 전거(全擧)를 가리킨다. ‘도자’는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도인(道人)과 같은 
   말이며 법명 등의 뒤에 붙여 쓴다.
2) 過堂. 단과료(旦過寮) 또는 객당(客堂)이라고도 한다. 손님[客僧]으로 들려 잠시 머무는 요사.
3) 師叔.법계(法系)상의숙부(叔父).
4) 두 선사에게 모두 스승이 되는 분양선소(汾陽善昭)의 처소를 가리킨다.

[설화]

​낭야는 손님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손님 노릇만 하였고, 거화상은 주인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 노릇만 하였다.5)
두찬(杜撰):『한람』6)에 이렇게 전한다. “한나라 사람 두묵7)은 명성이 자자하여 황우연간8)에 세상에서 가호9)라 일컬어졌다. 그가 시에 가락을 붙여 노래하면 본래의 시를 허탄하게 바꾸어 괴이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사람들이 근거도 없이 말을 지어내는 사람을 가리켜 두찬10)이라 했다.” 휼(譎)은 ‘고’와 ‘혈’을 반절한 음으로 속인다는 뜻의 사(詐)와 같다.
瑯琊, 賓則始終賓;擧和尙, 主則始終主也. 杜撰者, 閑覽云, “漢人杜嘿有名, 皇祐間世號歌豪. 其爲歌詩, 多譎誕險怪之,
故俗謂造語無準者, 爲杜撰.” 譎, 古穴切, 詐也.
5) 아래 대혜종고(大慧宗杲)의 거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손님과 주인의 입장이 각각 뚜렷하게 구분된 
   상태에서 서로의 선기(禪機)를 드러내는 선법이다.
6) 閑覽.범정민(范正敏)이지은『遯齋閑覽』의줄임말.
7) 杜嘿.‘嘿’은‘默’의오식.
8) 북송(北宋) 4대황제인종(仁宗)의연호로1049~1054년간이다.
9) 歌豪. 송(宋)나라 때 구양수(歐陽修)·석연년(石延年) 그리고 두묵 등 세 사람의 각각 뛰어난 점을 높이 
   사서 시대를 대표하는 세 명의 호걸(豪傑)이라는 뜻에서 삼호(三豪)라 불렀다. 구양수는 문호(文豪), 
   석연년은 시호(詩豪), 두묵은 가호(歌豪)라 했던 호칭이 그것이다.
10) 두묵[杜]과 같이 멋대로 짓는다[撰]는 뜻. “두묵이 지은 시에는 형식적인 음률에 맞지 않는 예가 많았다. 
    그래서 일이 격식에 맞지 않는 것을 두찬이라 한다.”(『野客叢書』.杜默爲詩,多不合律.故言,事不合格者,
    爲杜撰.)

해인초신(海印超信)의 송

고기 잡는 늙은이 걸림 없이 동서로 오가는데,
갈대 피리와 단소는 조화롭게 어울리지 않도다.
밤은 고요하고 달은 밝아 고기 물리지 않으니,
배 한 척에 몸 누이고 무릉계곡11)에 들어가네.
海印信頌, “漁翁蕭灑任東西, 蘆管橫吹和不齊. 夜靜月明魚不食, 扁舟臥入武陵溪.”
11) 무릉계(武陵溪). 무릉원(武陵源)과 같은 말.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桃花源記」참조.

​[설화]

고기 잡는 늙은이는 거도자를 나타낸다.
海印:漁翁擧道者也.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송

검은 용의 구슬12)을 빼앗아 돌아왔으나,
자잘한 마구니들 모두 의심하는구나.
집어 들어 큰 파도 속에 던져버리고,
손 모두 털어버린 대종사가 돌아왔노라.
雲門杲頌, “奪得驪珠卽便回, 小根魔子盡疑猜. 拈來抛向洪波裏, 撤手大家歸去來.”
12) 驪珠. 여룡(驪龍) 곧 흑룡(黑龍)의 턱 밑에 있는 구슬. ‘변벽’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귀중하고 얻기 
    어려운 것을 가리킨다. 본서5則 주석85) 참조.

​죽암사규(竹庵士珪)의 송13)

큰길에 아무도 없어 홀로 당당히 가노라니,14)
편 모두 관청에서 증명하여 아주 분명하네.
길가에서 소금15)을 몰래 매매하는 사람들은,
몸을 웅크리고 풀 속에 숨어 일생을 보낸다네.
竹庵珪頌, “官路無人獨自行, 兩家公驗甚分明. 路傍偸販私鹽客, 草裏蹲身過一生.”
13) 1~2구는 두 선사가 자유롭게 자신의 입장에서 거래한 소식을 나타내고, 3~4구는 두 선사에 대하여 
    번뇌망상의 풀 속에서 이리저리 궁리하지만 아무도 인정할 수 없는 암증(暗證)을 드러낼 뿐인 사이비 
    선사를 풍자한다.
14) 두 선사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각자 자신의 입장에 충실한 모습을 나타낸 구절.
15) 옛날 중국에서 소금은 정부에서 전매권을 가지고 있었고 민간의 거래는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고파는 사람 이외에는 알지 못하는 밀매매 형태로 이루어졌으므로 두 사람만 알고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는 뜻을 비유한다.

