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I

1379칙 낭야청정 瑯琊淸淨

실론섬 2026. 4. 23. 14:31

1379칙 낭야청정 瑯琊淸淨

[본칙]

​낭야에게 장수 좌주가 물었다. “청정한 본래의 모습에서 어떻게 문득 산하대지가 생겨났습니까?”1) 낭야가 소리 높여 “청정한 본래의 모습에서 어찌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겨났는가?”2)라고 반문했고, 좌주는 그 말을 듣자마자 크게 깨달았다.    
琅琊, 因長水座主問, “淸淨本然, 云何忽生山河大地?” 師抗聲云, “淸淨本然, 云何忽生山河大地?” 主於言下大悟.
1) 『楞嚴經』권4에 나오는 구절. 『楞嚴經』에 대한 10권의 주석을 쓴 장수자선(長水子璿)이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불변하는 무위(無爲)의 청정한 본연에서 어떻게 생멸 변화하는 유위(有爲)의 차별상이 
   발생했느냐는 취지의 문제를 던진 것이다. <설화>에제시된다.
2) 『從容錄』100則「著語」大48 p.291c10에 따르면, 동일한 두 선사의 말에 대하여 자선의 질문에는 
   “미혹되었을때는 삼계(三界)가 있다”(迷時三界有)라는 착어를 달았고, 낭야의 말에는 “깨달은 
   다음에는 시방세계가 모두 공이다”(悟後十方空)라고 착어를 달았다.

[설화]

『능엄경』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3) “부루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온갖 세간의 6근·6진·5음·12처·18계 등이 모두 여래장의 청정한 본래의 모습이라면, 어떻게 문득 산하대지가 생기고, 모든 유위의 상은 순서대로 변천하면서 마쳤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청정한 본래의 모습에서 어떻게 문득 산하대지가 생길까?’” 낭야는 바람의 방향을 살펴서 불을 붙였고 남의 손을 빌려서 주먹질을 했다고 할 만하다.4) 
그 말을 듣자마자 크게 깨달았다: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금가루가 비록 귀하기는 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가리는 티가 될 뿐이라는 뜻일까?5) 그는 깨달음의 자취가 없이 깨달은 것이다. 
楞嚴, “富樓那白佛言, ‘世尊, 若諸世間, 一切根塵陰處界等, 皆如來藏淸淨本然, 云何忽生云云? 諸有爲相, 次第遷流, 
終而復始.’ 佛言富樓那, ‘如汝所說, 淸淨云云.’ 瑯琊, 可謂因風吹火, 借手行拳. 言下大悟者, 作麽生會? 莫是金屑雖貴, 
落眼成翳麽? 悟無所悟也.
3) 이하는『楞嚴經』권4 大19 pp.119c15~120a3의내용이다.
4) 당시의 조건과 어울려 힘들이지 않고 일을 처리했다는 뜻. 별도로 방편을 만들어내지 않고 상대가 한 
   질문을 빌려서 그대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응했던 것을 말한다. 불감혜근의 게송에서 빌려온 해설이다.
5) 깨달음 자체 또는 그것으로 이끄는 귀중한 말들도 집착하면 도리어 진실을 보는 데 장애가 된다는 뜻. 
   “왕상시(王常侍)가 하루는 임제를 방문하여 임제와 함께 승당 앞을 바라보다가 물었다.‘이 승당에 사는 
   스님들은 경전을 봅니까?’ ‘경전을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禪)을 배웁니까?’ ‘선도 배우지 않습니다.’ 
   ‘경전도 보지 않고 선도 배우지 않는다면 결국 무엇이 되겠습니까?’ ‘오로지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라고만 가르칩니다.’ ‘금가루가 비록 귀하기는 하지만 눈에 떨어져 눈을 가리는 티가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을 속물이라 생각했었는데 아니로군요.’”(『臨濟語錄』大47 p.503c26. 王常侍, 
   一日訪師, 同師於僧堂前看, 乃問, ‘這一堂僧, 還看經麽?’ 師云, ‘不看經.’ 侍云, ‘還學禪麽?’ 師云, ‘不學禪.’ 
   侍云, ‘經又不看, 禪又不學, 畢竟作箇什麽?’ 師云, ‘總敎伊成佛作祖去.’ 侍云, ‘金屑雖貴, 落眼成翳, 
   又作麽生?’ 師云, ‘將謂爾是箇俗漢.’);“‘더러운 것이라면 생각에 두어서는 안 되겠지만 청정함도 
   생각에 두지 않아야 옳습니까?’ ‘마치 눈동자에 작은 이물질이라도 머물면 안 되는 것과 같다. 금가루가 
   비록 진귀한 보배이지만 눈 속에 있으면 병이 된다.’”(『景德傳燈錄』권7「惟寬禪師傳」大51 p.255b2. 
   又問, ‘垢卽不可念, 淨無念可乎?’ 師曰, ‘如人眼睛上, 一物不可住. 金屑雖珍寶, 在眼亦爲病.’)

