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9칙 대사공수 大士空手
[본칙]
부대사(傅大士)가 게송으로 읊었다. “빈손인데 호미를 들었고, 걸으며 물소를 타고 있네. 사람이 다리 위 지나는데, 다리 흐르고 물 흐르지 않네.”
傅大士頌, “空手把鋤頭, 步行騎水牛.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지공의 송
법신에 정해진 모습 없음이 빈손이라면,
색신이 인연 따라 있음은 호미 든 것이네.
만약에 걸으며 오가는 뜻 알게 된다면,
망상을 따라 변한 진심이 바로 소라 하리.
진심을 물에 빗대니 물은 항상 고요하며,
허망한 신체 다리 삼으니 다리만 흐를 뿐.
진심 움직이지 않고 오직 몸만 움직이니,
다리 흐르고 물 흐르지 않는 뜻 이것일세.
誌公頌, “法身無相爲空手, 色身從有把鋤頭. 若識步行來往意, 眞隨妄轉名爲牛. 眞心喩水水常寂, 妄體爲橋橋自流.
眞心不動唯身動, 正是橋流水不流.”
[설화]
지공의 송은 “지혜의 바다는 정해진 성품이 없는데, 깨달음과 망상을 분별함으로 인하여 범부가 된다”1)라고 한 구절과 같은 뜻이니, 현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문[隨流門]의 입장에서 읊은 것이다.
誌公頌則, 智海無性, 因覺妄而成凡, 以隨流門頌之也.
1) 황룡혜남(黃龍慧南)의 말.『嘉泰普燈錄』권3「黃龍慧南章」卍137 p.66b13 참조. 『黃龍語錄』 大47
p.637a16에는 “지혜의 바다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데, 깨달음과 망상을 분별함으로써 범부가 된다.”
(智海無風, 因覺妄以成凡.)라고 되어 있다. 곧 깨달음과 망상의 분별이 고요한 지혜의 바다를 흔들어
동요시키는 바람과 같고 그것이 곧 범부의 허물이라는 취지이다.
사대의 송
찰나에 생멸하는 무상이 빈손이요,
번뇌 뿌리 제거하려 호미 들었다네.
정혜 평등하게 닦음이 걷는 뜻이요,
법계 떠나지 않으려고 흰 소 탔다네.
육바라밀 다리 삼아 소 끌고 지나니,
모든 현상 무상함은 다리 흐름이라.
법성은 맑고 깨끗하여 물과 같으니,
본래 고요함이 물 흐르지 않음이라.
思大頌, “刹那無常卽空手, 爲除煩惱把鋤頭. 定慧雙修步行意, 不離法界騎白牛. 六度爲橋牽牛過, 諸行無常是橋流.
法性淸淨猶如水, 本來寂靜水不流.”
[설화]
사대의 송은 “깨달음과 망상이 원래 허망하니 범부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고 부처를 본다”2)라고 한 구절과 같은 뜻이니, 근원으로 돌아가는 문[返源門]의 입장에서 읊은 것이다.
思大頌則, 覺妄元虛, 卽凡心而見佛, 以返源門頌之也.
2) 주석1)에서 인용한 구절 뒤에 이어지는 황룡혜남의 말이다.
운문문언(雲門文偃)의 거
‘물소를 타고 있네’라는 구절까지 제기하고 “그대들은 북쪽을 향해 한 마리 물소를 타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라고 말한 다음, 주장자를 잡고 말했다. “모르는가? 천 마리건 만 마리건 여기에 이르면 다만 한 마리인 줄 알아야 한다.”
雲門偃, 擧此話, 至騎水牛, 師云, “是你從向北騎一頭水牯牛, 到遮裏.” 乃拈起拄杖云, “不見道, ‘千頭萬頭, 到這裏,
但識取一頭.’”
[설화]
‘이곳에 온 천 마리 만 마리 중에서 어떤 것이 그 한 마리인가?’라고 물은 뜻이다.
雲門:千頭萬頭處, 那箇是一頭?