대혜종고의 거

“손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님이며, 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이다. 두 대사16)가 뜻밖에 만나 주인과 손님의 입장을 서로 바꾸며 그 자리에서 임제(臨濟)의 핵심을 뚜렷하게 드러냈다.17) 진실로 철저하게 깨달은 향상의 수단이 없고 범상한 생각을 벗어난 바른 안목을 갖추지 않으면, 한편이 이겼고[得] 한편은 졌다[失]고 분별하는 잘못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18) 어떤 사람은 ‘거공19)이 앞서 말한 한마디 한마디는 사실에 따른 대답이었을 뿐이다. 낭야가 마지막에 한 말20)은 불법의 도리를 드러내는 데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으니,20) 이것이 바로 말을 제멋대로 지어낸 부분[杜撰]이다’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이는 ‘낭야는 말을 제멋대로 지어낸다는 거공의 질책을 듣고 마음속에 의혹이 생겨 곧바로 무기를 버리고 갑옷도 벗어 항복하고는 마침내 거공을 만류하여 (떠나지 않도록 하고) 본분사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했던 것이니, 이것을 가리켜 좌참21)이라 한다’라고 생각한다. 개 한 마리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짖으니 천 마리 삽살개가 으르렁대며 먹이가 있는 듯이 다투는 꼴이다.22) 대체로 법을 주관하는 자가 지혜로운 안목을 밝히지 못한 채로 근본적인 가르침을 처음으로 여는 역할을 맡음으로 말미암아 후인들을 미혹시켜 오도하게 된다. 두 대사가 본분을 크게 떨친 것은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서 빛나고 용과 코끼리가 서로 발길질하는 것과 같으며, 결코 절름발이 나귀나 맹인이 하는 짓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나 초파리가 어찌 우주의 드넓음을 알겠는가? 내가 일찍이 조실에서 이 공안을 제기하고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냥야의 이 말23)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인정하지 않느냐?’ ‘불법의 도리를 조작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시 운문문언(雲門文偃)이 동산수초(洞山守初)에게 물은 다음의 문답을 제기했다. ‘어디서 오는가?’ ‘강서의 사도(査渡)에서 옵니다.’ ‘하안거는 어디서 지냈는가?’ ‘호남의 보자사에서 지냈습니다.’ ‘언제 그곳을 떠났는가?’ ‘8월 25일입니다.’ ‘그대에게 3돈방(頓棒)24)을 시행하겠다.’25) 내가 다시 그 학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운문의 이 말을 인정하는가?’ ‘인정합니다.’ ‘인정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운문에 게는 불법의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종사가 물은 내용도 같고 학인이 대답한 취지도 다른 점이 없은데, 그대는 어째서 한편은 인정하고 다른 한편은 인정하지 않는가?’ 그 학인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기에 내가 연이어 때려서 내쫓았다가 다시 ‘그만 이리 와 보라. 이리 와 보라’고 하자 그 학인이 고개를 돌렸고, 내가 말했다. ‘그대가 만약 매를 맞았다고 생각한다면 나까지 그 착각에 연루시켜 눈먼 놈으로 만드는 짓이다.’ 그 학인이 절을 올리며 ‘이제야 비로소 낭야와 거공의 뜻을 보통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대는 그 눈먼 자들이 어지럽혀 놓은 작태를 잘 살펴야 한다’라 말하고 또 다시 때리고 소리 질러 내쫓았다.”   
雲門杲, 擧此話云, “賓則始終賓, 主則始終主. 二大士驀箚相逢, 主賓互換, 直下發明臨際心髓. 苟非徹證向上巴鼻, 
具出常情正眼, 未免作得失論量. 或者道, ‘擧公前來一一據實秪對. 瑯琊末後, 不合作佛法道理, 是杜撰處.’ 或者道, ‘瑯琊,
被擧公道个杜撰, 心中疑惑, 卽時倒戈卸甲, 遂挽留擧公, 咨決此事, 謂之坐參.’ 一犬吠虛, 千猱啀實. 蓋由主法者智眼不明, 
濫觴宗敎, 疑誤後人. 殊不知, 二大士激揚, 若日月麗天, 龍象蹴踏, 決非跛驢盲者之事. 井蛙醯雞, 又焉知宇宙之寬廣耶? 
余嘗室中, 擧此話, 問學者, ‘你還肯瑯琊此語否?’ 曰, ‘不肯.’ ‘何故不肯?’ 曰, ‘不合作佛法道理.’ 余復擧, 雲門問洞山, 
‘近離甚處?’ 曰, ‘査渡.’ ‘夏在甚處?’ 曰, ‘湖南報慈.’ ‘幾時離彼?’ 曰, ‘八月二十五.’ 門云, ‘放你三頓棒.’ ‘你還肯雲門此語否?’