​정엄수수(淨嚴守遂)의 송

분명한 그대로 놔두면 온몸 남김없이 드러나거늘,
한 발 다가서서 억지로 따지며 헤아리려 하는구나.
곱거나 추한 구별 옛 거울 마주했기 때문일 뿐이니,
되돌아보면 얼굴 가득 부끄러운 빛이 퍼지는구나.
淨嚴遂頌, “當明不犯體全彰, 進步剛然要論量. 姸醜只因逢古鏡, 迴頭滿面負慚惶.”

​[설화]

​분명한 것은 산하대지요, 몸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인 몸이다.
곱거나 추한 ~ 부끄러운 빛이 퍼지는구나:좌주는 깨달은 자리에서 비로소 지난날의 잘못을 알고는 부끄러움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淨嚴:明則山河大地也, 體則本然軆也. 姸醜只因云云者, 座主悟處, 方知昔日事, 慚惶不少也.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송

​있다고도 보고 없다고도 보니,6)
뒤집으면 손바닥 엎으면 손등이라.7)
낭야산에 사는 사람이여!
고타마보다 뒤지지 않는구나.
天童覺頌, “見有不有, 翻手覆手. 琅琊山裏人! 不落瞿曇後.”
6) “있다고도 보고 없다고도 보니 있는 그것은 저절로 문드러지고, 괴이하다고도 보고 괴이하지 않다고도 
   보니 괴이한 그것은 저절로 무너진다.”(『從容錄』 100則 「評唱」大48 p.292a10. 見有不有, 其有自朽;
   見怪不怪, 其怪自壞.)
7) 『從容錄』100則「評唱」大48 p.292a11에는 이 구절에 대하여 용수(龍樹)의 설을 인용하여 “일체의 법은 
   모든 인연 때문에 응당 있고, 일체의 법은 모든 인연 때문에 응당 없는 것이다.이것이 뒤집으면 손바닥 
   엎으면 손등이라는 뜻이다.”(一切諸法, 一切因緣故應有;一切諸法, 一切因緣故不應有. 此翻手覆手也.)
   라 하고, 이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모든 작용이 생사(生死)의 원인이기도 하고 해탈의 근본이기도 
   하다”라고 풀었다.

불감혜근(佛鑑慧懃)의 송

​바람 방향 따라 불 놓으면서 공연히 묘하다 하고,
남의 손 빌려 주먹질하는 것도 대단하지 않다네.8)
청정한 본래의 모습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니,
문득 대지와 산하가 생겨나는구나.
佛鑑懃頌, “因風吹火徒爲妙, 借手行拳未足多. 淸淨本然隨口道, 忽生大地與山河.”
8) 이방식을 『從容錄』100則「評唱」大48 p.292a5에서는“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뒤쫓고, 도적의 창을 
   빼앗아 도적을 죽인다.”(騎賊馬赶賊, 奪賊槍殺賊.)라고 평가했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송

​욕하겠다면 한껏 주둥이 달아 줄 것이며,
침을 뱉겠다면 얼마든지 물 뿌려 주리라.
티끌 하나만 들면 대지 전체 거두어지고,
꽃 한 송이 피어도 세계가 모두 일어난다.
한 모양으로 벗어났지만 공훈 전혀 없고,
한 구절에서 큰 보시의 문 밀어 열었다네.
圜悟勤頌, “相罵饒9)接觜, 相唾饒潑水. 塵擧大地收, 花開世界起. 一模脫出絶功勳, 句裏挨開大施門.”
9) 『圜悟語錄』권19 大47 p.801b20에는 ‘饒’ 다음에 두 구절 모두 2인칭 대명사 ‘爾’가 붙어 있다. 
   글자수를 맞추기 위하여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해인초신(海印超信)의 염

​“먼저 출발했으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고, 뒤에 떠났으나 목적지를 지나쳤다.”10)
海印信拈, “先行不到, 未後大過.”
10) 한편은 부족했고 다른 한편은 지나쳤다. 본서1則 주석36) 참조.