지해본일(智海本逸)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각 구절에 착어를 달았다. “빈손인데 호미를 들었다.「잠꼬대 같은 소리다.」걸으며 물소를 타고 있네.「꿈속의 이야기이다.」3) 사람이 다리 위 지난다.「마구 달리는구나.」 다리 흐르고 물 흐르지 않네.「눈 안에 핀 꽃이다.」4) 나라면 그렇게 짓지 않았을 것이다. ‘빈손에 호미 없고, 걸을 뿐 소를 타지 않노라. 사람은 다리 위 지나가고, 물은 다리 아래로 흐르네.’” 〈참!>
智海逸, 上堂, 擧“空手把鋤頭, 師着語云, ‘睡語.’ 步行騎水牛, 師云, ‘夢言.’ 人從橋上過, 師云, ‘亂走.’ 橋流水不流, 師云,
‘眼花.’ 山僧卽不然. ‘空手沒鋤頭, 步行不騎牛. 人從橋上過, 水從橋下流.’” 〈參!〉
3) 잠꼬대나 꿈속의 이야기. 언어 이전의 경계는 아무리 뛰어난 방편을 구사하더라도 헛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것은 화두의 본질을 나타내기 위하여 간화선사들이 즐겨 쓰는 말이기도 하다.
부대사는 본래 스스로 잠꼬대로 알고 고의적으로 구사한 말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뒤틀린 선어(禪語)의
역설에서 깊은 맛을 느끼려고 생각을 짜낸다. 이는 전략적으로 제시한 허언(虛言)과 다르지 않다. 본서
2則 주석145) 참조. “제일의에 대하여 말하자면 인도의 28대 조사나 중국의 6대 조사도 모두 그
제일의의 종풍 아래에 선 것에 불과하며, 대장경의 가르침도 그것과는 백운 너머 만리의 거리로 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마가다국에서 방문을 닫아걸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나,
유마거사가 비야리성에서 불이법에 대하여 침묵했던 것도 꿈속에 있었던 이야기와 같으니, 천 분의
부처님께서 계속 이 세상에 나타나 설법하더라도 ‘잠꼬대’를 마치지 못한 꼴이 될 것이며,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행원도 굽은 것을 휘어서 억지로 곧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五祖法演語錄』 권상
大47 p.649a21. 若論第一義, 西天二十八祖, 唐土六祖, 立在下風, 一大藏敎, 白雲萬里. 摩竭掩室,
毘耶杜口, 正在夢中, 千佛出世, 寐語未了, 文殊普賢, 拗曲作直.)
4) 이 잠꼬대에 현혹되면 그 말이 눈동자에 앉은 이물질과 같이 되어 실상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설화]
네 구절에 대한 각각의 착어는 모두 물리치는 부정의 방식이다. ‘산승은 그렇게 짓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며 제시한 송은 평상의 경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취지이다.
智海:四句着語, 皆折挫也. 山僧卽不然云云者, 不動平常也.
운거요원(雲居了元)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여러 지방으로부터 한 마리 물소를 타고 왔다. 알겠는가? 만약 아직 모르고 있다면 산승이 소 찾는 방법을 하나 가지고 있으니 오늘 대중에게 보시하지 않을 수 없구나. 소를 찾으려면 반드시 자취를 찾아야 하고, 도를 닦으려면 무심해야만 한다. 자취가 남아 있으면 소도 있고, 무심하면 도를 찾기가 쉽다.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길러야 할까? 산승에게 소 기르는 하나의 방법이 있으니, 그것도 여러분에게 말해 주겠다. 소를 찾고 나면 마음에서 저절로 잊게될 것이니, 우리 안의 소가 검은지 누런지 더 이상 묻지 마라. 봄 산 내리쬐는 봄 햇빛에 봄풀이 저절로 돋을 것이니, 한가로이 높은 구름 쳐다보며 석양에 누워 있어라. 설령 그대가 소를 알거나 찾거나 기르더라도 두 번째 달5)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雲居元, 上堂, 擧此話云, “諸人惣從諸方, 騎一頭水牯牛來. 還識也未? 若未識得, 山僧有箇尋牛底法, 今日不免布施大衆.
尋牛須訪跡, 學道要無心. 跡在牛還在, 無心道易尋. 旣然尋得, 作麽生養? 山僧有箇養牛底法, 更爲諸人說破.
尋得牛來心自忘, 欄中休更問靑黃. 春山春日生春草, 閑對深雲臥夕陽. 直饒你識得尋得養得, 也落第二月.
5) 본서 161則 주석23) 참조.
[설화]
소를 찾는 방법은 무심이요, 소를 기르는 방법은 그 무심 또한 잊는 것이다.
봄 산 ~ 두 번째 달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곳곳에서 여유롭게 노니는 바로 이 경지도 여전히 두 번째 달과 같으니 반드시 본래의 달(첫 번째 달)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雲居:尋牛法則無心也, 養牛法則無心亦忘也. 春山云云者, 隨處優游, 此猶是第二月, 須知有第一月.
법진수일(法眞守一)의 거
이 공안과 더불어 운문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한 마리는 어디에 있는가?”
法眞一, 擧此話, 連擧雲門拈, 師云, “一頭在甚麽處?”