曰, ‘肯.’ ‘肯者云何?’ 曰, ‘雲門, 無佛法道理.’ 余曰, ‘師家, 問處一般;學者, 答處無異, 你爲什麽, 肯一不肯一?’ 學者佇思, 
余連棒打出, 復召其僧, ‘且來, 且來!’ 其僧回首, 余曰, ‘你若作棒會, 帶累我, 也是箇瞎漢.’ 其僧便禮拜曰, 
‘今日方知瑯琊與擧公, 非常情可測.’ 予曰, ‘你看者瞎漢亂統.’ 又打喝出.”〈云云〉
16) 大士. 본서98則 주석3), 883則 주석9) 참조.
17) 임제에게 손님과 주인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종지를 드러낸 사빈주(四賓主)의 선법이 있는데, 두 선사가 
    이것을 적절하게 시현해 보였다는 뜻이다. 또한 임제는 주인과 손님이 각자의 입장에 충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보여주는 선법뿐만 아니라 손님이 주인의 자리로, 주인이 손님의 자리로 자유롭게 거래하는 
    선법도 제시하고 있다. “이때 마곡보철이 나와서 물었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이 지닌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 중 어떤 것이 바른눈[正眼]입니까? ’임제가‘ 대비관음의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 중 어떤 것이 
    바른 눈인가? 속히 말해 보라!’라고 되묻자, 마곡이 임제를 법좌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올라앉았다. 
    임제가 가까이 가서 ‘안녕하신가?’라고 하였는데, 마곡이 머뭇거리자 이번에는 임제가 마곡을 법좌에서 
    끌어내리고 앉았다. 이에 마곡은 곧바로 나가버리고 임제도 법좌에서 내려왔다.”(『臨濟語錄』大47 
    p.496c5. 時, 麻谷出問, ‘大悲千手眼, 那箇是正眼?’ 師云, ‘大悲千手眼, 那箇是正眼? 速道速道!’ 
    麻谷拽師下座, 麻谷卻坐. 師近前云, ‘不審?’ 麻谷擬議, 師亦拽麻谷下座, 師卻坐, 麻谷便出去,師便下座.)
18) 이어서 혜각이 졌고 전거가 이겼다고 잘못 분별하는 예를 들고있다.
19) 擧公. 전거(全擧)를 말한다.‘公’은 경칭(敬稱).
20) ‘배나 육지 그 어느 길과도 상관없는 한 구절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라고 던진 질문.
21) 坐參.『禪林象器箋』에 따르면, 주지를 만나 법어를 듣고 문답을 나누는 만참(晩參)을 하기 전에 
    대중들이 승당에 모여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기 위해 행하는 좌선이라고 정의한다. 이어서 대혜의 
    이 구절을 인용하여 ‘한곳에서 머물며 참선한다’는 뜻도 있지만 대혜도 이 말을 ‘안목이 없는 자들의 
    속설’을 인용한 것이므로 충분한 근거를 가진 말은 아니라고 밝힌다. “또한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지 
    않고 참선하는 것을 좌참이라 한다. (대혜의 말 중략) 도충(道忠)이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이 주석하는 
    근거지를 떠나지는 않은 채 다른 곳에서 잠시 머물며 참선한다는 뜻이다. 대혜는 속설을 제기한 
    것일 뿐이므로 그 뜻을 모두 받아들이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못하다.’”(『禪林象器箋』 권9 「坐參條」 
    禪藏 p.624. 又不遊方而參禪, 曰坐參. …… 忠曰, ‘此不離己住處,居參禪於他之義. 蓋大慧舉俗說,
    故其義不足取焉.’)
22) 남의 착각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뜻. 본서 110則 주석83) 참조. 원문의 ‘猱’는 원숭이라는 뜻이지만, 
    삽살개를 뜻하는 ‘㺜’의 잘못으로 보인다. “천 마리 원숭이가 으르렁거리며 다툰다.<猱는 㺜라고 
    해야 한다. 노(㺜)라는 글자는 ‘노’와 ‘도’를 반절한 음이고, 털이 길게 난 사나운 개이다. 猱는 
    원숭이를 가리키니 이치에 맞지 않다. 啀의 음은 애이고, 개가 다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景德傳燈錄』권13 大51 p.303a29.千猱啀實 <猱當作㺜. 奴刀切, 惡犬長毛也. 猱, 猴也, 非義.
    啀音崖, 犬鬪也.>)
23) 마지막에 던진 질문.
24) 1회에 20방씩 3회에 걸친 60방의 벌방(罰棒). 본서 553則 주석12), 607則 주석12)참조.
25) 또는 ‘그대가 삼돈방을 맞을 잘못을 했지만 용서해 준다’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放’에 
    대하여 ‘시행하다’ 또는 ‘용서하다’라는 두 가지 뜻이 모두 가능하다.

​[설화]

​‘손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님이다’라는 말은 낭야의 입장을 가리키고, ‘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이다’라는 말은 거도자의 입장을 나타낸다. 그 이하의 글이 길지만 이 뜻을 밝힌 것이다.  
雲門:賓則始終賓者, 瑯琊者也;主則始終主者, 擧道者也. 向下文長, 明此義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