​[설화]

먼저 출발했으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좌주를 가리키고, 뒤에 떠났으나 목적지를 지나친 것은 낭야를 가리킨다.
海印:先行不到者, 座主也. 末後太過者, 瑯琊也.

​오조법연(五祖法演)의 염

​“금가루가 비록 귀하기는 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가리는 티가 될 뿐이다.”11)
白雲演拈, “金屑雖貴, 落眼成翳.”
11) 주석5) 참조.

[설화]

​청정한 본래의 모습이라는 말이 ‘금가루’이다. 그것이 눈에 붙으면 눈을 가리는 티가 되니, 낭야가 말한 경계는 뒤에 떠났으나 목적지를 지나친 격이기 때문이다.
白雲:淸淨本然處, 金屑也. 著眼則成瞖, 瑯琊道得處, 末後太過故也.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존자(부루나)는 그렇게 물었고, 낭야도 그와 똑같이 핵심을 집어냈다[拈]. 산하대지의 의미를 알았는가? 말해 보라! 영원히 남들의 귀감이 되는 안목은 어디에 있을까? 이미 관문을 통과한 자는 한번 분간해 보기 바란다.”〈이것은 능엄회상에서 부루나존자가 부처님께 ‘청정한 본래의 모습에서 어떻게 문득 산하대지와 모든 유위의 상이 생겨났습니까?’라고 묻고, 낭야혜각이 그 핵심을 집어내어 ‘청정한 본래의 모습에서 어떻게 문득 산하대지와 모든 유위의 상이 생겨났는가?’라고 한 말을 수록하여 문제로 제기한 것이다.>   
心聞賁, 上堂, 擧此話云, “尊者恁麽問, 瑯琊恁麽拈. 還曾識得山河大地也未? 且道! 萬年爲人眼, 在什麽處? 已過關者,
試請辨看.” 〈此錄擧, 楞嚴會上, 富樓那問佛, ‘淸淨本然, 云何忽生山河大地, 諸有爲相?’ 琅琊覺拈云, ‘淸淨本然, 
云何忽生山何大地, 諸有爲相?’〉

​[설화]

​산하대지의 의미를 알았는가:산하대지를 벗어나서 별도로 청정한 본래의 모습을 가리키듯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영원히 남들의 귀감이 되는 안목은 어디에 있을까:또한 가리켜낸 산하대지도 없다는 뜻이다.
心聞:還曾識得云云者, 似離却山河大地外, 別指淸淨本然也. 萬年爲人云云者, 亦無指出底山河大地也.

송원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낮은 길고 밤은 짧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깨우쳤는가? 푸른 하늘에 또 하나의 푸른 하늘이니, 해골 앞의 장애를 타파하라!12) 서서히 시간만 또 다시 흘려 보낸다고13) 어찌 어른이 소년으로 되돌아가겠는가?14)”  
松源, 上堂, 擧此話云, “日長夜短, 諸人還省麽? 靑天復靑天, 打失髑髏前! 看看日又過, 爭敎人少年?”
12) 타실촉루전(打失髑髏前). ‘타실’은 타파(打破)와 통하며, 어떤 장애를 타파하여 문제의 핵심을 
    알아차린다는 뜻이며, 잃어버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촉루’는 쓸데없는 분별의식 등을 비유한다. 
    “제야의 밤에 동촌에서 터지는 한 번의 폭죽 소리에 온 세상 사람들이 해골을 타파한다.”
    (『石田法薰語錄』권3 卍122 p.45a14. 東村爆竹一聲,盡大地人,打失髑髏.)
13) 『古林淸茂語錄』권2 卍123 p.432b18에는 “저도 모르게 낮이 또 밤으로 변한다.”(不覺日又夜)라고 
    되어 있다.
14) 세월만 덧없이 보낸다면 결정적인 변화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

[설화]

낮은 길고 밤은 짧다:시절에 따라 나타나는 인연이니 모든 유위의 차별상이다.
푸른 하늘은 좌주의 질문이고, 또 하나의 푸른 하늘은 낭야의 답변이다.
해골 앞의 장애를 타파하라:분별의식[情識]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서히 시간만 또 다시 ~ 되돌아가겠는가:또 다시 허망하게 시간이 흐를 것이다. 모든 유위의 차별상을 마주하고 깨우쳐야 된다는 뜻이다.
松源:日長夜短者, 時節因緣, 諸有爲相也. 靑天則座主問, 復靑天則瑯琊答也. 打失髑髏前者, 情識未斷也. 看看云云者, 
還是流注也. 當諸有爲相薦取, 始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