[설화]
하나를 찾았다 하더라도 또한 옳지 못하다는 뜻이다.
法眞:尋一箇, 又却不是也.
해인초신(海印超信)의 상당
이 공안과 더불어 운문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대중들이여! 자신의 물소를 아는가? 조금 전 법문을 알리는 북소리를 듣고 타고 와서 잠깐 쉬고 있지만, 법문을 마친 뒤에 다시 타고 갈 것이다. 비록 이렇기는 하지만 결코 남의 집 밭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6)”〈참!>
海印信, 上堂, 擧此話, 連擧雲門拈, 師云, “大衆! 還識自家水牯牛麽? 適來聞打鼓, 騎上來小閒, 參退騎下去. 然雖如是,
切莫犯人苗稼.” 〈參!〉
6) 소가 길이 들지 않으면 밭에 침범하여 곡식을 상하게 하듯이 수행이 성숙되지 않으면 밖의 경계에
미혹된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 “그대들 비구는 이미 계를 지키고 있으니 마땅히 다섯 감각 기관을
통제하여 방일한 마음으로 오욕에 빠지게 하지 마라. 비유하자면 소를 먹이는 사람이 채찍을 들고
지켜보며 제멋대로 곡식을 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만일 오근을 제멋대로 방임해 두면
오욕뿐만 아니라 온갖 성향이 끝없이 펼쳐져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遺敎經』 大12 p.1111a8.
汝等比丘, 已能住戒, 當制五根, 勿令放逸, 入於五欲. 譬如牧牛之人, 執杖視之, 不令縱逸犯人苗稼.
若縱五根, 非唯五欲, 將無崖畔, 不可制也.)
[설화]
대중들이여 ~ 들어가서는 안 된다:밭이란 유무의 모든 법을 가리킨다.
海印云云, 苗稼, 則有無諸法也.
설봉료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사람이 다리 위 지나는데, 다리 흐르고 물 흐르지 않는다 하는구나.” 이어서 주장자를 잡고 “이것이 바로 물이라면 저것은 다리이다. 이것이 다리라면 저것은 다리 위를 지나가는 사람이다”라고 한 뒤 마침내 대중에게 말했다. “가는 걸음마다 나의 길을 막지 마라.”
雪峰了, 上堂, 擧云,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乃拈柱杖云, “遮箇是水, 那箇是橋;這箇是橋, 那箇是橋上過底人.”
遂召大衆云, “行行莫攔我路.”
[설화]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 도달할 목적지에 이른다는 뜻이다.
雪峯:直須進前, 到其所到也.
황룡유청(黃龍惟淸)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옛사람의 말씀이 아닌 것인 줄 알고자 한다면,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차나 마시는 것이 좋으리라.”
黃龍淸, 上堂, 擧此話云, “作麽生會? 要知不是古人言, 正好歸堂喫茶去.”
[설화]
옛사람의 말씀이 아닌 것인 줄 알고자 한다면:부대사는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7)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차나 마시는 것이 좋으리라:본분사를 또 다시 오인할까 염려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黃龍:要知不是古人言者, 大士無此語也. 歸堂喫茶者, 本分事又恐認着也.
7) 부대사의 게송에 분명히 이 구절이 있음에도 ‘옛사람의 말이 아니다’라고 하거나 <설화>에서
‘대사는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라고 한 해설은 구절마다 걸려있는 화두의 묘미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라는 평가를 고스란히 받아들여도 화두를 보는 안목이
아니다. 이 평가에 관한 유명한 일화와 그에 대한 대혜종고(大慧宗杲)의 평가가 전한다.
“시중(示衆) 때 다음의 문답을 제기했다. 법안이 각철취(광효혜각)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조주에서 옵니다.’ ‘듣자하니 조주에게는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가 있다고 하는데 맞는가?’
‘그런 화두는 없습니다.’ ‘왕래하던 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어떤 학인이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물으니, 조주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답했다」라고 하는데, 상좌는 어째서 없다고 말하는가?’
‘조주는 진실로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으니 화상께서는 조주를 비방하지 마십시오.’ 이 문답에
대하여 대혜가 평가했다. ‘만약 이 화두가 있다고 말하면 각철취의 뜻을 놓쳐버리며, 이 공안이
없다고 말하면 또한 법안의 뜻을 놓쳐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있다·없다는 양변과 모두
상관없다고 말한다면 조주의 뜻을 놓쳐버릴 것이다. 설령 전혀 이러한 생각과 같지 않고 별도로
벗어날 하나의 길이 있다고 하더라도 쏜살과 같이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大慧語錄』 大47
p.843b22. 示衆, 擧, 法眼問覺鐵觜, ‘近離甚處?’ 覺云, ‘趙州.’ 眼云, ‘承聞, 趙州有柏樹子話, 是不?’
覺云, ‘無.’ 眼云, ‘往來皆謂,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州云, 「庭前柏樹子.」 上座何得道無?’
覺云, ‘先師實無此語, 和尙莫謗先師好.’ 師云, ‘若道有此語, 蹉過覺鐵嘴;若道無此語, 又蹉過法眼;
若道兩邊都不涉, 又蹉過趙州. 直饒總不恁麽, 別有透脫一路, 入地獄如箭射.’)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상당
어떤 학인이 물었다. “빈손인데 호미를 들었고, 걸으며 물소를 타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뱀장어가 기름 항아리 속으로 뛰어들었다.”8) “달마대사의 수염은 붉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와 똑같이 붉은 수염을 한 분이 계시군요.”9)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는데, 다리는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구나.” “부대사는 어물전과 주막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화상께서는 어디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까?” “모든 곳에서 사람들을 가르친다.” “몇 사람이나 가르치셨습니까?” “단지 그대 한 사람만 가르쳤는데, 그대가 칠통과 같이 까맣게 모를 뿐이다.” 대혜종고가 이어서 말했다.10) “빈손인데 호미를 들었다.「밥 속에 콩이 들어 있다.」 걸으며 물소를 타고 있다. 「발가락 끝을 찼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난다.「수많은 사람을 몹시도 속이는구나.」 다리 흐르고 물 흐르지 않는다.「그래도 모자라지만 조금 낫다.」 만약 이렇게 제기한다면 비로소 ‘미륵이여, 진실한 미륵이여! 천백억 가지로 몸을 나누었구려. 그때그때마다 적절하게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지만, 당시의 사람이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네’11)라고 읊은 뜻을 알 것이다.” 선상을 쳤다.
雲門杲, 上堂, 僧問, “空手把鋤頭, 步行騎水牛時, 如何?” 師云, “鱓魚走入油甕裏.” 進云, “將謂胡鬚赤, 更有赤鬚胡.” 師云,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進云, “只如傅大士, 向魚行酒肆裏接人, 未審和尙, 向甚麽處接人?” 師云, “向一切處接人.” 進云,
“未審接得幾箇?” 師云, “只你一箇漆桶不會.” 乃云, “空手把鋤頭, 飯裏有巴豆. 步行騎水牛, 蹴着脚指頭. 人從橋上過,
賺殺多少人. 橋流水不流, 却較些子. 若恁麽提得去, 方信道, ‘彌勒眞彌勒! 分身千百億. 時時示時人, 時人自不識.’” 拍禪床.
8) 뱀장어는 자신의 몸이 미끄러워 기름 항아리와 같이 미끄러운 곳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부대사 송의 앞에 두 구절에서 보인 파격(破格)의 형식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9) 부대사의 말과 대혜의 말이 드러난 형식은 다르지만 결국 내용은 같다는 뜻이다.
10) 이하는 부대사 게송의 각 구절에 착어(著語)를 다는 형식이다.
11) 포대(布袋 ?~916)의 임종게(臨終偈). 포대는 당나라 말기 오대(五代)의 스님으로 법명은 계차(契此)
이다. 세속에서 칠복신(七福神)의 하나로 간주되어 지금도 중국의 많은 절에는 포대의 상이 봉안되어
있다. 언제나 막대기와 포대를 가지고 걸식하였으며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믿어지고 있다.
[설화]
채소 항아리에 빠져 죽었다12)는 뜻이다. 또한 대의는 노승도 부대사와 마찬가지로 어물전과 주막에서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륵이여, 진실한 미륵이여 ~ 알아차리지 못하네’라는 게송을 인용한 것이다.
雲門意, 虀瓮裏淹殺也. 又大義, 老僧如傅大士, 魚行酒肆裏接人也. 故云, 彌勒眞彌勒云云也.
12) 임제(臨濟)의 말이다. “낙포가 그 뒤 임제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임제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남방으로 갑니다.’ 임제가 주장자로 선 하나를 긋고서 말했다. ‘이 선을 넘어서 가거라.’ 낙포가 할을
내지르자 임제는 주장자로 곧바로 때렸고, 낙포는 절을 올리고 떠났다. 임제가 다음 날 법좌에 올라
말했다. ‘임제 문하에 있던 붉은 꼬리 잉어 한 마리가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치면서 남방으로 떠났는데,
어느 집 채소 항아리에 빠져 죽었는지 모르겠다.’”(『五燈會元』 권6 「洛浦元安章」 卍138 p.200b10.
師後辭濟, 濟問, ‘甚麽處去?’ 師曰, ‘南方去.’ 濟以拄杖畫一畫曰, ‘過得這箇便去.’ 師乃喝, 濟便打,
師作禮而去. 濟明日陞堂曰, ‘臨濟門下, 有箇赤梢鯉魚, 搖頭擺尾, 向南方去, 不知向誰家虀甕裏淹殺.’)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부대사가 옳은 말을 하기는 했지만, 곧은 것을 휘어서 억지로 굽게 만든 것을 어찌하랴! 산승이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6월은 초복 때가 좋고, 8월은 중추가 절정이다. 사람의 마음이 평온하면 말이 없고, 물은 평평하면 흐르지 않는 법이다.13)”
心聞賁, 上堂, 擧此話云, “傅大士是卽是, 爭奈拗直爲曲! 山僧向你道, 六月上伏, 八月中秋. 人平不語, 水平不流.”
13) 달마다 지니는 특징은 매년 반복되는 평온한 현상이기에 절묘한 구절은 물론 어떤 특별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설화]
6월은 초복 때가 ~ 흐르지 않는 법이다:각 시절에 적절한 인연을 나타낸다. 부대사의 마음이 평온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평온한 말을 한 것이며, 앞에서 ‘곧은 것을 휘어서 억지로 굽게 만든다’라고 한 말과 통한다.
心聞:六月上伏云云者, 時節因緣也. 以謂不平傅大士, 故有此語, 前云拗直爲曲也.
송원의 상당 14)
“빈손인데 호미를 들었다.「모기가 무쇠소에 올라탄 격이다.」15) 걸으며 물소를 타고 있다.「황하의 강물이 거꾸로 흐른다.」 사람이 다리 위 지난다. 「사나운 호랑이가 길을 지키며 앉아 있다.」16) 다리 흐르고 물 흐르지 않네.「부처와 조사가 모두 원수로다.」17)”
松源, 上堂云, “空手把鋤頭, 蚊子上鐵牛. 步行騎水牛, 黃河水逆流. 人從橋上過, 猛虎當路坐. 橋流水不流, 佛祖是仇讎.”18)
14) 이 공안을 제기하고 각 구절에 대한 착어를 달았다.
15) 모기가 무쇠로 만든 소를 진짜 소로 착각하여 피를 빨아 먹으려고 덤비지만 부리가 들어갈 곳이
어디에도 없듯이 부대사의 그 말은 어떤 인식 수단으로도 뚫을 수 없다는 비유이다. 본서 324則
주석7) 참조.
16) 아무도 그 길로 통과하지 못한다는 말. 무쇠소의 비유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호랑이는 관문에
단단히 걸려있는 빗장과도 같다.
17) 부처와 조사에 의지하고 집착하여 해결하지 말라는 뜻. 송원숭악은『松源語錄』 권하「惠文伯居士請贊」
卍121p.624a10에서도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마라. 인천 대중의 스승이
되는 안목으로 보면 부처와 조사가 모두 원수이다.”(不著佛求, 不著法求. 人天眼目, 佛祖冤讎.)라고
하였는데, 이는 황벽(黃蘗)의 다음 말을 활용한 것이다. “법을 구하는 자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며, 중생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아야 하니, 마땅히 어떤것도 구하지 말아야
한다.”(『宛陵錄』大48 p.385b2. 夫求法者, 不著佛求, 不著法求, 不著衆求, 應無所求.)
18) 부처와 조사에 의지하고 집착하여 해결하지 말라는 뜻. 송원숭악은『松源語錄』 권하「惠文伯居士請贊」
卍121p.624a10에서도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마라. 인천 대중의 스승이
되는 안목으로 보면 부처와 조사가 모두 원수이다.”(不著佛求, 不著法求. 人天眼目, 佛祖冤讎.)라고
하였는데, 이는 황벽(黃蘗)의 다음 말을 활용한 것이다. “법을 구하는 자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며, 중생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아야 하니, 마땅히 어떤것도 구하지 말아야
한다.”(『宛陵錄』大48 p.385b2.夫求法者, 不著佛求, 不著法求, 不著衆求, 應無所求.)
'한국전통사상 > 공안집 II'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463칙 파자소암 婆子燒菴 (1) | 2026.04.23 |
|---|---|
| 1418칙 오조절각 五祖切脚 (0) | 2026.04.23 |
| 1412칙 백운타인 白雲他人 (1) | 2026.04.23 |
| 1379칙 낭야청정 瑯琊淸淨 (0) | 2026.04.23 |
| 1378칙 혜각절중 慧覺浙中 (0) | 2026.04.23 |